강아지의 건강검진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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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강아지 용이의 입에서 냄새가 쿵쿵 났다. 나이 들면서 이빨에 치석이 끼인 탓이다. 차일피일 미루다 동물병원에를 데려가 치석 제거를 부탁했다. 그랬더니 개의 경우 마취를 해야 하므로 일단 피검사를 해보고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단다. 잠시 후 의사는 용이의 피에 지방이 많이 끼어있다며 조만간 건강검진을 받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이를 병원에 두고 오면서 ‘이젠 강아지 건강검진도 해야 하는구나’하고 다소 어이없어했다. 강아지가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격상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엿한 가족의 일원으로 사람이 받는 온갖 혜택을 받도록 한다는 의미인 줄 미처 몰랐었기 때문이다.
가족처럼 지내는 용이가 아프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치석 제거를 마친 후 며칠 있다가 용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연유로 검진비가 만만치 않았다.
결과가 나왔는데 각종 수치가 그리 좋지 않다. 놀라며 우리가 잘못 키워서 그러냐고 묻자, 의사는 그런 것은 아니고 10살이라는 노견으로 되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 예방하는 약을 먹는 게 좋단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강아지는 으레 집밖에서 키우는 짐승으로 여겼었는데, 아파트가 보편화되면서 어느덧 강아지가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가족의 성원으로 등극하였다. 용이도 자기가 우리 집식구로서 당당하게 행동하는 듯하다.
변화하는 것은 강아지의 위상만이 아니다. 대학교만 하여도 인문학 계통의 학과들이 존폐위기에 처해있다. 철학과나 국문과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고 하니 말이 되는가. 취업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학과는 신입생이 외면하기 때문이란다.
노인들의 주거 형태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배우자가 죽고 혼자 남게 되면 자식의 집으로 가서 사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끝까지 혼자 남아 덩그러니 지낸다. 그것이 어려우면 양로원으로 갈지언정, 자식네 집으로 가서 짐짝 노릇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이토록 모든 게 숨 가쁘도록 빨리 변화하는 탓에 어지러울 정도다. 그리고 매사에 뒤처지는 생활을 하기 십상이다. 나 또한 여전히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기계조작에 서툰 나머지 나날이 구식으로 밀려나고 있다. 많은 게 휴대 전화기로 이루어지는데 각종 앱을 사용할 줄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게 한둘이 아니다. 필요해서 배울지라도 자주 사용하지를 않아 번번이 잊어버리기 일쑤다.
아무튼 용이의 건강검진의 계기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에 적응하고자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빠른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채 뒤처질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게 된 듯하다. 이미 노인이니까 그냥 살던 대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100세를 사는 시대에 다다르고 보니 그렇게 단념하고 살기도 뭣하다. 필요할 때마다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신세가 될 테니, 그것도 민폐일 것 같아서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학습 능력이다. 알고 있던 것도 잊어버리는 판에 새로운 것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숱하게 반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텐데…. 특히 기계조작에 관한 것은 무의미 철자처럼 막막해 그 장벽을 뛰어넘으려면 여간 마음을 다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다시금 어린 학생들에게 경탄한다. 그 나이에 어쩌면 그렇게 새로운 것을 빨리 습득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 자들을 보고, 어려서 뭘 모른다고 취급하려 드는 우리 어른들, 그런 사고 역시 일종의 편견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