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THIS IS TOTAL WAR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히스토리아] 석경당과 연운 16주 그리고 요나라.
Red eye 추천 1 조회 323 23.11.29 01:04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3.11.29 01:07

    첫댓글 얘가 한 선택을 옹호까진 아니더라도 변론 가능할까요...?

  • 23.11.29 01:27

    배신과 모략이 난무하는 5대 10국이라는 난세에 살면서 한 개인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식으로 "이해"는 할 수 있다 봅니다. 근데 이해를 하는 것과 그 사람의 행동과 선택이 불러온 결과에 대한 비판 혹은 부정적 평가를 하는 건 별개니까요.

  • 23.11.29 01:27

    @배달의 민족 오삼계랑 비슷한...?

  • 23.11.29 01:49

    @paul1117 재미(?) 있는 건, 실제로 둘이 세트로 언급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

    달로(오랑캐)를 몰아낸 뒤, 우리 민족의 국가를 광복시킬 것이다. 감히 석경당 오삼계와 같은 짓을 하는자, 천하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으리!
    驱除鞑虏之后,光复我民族的国家。敢有为石敬瑭、吴三桂之所为者,天下共击之!

    - 1906년 《中国同盟会革命方略》 중에서 -

  • 23.11.29 01:51

    @배달의 민족 근데 그럴만 하긴 한...

  • 작성자 23.11.29 09:03

    @배달의 민족 그렇군요. 또 하나 배웠습니다.

  • 작성자 23.11.29 01:08

    사마씨 왕들만 장성 이북의 북방인들을 불러들였는 줄 알았더니 석경당 이라는 인물도 있었군요. 연운 16주 할양의 인과관계를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때문에 알고리즘이 여기까지 오게되었네요.

  • 23.11.29 09:27

    이극용이나 석경당 모두 원래 북방인인 투르크계 사타족이라, 한족 명망가 출신이었던 사마씨와는 다르긴하죠.
    중원의 황제가 되서 그랬으니 중국인 입장에서는 비난하겠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말타고 당나라 약탈하고 다니던 애들이라 거란과 그게그거죠.

  • 작성자 23.11.29 11:17

    @jyni 네. 엄격히 말하면 그렇게 볼수도 있으나 이미 팔왕의난이 3세기말의 일이고 그 때 북방인들이 대거 유입되어 혼혈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16국시대, 수당시대, 5대10국의 500년의시간을 지나는 동안 중국문화권에 동화되어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니 장성 이북은 그들에게 북방의 오랑캐라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이벤트에서 주목한 것은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외국의 무장력을 끌어들이고 그것도 모자라 장성 이남의 화북 땅 일부를 할양했으며(충격적임) 돈으로 평화를 떼우려했다는 점, 더욱이 연운 16주에 살던 당시 사람들은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그들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을 것 같고 석경당 일당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이러한 상황을 몰랐는데 고려거란전쟁때문에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고려 태조께서 중원이나 만주세력의 간섭없이 한반도 내에서 후백제와 사투를 벌이는데 총력을 기울일 수 있었던 배경도 함께 이해할 수 있었네요.

  • 23.11.29 11:08

    @jyni 사타부나 초기 5호는 이전부터 중국 정권의 부용세력이라서 거란과 차이는 있습니다. 이들은 종족은 다르지만 왕조 개창 이전에도 이미 중국의 구성원이었던 존재라서 이들의 정권 탈취는 거란과 달리 외부 세력의 침공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23.11.29 11:18

    @young026 티벳이 강할때는 그쪽에 합류하기도 하고 이극용은 반란까지 일으키고 했던걸 보면 완전 부용세력은 아니고 서진이 끌어들인 남흉노와 크게 다르지 않을겁니다.

    그리고, 거란도 당이 강성할때는 복속되었던 적도 있죠.

  • 23.11.29 11:12

    그 유명한 연운 16주가 석경당 때문에 거란에 넘어갔군요 잘 보고 갑니다

  • 23.11.29 11:19

    1. 저 16주를 넘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중화사상 때문만이 아니라 북방 유목민족을 막는데 긴요했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그냥 넘겨줬기 때문입니다. 후대에서 손쉽게 거란이 후진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장성 안에 이미 강력한 군사거점의 구축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당대인들이 이걸 탈환해야 한다고 난리치는 것은 유목 세력을 장성 밖으로 몰아내지 않으면 국경선의 안전 보장을 확보하기 매우 어려웠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2. 일단 송대에도 저 16주의 탈환 자체는 실패했는데(이후 전연의 맹) 전연의 맹 이후에도 국경지대에서 타초곡기라고 불리우는 노략질은 계속되었습니다. 대규모 전쟁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국경분쟁은 일상이었던 거죠.

    후진에서 강경파가 득세한 것은 뭘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식으로 거란이 심각하게 노략질을 하는 등의 행위를 반복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 물론 표를 올릴 때는 국가의 치욕이니 뭐니 명분론 들고 오지만..)

  • 23.11.29 11:20

    마지막으로.. 석경당이 애초에 자기 왕조 창출할 역량이나 준비가 있었냐면.. 그건 좀.....

    그냥 개인의 권력욕구가 가장 크게 작동하긴 했죠.. 빈말로도 석경당이 현실주의자이거나 정치적 감각이 좋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재물만 줘도 충분한 전략을 고용할 수 있는 것을 황제 되겠다고 "너무 과하게" 퍼줬죠.

  • 23.11.29 11:26

    반대의 경우 서희가 아예 영역으로 확보한 강동 6주는 거란과의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선으로 동작합니다. 유명한 홍화진과 통주 / 귀주 / 곽주 등 개경과 서경 방어에 가장 중요한 1차 방어선이 모두 여기에 포함됩니다.

  • 23.11.29 12:35

    @델카이저 그러네요. 연운16주는 장성 이남 교두보로서 매우 가치 높은 곳

    우리로 치면 서경 이북 서북면 6주를 거란에게 내준꼴

    6주 먹고도 처절히 싸운 마당에 방어가 잘 될리가...

    이렇게보니 1차때 할양론 운운한건 ㄹㅇ 역적질이었네요

  • 23.11.29 12:23

    저 상유한은 거의 거란스파이 수준인데..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