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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묻고 현실을 생각해 본다
양 태룡
우여곡절 끝에 올여름 휴가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정했다. 하노이行 비행기는 지금껏 여행에서 본 모습과 달랐다. 기내식도 없고 음료도 제공되지 않았다. 후진국이라서 그런가? 약4시간의 비행 끝에 언제 닿았는지 모르게 부드러운 착륙을 하기에 조종사의 기량은 우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로 환승하여 하롱베이로 이동하는 데 차창 밖에 가옥들은 좁고 길게 지어 햇볕을 덜 받기 위한 구조라고 한다. 논 가운데 무덤이 군데군데 있다 .지금껏 해외를 나가면서 보고 느낀 것은 대다수의 나라들이 집 근처 또는 생활터전 주변에 무덤이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산에다 매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1시간쯤 가다가 배도 출출하고 허름한 빵집에서 빵을 하나먹었다. 집은 허름하지만 맛은 빠리바게뜨 맛 그대로다. 약96년 간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문화나 생활 전반이 프랑스식으로 되었다고 한다. 1975년 호치민이 남북통일을 하고 사회주의 국가체제가 되었지만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투자를 통한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는데 특이한 점은 1인당 3주택까지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절실히 묻고 가까운데서 생각함-를 떠올려 보았다. 묻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실제 주제와 동 떨어지는데 문제가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도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본질과 유리된 관념의 주입?
저항하는 집단과 반발하는 세력은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본질에 치우치면 이상적인 이론만 포장될 수 있고 현실문제에 안주하면 답보상태라 변화가 없다. 절실히 묻고 연찬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도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롱베이에 도착하니 전쟁터에 나가는 용병들이 줄을 서서 출전을 기다리듯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하롱베이는 1969개의 섬이 있는데 42개의 섬에만 사람이 살고 나머지는 무인도라고 한다. 이 섬은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龍부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적에게 여의주를 쏴서 적의 침략을 막았는데 그 여의주가 지금의 크고 작은 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은 바다지만 파도가 없어 잔잔한 호수 같은 느낌이다.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향로바위, 대문바위, 키스바위, 고래바위, 코끼리 바위 기암괴석의 모습을 보고 다시 작은 배로 갈아타고 hang luon cave를 지나면서 일상에서 벗어난 휴가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쓸모없는 듯 보이는 작은 섬들도 군락을 이루니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이 모여서 거대한 자연경관이 되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자연유산이 되는 것이다. 걸출한 인물이 있기 위해서는 평범한 집단의 사람들이 존재해야 하고 거목이 있기 위해서는 작은 나무들이 존재해야하듯이. 순간 우리 국토는 거대한 자연유산도 별로 없고 선조들의 화려한 걸작품인 문화유산도 미미하다. 그래서 살아남을 방법은 근면과 성실이다. 우리민족이 성실하고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살아가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이치다. 그런 성실한 면이 있기에 전쟁의 잿더미에서 압축성장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노젓는 이는 우리를 바닷가 한쪽 모서리로 안내한다. 원숭이 몇 마리가 나무를 옮겨가며 곡예를 하면서 과일을 따먹고 어떤 원숭이는 관광객이 던져주는 과자를 먹으면서 나무 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배를 채우고 있다. 사람 사는 이치나 동물이 살아가는 이치는 똑 같은가 보다. 다시 보트로 갈아탔다. 이제는 보트조종사가 맘대로 기량을 뽐내면서 아찔하게 가슴을 졸였다가 놓았다가 하는 움칫하는 긴장과 쏴하는 확장 속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다시 큰 배를 갈아타고 티톡전망대를 올라서 바다 경관을 조망한다. 해발 100미터도 되지 않은 야트막한 산을 올랐는데도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주변을 내려 보니 뻥 뚫린 바다만큼 일상에 뭉쳤던 응어리도 확 날려 보낸다.
저녁 무렵 하롱베이의 도심인 브이자이市로 이동하여 케이블카와 sun wheel 관람차를 타고 수백 개의 섬과 도심을 내려 보고 있노라니 건너편 홍가이市 저 한쪽에 크루즈선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도심은 불을 밝히고, 각종 조형물을 보면서 달빛인형극장으로 이동하여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형극을 관람한다. 농사를 지어서 즐기는 농부의 모습은 서민들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닭 두 마리가 교미하여 병아리가 나오고 전통악기 연주와 민속노래에 맞춰 요정은 춤추고 소가 날뛰고 용이 승천하는 인형극은 언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좋다.
홍강을 지나서 다시 하노이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에서 오페라하우스, 증권거래소, 중앙우체국등 낡고 큰 건물은 프랑스가 식민통치할 때 지은 건물로 130여년이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 세기를 지배당하고도 프랑스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민족을 약탈하고 생명을 죽이면서 아녀자에게 고초를 주었던 역사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전동카를 갈아타고 호안끼엠(還劍)호수일대를 돌아본다. 호수의 전설은 ‘15세기 여나라 왕 레로이는 호수에서 건져 올린 검으로 명나라를 물리치고 베트남을 건국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갔더니 호수에서 거북이 나타나서 검을 돌려달라고 하여 돌려주니 검을 물고 돌아갔다‘고 전해온다. 무성한 가로수아래에는 산책하는 사람, 바둑, 장기 두는 사람들은 마음이 평화를 찾고 여유 있어 보인다.
이어서 들린 곳은 호수 북쪽에 있는 36거리다.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다. 향박거리, 향코아이, 향보, 향마, 루엉반깐, 향꾸앗, 향티엑, 랑몽, 향겐 등 등…
무질서 속에 질서란 이런 때 표현하는 것 아닌가 싶다. 오토바이가 주를 이루고 승용차 자전거가 모두들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가는데 사고 한 건 없이 적절하게 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틀면서 지나간다. 한 끼니 때우기 위해 거리의 식당에서 분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일행도 베트남 전통음식인 분짜로 해결한다. 육수에 쌀국수와 숙주, 볶은 고기 몇 점을 넣고 고수를 얹어서 맛을 본다. 열대지방이라 육수물이 약간 짭짜름하지만 깔끔하다. 고수는 특유의 향냄새가 나지만 입을 가리지 않는 탓에 양껏 먹었다. 자리를 옮겨 프랑스 식민지배시기에 세웠다는 하노이성당. 성당의 검게 그으린 벽면은 피지배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성당 앞으로 이동하여 유명하다는 꽁까페로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신다.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다. 커피가 맛있다고 이곳까지 마시러 오는가. 유행병인 듯하다.
캄보디아로 가기위해 노이바이 공항에 잠시 머물고 있다. 관광객들 중에 눈이 마주친 40대의 남자와 몇 마디 나누고 저마다 갈 길을 향해서 이동한다. 약2시간30분정도 비행후 Siem Reap공항에 도착하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거리를 돌아보니. 한-캄보디아 우정의 거리가 있다. 이 도르는 우리나라에서 공사를 한 모양이다. 가게에 들러 열대과일인 두리안 과 앙코르맥주를 맛보았다. 두리안을 쪼개니 약간 녹은 듯한 바닐라향 아이스크림에 바나나 맛을 가미한 것 같다. 앙코르 맥주는 세계맥주대회에서 1등 했다고 하는데 황색 병은 일반 맥주 맛이고 흰색 병은 생맥주처럼 약간 쏘는 듯하다. 기분이 좋고 하여 옆 테이블에 앉은 중국사람 들에게 장난도 걸어본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지금껏 먹었던 여느 식단과 달리했다. 지역특성에 맞게 열대과일위주로 선정했다. 과일은 원산지에서 제 철에 먹는 것이 최고일 것이라는 생각에 과일만 두 접시를 먹고 유산균과 계란 후라이로 해결했다.
툭툭이-오토바이 뒤에 의자를 설치한 인력거-를 타고 Angor thom을 향해서 이동하고 있다.
주변은 원시림으로 약700~1200년된 참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드넓은 부지 안에 한 변이 3km나 되는 앙코르 톰은 1200년 전 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면서 저주의 땅이라고 여겨 아무도 찾지 않다가 프랑스 식물학자 발견하면서 세상 속으로 다시 나왔다고 한다. 그 규모는 앙코르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베트남 참파족에 의해 4년 지배의 치욕을 복수하기 위해 UDT요원을 양성하여 배를 전복시키는 조각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자이바르만 7세는 100만의 의식주 해결하고 진료소를 설치하는 등 민생문제 해결에 고민하였고 절대 왕권의 상징으로 바이욘사원을 건립하였다.
벽면에 소를 죽이는 군인의 석각이 있다. 자야바르만 7세가 왕족인 브라마계급을 무너뜨리고 자신이 왕이 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자야바르만 왕은 코끼리 대신 말을 잡고 격려하고 있다 출정식에 입을 다물고 있는 큰 귀를 가진 캄보디아 군인의 모습은 결기를 느끼게 하는데 수염을 기른 중국인 용병들은 웃고 있다. 출정하는 군인들에게 밥 짓고 보양식으로 자라를 먹이는 모습은 여자들도 전쟁에 동참한다는 총력전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탑프롬 미복원지대 입구에 들어서니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발을 재촉하여 가까이 가서보니 캄보디아 내전 때 지뢰를 밟아 부상을 입은 군인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십시일반으로 저마다 1달러,2달러 씩 모금함에 넣어준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10여 년 전 한국의 유명연예인이 이곳을 지나다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20달러를 주었더니 곧바로 철수 했다고 한다. 이유이즉 하루 일당을 벌었으니 더 이상 연주(?)할 가치가 없다고. 우리 같으면 한 푼 이라도 더 벌려고 일(연주)을 할 텐데 이들은 물질적 욕구 충족보다는 시간적 여유를 즐기는 모양이다. 우리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two-job three-job 하는 가장의 사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본다. 미복원지대 내부로 들어가니 거대한 나무들이 뿌리로서 성벽을 제압하고 있다. 자연은 문명으로 극복하였는데 다시 자연의 위대한 힘은 문명을 짓누르고 있다. 거목에 짓눌린 성벽을 보면서 파노라마식으로 사진을 찍어둔다.
앙코르왓 입구에 200년이 된 벤자민 나무가 서 있다. 상상을 초월한다. 캄보디아 내전 때 해자를 지나서 사원입구에 들어서니 곳곳에 총상을 입은 석각들이 눈에 띈다. 내전 때 종교 말살정책으로 무자비하게 사격을 가한 모양이다. 해자를 지나고 성벽을 오르고 천상계까지 나아가는 모습은 신을 신성시 하고 저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관람이 끝나고 나오는 길 마라톤대회 플랑카드가 걸려있고 대회 준비하는 인원들은 구조물 설치에 바쁘다. 열대지방에서 무슨 마라톤? 했는데 평지의 원시림을 달리는 재미를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신발을 갈아 신고 달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밤이 되자 유럽의 밤거리를 묘사한 거리 풍경을 본다. 맥주 한 병에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 유리병에 조각하는 작가 앞에 사진 찍어달라고 졸라대는 아가씨, 불 쇼를 하는 요리사를 보면서 무리지어 있는 청춘들...
개울을 하나 건너니 포장마차 거리가 있다. 마치 꿀꿀이 죽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청춘들이 있는데 뒤쪽에는 어린아이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대충 씻는 것 같아 지나가는 내속이 매스껍다. 시장을 돌면서 그림도 보고 옷가게 신발가게 등을 돌아오다가 한 쪽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캄보디아 민속노래 같은 느낌이다. 행복(사바이)이란 저런 모습이 아닐까. 가족단위로 모여서 밥 먹고 노래하고 담소하는 모습.
숙소 입구는 자스민 향이 듬뻑 품어있다. 고객에 대한 배려로 느껴진다.
대학살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설립한 왓드마이 사원으로 들어갔다. 캄보디아 하면 폴포트가 자신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200만 명을 죽였다는 킬링필드를 연상케 한다. 입구에 해골이 잔뜩 들어있는 탑이 있다. 폴포트는 머리가 비상하여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지만 그는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어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여 빈민을 가르치면서 농업을 기반으로 한 혁명을 기치로 내걸고 지식인을 학살 하였다. 자신이 신념을 위해서 국민의 1/3을 죽이는 만행을 하는 지도자. 다시 한 번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본질과 현실사이를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다. 그도 하늘의 저주를 받았을까 4년 만에 정권을 빼앗기고 만다. 지금의 훈센총리가 공산주의와 신념이 맞지 않아 베트남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여 승리로 이끌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아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하지만 톤레쌉을 관광하면서 그 또한 권력욕에 파묻힌 인간임을 확인한다.
톤레쌉은 동양최대의 호수이자 세계 3위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우기(5~11월)가 되면 수심이3배나 높아져 최대의 어획량을 자랑하고 어부들은 많은 량의 고기를 잡는다고 한다. 저 멀리 히말라야에서 눈이 녹아내리면 메콩강이 넘치고 물은 역류하여 톤레쌉으로 들어와 수면이 올라가는데 호수위에는 4500여 가구의 수상가옥이 있다. 황톳물을 마시고 산다는 것이 신기하고 배움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한 집에서 황톳물로 머리감고 목욕하고 밥 짓고 똥 싸고 개와 닭도 기르고 있다. 짐승과 인간의 한계가 어딘지 구분이 모호하다. “배움이 없다면 새나 짐승에 가깝다”는 말이 실감난다.
위정자들의 신념이나 사고방식에서 차이가 큰 민초들의 삶을 확인한 여행길.
본질을 제대로 보고 현실세계에 알맞게 접목시키는 양심 있는 지도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불쌍한 민초들은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죽어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