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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한강 이북의 서울. 짙푸른 숲 우거진 산릉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고을이다. 무박2일의 산행 뒤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풍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정신 있는 거예요, 밤새 걷는다는 게-.”
산을 오르는 게 직업이긴 하지만, 밤잠 안 자고 걷는다는 얘기에 아내가 혀를 찬다.
불수도북이란, 불암산(佛岩山·508m)과 수락산(水落山·637.7m)을 이어 종주하고, 산 아래로 내려섰다가 의정부시 장암동 아파트단지를 가로질러 사패산(賜牌山·552m) 회룡골로 접어든 다음 주능선에 올라 도봉산(道峰山·740m)을 종주하고, 또다시 우이동으로 내려섰다가 백운대에 올라선 뒤 북한산 주능선을 따라 불광역 부근까지 잇는 산행을 말한다.
불암산~수락산, 사패산~도봉산, 북한산 종주만도 각각 제법 뻐근한 산행인데, 도상거리 약 40km, 실거리 50km는 족히 되는 거리를, 그것도 밤잠 안 자고 한꺼번에 이어 걷는다니 산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행동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5월6일 정오, 약속장소인 지하철 4호선 상계역 앞에 도착했을 때 일기예보와 달리 어제부터 내린 비가 그치지 않고 오히려 빗방울이 더욱 굵어져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자학증세예요, 그것도 아주 심한 자학증-”
상계역 부근 순대국집에 모인 거인산악회 이구 대장 일행의 표정 역시 궂은 날씨만큼이나 어둡다. 그렇다고 일단 뽑은 칼 피도 묻혀 보지 않고 칼집에 되넣을 수는 없는 일. 오후 1시경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불암산 기슭으로 접어든다.
▲ 도봉산 주능선에서 맞은 서울 야경. 새벽 2시가 넘어서면서 불빛이 기운을 잃어갔다.
“와! 저게 어디예요? 강원도 산골 같은데요.”
이틀째 내리는 비는 일행의 말수도 줄여놓는다. 칙칙한 날씨에 빗방울까지 흩날리는데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런데 능선에 올라 정상으로 향하는 사이 구름안개가 걷히면서 산아래 세상이 바라보인다. 남양주시 별내면 일원은 초록 기운이 넘친다. 어느 순간 반대편 노원구와 도봉구도 모습을 드러낸다.
고막을 찢는 듯한 자동차 소음과 어깨를 부딪치면 칼눈을 뜨고 째려보는 거칠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건만 지금 예서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성냥갑만한 크기의 아파트와 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찬 저 아래 고을은 북한산과 도봉산, 불암산과 수락산에 둘러싸인 아름답고 은밀한 소인국이었고, 우리들은 소인국을 내려다보며 산릉을 타는 넉넉한 거인들이었다. 한편으론, 체스판 위에 플라스틱 토막을 빼곡히 세워놓은 듯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저 빤한 체스판, 도미노판 위에서 긴장하며 살고 있는 것일 게다. 마음을 비워야 세상이 보이나 보다. 비 오는 날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풍광이자 감흥이었다.
첫번째 산 ‘등정’. 불암산 정상에 오른 것은 불암산 공원관리사무소를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난 오후 2시10분. 이미 하산길에 들어선 몇몇 등산인은 “이런 날은 바윗길을 조심해야 한다”며 지나친다. 이제 불암산 정상. 수락산을 내려서고 도봉산을 넘고 북한산 주능선을 따를 때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길동무처럼 옆에 서 있어야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두 산을 등져야 우리의 목적지인 불광동으로 내려선다.
“심한 자학증이에요, 자학증-.”
▲ 안개비에 흠뻑 젖었지만, 여유를 잃지 않는 종주대원들.
4개 산 종주산행 얘기를 듣곤 당연히 이틀에 나누어 걷는 것으로 생각했다가 무박 2일 산행이란 대답에 찌뿌드드한 표정을 지었던 정정현 기자는 지금도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를 자학증 환자라 못 박는다. 반면 올해 칠순인 거인산악회 박창서 회장은 오히려 함께 종주산행을 계속하지 못하는 게 아쉬운 모습이다. 박 회장은 “불수도북 산행을 마친 이들은 대부분 발바닥이 아파 혼났다”고 말한다며 은근히 겁을 주고 하산한다.
걷힐 듯하던 구름안개는 정상을 내려서면서 오히려 더욱 짙어진다. 분명 7, 8년 전에 비해 산길이 넓어지고 뚜렷해졌건만 구름안개가 방향감각을 잃게 한다. 그나마 덕릉고개는 확포장 공사 후 동물 이동용 다리가 만들어져 ‘자동차 눈치’ 보지 않고 쉽게 가로지를 수 있었다(14:10).
완경사 능선을 따르다 도솔봉(540m) 바위봉을 우회하고, 잠시 휴식. 오늘 강릉에서 열린 고교 축구대회에서 아들이 선수로 뛰고 있는 축구부가 승리했다는 전화를 막 받은 박수신씨(거인산악회 정맥 등반대장)는 배낭 안에서 먹을 것을 이것저것 꺼내놓으며 내일 열릴 아들 축구시합 때문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며, 그가 경험한 불수도북 종주를 지리산 종주보다 훨씬 힘든 산행이라 일러준다.
‘수락계곡 2.4km’ 갈림목을 지나면서 수락산다운 험로가 시작된다. 사면 우회로를 따르려다 바윗길을 따르니 코끼리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와이어로프를 잡고 바위홈을 타고 내려선다. 이제 안개가 시야뿐 아니라 방향감각과 오감까지 모두 앗아가 버렸다.
오후 5시27분 수락산 정상 창바위. ‘물이 떨어지는 산’이라는 수락산 지명 유래 설명판이 서 있다. 일기예보에 맞춰 오후 들면서 구름안개가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서 뭔가 그럴 듯한 조망이 펼쳐지기를 기대했건만 안개비가 모든 희망을 날려버렸다.
▲ 북한산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백운대 등로. 팔당댐으로 이어지는 한강 물줄기와 그 뒤로 용문산까지 바라보인다.
“아주머니들은 돌아가세요~.”
정상을 지나자 수락산 최난 구간인 홈통바위(일명 기차바위). 30여m 길이의 급경사 슬랩이다. 앞장선 이구 대장은 사고를 우려해 세 명의 여성 등산인은 우회로를 따르라고 권한다. 굵은 동아줄은 손을 밑으로 내릴 때마다 흙탕물을 짜낸다. 가슴팍으로 바지로 떨어지고, 물먹은 동아줄은 한겨울 눈에 얼어붙은 로프를 잡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정봉을 지나 내리막 능선에 접어들면서 동부간선도로와 이어지는 의정부 외곽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아파트 건물들은 하나 하나 불을 켜고, 장난감 같은 차들은 해거름을 맞아 조명등을 켠 채 뱀처럼 구불구불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지금 의정부시는 숲 짙은 산릉에 둘러싸인 산골마을이다. 그 마을에 호롱불이 켜지면서 길손의 방향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아니 벌써 몸을 푸는 거야?”
오후 7시를 조금 넘어 의정부시 장암동 동막골 등산로 입구의 화기물보관소로 내려서자마자 양효용씨가 스트레칭을 한다. 새 산에 대비해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인산악회 회원들은 대부분 1대간 9정맥을 완주해냈거나 피날레가 얼마 남지 않은 준족의 산꾼들이다. 그리고 양효용씨는 3시간40분, 윤해경씨는 4시간, 정정현 기자는 4시간30분 이내에 42.195km의 마라톤 코스를 완주해낸 건각들이다. 그렇지만 빗방울 흩날리고, 안개비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이들에게 많은 체력을 빼앗아갔다. 낮은 기온이 체력소모를 가중시킨 것이다.
상황판단력 빼앗아 버린 칠흑 같은 어둠
산 위에서는 장암동 일원이 호젓한 산골처럼 느껴졌건만 막상 내려서니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이 들만큼 혼잡하다. 마을길을 빠져나가고, 넓은 찻길을 따라 회룡역으로 향하다 반듯한 감자탕집으로 들어선다. 불수도북 종주객들은 한밤중이건 새벽녘이건 이들 24시간 영업하는 음식점에서 다음 산에 대비해 배도 불리고, 피로도 푼다. 우리들도 이곳에서 재충전한 다음 박수신씨, 서영구-김경희씨 부부, 그리고 이구 대장 아내 조유선씨와 헤어졌다. 최후까지 남을 전사는 이구 대장, 김헌영씨(청량산악회 총무), 황원선, 양효용, 윤해경씨 등 7명-. 이들은 회룡역 지하터널을 빠져나가고 아파트단지를 가로질러 어둠침침한 산기슭을 파고들었다(21:30).
▲ 수락산행을 마치고 터널을 통해 의정부시외곽도로를 가로지르고 있다.
덧옷을 입어야할 만큼 기온이 떨어졌다. 바람도 제법 불어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저녁밥 먹는 사이 안개가 싹 걷혀 능선이 바라보인다는 점이다. 잠시 산을 가로막은 고가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차량 행렬이 괘씸하게 느껴졌으나, 회룡매표소에 이어 음식점을 지나치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와~ 저기가 어디예요?”
회룡사를 지나 골짜기 안으로 들어서자 등뒤로 의정부시 야경이 바라보인다. 산골은 집집마다 불을 켜놓고, 축석령 고갯길은 비단뱀이 조명 받으며 승천하는 분위기다. 제법 먼 거리인데도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회룡골은 송추 물난리 때 많이 망가졌다. 때문에 거칠고 무너진 산길을 연결하느라 곳곳에 철다리가 놓여 있다. 이 모든 상처는 한밤중의 어둠이 감추고 있었다.
마지막 철다리가 끝나고, 물소리가 끊긴 다음 된비알을 올려치자 바람이 몰아친다. 송추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이제 일산 일원의 야경도 바라보인다. 시커먼 바다 끄트머리의 항구처럼 느껴진다. 턱을 하나 올라서자 천지창조의 장엄함이 기다리고 있다. 먹구름이 낮게 깔리고, 산봉과 산릉은 먹구름을 찌를 듯 솟구쳐 있다. 아니, 서로 합쳐질 듯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좌우로 도심의 야경이 휘황찬란하게 반짝인다. 서울 야경에 실루엣 진 산봉은 바로 수묵화다.
우회로를 따르다 암봉에 올라서자 이제 서울시내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신선대와 만장봉과 자운봉이 검고 묵직하게 솟아 있다. 우리는 저 검은 물체 속으로 뛰어들었다.
0시30분 포대능선 들머리. 메모지에 두 자리수로 적던 시각이 한 자리수로 떨어졌다. 하루가 넘어가고 새 날이 시작되었다. 앞장선 김헌영씨가 자연스레 우회로로 접어든다. 이구 대장도 “종주객들이 대개 우회로를 따르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비 내린 직후 어둠 속에 포대 Y계곡길로 접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회로를 권한다.
우회로를 가로지르자 신선대 앞. 자운봉과 그 오른쪽 암봉들이 낙락장송을 인 채 신비스런 분위기다. 이제 잠이 쏟아진다. 다리도 무겁고, 춥고, 정신도 오락가락한다. 이러한 증세를 재미삼아 밤길을 걷는다면 분명 자학증 환자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런 증상이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자학증 환자는 아닌가 보다.
와이어로프를 잡고 내려서다 칼바위 기점을 지나 능선길을 따르는 사이 불안하다. 예서 자칫 바윗길로 잘못 접어들면 어둠 속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옛날 깡통집이 있던 잘룩이(우이암 1,860m, 만장봉 320m, 도봉매표소 3,250m)를 지나 암봉을 올라섰다가 오른쪽 사면길을 따른다. 그런데-.
▲ 암릉 연속인 도봉산 주능선. 우회로가 잘 나 있다.
빤하다 싶어 우회도를 따라 내리닫던 양효용씨가 차단용 로프가 설치된 지점에서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샛길로 빠지고 만 것. 그 바람에 양씨는 10여 분 헛걸음을 해야 했다.
새벽 2시 오봉 능선 갈림목(우이암 1,420m, 만장봉 760m). 이제부터는 눈 감고도 걸을 수 있는 능선길이다 싶었는데, 갈림목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망설이며 길을 확인한 다음에 제 길을 찾는다. 어둠은 모든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 삼각산이 보인다. 서울 야경도 자못 열기가 식어들었다. 먹구름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신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밤하늘의 별들이 그믐밤 하늘을 수놓는다. 이제 우이암 옆으로 우이동이 산골마을처럼 아늑하게 바라보인다.
새벽 2시 반, 이구 대장과 김헌영씨가 배낭에서 먹거리를 끄집어내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이것저것 집어먹는다. 허기질 만도 했다. 오후 8시경 저녁밥 먹은 다음 물 몇 모금 마시면서 계속 걷고 있으니-. 우이암을 400m쯤 앞두고 데크길로 접어든다. 중간중간 만들어놓은 조망대 위에 올라서 우리가 밟고 지나온 도봉산 주능선을 바라보며 숨도 가다듬는다.
“쇠귀가 아니라 소 혀처럼 생겼는데요.”
말없이 걷던 윤해경씨는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우이암의 기묘한 형상에 잠시 잠이 달아났나 보다. 하지만 곧 또다시 말을 잃는다.
“야경도 좋고, 날도 좋고, 오늘 같은 날을 언제 만나겠어요”
6일 오전 4시30분, 우이동 해장국집. 보통 5시간쯤 잡는다는 도봉산은 7시간 걸린 셈이다. 도중에 길을 헤매는 바람에 한 시간쯤 지체되기는 했지만, 준족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기록이다. 모두들 지쳤나 보다. 정정현 기자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벽에 기대 눈을 감고, 황원선씨도 드러눕는다. 윤해경씨는 이제 아예 입을 닫아 버렸다. 두주불사형 이구 대장도 소주 한 잔으로 해장술을 끝낸다.
잠시 고민. 이구 대장과 김헌영씨는 우이동~도선사 주차장 구간은 차를 타고 올라간다지만 뭔가 찜찜하다. 하지만, 혼자 우길 수는 없는 일. 결국 일행 모두의 의견에 따라 새벽 5시55분 도선사행 첫 셔틀버스를 타고 1.5km 콘크리트 구간을 해결한다.
새벽 산은 신록이 꿈틀거리며 생동감 넘친다. 바위는 벌겋게 달아오르며 새날을 맞는다. 우리들도 아침밥 먹고 새날의 기운을 얻었는지 어둠 속에서보다 발이 가볍다. 산이 이렇게 맑다는 사실을 오늘 새삼 깨닫는다. 하늘은 파랗고, 숲은 연둣빛으로 반짝인다. 계곡물도 콸콸 소리내며 흐른다.
하루재를 넘고 바윗길 따라 백운산장으로 올라서는 사이 등뒤로 수락산이 솟구치고, 그 뒤로 천마산~철마산 능선이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다. 인수봉 알바위는 보석처럼 반짝인다. 백운산장 앞마당에는 이런 모습에 들뜬 바윗꾼들이 벌써부터 장비를 챙기고 배낭을 둘러메고 있다.
오를수록 산봉은 점점 더 솟구치고 더 길게 뻗어나간다. 한북정맥 국망봉~광덕산 줄기 뒤로 명지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오른쪽으로 용문산 일원의 산봉들이 꿈틀거린다. 이렇게 지금 대자연의 장엄한 풍광을 보려고 안개비를 가르고, 어둠을 뚫고, 여명을 등지며 백운대로 걸어 오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힘이 솟는다. 우리들이 산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산이, 대자연이 새로운 힘과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리라.
▲ 수락산 정상 창바위.
“먼저들 가세요….”
다리가 꼬이고, 몸이 휘청거린다. 쏟아지는 잠을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일행들에게 뒤쫓아간다고 양해를 구한 뒤 길가 바위에 기대 눈을 붙인다. 깜빡 했다 놀라서 달려간다. 기껏 해야 2분이나 눈을 감았을까, 그런데도 살 만하다.
새벽부터 서둘러 산을 오른 석상명씨가 백운산장에서 합류하고, 용암문에서는 윤대오씨와 합친다. 오전 8시면 대남문에 도착하리라는 계획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6시40분에 올라왔건만 정작 일행을 만난 것은 오전 10시가 넘어서였다. 어쨌든 윤대오씨가 짊어지고 올라온 캔맥주가 그토록 시원할 줄이야.
“날 잡아 먹어라, 잡아먹어….”
1시간이면 하산할 수 있는 구기매표소로 내려가자는 의견을 일축하고, 계획대로 불광매표소로 가자는 말에 황원선씨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이제 마지막 스퍼트다. 대남문은 토요 휴일을 맞아 올라온 등산인들로 북새통이다. 이제 안개비 속의 고요함도, 이른 새벽의 적막함도 사라져 버렸다. 소요와 흙먼지, 한낮의 따가운 햇살만 느껴질 따름이다. 시커먼 까마귀파, 파랗고 빨간 알록달록파 등 등산인들은 대부분 대남문이나 백운대 방향으로 진행, 좁은 길을 앞두면 한쪽으로 비켜설 수밖에 없다. 이제 어깨를 부딪기는 인간세계로 내려가는 길인가 보다.
▲ 수락산 최난구간 홈통바위.
이 날 3호선 전철을 탄 일행 7명은 한 자리에 나란히 앉아 수서역에 닿을 때까지 근 1시간을 곯아떨어진 채 맞은편 승객들에게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이틀간 우리 모두는 자학증 환자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날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소인국 같은 서울과, 밤하늘을 수놓은 의정부시와 서울 강북의 야경, 그리고 명지산과 용문산뿐 아니라 임진강과 예성강 하구가 서울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인가 윤해경씨는 막걸리 뒤풀이에서 졸다가 “할 만했냐?”는 질문에 “좋잖아요, 야경도 좋고, 오늘처럼 맑은 날을 또다시 어찌 만나겠어요. 이렇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을 수 있는 산행이 또 어디 있겠어요”라 대답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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