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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화된 문화, 문화화된 물신들 | ||||
해외동향 : 독일 '물신' 연구의 흐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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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에 대한 연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상당히 오래 전부터 사회학, 경제학, 문화인류학, 문예학, 정신분석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독일에서는 최근에 출간된 칼 하인츠 콜의 ‘사물들의 힘’(2003)과 하르트무트 뵈메의 ‘물신숭배와 문화’(2006)가 이러한 연구경향에 대한 괄목할 만한 업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뵈메의 작업은 ‘물신’ 개념에 대한 문화학적 접근을 통해 현대사회의 일상적 문화 전반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물신화 현상들을 폭넓게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문화 현상을 이해하는데 탁월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물신’이란 용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뜻하는 라틴어 ‘factitius’에 어원을 둔 포르투갈어 ‘feitico’(마법적인)에서 유래한 말로, 마법을 지닌 대상이나 마법의 수단을 나타낸다. 개념사적으로 ‘물신’이란 단어는 17~18세기경의 서구 유럽의 여행기록문들이나 민속학적 문헌들에서 서부아프리카의 미신적인 종교 형태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난하기 위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18세기 중엽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드 브로세에 의해 유럽의 정신사 속으로 편입되었다. 그는 ‘물신숭배’ 개념을 계몽주의 철학 담론 내부에 끌어들여 당대에 만연해 있던 고대의 종교들에 대한 알레고리적 해석을 비판하고 동물이나 무생물의 사물들을 섬기는 물신숭배를 인류의 유년기에 해당하는 종교적 형태로 파악함으로써 합리주의적인 종교비판을 급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계몽주의 담론 내에서 미신이나 우상숭배 등을 지시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던 이 ‘물신’ 개념은 19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사물과의 비합리적, 미신적, 도착적 관계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나 물신숭배를 상품교환의 비밀로 해석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그 개념을 모든 성적 도착증의 패러다임으로 해석한 크라프트 어빙의 성과학은 종교적 현상을 설명하는데 국한되었던 물신숭배 개념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병리현상을 해명할 수 있는 모델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으로만 파악되었던 그 개념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것은 프로이트였다. 그는 크라프트 어빙의 유산을 물려받아 물신숭배를 병적이고 도착적인 것으로 파악했지만, 동시에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은 물신숭배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함으로써 물신숭배 현상을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뵈메는 물신숭배 개념을 개념사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부정적 가치들에 대한 일종의 ‘가치전환’을 통해 “현대의 유럽 사회를 기술해주는 용어”로서 적극 옹호한다. 그는 현대의 문화 전반에 걸쳐 재주술화 과정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본다. 가령 스타 시스템과 물신숭배는 오늘날의 경제 체제를 활성화시키는 동력이 되었고, 정치 체제 역시 물신화된 시민들의 태도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서구의 현대인들은 이성적 차원에서는 물신숭배를 부정하고 믿지 않지만 문화적 현실의 실제에서는 물신숭배적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행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물신숭배를 믿지는 않지만, 우리는 물신숭배주의자들이다”라고 말한다.
뵈메는 서양의 현대를 계몽과 신화가 서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얽혀 있는 과정으로 본다는 점에서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들과 견해를 같이 한다. 그러나 그는 계몽과 신화의 아포리아에 빠지는 대신, 합리화 과정의 이면으로 간주되어 왔던 측면들이 오히려 ‘계몽의 프로젝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고 본다. 왜냐하면 계몽의 원칙들이 부정해왔던 물신숭배적 경향들은 사회의 경제 체제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징적 차원에서 사회를 통합시키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뵈메에게 합리성 혹은 이성이란 신화에 대립하는 이성이 아니라 유럽의 오랜 풍습에 따라 집의 현관 위에 행운을 불러오는 “말편자를 걸어놓을 수 있는 이성”이다. 그의 책의 부제이기도 한 “현대의 다른 이론”은 바로 이러한 현대에 대한 이해를 함축하고 있다.
‘물신’ 개념이 유럽에 처음 소개될 당시에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미신적인 주술 행위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현대 유럽 사회의 문화적 현상을 설명해줄 수 있는 핵심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다. 개념의 이러한 전환과정은 ‘타자의 타자성’에서 ‘자기의 타자성’으로 성찰의 시선을 돌린 결과라 할 수 있다. 뵈메는 물신숭배 개념을 계몽주의에 의해 억압되고 은폐되어 온 어두운 측면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아프리카를 발견하기”(사르트르) 위한 매개체로 삼고 있는 셈이다.
뵈메는 물신숭배적 메커니즘이 근대 자본주의 질서 아래서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과 그를 둘러싼 사물들 간의 기본적 원리로 설정한다. 그런 점에서 주체/ 객체, 사회/자연, 인간/비인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이러한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미계몽적’, ‘원시적’, ‘전근대적’이라는 낙인을 찍었던 서구의 근대는 인류사적인 관점에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의 근대가 그토록 부정해왔던 물신숭배 현상이 가장 번성했던 시대이기도 하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투르의 책 제목은 매우 시사적이다. ‘우리는 결코 근대적이었던 적이 없었다.’(1995) 뵈메의 물신에 대한 이해는 “인공적으로 생산된 사물들의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지각방식의 변화와 사물들의 존재론적 의미 변화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사물들을 “물신”으로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 라투르의 시각은 이러한 질문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단초들을 제공해준다.
그에 따르면 ‘사물’을 의미하는 단어 ‘Thing, Ding’은 어원적으로 “특정한 유형의 고대의 회합”을 의미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물’은 인간사회의 정치적 영역에서 배제된 ‘객체’가 되기 훨씬 이전에는 “사람들을 둘로 나누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이게 만드는 일”을 의미했다.(브루노 라투르, 현실정치에서 사물정치로, 2005) 이러한 이해 방식은 ‘사물’을 단순히 자연적으로 주어진 혹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의미의 담지체’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사물들을 ‘물신’으로, 즉 능동적인 ‘행위자Aktant’로 파악할 경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라투르가 흔히 들고 있는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단순한 사물로서의 권총과 인간의 손에 쥐어진 권총은 서로 다른 가능성과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인간이 권총을 손에 쥐는 순간 인간은 권총의 성격을 변화시키게 되고, 권총은 인간의 마음가짐을 변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이해방식은 근대의 도구주의적 인식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간을 둘러싼 사물들에 대한 보다 다양한 해석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영범 / 독일통신원·만하임대 박사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