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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바울의 설교 | 헬라의 철학적 사고 |
(1)하나님은 한 분이다. | (1)스토아 철학 : 범신론 |
(2)하나님은 창조자이시다. | (2)에피큐로스 철학 : 세상 만물은 영원전부터 존재해 온 원자들의 우연한 집합. |
(3)인류는 한 하나님에서창조되었고 같은 조상을가진 후손이다. | (3)아덴 사람들은 아티카(Attica) 본토의 흙에서 생겨나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자부함. |
(4)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삶을 섭리하신다. | (4)에피큐로스 자연신론(deism) : 신은 인간의 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음. |
(5)천지의 주재시다. | (5)인간이 드리는 희생제사를 통하여 신들은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또 한사람의 손으로 신들을 새겨 만질 수 있다고 여김. |
(6)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사람의 기술로 고안으로 새긴것들과 같이 여겨서는 안됩니다(29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
스토아 철학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에 의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고,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본성'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 그대로의 운명을 아는 사람이 현자(賢者)이고, 현자는 또한 신과 같은 자라고 합니다.
이는 자연 그 자체를 신으로 보는 것이고,
근본적으로 성경적 신관, 인간관과는 배치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용어인 '신의 소생'이라는 싯구를 사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인간론의 의미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창1:26,27).
따라서 자연물(금, 은, 돌 따위)로 만들어 놓은 신들은 인간을 창조한 것도 아니고, 인간보다 뛰어난 신적인 존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논증의 독특함을 알 수 있는데 사도 바울은 아덴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 말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참 신이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7) 회개하라 하십니다(30절)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 바울의 설교는 하나님의 구속의 점진적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속의 절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선포와 결단에의 촉구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란 바울이 이미 루스드라에서 '지나간 세데'(14:16)라고 표현한 말로서 하나님의 계시가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드러나기 이전에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며 또 심판보다는 가급적 회개의 때를 기다리는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우상 숭배 행위마저 참고 견디시며 자신을 자연을 통해 계속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14:16;롬3:25). 그렇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그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고,
그 복음의 메시지가 온 세상에 울려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신'이 아닙니다.
'알지 못하는 신'은 그 정체가 드러났고,
아울러 '알지 못하 던 시대'도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 이 회개는 삶의 태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데 여기서는 아덴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그치고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고 하시는 것은 율법적인 명령이 아니고 은혜로운 부탁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믿을 만한 증거"를 주시고(31절 하반),
그렇게 부탁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슐라텔(Schlatter)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모르던 무지의 때를 끝내셨다."라고하였습니다.
(8)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를 심판하실 심판주이십니다(31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정하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로서 언급하신 것 같이(막14:41;눅17:24),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면서 아울러 온전한 인성(人性)을 지니고,
세상에 오셨고 인류를 위해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본절에서 심판주를 '사람'이라고 굳이 표현한 것이 다소 어색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판주란 의례히 초월적 위엄과 권세를 지닌 분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계18:8).
그러나 이 표현은 후반절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이란 구절과 연결되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즉 본절은 인자의(죽으심과) 부활이 엄연히 역사적 사실이며,
이는 곧 예수님께서 심판주이심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편 바울의 설교는 여기서 끝을 맺습니다.
이 설교를 두고 한낱 철학적 강변 또는 자신의 지식과 언변에 대한 자랑에 불과하다는 평을 내리거나 그의 아덴 사역이 실패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바울이 아덴에서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거나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덴에서 분명한 성과를 보았습니다(34절).
바울은 자신의 화려한 사역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최고로 여기며(빌3:8),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결국 바울의 아덴 사역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아울러 그의 이 설교는 결코 철학적 강변이 아닙니다.
이 설교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가 샛별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3. 아덴에서 복음전도의 결과(32~34절)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1) 아덴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조롱과 비웃음으로 일축(一蹴)해 버리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32절)
부활이란 주제는 역시 아덴 사람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었으나,
몸의 부활에 관한 사상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육체를 속되고 악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만 아니라 부활 또한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졌다(고전1:18).
시인 에스킬루스(Aeschy- lus, B.C.525-456)가 '사람이 일단 죽으면 티끌이 인간의 피를 빨아들이며 결코 부활은 없으리라'고 노래한 바 있듯이 본문의 아덴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조롱과 비웃음으로 일축(一蹴)해 버리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2) 일단의 사람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더욱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듣기를 요청했고 그들 중 몇몇은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대부분의 청중들에게는 거부되었지만,
몇몇 사람들에 의해 수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세례를 주었다거나 예배를 드렸다거나,
또는 장로를 세웠다는 등의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만 소수의 믿는 자들이 생겨났다고 하는 이 간략한 언급에는 이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결코 신자의 수가 많고 적음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근거하고 있는가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아덴 선교의 복음의 씨를 심은 것입니다.
아덴에서의 바울의 전도 열매는 적게 나타났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들이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사도 바울 편에 가담하여 떠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들이 비롯 소수였지만 매우 반갑고 귀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만민이 생존을 위해 의지해야 할 만물의 창조주요, 자존자요, 유일하신 절대자이십니다(24~28절).
이방신들처럼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며, 아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신화 속의 우상들과도 본질적으로 사른 분입니다.
이방인들도 더듬어 찾을 수 있도록 가까이 계시고, 창조세계와 역사를 통해 자산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떠나고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뿌리 깊은 불신 때문입니다.
2) ‘정하신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29~34절).
이미 하나님은 예수를 죽음의 권세에서 건지셨고 구원과 심판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주(主) 되심’을 저하며, 우상숭배에 빠진 아덴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그 시대의 문화와 세계관과 소통하되, 소신껏 회개의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과만 어울리는 협소한 관계로 물러서지말고, 어서 믿지 않는 이웃을 향해 나아가 생명의 복음을 나누십시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바울은 아덴에 각종 신전들과 우상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분개합니다(16~18절).
하지만 그의 거룩한 분노는 거침없는 증언으로 이어졌습니다.
회당과 광장에서 날마다 사람들을 만나 변론하며 예수님과 그분의 부활을 전하는 증인의 사명을 다합니다.
‘우상에 빠진 세상’에 대한 분노와 ‘복음이 빠진 세상’에 대한 연민이 내게도 있습니까?
2)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던 베뢰아 사람들과 달리, 아덴 사람들에게 복음은 지적 호기심의 대상일 뿐입니다(19~23절).
영적으로도 황폐하여 신들을 만들고 바꾸고 찾았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자기 존재의 시작과 인생의 의미도 알지 못하는 오만한 헛똑똑이나 무지한 우상숭배자가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