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 최저임금 교섭이 한창이던 6월 23일 책을 구했다.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니라 땡볕이 내리쬐는 강남 최저임금위원회 앞 농성장에서 하루 만에 다 읽었지만 책 내용을 곱씹어 보느라 늦게나마 책을 소개한다. 함께 했던 공공노조 조직실장도 농성장에서 이 책 얘기를 해왔다.
낯선 여행자의 지친 발을 보호해주던 신발에 큰 구멍이 나 어찌할 줄 모를 때 쿠바 아줌마는 나를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 곳이 종합진료소인 걸 알았다. 할아버지 의사는 내 구멍 난 신발을 의료용 실로 꿰매 주었다. 기다리면서 엿본 진료소는 70년대 우리네 시골 이발소 수준이었다. 그 때의 느낌은 ‘혼란과 감동’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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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다 화이트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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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린다 화이트포드(Linda m. Whiteford)는 남플로리다 대학 의료인류학교수다. 쿠바, 도미니카 볼리비아 등 중남미를 주로 연구해왔다. 세계은행과 미주보건기구 등에 자문을 맡기도 했다. 공동저자 로렌스 브렌치(Laurence G. Branch)도 남플로리다 대학 보건대학 교수다.
역자 최영철과 김승섭, 김재영, 오주환은 모두 의사거나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로 2009년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이 책 번역을 도모했다.
책은 세 명의 추천사와 역자 최영철의 서문과 저자 서문까지 앞머리가 좀 무겁다. 본문은 35쪽에 가서야 비로소 시작한다. 뒤에는 233쪽부터 참고문헌과 약어, 저자 소개를 붙여 35~232쪽까지 비교적 짧다.
책의 핵심은 7장 ‘공공보건의 공공성을 다시 생각해보다’이다.
첫 번째 추천사를 쓴 정호현은 2009년 자전적 영상 <쿠바의 연인>을 만든 독립영화감독이다. <쿠바의 연인>은 쿠바로 여행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람에 빠지고 결혼하는 감독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는 극명하지만 각각 내부의 ‘모순’을 안고 있다는 묘한 동질성도 드러낸다. 화면의 한쪽엔 무상교육에 무상의료로 지구상 천국이지만 지극히 가난한 나라가, 다른 한쪽엔 경제대국 10위권의 부자 나라지만 폭탄머리 흑인 새신랑에겐 지독히 낯설고 차별적인 나라가 나온다.
2장은 쿠바 의료제도의 진화과정을 살핀다. 3장은 1978년 알마이타 선언과 쿠바의 국가보건의료체계(NHS)가 어떻게 일차의료를 중심에 두었는지 살펴본다. 4~6장은 공공보건의 과제인 모자보건, 전염성질환 관리, 만성질환 치료, 노인보건을 차례로 분석한다. 7장은 공공보건의 핵심인 ‘공공(Public)’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어 본다. 8장은 쿠바 경험이 주는 교훈을 결론으로 대신한다.
이 책은 미국 의사가 쓴 책이라는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다. 한 장 건너 한 장 마다 ‘모순’이란 단어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 사진은 이 책의 원저자인 린다 화이트포드다.
정호현 독립영화감독의 추천사 : 쿠바는 독재국가일 뿐
내가 처음 쿠바를 갔던 이유는 푸른 바다와 춤, 음악이었다. 구릿빛 화끈한 근육남 구조대원이 살사를 가르쳐 준다고 다가왔다. ‘섹스 온더 비치’라는 칵테일을 마시며 춤을 열심히 배웠다. 그가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를 쫓아 마을로 들어갔다. 순간 이렇게 허술하고도 집이구나, 시멘트를 아직 바르다 만, 삐걱거리는 침대 하나 놓고 사는. 그는 나와 섹스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돌아오는 길에 미하일 칼라토조프 감독의 “Soy Cuba”(나는 쿠바다, 1964년)가 떠올랐다. 이후 나는 쿠바의 한인 후손을 인터뷰하느라 약 5개월을 머물렀다. 그때 유난히 눈이 반짝이던 한 아이 같은 남자(오리엘비스)를 만나 2년 동안 연애하고 결혼했다. 쿠바 외무부와 법무부, 대사관 등을 돌고 돌아 1년 만에 겨우 결혼 신고를 했다. 나중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쿠바는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모두 없다. 혹자는 ‘착한 독재’라고 하지만 ‘독재는 독재다.’ 정치범 구속 및 사형, 창작에 대한 검열, 인터넷 통제 등 쿠바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민주적 통치.
남편 오리엘비스를 만났을 때 쿠바인에게 불안이라는 것이 있을까? 공부도 음악도 무용도 운동도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빈곤하지만 유머가 넘친다. 쿠바인은 남이 자기 삶에 끼어드는 것에 관대하고 또 남의 삶에 언제나 끼어들 준비가 돼 있다. 나는 남편보다 10살이나 더 많다. 무상의료는 쿠바 혁명의 자랑거리다. 나는 임신 2개월부터 8개월까지 쿠바에 있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쿠바 정부는 임산부를 철저하게 관리했다. 남편과 같이 심리상당도 받았다. 의료진이 임산부 집을 방문해 주거환경까지 기록한다. 쿠바는 모순 덩어리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은 섬나라다.
나를 도와주던 친구 루드밀라가 내게 보낸 편지에 “이 아름답고도 부조리한 나라의 복잡함이 너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길 바래”라고 썼다.
홍세화의 두 번째 추천사
마이클 무어가 <식코>에서 쿠바 공공의료를 선보인 바 있다. 책머리에 ‘슬픈 축제’로 상징한 ‘쿠바의 모순’의 속살. 14살 쿠바 소년에게 1달러를 조르게 만든 여유로운 여행자들의 모순. 그 소년이 그때까지 누린 147회 가량의 의사 방문진료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쿠바 1차 의료체계와 홍세화가 무선 상관인가. 프랑스가 공공의료 선진국도 아닌데. 홍세화의 추천사는 적절하지 못했다. 나는 홍세화가 예로 든 마이클 무어도 싫다. 한 번 초청하려면 비행기 1등석 아니면 안 움직이고, 힐러리 클린턴 대선캠프의 핵심참모였다는 것쯤은 애교로 봐 넘길 만하다.
내가 마이클 무어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영화다. 마이클 무어는 1989년 출세작 <로저는 나> 곳곳에서 다큐멘터리의 금기인 인과관계를 뒤집었다. 무어는 사실 왜곡을 서슴지 않는 편집은 물론 핼리 버튼 같은 방산업체에 주식을 투자하는 부르주아일 뿐이다. 무어가 <로저와 나>를 상업적으로 흥행시키려고 미국 유일의 공영방송(PBS, 엄격한 의미에선 공영방송이 아님)을 상대로 벌이는 다양하고 비열한 공작은 치졸하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교수 추천사
오히려 황상익의 추천사는 짧지만 3명의 추천사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황 교수는 “저자들은 쿠바 모델을 다른 나라들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쿠바의료가 ‘신화’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아왔는데 이 점에서 저자들의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고 말한다. 보건의료가 과연 인간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담담하게 설명한다.
번역자 최영철의 서문 : 쿠바의 거지 소년
거지가 있는 쿠바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소년이 내게 내민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소년은 결핍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춤과 파티보다는 1쎄우쎄를 택했다. 결코 쿠바의 방식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소년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내 멋대로 키워온 쿠바에 대한 기대감이 한심했다. 우리는 낯선 것을 마주할 때 곧잘 함정에 빠진다.
이 책은 쿠바의 일차의료제도를 쌈박하게 총정리 해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번역하면서 이 때문에 회의가 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더 전문적이고 더 방대한 책을 택하지 않았음을 후회한 적도 있다. 쿠바를 모순덩어리로 전제한 저자들의 접근법이 이 때문에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자의 지적처럼 이 책은 종합적이지 않다. 번역자가 고통스럽게 고백한대로 독자 역시 책을 읽으면서 자주 회의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나 환상이 아닌 살아있는 실체로 쿠바를 만날 수 있는 장점은 갖추고 있다.
저자 서문 : MB와는 사뭇 다른 의료선진화
쿠바 일차의료 사례를 다른 나라도 그대로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역사회 기반의 예방의료를 실현하는 데 꼭 값비싼 의학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 국가와 지역사회가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는 점은 교훈이다. 쿠바에선 의료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항상 충분한 의료 인력이 공급된다.
‘쿠바의 보석’이라 불리는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서비스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오늘날 쿠바의 모순 상황에서 설명해 본다. 모순이 쿠바의 보석을 탄생시켰다. 쿠바는 GNP의 7%를 국민건강에 투여했다. 코스타리카는 1.27%, 브라질은 0.64%를 투입했을 뿐이다.
오늘날 쿠바인의 98%가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고 95%는 같은 마을에 사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진료받는다. 쿠바 국민 180명당 1명의 의사, 미국은 480명, 영국은 450명당 1명의 의사를 갖고 있다.
예방접종 프로그램은 쿠바 의료체계의 꽃이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한편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쿠바인 동료인 엔리케 벨더라인 샤펠은 의사이자 인류학자로 말라리아와 소아마비 예방프로그램과 관련된 이 책의 초벌원고를 써주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위해 반드시 경제적으로 부강해야 하는 건 아니다. 틈만 나면 의료의 문외한인 기획재정부 장관(윤증현)이 나서 의료선진화니, 영리병원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한국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1장 쿠바 보건의료 혁명
2001년 유엔개발계획(UNDP)가 오랫동안 인정해 오던 쿠바의 인간개발지수(HDI)를 제외했다. 유엔개발계획은 쿠바가 주는 데이터를 문제없이 접수하다가 최근 갑작스레 거부했다. 따라서 이 책은 2000년 까지 자료밖에 구할 수 없었다. 쿠바 보건의료의 성공은 주거환경, 교육, 소득, 고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불평등을 줄여야만 가능하다는 걸 가르쳐 준다.
알마아타 선언에서 일차의료의 개념은 7가지다. 그 중 다섯 번째는 ‘주민들의 자립과 참여 강화’다. 사실 나머지는 다 좋은 말만 나열한 수준이다. 쿠바는 건강을 모든 국민의 기본권리로 정의한다. 건강은 능동적 권리로 법이 보장하는 시민권의 일부이다.
쿠바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헌법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35조는
“①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건강권을 기본권리로 명시했다. 또 헌법 36조 2항은 모성 보호를, 3항은 국민 보건권을, 다시 35조 3항은 쾌적한 주거권까지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하면 뭐하나. 실제는 말짱 황인데. 그런데도 이 책의 원저자들은 별 재미도 없는 상투적 선언을 자주 소개한다.
알마아타 선언 이후 25년이 지났다. 하지만 전 세계의 건강불평등은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알마아타 선언의 가치는 유기적으로 연관된 일련의 원칙들에 기초한다. 2004년 세계보건기구 회의에서 일차의료는 1) 국가와 지역사회의 경제여건과 상황을 반영하고 2) 건강증진, 예방, 치료, 재활 등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3) 관련 모든 부문에 관여해 사회의 건강증진에 협력한다. 4)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5) 상호협력적 의료전달 체계를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고 소외계층에게 우선 제공한다. 6) 건강관리팀을 구성하고 건강 수요에 부응한다. 알마아타 선언이 나오자 선언이 밝힌 일차의료의 핵심 요소들은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개념이 너무 두루뭉술하고 목표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비판했다.
주민참여가 효과를 보려면 뿌리 깊은 상징자본체계가 필요하다. 쿠바에서 빠르게 떠오르는 분야가 ‘의료관광’이다. 쿠바에서 수술 받으려고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쿠바 공항에선 배꼽 성형, 유방 확대, 복부 성형수술 등을 선전하는 쿠바의 광고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쿠바의 국제협력 사례인 라틴아메리카의과대학(ELAM)은 가난한 나라 출신 학생들을 입학시켜 가족주치의로 양성한다. 대체로 스페인어권 출신들이지만 다른 나라도 있다. 어떤 수업료도 받지 않는다. 다만 졸업 후 가난한 지역에서 의술을 펼친다는 조건을 단다. 미국인 학생도 ELAM에 입학한다.
세계은행은 1993년 이후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고 건강을 증진하는 것에서 점점 멀어져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줄이려고 값싸고 효과적인 최소한의 개입만 하고 있다. 민간영역이 커지면서 국가가 맡은 역할이 약해지고 그 자리를 민간보험이 차지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의 사유화도 진행 중이다.
쿠바는 원래 타이노와 시보네라는 토착민이 살았는데 1492년 스페인이 쳐들어와 질병과 학대로 죽어갔다. 1524년 스페인 왕실은 노동력 때문에 많은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끌어와 식민지 농장으로 보냈다. 그래서 오늘날 쿠바는 아프리카(요루바족), 스페인, 다른 유럽국가의 영향이 뒤섞였다. 스페인과 프랑스 혈통, 미국 식민지의 영향에 아프리카 전통문화까지 버무려져 있다.
스페인은 1898년 쿠바 독립운동의 영웅인 호세 마르티가 최종공세 할 때까지 쿠바를 포기하지 않았다. 1930년대와 40년대 쿠바를 지배했던 풀헨시오 바티스타는 육군 중사였다가 1933년 하사관들을 조직해 반란에 성공했다. 이 시기 쿠바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고 마피아 자금을 세탁해 주었다. 카스트로는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를 추방하고 혁명에 성공했다. 1961년 4월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임을 선포했다. 기업을 국유화했다. 1962년 10월 미소 미사일분쟁을 겪기도 했다.
2장 간추린 쿠바 일차의료 모델의 발자취 : 1959년부터 2000년까지
일차의료의 바탕이 되는 힘은 정부와 시민의 참여와 가족주치의 체계, 폭넓은 예방의료 서비스와 질병감시체계다. ‘지역종합진료소’가 혁명 후 초기 일차의료 모델의 핵심이었다. 1970년대 초 종합진료소 모델은 한계에 달했다. 여러 전문 진료과목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 전문 과목별로 각각 따로 일하는 게 풀어야 할 숙제였다. 협력보다는 차이를 드러냈다. 의사들이 예방보다는 치료의학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의사들은 지역 환자와 깊은 유대를 맺지 못했다. 의사들은 가족주치의에게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쿠바 정부는 지역종합진료소 모델에 변화를 줘 ‘지역사회 기반 의료모델’이 등장했다. 1984년 ‘가족주치의 모델’이 처음 도입됐다. 종합진료소 모델은 가족이나 지역사회의 역할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병리적 기술적 접근방식을 선호했다. 쿠바 정부는 새 모델로 수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의사들을 자기가 일하는 마을 안에 살도록 한 것이 혁신적이었다. 지역사회 안에 의료진을 살게 하는 것은 쿠바 일차의료의 핵심이다. 진료소 위층에는 의사가 자기 가족들과 함께 산다. 의사 한 명은 120~150가구의 가족주치의가 된다. 의사는 병원 밖의 일상생활도 관찰한다. 생활습관을 관찰해 질병 악화를 미리 방지도 할 수 있다.
혁명 후 쿠바 의료제도의 역사
혁명 전 쿠바의 건강수준이 알려진 만큼 낮지 않았고 카리브 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혁명전 1953~59년 쿠바는 평균수명 58.8세에 인구 당 의사 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많았다. 그러나 경제학자인 카멜로 메사-라고(Carmelo Mesa-Lago)는 쿠바의 보건의료 분야의 성공이 근래의 경제회복 노력에 독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혁명 후 첫 10년인 1959~1969년 동안 쿠바는 치료서비스 중심의 의사가 아니라 공공보건에 초점을 맞춘 의사들이 필요했다. 혁명 후 두 번째 10년인 1970~1979년 동안 쿠바는 종합진료소 모델을 새로운 일차의료 모델로 제시했다. 1980년대 쿠바는 1981년 ‘지역사회의료’ 모델을 도입했다.
1990~2004년까지 쿠바는 “탈냉전의 특별한 시기”를 경험하면서 지독한 궁핍 속에서도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을 멈추지 않았다. 이 시기 쿠바는 ‘녹색 의료’를 추진하고 도시농업으로 약재도 재배했다. “특별한 시기”가 극에 달했던 1992~1993년 사이 열량공급에서 7%가 인근 나라에 비해 떨어졌고 1998~2000년 사이 전 국민의 13%가 영양부족에 시달렸다. 필수의약품 부족도 있었다.
쿠바는 다른 나라와 달리 아바나 등 도시지역 인구가 농촌 지역보다 고령화됐다. 1970년대 쿠바는 심각한 수준의 출산율 감소를 겪었다. 1980년 가입여성 100명당 1.67명으로 출산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2000년에는 1.9명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젊은 층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도 고령화를 부추겼다. 영아사망률이나 모성사망률은 줄었다. 혁명 후의 반짝 성공이 아니라 훨씬 부유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후에도 계속 성공하고 있다.
3장 알마아타 선언과 일차보건의료 개념
1978년 9월12일 카자흐스탄 알마아타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 주최 일차의료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알마아타 선언을 채택했다. 건강을 지극히 폭넓게 정의하고 건강불평등 감소에 심혈을 기울이고 보건의료서비스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선구적 선언이었다.
쿠바의 보건의료체계는 자국의 의료 수요에 부응해 발전해왔다. 1960년대 국가보건의료체계를 통합했다. 1961년엔 ‘인민건강위원회’를 만들었다. 1965년 종합진료소를 개원했다. 1974년엔 지역사회의료 체계를 완성했다.
쿠바의 일차의료체계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주체가 ‘의사’들이라는 데 있다. 쿠바는 의사 배출에 박차를 가했다. 쿠바 체계는 군과 주, 국가의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소련 붕괴 등 경제위기에도 쿠바는 일차의료제도를 여전히 유지했다. 1단계는 가족주치의다. 1984년 1월 막을 올린 가족주치의 제도는 기초진료팀이라 부르는 가족주치의와 간호사팀이 1차 관리 서비스를 수행한다. 이 기초진료팀은 오전엔 1층의 진료실에서 외래환자를 보고 오후엔 가정을 방문한다. 15~20개의 기초진료팀마다 이들을 지원하는 ‘협력진료팀’(GHT)이 하나씩 있다. 기초진료팀과 협력진료팀 모두 1단계에 속한다. 협력진료팀은 간호사를 비롯해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노인의학과 정신과 전문의들과 사회복지팀으로 구성된다. 2~4개 협력진료팀이 약 2~4만명의 인구를 관리한다. 협력진료팀 안에는 노인진료를 담당하는 종합노인진료팀이 있다. 2001년 쿠바엔 167명의 노인의학 전문의가 있고 69명이 수련의다.
2단계는 2차와 3차 진료서비스에 해당한다. 2단계는 급성질환 치료시설과, 너싱 홈 같은 장기요양시설, 전문치료시설 등을 포함한다. 3단계는 고도의 전문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위한 의료서비스다.
소규모 진료소들은 마을 종합진료소(일명 콘술토리오)라고 불리운다. 가족주치의 수는 2000년 3만1천명에 달했다. 2002년 쿠바 의료의 97%를 가족주치의가 담당하고 있다. 이들 1차 진료의사는 가족구성원 모두를 치료하고 질병감시 활동도 벌인다. 2003년 쿠바엔 전국에 442개 종합진료소가 있다. 2002년 쿠바엔 2차 의료를 담당하는 281개의 병원이 있다. 11개 분야의 3차 전문병원이 있다.
인프라를 만든다고 일차의료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1)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하고 2)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고 3) 전문진료보다는 지역사회 일차의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4) 지역보건위원회 같은 자치조직들이 왕성하게 활동해야만 한다.
가족주치의제도는 보장성, 접근성, 질병감시체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정수를 보여준다. 질병 원인을 캐는 모델이 병리학에서 사회문화적으로 변해왔다.
산타 클라라의 1차 진료소를 직접 방문했다. 이 지역은 인구 20만명 이상인 사탕수수 중심지다. 진료소는 콘크리트 아파트 건물에 있고 1층 진료소에, 의사는 옆 집에 살았다. 간호사는 그 다음 집에 살았다. 이 진료소는 120가구를 담당했다. 좁지만 깨끗했다. 미국 의대생 한 명도 있었다. 그는 “쿠바 의사들의 실력과 헌신에 감명 받았다. 의사가 늘 환자 곁에 가까이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의사들도 가족과 함께 마을에 살기 때문에 주민들이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환경에 있는지 직접 공유할 수 있었다. 쿠바는 인구이동이 거의 없는 나라다.
쿠바 의대 교육은 무료다. 다만 농촌지역에서 인턴을 수료한 뒤 의사가 필요한 지역에서 진료해야 한다. 의사 수입은 한달에 30~40달러 정도다. 과거 오랜 기간 의사들은 부업이 금지됐다. 그러나 주택 등을 무상으로 받는다.
진료소엔 컴퓨터가 없고 대신 막대한 양의 환자기록부 철이 있었다. 아바나 진료소 방문 땐 캐나다 의사를 만났다. 쿠바 의사들은 식이조절과 운동요법으로 혈압 조절에 열심이다. 약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예방과 건강증진 사업뿐만 아니라 이 사업이 성공해 사망률이 낮아졌을 때 생길 만성질환 증가라는 문제까지 대응할 수 있었다. 사망률을 줄인 결과 만성질환이 늘었다. 가족주치의들이 노인회관을 찾아간다. 치매노인을 낮 시간 동안 보살피고 식사도 제공한다.
쿠바 일차의료는 젊은 세대를 위한 예방과 건강증진과 수명연장으로 인한 노인층의 만성질환 관리에도 더욱 비중을 늘리고 있다.
4장 아이와 엄마를 위한 쿠바 일차의료 모델
엄마와 아기는 병원으로 오지 않는다. 의사가 찾아간다. 산모나 아이의 집에 머물면서 할머니와 나이든 삼촌, 10대인 다른 딸까지도 모두 진료한다. 새로 태어난 아이로 인해 다른 가족들에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도 본다.
이는 의사 수가 미국보다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 생후 1년까지 15번 의사가 방문하고, 1~4살까지는 1년에 12회, 5~14살까지는 1년에 11번 의사가 방문한다. 따라서 14살까지 모두 147번 의사 방문을 받는다. 미국은 스무살까지 평균 22번만 진찰을 받는다. 1995년 규정된 필요 산전 진료 횟수는 12번이다. 정부가 산모들에게 별도로 식량배급을 한다. 혹자는 강제집행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대중의 ‘더 큰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의 역할에 논란이 있다. 그러나 쿠바의 2000년 영아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6.2명, 미국은 7.2명이다. 정부는 깨끗한 식수와 위생설비도 제공한다.
정부 못지않게 지역 자치조직들의 참여와 건강증진 활동도 중요하다. 쿠바의 건강증진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역 민방위대’였다. 민방위대가 물자의 배급을 관리하고 주민 활동을 감시했다.
5장 일차의료를 통한 감염질환 및 전염성질환 관리 사례
가장 중요한 캠페인은 말라리아와 소아마비 예방사업이었다. 1908년 <공화국 보건법> 제238조에서 말라리아를 의무신고 전염병으로 규정했으며 1961년 8월 제정한 <공공보건법>에서 다시 승인했다. 1959년 3월 <공공보건부령 694>는 말라리아 조사위원회로 대체하고 재정 지원을 승인했다.
이 부분 서술은 1900년대 초부터 다루고 있는데 전체적인 쿠바 의료체계의 변화를 저자 역시 잘 모르는 듯, 문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사실의 나열만 반복돼 아쉽다.
1948년 이후 말라리아 사례가 보고된 지방들에는 모든 발열 환자에 의무 혈액검사를 시행했다. 총 862개 말라리아 신고센터는 왕성한 조사작업을 벌였다. 가장 높은 양성비율을 보인 지방은 아바나(12.2%)와 오리엔떼(5.2%)였다. 아바나 양성환자도 대부분 오리엔떼 주에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오리엔떼 지역이 유병률도 가장 높았다. 오리엔떼와 카마구에이 주가 가장 심했다. 오리엔떼 주와 카마구에이 주 알바로 레이노소 지역을 40개 구역으로 나눈 뒤 조사활동을 벌였다. 오리엔떼 주에는 말라리아 감시체계를 가동했다. 쿠바의 말라리아 퇴치프로그램은 1959년에 시작돼 1973년까지 지속했다. 1967년은 쿠바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한 마지막 해다.
쿠바 공공보건부는 소아마비 퇴치가 가능하다는 결론 하에 1961년부터 본격 예방접종 캠페인을 시작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염병 미생물 분야 책임자이자 세계보건기구의 바이러스 전문가위원인 카렐 사첵의 자문을 받았다. 백신은 전량 구 소련의 공공보건부에서 공급받았다. 혁명수호위원회와 전국소농연합의 보건 담당자들이 1개월에서 14살 이하 모든 소아의 명단을 확인해 카드에 작성했다.
소아마비 예방접종 캠페인은 국가기구들과 대중조직들이 협력한 성과다. 예방접종 캠페인은 매우 노동집약적인 사업이었다. 교육활동은 예방접종 성공에 크게 기여한 중대한 요소였다. 정부는 라디오와 TV로 집중 캠페인을 벌였다. 매일 12분짜리 TV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30분짜리 일일연속극도 틀었다. 포스터도 만들어 뿌렸다. 신문 잡지 게시판 옥외광고판까지 이용했다.
1962년 전반기에는 46건의 소아마비 감염 사례가 있었다. 1963년, 64년, 70년, 71년, 72년에 각각 한 건씩 나왔다.
쿠바와 소아마비 퇴치 캠페인 사례는 일차의료 모델과 이에 동반한 지역사회의 적극적 참여가 어떻게 이 치명적인 질병으로 뿌리 뽑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쿠바에서 성공 못했으면 1962년에서 1970년 사이 1200건의 소아마비 장애환자가 생겨, 200명이 죽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뎅기열 통제 프로그램 : 1981년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출혈성 뎅기열 유행을 겪었다. 쿠바도 마찬가지다. 쿠바 정부는 뎅기열 감염원 통제 계획을 실행했다. 1만5천명의 쿠바인들이 조사관이나 교육자로 뎅기열 통제활동에 참여했다. 뎅기열의 매개체 모기들에게 번식처를 제공하는 버려진 용기들을 수거 폐기했다. 지역사회 주민들의 참여와 지원을 이끌어내는 게 쿠바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쿠바 정부는 뎅기열을 잡을 시기에 야전병원들을 개설해 누구나 쉽게 입원하도록 ‘개방병원’을 운영했다.
1997년 쿠바는 다시 한 번 뎅기열 유행을 겪었다. 쿠바는 다시 능동적 질병감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다시 뎅기열이 유행한 이유는 1992년 타이어 수입과 함께 매개체인 열대 숲 모기가 따라 들어왔기 때문이다. 1997년 모두 12명이 죽었다.
쿠바의 에이즈 감염률은 0.07%로 가장 낮은 국가다. 쿠바 내에서 생산하는 항바이러스제 투여를 비롯해서 치료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보건교육과 사회적 해결책을 폭넓게 시행했다. 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증오를 많이 받는 에이즈 관리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도 있다.
1985년 쿠바에 첫 에이즈 환자가 생겼다. 쿠바는 1986년 강제 격리 정책을 폈다. 특히 감염된 산모는 의무적으로 제왕절개술로 분만해야 한다. 초기 에이즈 검사의 주 대상자들은 1980년대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군사 활동을 펼친바 있는 다수의 군인들이었다. 군인들이라서 강제 격리가 손쉬웠다.
프랑스와 브라질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에이즈에 오염된 혈액 때문에 에이즈에 감염됐다. 반면 쿠바는 혈액으로 감염된 숫자는 9명뿐이었다. 1993년 현재 쿠바와 인구가 비슷한 뉴욕시에는 무려 4만3천명의 에이즈 환자가 산다.
신생아 에이즈 감염이 낮지만 1990년대 경제위기 때문에 매춘이 증가해 쿠바의 효과적인 에이즈 프로그램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매춘은 쿠바가 안고 있는 여러 난제 가운데 하나다. 쿠바에서 매춘은 불법이 아니며 많은 쿠바 사람들이 매춘을 비도덕적이라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춘에서 돈이 생기면 쿠바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6장 쿠바의 일차의료와 만성질환
사망이 줄어들면서 어떤 일이 생겼을까? 현대는 만성질환이 넘쳐 나는 시대다. 1960년에 60살이던 쿠바의 평균수명은 1970년 69세로, 2003년에 77세까지 급증했다. 감염성질환 사망률이 현저히 줄면서 동시에 만성질환이 증가했다. 2000년 현재 쿠바의 5대 사망원인은 심혈관계질환, 악성종양, 뇌혈관질환(죄졸중), 사고, 인플루엔자와 호흡기 질환으로 이 가운데 상위 3개 질환 사망률이 60%에 달한다. 쿠바나 미국 모두에서 심혈관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점차 감소세다. 이는 심혈관질환의 조기발견(2차 예방), 치료(3차 예방), 질병 발생을 억제하는 1차 예방(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사, 금연 등 생활습관)의 진보로 얻은 결과다.
기대수명이 40~50세인 개도국은 감염성 또는 전염성질환 사망이 많다. 기대수명이 70~80세인 선진국은 심혈관질환이나 악성종양이 많다. 쿠바는 개도국이지만 건강지표로 보면 쿠바는 선진국이다.
고혈압 등 허혈성 심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1986년부터 1990년까지 꾸준히 늘었다가 1990년부터 1997년 사이 급격히 줄었다. 음식, 콜레스테롤 수치 등이 문제다.
구 소련의 경제원조가 끊어지고 미국의 경제무역봉쇄가 지속되면서 석유공급이 줄어들자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일이 늘어났고 다른 신체활동도 증가했다. 신체활동은 심혈관계질환 감소 요인이다. 고혈압은 쿠바에서도 중요한 건강문제다. 선진국들이 약물을 사용하는데 반해 쿠바는 식이와 운동이란 생활요법으로 처방한다.
쿠바인들은 흡연과 관련된 구강암, 인두암, 후두암의 비율이 높다. 그러나 높은 흡연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폐암 유병률이다. 1983년 쿠바의 여성 흡연율은 50-55%였다. 남성 흡연율은 90%였다. 미국인 남성의 67%, 여성의 46%보다 높다. 폐암으로 인한 사망은 남녀 모두 미국이 쿠바보다 약 20% 높다. 두 나라 사이의 담배경작 및 가공과정의 차이도 있다. 쿠바에선 흡연의 해로운 효과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TV 등에서 금연 홍보를 철저히 한다. 쿠바 담배가 값이 싸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 국내용으로 생산하는 여송연에는 경고 메시지가 없다. 쿠바는 암 치료에 더 많은 자원을 투여해야 한다.
쿠바에서 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65세 이상 여성에서 가장 높았으며 이는 65세 이상 남성보다 약 50% 가량 높은 수치다. 쿠바의 뇌혈관 사고는 50세 이하 인구에서도 크게 늘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동맥고혈압은 가장 흔한 위험 인자다.
당뇨는 쿠바나 미국 모두 6번째 사망 순위다. 미국은 젊은 층에서 제2형 당뇨가 놀랄 만큼 증가했는데 비만이 그 원인이다. 쿠바의 당뇨 발생률이 1992년과 2001년 사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쿠바 노인층에 대한 당뇨 교육은 임상적 측면보다는 식이요법과 같은 대사조절이 더 중점이다. 그 결과 당뇨 관련 응급서비스 이용과 병원 입원도 감소했다. 그래도 당뇨 치료는 여전히 골칫덩어리다. 환자들이 늘 식이요법에 회의적인 것도 아니다.
노인층에 대한 적절한 치료 제공도 쿠바의 숙제로 떠올랐다. 쿠바 노인 약 69%가 비전염성질환인 고혈압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약 51%가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습관을 가진 비만이 많았다.
2000년 쿠바 공공보건부는 노인층에 대한 서비스 확대 및 개선, 지역사회노인센터 성인 대상 주간치료보호센터, 식사배달 프로그램, 주거도우미 등의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지역에서 이런 서비스는 제공되지 못하고 질도 일정하지 않다.
7장 공공보건의 ‘공공성’을 다시 생각해보다 - 쿠바 사례의 평가
쿠바와 같은 개혁을 실행하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개인의 독자성과 공공 이익의 맞바꾸기가 필요하다. 쿠바의 공공보건 모델은 광범위한 지역사회 주민참여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강제적 힘이 없어도 이런 높은 대중 참여가 가능했을까? 이는 21세기 국가안보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과 개인적 권리가 대립해왔던 모습과 비슷하다. 세계 각국은 1990년대 말까지 공공보건서비스 영역조차도 국가나 공공의 역할이 감소했다. 국가 내부, 국가간 불평등이 갈수록 커져가고 과학기술의 진보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건강과 수명을 보장했다. 어린이들이 깨끗한 물이 없어 설사질환으로 죽어가고, 에이즈 환자들은 약을 구할 길이 없어 죽어가고 있다.
불평등 감소는 그 사회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양호하게 한다. 쿠바에서 지역사회의 참여가 원활했던 것은 교육, 소득, 고용 및 사회적 자원 이용의 불평등을 줄였기에 가능했다. 매우 성공적이라고 높이 평가받는 쿠바의 에이즈 정책은 동시에 인권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기도 하다.
공공보건은 단 한 번도 대중이 필요하다고 해서 시행된 적이 없다. 오히려 국가가 노동력 보존을 위해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서비스를 위한 사회적 기반을 제공할 능력이 있을 때 가능했다. 폴 파머(Paul Farmer)의 정의를 사용하면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조적 폭력’이 이 사람들의 건강도 결정한다.(2004)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인 교육과 건강서비스를 제공하고 충분한 음식과 물과 위생시설을 공급하는 데 드는 비용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24명의 재산을 합친 것의 4%에 불과하다.(Global Health Watch, 2005) 이 사실은 오늘날 불평등의 정도가 얼마나 개탄스러운지 잘 보여준다. 쿠바 모델이 불평등을 줄임으로써 공공보건 활동을 통한 건강수준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GHW에서 인용한 위 문장은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번역 과정의 오탈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니면 원저자의 실수일 수도 있겠다.)
로리 개럿(Laurie Garrett)은 그녀의 책 <배신당한 믿음 : 세계 공공보건의 몰락>을 썼다. 우리는 1800년대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의 질병양상 변화과정을 통해 곤경에 처한 공공보건 영역의 앞길을 보여줄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쉐레터(Szreter)는 19세기 말 영국의 상황을 예로 든 논문 <경제성장, 붕괴, 빈곤, 질병, 그리고 죽음 : 진보를 위한 공공보건 정치학의 중요성에 대하여>에서 정치적 변화와 사회적 의지가 질병과 사망률 감소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공공보건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작동했을 때 비로소 경제성장이 바람직한 사회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쉬레터는 경제성장과 사회적 발전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학자다. 경제성장이 발전을 낳는다는 기존 견해와 반대로 경제성장은 오히려 사회적 정치적 붕괴를 낳고 이념들 간 충돌을 조장하며 문화적 사회적 가치들의 변동을 몰고 온다는 사실을 밝혔다. 쉐레터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문서를 검토해 공정하면서도 전면적인 수도공급체계와 위생시설 건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변화의 산물이란 점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서비스가 모든 이들의 공동이익을 위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모델은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이 신봉하는 것으로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와 같은 특정 질환이나 특정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생명공학의 역할을 중시한다. 그 반대편에는 쿠바 모델이 있다. 쿠바는 포괄적 서비스라는 특징을 갖고 형평성을 목표로 하고 낮은 기술에 의존하며 인적 자원을 중시한다.
공공보건 프로그램의 정책을 결정하거나 재원을 분배하는 과정에는 세계은행, 록펠러 그룹, 게이츠 재단, 몇몇 제약회사가 결적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공공보건의 의사결정과정에서 가난한 나라들의 정부와 시민사회 단체들은 사실상 배제되고 무시돼 왔다. 해당 지역주민들과 그들의 가치를 대변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2000년 9월 UN은 2015년까지 삶의 질을 개선하고 빈곤을 종식하기 위한 ‘유엔 새천년 개발목표’를 채택했다. ‘유엔 새천년 개발목표’는 우려되는 점도 있다. 포괄적이고 수평적인 건강증진 프로그램 보다는 특정 목적을 지닌 수직적 프로그램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가난한 나라들의 정부에게 자금을 주면서 부과하는 조건들이 비민주적이고 그 나라 공공자산을 사유화시키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보건체계를 약화시키고 사회안전망을 손상시키고 있다.
8장 쿠바 일차의료 모델이 주는 교훈
쿠바는 매우 독특하다. 권위적 정치체계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인구 이동이 적다. 작은 섬나라다.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있는 점 등이 그런 것이다.
쿠바의 예에서 사회가 공평하게 건강수준이 향상되고 불평등의 감소가 구성원의 문화와 태도에 큰 변화를 준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보건의료 서비스가 이루어진다 해도 꼭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며 오히려 향상되는 점을 배울 수 있다.
국가의 크기와 국제관계가 성공을 훼손할 수도 있다. 많은 의료서비스 시설이 기본적인 약품조차 구비하지 못하는 경우 치료서비스는 더 심각하다.
최근 나온 세계보건기구 출판물에 건강증진의 효과적 토대로 ‘임파워먼트’라는 개념이 새로 등장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했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절대적 빈곤이 증가하고 있다. 하루 2달러 이하로 사는 사람이 30억명에 달한다. 심각한 영향결핍으로 수인성 질병이나 혈액을 통한 감염질환, 환경파괴, 건강 인프라 투자부족이 이어져 세계적인 건강불평등이 증가일로에 있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임파워먼트, 참여, 상향식 접근 등이 중심이 됐다.”(WHO. 2006)
저자는 쿠바 보건의료체계의 교훈을 아래의 10가지로 나열했다. 1. 불평등의 감소, 2. 모든 이들에게 건강을, 3. 지역사회가 주인인 보건의료서비스, 4. 지역사회의 실질적 참여, 5. 건강증진, 6. 일차의료에 대한 지속적 지원, 7. 예방활동, 8. 지역과 인구집단의 크기도 변수 9. 예방보건의료는 치료의학과 아주 다른 분야다. 10 치료중심 의료는 매우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서비스다.
저자가 설정한 교훈은 하나 같이 재미없다. 감동적이지도 않다. 특히 8번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저자는 ‘지역과 인구집단의 크기도 변수’라는 8번째 교훈을 설명하면서 “국민적 합의의 면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에서는 더 큰 인구에서보다 합의가 더 용이하다”고 했다. 독자들은 이 말에 모두 동의하시는가.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아가 저자는 “사회주의 독재체제에서 정책적 합의를 이루기 더 쉽다”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