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과민의 땅 가파도로...
- 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60살이 되어 우연치 않은 기회로 가파도에서 고양이 여섯 마리를 돌보며 한 달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삼시 세끼를 직접 지어 꼬박 챙겨 먹으며 4㎞ 남짓되는 가파도 해안가를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았습니다.
고양시 호수공원만한 섬이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호수공원은 공원 안쪽이 물이었고, 가파도는 섬 바깥쪽이 물이었지요. 가끔 파도가
높아 배가 끊긴 날에는 관광객이 한 명도 오지 않아 가게들도 문을 닫고 사람들의 인적도 드물었습니다.
한적한 해안가를 돌며 그 넘실대는 파도를 보면, 숨가쁘게 살아온 날들이 잊히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양시는 바쁘게 움직였겠지만, 가파도는 다른 시간대에
있는 것처럼 느리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적한 해안가를 돌며 그 넘실대는 파도를 보면, 숨가쁘게 살아온 날들이 잊히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다녀온 지 석 달이 되어, 가파도에 대한 기억도 점차 사라질 무렵, 가파도 매표소에서
일하던 젊은 직원에게서 느닷없이 전화가 왔습니다. 가파도 매표소보다 더 괜찮은 직장을
구했다며, 자기를 대신해서 가파도 매표소로 와서 일해줄 수 있냐고 말이지요.
가파도를 떠나올 때쯤 가파도에서 한 일 년쯤 살게 된다면 사계절의 변화도 만끽하면서 삶의
방식도 변화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표소에 일자리가 나면 내려와
일할 테니 제일 먼저 알려달라고 지나가듯이 직원에게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직원은 그 말을 기억하고 나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나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던져진 제안이라 잠시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망했던
순간이 꿈처럼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전화가 온 날 저녁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가파도로
내려가서 1년 정도 매표소 직원을 하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며 응원하겠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쿨한 집안입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자신이 하고픈 것을 거절당한 적이 없었으니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대화를 마치고 바로 전화를 해서 내려가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고양에서 정리할
일도 있으니 한 달여 말미를 달라 했지요. 사무실도 정리하고, 수업도 정리하고, 농사도 정리
하고, 정리할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내려가기로 결심은 했지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은
없습니다.
가서 살 집도 구해야 하고, 혼자 살 살림살이도 마련해야 합니다. 겨울철에 내려가니 월동
준비도 해야겠지요. 매표소 직원이라도 정규직이 아니라 시급 알바직입니다. 배 뜨면 돈 받고,
결항되면 공치는 일용직 잡부 같은 신세지요. 사실 가파도 원주민들도 부끄러워하고 꺼리는
일이지요. 그런데 내가 해 보겠다고 선뜻 결정했습니다.
가파도 마을.
가파도로 일하러 간다고 하니 다들 부러워합니다. 관광지에 가서 편안히 지내며 책도 보고
글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며 다음번에는 자신이 내려가겠다고 한마디씩 거듭니다.
그러니 웃을 밖에요. 가파도는 사실 노자 《도덕경》 80장에 나오는 소국과민(小國寡民)과
같은 곳입니다.
면적이 1㎢도 안 되고, 섬 둘레가 4㎞ 남짓 되는 작은 섬이지요. 100여 채 되는 주택에 200여
명 남짓한 주민들과 300여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에 살다가 이제 200여 명이 사는 작은 섬으로 내려갑니다.
고양시에 있으면 벌였을 많은 일과 수많은 좋은 인연도 잠시 내려놓고 내려갑니다. 이번 참에
고장난 차도 폐차시켰습니다. 아마도 가파도의 삶은 훨씬 단순하고 단출하겠지요. 복잡한
생각도 내려놓고 갑니다. 다음 번 칼럼은 가파도에서 보내드리겠네요. 다들 평안하십시오.
단출한 가파도 마을 풍경.
출처: 고양신문 20232. 11.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