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여행12 - 고조섬 빅토리아 시타델에서 대성당을 보고 페리와 버스로 몰타섬에!
2024년 5월 9일 고조섬에 가기 위해 발레타에서 페리를 타고 슬레이마 Sliema 에 내려서
222번 버스를 타고 처케와 부두 Port Cirkewa 에 도착해 페리를 타고 고조섬
임자르 (음가르) Mgarr Gozo 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빅토리아 Victora 에 내립니다.
걸어서 광장을 지나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서는 시타델아 도착하는데, 대성당은 조금 후에 보기로 하고는
우리 부부는 먼저 성벽으로 올라가니 저 아래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게 경치 하나는 일품입니다.
시타델 The Citadel, Victoria Castillo 은 성 요한 기사단이 축성을 했는데 1551년에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
의 침략때 성은 함락되고 6천명의 고조섬 주민이 모두 노예로 팔고 또 이슬람 문화 흔적이
남아있으며 성은 1622년에 재건했다고 하는데, 영국식 빅토리아는 이슬람어로는 라바트 Rabat 라 합니다.
성벽에서 언덕 너머 바다까지 보고 내려와 고조 대성당 Gozo Cathedral으로 들어가는
데.... 시타델 요새 안에 자리한 대성당 내부는 빨강과 금색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으며, 천장에는 건축비가 모자라 돔 형식의 그림으로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4유로 입장료를 내고 시타델 박물관에 들어가니 시타델 성채에 관한 역사
보다는...... 대성당과 관련된 종교 유물들이 더 많은 것을 봅니다.
그러고는 대성당을 나와 시타델을 벗어나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입간판이
있어 보니 7유로에 20분간 오디오와 쥬얼 쇼를 보여준다는데.....
조금전 시티투어 버스에서는 영어, 그리스스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네델란드어, 스웨덴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포르투칵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인도어등 무려 16가지 언어였는데 여기도 16가지
이긴 한데, 중국어, 인도어, 아랍어등은 빠지고 대신에 이스라엘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등이 들어가 있습니다.
두군데 모두 한국어가 없는 것을 아쉬워 하면서..... 그러고는 레스토랑이며 카페에 기념품
숍이 즐비한 광장을 지나 언덕길을 내려와서 버스 정류소에서 301번 버스를 탑니다.
그런데 버스 안에는 얼굴색이 검어 집시로 보이는 젊은이 2명이 사람들을 기웃거리는데....
우리 부부는 오랜 여행의 경험으로 복잡한 곳에 가면 이 중에 누가 소매치기
인지 먼저 살피는 버릇이 있는지라 빨리 발견하고는 경계를 하니 저들은 어쩌지 못합니다.
그러고는 음지르 항구에 도착해서는 다시 페리를 타는데..... 몰타섬 처케와에서 탈 때는 돈을
받지않고 이제 돌아갈 때 왕복요금으로 4.5유로씩을 받는데 우린 패스를 보이니 무료입니다.
그런데 항구 터미널에서 화장실에 갔더니 거기에 물과 비누에 공기가 나오는 3개 꼭지를 영어와 몰타어로
병기해 두었는데 비누는 Soap 아래에 몰타어로 Sapun 이라고 적었는데..... Sapun 은 우리나라
발음으로는 “사분” 이라 읽으니 내가 어릴 때 농촌에서 어른들이 비누를 "사분" 이라 부르던게 떠오릅니다.
한국 학생들이 여기 몰타에 영어 어학연수를 많이 오는데... 몰타어는 영어와 함께 사용되는 공용어로,
몰타인 50만명이 모국어로 사용하며, 몰타가 유럽연합 정회원국이라 몰타어도 유럽연합(EU) 의
공용어 중 하나이니 EU 언어 정책의 비효율성, 특히 통역 문제에서 종종 예로 드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아랍어 (MSA) 와는 같은 셈어파로 매우 가까운 친척 관계이고 튀니지의 마그레브 아랍어와는 방언연속체 관계라
상호 소통이 되며 언어학적으로는 아랍어 방언으로 분류되는데.... 870년 이슬람 아글라브 왕조에 점령 당합니다.
시칠리아 토후국 시대까지 220년 동안 통치를 받았을 뿐인데 이전에 쓰던 언어의 흔적은 거의 없어져 버리고
완전히 아랍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되었으니..... 이렇게 된 이유는 일단 몰타 거주민 숫자가 적었던데다가
아랍화 이전에 몰타인들이 사용했던 언어가 아랍어와 가까운 언어인 페니키아어와 아람어였기 때문 이랍니다.
셈어파 언어중 유일하게 라틴 문자만 사용하는 언어이며 현재 유럽의 주요 언어 중 유일한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언어이기도 한데 몰타어 알파벳에서 għ, h 는 묵음이며재 q 는 아랍어 q 발음이 아니라 성문 파열음 입니다.
어휘에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차용어가 매우 많으니, 몰타어 단어 중 아랍계는 32% 에 영어계는
6% 에 불과하며 이탈리아어 차용어는 무려 52% 나 차지하는데.... 몰타어 형용사는
본래 남성, 여성, 복수 변화를 하지만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차용어는 변화하지 않는답니다.
워낙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차용 어휘가 많고 영어 또한 로망스어계 같은 차용어가
많아서 영어나 이탈리아어에 익숙한 사람은 얼핏 보면 알 것도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으니 아랍어를 공부한 사람도 아주 약간 유추할 수 있는 정도랍니다.
더욱이 묵음 때문에 아랍어에서 온 단어라도 듣기만 해서는 알 수 없으니 어찌 보면 아랍어
방언의 진정한 끝판왕이자 숨겨진 보스리며, 문법은 표준 아랍어가 아닌 아랍어
방언이고 어휘는 아랍어 방언, 이탈리아어, 프랑스어가 뒤섞인 것이라고 보면 대충 맞습니다.
페리에서 멀어지는 고조섬을 바로보노라니 일정이 짧아 들러지 못한 곳이 떠오르는데.... 서북쪽 중앙에 타피누 성당
Tafinu Catedral, Ta' Pinu ( 1833년 농부가 성모의 목소리를 들은후 사람들의 병을 치료했다고 하고, 여인이
어머니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기도해 소원을 이루었다는 전설로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방문해 미사를 집전했다 )
빅토리아 동쪽에 쥬간디아 신전 Ggantija Temple ( BC 3500년경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석 (거인) 신전으로..... 두 번째로는 몰타섬 사랴 Xaghara 마을에 하자르임 신전이 있다) -
서쪽 아즈라 윈도우 블루홀 Azure Window & Blue Hole (애지, 듀즈라 윈도우 Dwejra ) : 수천년의 바람과
파도의 침식 때문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아치 Arch (2017년에 무느졌다) 인 바위에 구멍이 뚤린
하늘색 창문 바위로 바람이 매우 거센데 보트를 타고 동굴을 빠져나가는 관광 상품이 있으며
블루 홀 lue Hole 은 다이빙으로 인기가 높다! - 코럴 케이브 Coral Cave (산호 동굴) - 산타 아나 교회
북동쪽 람라 베이 & 칼립소 동굴 Ramla Bay & Calypso Cave ( 빨간 모래가 특징인
아름다운 모래해변으로 호머의 시 오디세이에 보면 요정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사랑해 7년간 이나 붙잡아 두었다가 울면서 놓아 보내주었다는 섬)
서남쪽 항구 슬랜드 해변 Sland Beach, Xlendi ( 고조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산책로 끝에 있는 계단으로 수도사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수영했던
동굴로 올라갈수 있다. 중국식당 볶음밥) 붉은 백사장 람라 Ramla Beach 가 유명하다.
북쪽 마살폰 Marsalforn (여름철 리조트 해변으로 어부들의 다양한
색깔의 보트가 정박해 있으며 언덕에는 기독교 동상이 서 있다)
북쪽에 마살폰 Marsalforn 서쪽에 염전 솔트판 Salt Pan ( 로마 시대에 석회암
바위 를 깍아 수백개의 직사각형 틀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해 왔다 )
고조섬은 몰타에서 2번째로 큰 섬으로 맑고 청정한 해변에 선사시대 거석문화 유적과
몰타 기사단이 세운 성채가 있는데 몰티즈보다 고지탄으로 불리기를 원합니다.
전통 엿과 고조꿀이며 고조 올리브가 유명하다. 배를 탈 때나 해변에서는 선크림을 발라야
하며...... 발레타에서 여행사(버스 16유로 + 페리 5유로) 를 이용할수도 있습니다.
문득 국제신문 신광영 국제부 차장이 국제신문에 기고한 “지중해 난민선의 소금 눈물” 이라는 기사가 떠오르니
난민을 실은 밀입국선이 섬에 도착하면 의사인 피에르토 바르톨로(67)는 갑판에 오른다. 살아서 온 사람을
검진하고, 시신으로 도착한 이들은 검시하는 게 그의 일이다. 일터는 이탈리아 최남단의 휴양지 람페두사 섬이다.
그가 나고 자란 이곳은 북아프리카 앞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대표적인 환승지다.
바르톨로가 검진하는 난민들의 몸에는 배에 오르기 전 어떤 지옥들을 경유했는지가 새겨져 있다.
칼로 베인 흉터나 담뱃불로 지진 자국은 어딘가에서 붙잡혀 고문을 받은 흔적이다. 배에서 거친 수술 자국이 목격
되기도 한다. 수백만 원의 승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한쪽 신장을 팔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성폭햄에
대비해 승선전 독한 피임주사를 맞는 10대 여성들도 있다. 조기 폐경등 치명적 부작용을 그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바르톨로는 아이를 데리고 탄 여성들의 엉덩이와 다리에서 심각한 화상을 자주 본다.
‘고무보트 병’ 이라고 불리는 화학적 화상이다. 인신 밀수업자들은 배가
이탈리아 해안에 가까워지면 단속을 피해 허름한 고무보트에 난민들을 옮겨 태운다.
남자들은 도넛 모양의 테두리에 걸터앉지만 여성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바닥에 앉는다.
숱한 파도를 지나며 기름통에서 새어나온 휘발유가 짠물과
섞여 살인적인 혼합물이 된다. 그게 여성들의 옷을 적시고 살갗을 파고 든다.
바르톨로는 몇 년 전 봤던 젊은 시리아 부부의 넋 나간 눈동자를 기억한다. 부부는 배가 뒤집혀 800여 명이 모두
바다에 빠진 날 구조돼 온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바다로 뛰어들기 전 생후 9개월 된 아기를 가슴팍
옷 안에 집어넣었다. 물에선 배영 자세로 몸을 뒤집어 한 손에 아내를, 다른 한 손에 세 살배기 아들을 잡았다.
그 자세로 등헤엄을 치며 구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남자는 녹초가 되어 갔다. 물살도 거세졌다. 탈진하면 네 가족
모두 물에 잠길 상황이었다. 남자가 아들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아들은 천천히 멀어져 갔다고 했다.
그러고 몇분 뒤 구조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바르톨로에게 “저는 평생 저를 용서하지 못할 것” 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와 함께 난민들의 최대 경유지인 그리스 해안에서도 그런 비극이 자주 벌어진다.
13일 그리스 연안을 지나던 밀입국선에는 약 750명이 타고 있었다.
길이 25m의 갑판에 빼곡히 탄 사람들은 큰 파도가 치면 언제든 쏟아질듯 위태로워 보였다.
몇 시간 뒤 이 배가 침몰해 최소 600명이 숨지던 때 인근에는 그리스 해안경비대 구조선이 있었다.
경비대는 침몰 18시간 전에 이 배를 발견하고도 항해 상황을 지켜만 봤다.
경비대는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선원들이 ‘우리는 이탈리아로 간다’ 며 거절했다” 고 했다.
하지만 영국 BBC와 가디언이 전한 생존자 진술과 무전 내용,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항로 추적 결과는
다른 정황을 보여준다. 당시 배는 침몰 전 7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엔진도 고장난
상태였다. 그러다 갑자기 배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순식간에 우측으로 기울어 침몰했다. 이 때문에 해안
경비대가 침몰에 대비해 안전조치를 취하거나 구조에 적극 나서야 했는데 방관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있다.
이 사건은 난민 밀입국선을 대하는 유럽의 태도를 보여준다. 난민을 수용할 의사도 여력도 없다
보니 전략적으로 구조를 지연시키며 배가 영해 밖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밀어내기’
를 하는 것이다. 유럽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아랍의 봄, 2016년 시리아
내전 등을 거치며 난민선이 급증하자 유럽은 침몰 위험이 높은 지중해 한복판에서 물러섰다.
엤날에는 ‘국경없는의사회’ 등 난민단체 구조선과 정보를 공유하며 힘을 합쳤지만 지금 민간 구조를 불법화했다.
그 대신 난민선이 떠나온 리비아, 튀니지 당국에 배의 위치를 알려 강제송환 시키는 방식으로 난민 관리와
책임을 외주화하고 있다. 그 결과 난민들은 어떻게든 ‘지옥’ 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죽음의 항해에 몸을 던진다.
사람에겐 안전한 곳에서 살 권리, 더 나은 삶을 찾을 권리가 있지만 난민 신청이 모두 수용되긴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바다에서 목숨이 위태로울 때 적절한 구조를 받는
것은 국제법이 규정한 기본권이다.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톨로가 부두에서 만난 난민들은 모두 얼굴이 하얬다고 한다. 며칠간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소금기가 들러붙은 탓이다. 이들은 마침내 섬에 닿으면 살았다는 안도감에, 또는 항해 중
잃어버린 가족들이 떠올라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얼굴을 타고 내려오며 하얗게 서린 소금을
녹인다. 바르톨로는 25년의 ‘난민 주치의’ 경험을 책으로 썼는데 그 책 이름이 ‘소금 눈물’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