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 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1~3)
히브리서는 크게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고 완성시키신 예수님의 여러 가지 구약적
요소들에 대한 우월성을 논증하는 1장 1절에서 10장 18절까지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을 다룬 10장 19절에서 13장 25절의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전반부의 4장 14절에서 7장 28절까지는 레위 사제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의
대사제로서의 지위에 대해 언급한다.
히브리서 7장은 이러한 맥락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구약의 성취로
이 땅에 오셔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구원을 이루신 분임을 논증하는
일관된 주제를 갖고 있는, 히브리서 전체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께서 멜키체덱의 반열을 쫓아 완전한 대사제되심을 다룬다.
그 가운데 히브리서 7장 1~10절은 멜키체덱이 레위 계통의 사제보다 우월한 영원한
사제임을 밝힌다.
즉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레위 사제들보다 우월함을 밝히기 위하여 먼저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멜키체덱의 우월함을 논증해 나가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7장 1~3절에서 우선 멜키체덱의 약력을 밝힌다. 멜키체덱은 살렘의
임금이다.
'정의의 임금'(the king of righteousness)이라는 이름 뜻을 지니고 있는 멜키체덱은
창세기 14장 17~20절에 등장한 인물로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그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살렘의 임금이다.
히브리서가 기록된 당시의 '살렘'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예루살렘'의 별명이라는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
멜키체덱은 임금일 뿐 아니라 주 하느님의 사제였다. 그는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에서 임금 겸 사제였던 것이다.
그는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의 사제였고, 최초의 임명직 대사제 아론이 있기
이전의 사제였으며, 아브라함이 그를 알기 이전부터 사제였던 인물로서 이스라엘의
종교 제도 너머에 존재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임금이면서 사제였다는 사실이 레위 계통 사제들과의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레위 계통의 사제들은 임금의 직무를 맡을 수 없었다. 그러나 멜키체덱은 사제이면서
임금으로서의 직무도 수행하였던 것이다.
한편,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은 히브리어로 '엘 엘리온'(el ellion)이며, 하느님을
지칭하는 이름들 가운데 하나이다.
'엘리온'은 '가장 높은'(most high)을 뜻하는데, 영어 성경들은 이러한 고유
이름으로 사용하여 대문자 'the Most High'로 표기했다.
'엘리온'은 구약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기본적인 개념 가운데 특히 하느님의
존귀하심과 압도적인 위엄을 드러내는 명칭이다.
이것은 특히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을 나타내는 신명(神名)이다.
멜키체덱은 유일신이신 주 하느님의 사제이며 평화를 뜻하는 살렘의 임금이다.
고대 제정일치의 세계에서 임금과 사제직을 겸하는 것이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존재는 많은 신비에 둘러싸여 있다.
고대 근동의 셈족들은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는데, 이 많은 신들 가운데 멜키체덱이
어떻게 주님을 섬기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하나의 의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갈대아 우르라는 이교적인 우상 숭배가 성행했던 환경에서 아브라함이
주님을 섬기게 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것은 하느님의 선택과 예정이라는 보다 신학적인 측면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적절하다.
어느 시대나 이 세상에 하느님의 백성이 없었던 때는 없었으며, 그리스도 이전과
모세 이전도 예외가 아니다(사도18,10; 에페1,4.5).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다'
이것은 멜키체덱이라는 사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동기에 관한 언급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엘람 임금 크도를라오메르와 연합한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네 임금에게 사로잡혔을 때, 아브라함이 훈련받은 장정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쳐부수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 임금 멜키체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그를 만났으며, 그를 축복하였다(창세14,13~20).
여기에서 '축복하였다'로 번역된 '율로게사스'(eullogesas)의 원형 '율로게오'
(eullogeo) 동사는 '잘', '훌륭하게'를 뜻하는 부사 '유'(eu)와 '말하다'를 뜻하는
어근 '로그'(log)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문자적으로는 '좋은 말을 하다',
'좋게 말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구약의 희랍어 번역 성경 70인역(LXX)에서는 '축복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빠라크'(barak)의 역어로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이 히브리어 동사는
기본적으로 생산, 장수, 번영, 부귀와 같은 '유익한 능력을 부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세 가지 의미로 쓰였다.
첫째는 '칭찬하다', '찬양하다'라는 뜻이고(마태14,19; 루카1,64)
둘째는 '축복하다'라는 뜻이며(루카24,50.51; 요한12,13),
셋째는 하느님이나 그리스도께서 '복을 주신다'라는 뜻이다(마태25,34).
희랍어의 원래 의미로 보면 첫째 의미로도 볼 수 있으나, 70인역(LXX)의 용례나
문맥에서 볼 때 둘째 의미로 사용되었음이 명백하다.
멜키체덱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아브람은 복을 받으리라.
적들을 그때 손에 넘겨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창세14,19~20) 라고 기도함으로써 아브라함을 축복했던 것이다.
이처럼 멜키체덱이 하느님께 기도함으로써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그가 아브라함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과 아브라함을 위한 중재자
(중보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믿음의 조상이요 하느님의 약속을 가진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의 축복을 받았다면,
멜키체덱이 아브라함 보다 높은 위치에 있음을 단정할 수 있다(히브7,7).
히브리서 저자는 멜키체덱의 반열을 따른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 난 레위 계통의 사제직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이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성도들 사이의 중재자(중보자)로서 성도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심으로써 성도들을 축복하신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전리품으로 얻은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떼어 멜키체덱에게 준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창세기 14장 20절의 인용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멜키체덱이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이브라함의 품 속에 있었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레위 계통 사제들보다
더 큰 자임을 알 수 있다.
야곱이 하느님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기도한 것처럼(창세28,22),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렸는데, 이것은 자신의 소유가 멜키체덱에게 속한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창세28,22; 레위27,30).
십일조는 '나의 모든 소유가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표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의 절대권과 주권을 인정하는 표시로 소산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나누어 주었습니다'로 번역된 '에메리센'(emerisen)의 원형 '메리조'
(merizo)는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마아셰르'(maasher)의 역어이다.
아브라함의 이 행위가 당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관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멜키체덱을 하느님의 사제로 알고 이렇게 한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것을 십일조의 기원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히브리서 저자가 특별히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멜키체덱의 사제직이 레위 계통의
그것보다 뛰어남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유대의 사제들은 자기 동족들로부터 십분의 일을 받았다. 또한 이것은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제의 법적 권한이었다(민수18,21; 신명14,22).
하지만 멜키체덱은 혈통적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십분의 일을
받았으며, 더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율법에 따라 주어진 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권위 혹은 하느님에 의해서 주어진 권위에
의해서라는 점이다.
이 사실만 가지고도 그가 레위 계통 사제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사제 직분과 레위 계통의 옛 사제 직분을 비교하는 말이다.
'아버지도 없고'로 번역된 '아파토르'
(apator)는 고전 희랍어 문헌에서 고아, 주운 아이, 사생아, 부랑자, 불량배 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들의 경우 '아버지도 없다'라고 묘사될 때는 그들의 초자연적인 출생을
의미하는 말이된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 단어는 '어머니도 없고'에 해당하는 '아메토르'(ametor)와
함께 쓰여 신의 속성, 즉 신성과 영원성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
신약에서 '아파토르'(apator)는 여기에만 나온다.
히브리서 저자는 '토라(율법; 모세오경)에 언급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랍비주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이 논의를 전개시켜 놀라운 결론에 이른다.
구약 어디에도 멜키체덱의 혈통이나 부모, 출생, 죽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점을
들어 그는 임금이자 사제인 멜키체덱의 사제 직분이 하늘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영원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하늘의 존재로서 멜키체덱은 사제직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사제의 혈통을 가져야
한다는 절대적인 전제 조건을 가진 레위 계통의 사제들보다 우월하며(느헤7,64),
아울러 그는 레위 계통에 속하지 않고 선재하는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표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