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6일 오후 2시 ☸ zep – 메타버스 수요니까야읽기 https://zep.us/play/8Ldo18 으로 접속하여 모인 법우님들과 함께 ❂ 빠알리 예불 독송 ❂ 맛지마 니까야1
제2장 사자후 품
<꿀 덩어리 경> (M18) ~~해설에서~~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하고 붓다사사나(Buddha-sasana)를 한글로 직역한 것이다. 붓다사사나 불교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가장 잘 알려진 정의가《법구경》에 나오는 “모든 악을 행하지 않고/ 유익함(善)을 구족하며/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들의 교법이다.”(Dhp {183}, 본서 역자 서문 §1참조)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무엇을 설하시는가에 대한 의문과 관심은 부처님 재세시부터 당연히 있어 왔다. 본경은 부처님의 고향인 삭까에 사는 단다빠니가 부처님께 이것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부처님께서는 간단명료하지만 함축된 답변을 하시며, 여기에 대해 논의제일이라 불리는 마하깟짜나 존자가 설명해낸 아름다운 해석을 담고 있는 경이다. 존자의 이 해석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아난다 존자는 이 가르침을 꿀 덩어리라 불렀다.(§22) 본경의 가르침은 삭까사람 단다빠니가 산책을 나왔다가 세존을 만나서는 “사문께서는 무엇을 설하시는 분이며 무엇을 말씀하시는 분입니까?”(§3)라고 질문을 드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엇을 설하시는 분’이냐는 단다빠니의 이 질문에 대해 세존께서는 ‘[나는] 오염원의 인식이 더 이상 잠복해있지 않음을 설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4) 세존께서는 이 말씀을 본경 §8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신다. 그러자 대중들은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더 자세하게 설명해줄 것을 청하고(§§10~15) 그래서 마하깟짜나 존자가 이것을 다시 해설해내며(§§16~19), 부처님께서 이것을 인정하시는 것(§21)이 본경의 전체 구조이다. 마하깟짜나 존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눈 등의 감각기관[根, 안의 감각장소, 內處]과 형상 등의 감각대상[境,밖의 감각장소,外處]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識] 등이 일어나고 이 셋의 만남이 감각접촉[觸]이고 이를 조건으로 느낌[受]이, 인식[想]이, 생각(尋)이, 사량 분별이 생기고 다시 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가 일어난다.(§§16~17)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눈 등이 없고 형상 등이 없고 눈의 알음알이 등이 없을 때 감각접촉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 일으킨 생각이라는 개념이 없을때 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의 일어남이라는 개념을 설명할 수 없다.(§18) 이렇게 해서 마하깟짜나 존자는 근 - 경 - 식 - 촉 - 수 - 상 - 심 - [사량 분별] - 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라는 9지연기(§16) 혹은 8지연기(§17)로 부처님의 말씀을 설명해낸다. 비구들은 세존께 가서 이 사실을 말씀드리고(§20) 세존께서는 이 말씀을 인정하신다.(§21) 아난다 존자는 이 법문을 듣는 것은 마치 배가 고파 지친 사람이 꿀 덩어리를 얻어서 어느 부분이라도 먹으면 달콤하고 황홀한 맛을 얻게 되는 것과 같다고 말씀드리고, 세존께서는 “이 법문을 꿀 덩어리 법문이라고 호지하라.”고 말씀하신다.(§22) 그래서 본경의 제목은 <꿀 덩어리 경>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본경은 부처님의 함축적인 말씀(§4), 간명한 말씀(§8), 여기에 마하깟짜나 존자의 해석(§§16~19)의 세 단계의 설법을 담고 있다.
읽은 후의 ‘사량분별’에 대한 질문에 더 조사하고 나누어 주신 내용입니다.
1. 우다나 『사량분별의 멸진 경 』(U7:7) 주해 571) 중에서 ‘사량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를 버렸음’은 papañcasaññāsaṅkhā-pahāna 를 옮긴 것이다. 본서의 주석서인 우다나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이 용어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스스로 생겨난 그 흐름을 사량분별하게 하고 확장하고 오래 머물게 한다고 해서 ‘사량분별들’인데 오염원들이다. 특히 갈망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갈애와 사견과 자만이다. 그래서 ‘갈망이 사량분별이고 성냄이 사량분별이고 어리석음이 사량분별이고 갈애가 사량분별이고 사견이 사량분별이고 자만이 사량분별이다.’라고 하셨다. 나아가서 오염원이란 뜻이 사량분별이란 뜻이고 쓰레기란 뜻이 사량분별이란 뜻이다. 여기서 갈망이라는 사량분별은 아름다움의 인식에 기인한다.의 뜻으로 쓰였다. 성냄이라는 사량분별은 원한이 생기는 토대에, 어리석음이라는 사량분별은 번뇌들에, 갈애라는 사량분별은 느낌에, 사견이라는 사량분별은 인식에, 자만이라는 사량분별은 일으킨 생각에 기인한다. 이러한 사량분별들과 함께하는 인식이 ‘사량분별이 함께한 인식’이다. 사량분별들이 함께한 인식들의 더미, 몫, 부분이 ‘사량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이다. 뜻으로는 표상들과 함께 이런저런 사량분별들의 편들인 오염원의 무리이다. 여기서 인식[이란 용어를] 취한 것은 이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인식을 근원으로 하여 사량분별의 더미가 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들을 ‘버렸음(pahāna)’은 각각의 도에 의해서 갈망등의 오염원들을 뿌리 뽑았음이다.” .....
2. 『경이롭고 놀라운 일 경 』(M123) 주해 263) 중에서 “사량 분별이란 갈애(taṇhā), 자만(māna), 사견(diṭṭhi)의 세 가지 오염원(kilesa)을 말한다.” .....
사~두 사~두 사~두! |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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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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