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 탄원서
백승자
망초의 입장에서 보면 마땅히 개망초지
개복숭아 개살구……
본부인이라면 그리 부르고 싶은 첩 같은 신세
묵정밭이든 불모지든 억척에 뺏긴 땅이
삼천리 구석구석 닿지 않은 곳 없으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 꼴 아니겠나
더구나 왜倭에서 경술국치 해에 들어온 망국초고 보면
왜풀이라는 불청객 소리를 들어도
무릎 꿇어 읍소할 처지지만
천하가 굶주리는 보릿고개에는
나물이 되어 살을 주고
약이 되어 피를 주고
꽃이 되어 풍년을 주고
아궁이 다비까지 해 주는데
엄연히 국화꽃과에 이름까지 있는 족보를
풀인 듯 꽃인 듯
자기들 심사꼴리는 대로 이랬다저랬다 개취급이니
홍실망종화* 옆에서는 무참하게 뽑히는 잡초였다가
메마른 찻길 옆에서는 아쉬운 대로 꽃무리라네
한들한들 앙증맞은 국화들이 떼창을 부르며 흔들어주니
군악대 사열이라도 받는 듯한가
통 크게 자연사自然死를 허락하네
강산은 십 년이면 변하고
세상은 십 일이면 바뀌는데
이 땅에 뼈 묻은 지 백 년도 넘은 이름에
분명한 명패 하나 걸어주지 않는 야박함이라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 대로라면 만 번은 용서받고 사랑받았을 터
얄궂은 세월은 묻어버리고 화끈하게 화해**해 보자구요 우리
끝내는 한 땅에 묻히고 말 것인데
*꽃말 : 변치않는 사랑, 당신을 버리지 않겠어요
**개망초 꽃말
----박용숙 외, 애지문학회 사화집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
{탈무드}에 의하면 대홍수 때, 노아가 모든 동물들의 짝을 맞춰 태웠으나 선만이 혼자서 찾아왔다고 한다. 노아가 선을 발견하고 이 배에는 짝이 없는 자는 태울 수가 없다고 돌려보내자 곧바로 선은 악을 자기 짝으로 데리고 와 그 배를 탈 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선과 악은 한 얼굴의 양면이며, 그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진리는 허위와 짝을 이루고, 음은 양과 짝을 이룬다. 암컷은 수컷과 짝을 이루고, 물은 불과 짝을 이룬다. 해는 달과 짝을 이루고, 동물은 식물과 짝을 이룬다.
맹자는 인간의 도덕적 실천을 강조하고 그 어질고 착한 사람들의 이상국가를 강조한 바가 있고, 장자는 ‘무위자연’을 강조하며 모든 사회적 제도를 부정한 바가 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맹자의 말을 따르며 이상국가를 건설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 장자의 자연주의에 기초하여 모든 사회적 사회적 제도를 부정하며 자연 속의 삶을 강조할 수도 있다. 맹자와 장자의 말 중 누가 맞고 누가 틀리는가? 따지고 보면 맹자와 장자의 철학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계를 어떻게 보고, 그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의 취향과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가 있다. 진리도 없고 허위도 없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이 세상의 삶은 진리와 허위, 선과 악을 초월해 있으며, 우리는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어느 누구도 가지 않은 길, 즉, 자기 자신의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망초는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두해살이풀이며, 구한말에 들어온 외래종 귀화식물이라고 한다. 망초는 꽃모양의 생김새가 종모양을 하고 있고, 그 꽃의 크기가 개망초보다 작다고 한다. 망초는 원줄기 끝에서 가지가 많이 나와 원추형 꽃차례를 만들지만, 개망초는 꽃의 높이가 산방향의 꽃차례를 만든다. 망초는 개망초보다 키가 크고 그 생명력이 너무나도 엄청나게 강하지만, 개망초는 꽃의 모양이 계란모양을 하고 있어 ‘계란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망초는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던 해에 전국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망초’, 또는 ‘망국초’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고, 망초가 밭에서 자라면 농사를 망친다고 하여 ‘망초’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망초와 개망초는 국화과의 두해살이풀이며, 대한제국의 멸망과 그 가슴 아픈 한이 맺혀 있는 식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만일, 그렇다면 망초와 개망초의 차이는 무엇이고, 왜, 무엇 때문에 망초에서 한 단계 더 떨어진 개망초가 되었던 것일까? 엄연히 국화꽃과에 그 이름까지 있는 족보를 원상복귀시켜 주지는 못할망정, “경술국치 해에 들어온 망국초”라는 이름마저도 억울한데, 왜 그 보다 더 낮은 단계인 ‘망초의 첩 같은 개망초’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일까? 접두사 ‘개’는 ‘개살구’, ‘개두릅’, ‘개당귀’, ‘개복숭아’ 등에서처럼 ‘질이 떨어지는’ ‘가짜’라는 것을 뜻하고, 다른 한편 ‘개새끼’, ‘개자식’, ‘개망신’ 등에서처럼
인간 망나니와 그 엉망진창인 사건과 현상들을 뜻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초롱꽃목 국화과의 두해살이풀을 ‘홍실망종화’처럼 관상용으로 사랑해주지는 못할망정, 우리 한국인들의 원한 맺힌 저주감정으로 그 이름을 붙이고, “천하가 굶주리는 보릿고개에는/ 나물이 되어 살을 주고/ 약이 되어 피를 주고/ 꽃이 되어 풍년을 주고/ 아궁이 다비까지 해”준 꽃을 왜, 개망초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단 말인가? 백승자 시인의 [개망초 탄원서]는 개망초의 입장에서 ‘마녀사냥식의 누명’에 대한 하소연이자 그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 주자는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망초는 망국초이지만 개망초는 아니고, 개망초는 망국초이지만 망초의 첩 같은 신세에 지나지 않는다. 망국초 더하기 망초의 첩 같은 신세, 가짜 헛꽃의 노예의 노예와도 같은 신세, 하지만, 그러나 개망초는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는 구황식물이며, 전국의 산과 들에서 한들한들 떼창을 부르는 국화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개망초는 노예 중의 노예이며, 이민족의 식민지배를 받는 민족과도 같다. 일본인들이 동경대지진 때, 마치 우리 한국인(조선인)들이 대지진을 일으켰다는 듯이 매도를 하고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한 바가 있다. ‘나는 기분이 나쁘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그 화풀이의 대상을 찾아 보복을 가한 것이다. 흉년이나 가뭄, 또는 전염병이나 재앙이 노예 중의 노예, 즉, 떠돌이--나그네와도 같은 개망초(조선인)에게 있다고 탓을 하고, 그 모든 죄악과 재앙의 혐의를 다 뒤집어 씌운 것이다.
망초 중의 가짜 망초, 노예 중의 노예인 노예, 모든 천재지변과 재앙의 진원지인 개망초, 개망초는 주홍글씨이고, 이 낙인이 찍히면 어느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십일이면 이 세상이 바뀌어도 한 번 개망초라고 낙인이 찍히면 “이 땅에 뼈 묻은 지 백년”이 지나도 그 낙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네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민족이나 국가, 또는 동년배 집단에서나 통하는 복음의 말씀이지, 사회적 출신성분이나 계급과 종교와 인종을 뛰어넘어 통용되는 복음의 말씀이 아니다.
“홍실망종화: 변치 않는 사랑, 당신을 버리지 않겠어요”. “개망초: 얄궂은 세월은 묻어버리고 화끈하게 화해해 보자구요”. 개자식, 개새끼, 개망초, 개지랄 하구 자빠졌네!!
모든 개망초들의 재산을 다 몰수하고 모든 개망초들에게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가하라! 이유는 없다. 대일본 천황인 내가 기분 나쁘다.
모든 학문의 목표는 철학자, 즉, 전인류의 스승을 배출해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철학을 공부하고, 늙어서, 이 세상을 떠나갈 때까지도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삶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철학자는 결코 우회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자기 자신과 그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할 수가 있다.
철학자는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며, 늘, 항상, 떳떳하고 당당하기 때문에 명예와 명성을 애써 추구하지도 않으며, 그 어떤 권력의 유혹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철학자는 늘 공부하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며, 만인들을 구원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고전주의 왕국, 낭만주의의 왕국, 현실주의의 왕국, 초현실주의의 왕국, 이상주의의 왕국 등----. 모든 선악과 인종과 종교와 계급을 뛰어넘는 영원한 이상국가는 우리 철학자들의 앎의 극치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