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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
전 호 준
모처럼 장가들려니 윤달이 든다는 옛 우스갯말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어저께부터 내리던 반가운 봄비가 아침까지 길게 이어진다. 평소 별 관심도 없던 어젯밤 TV 기상 정보를 빠뜨리지 않았다.
오전까지 내리다가 오후부터는 갠다는 예보다. 불신 커진 기상 정보에다, 비구름이 달려오다 대구를 피해 간다는 토박이들의 말과 같이 대구 지방은 비나 눈이 비교적 박한 편이다. 혹여 하고 몇 번이나 들락날락 하늘을 쳐다보았다. 얼룩덜룩 젖소 뱃가죽 같은 하늘에 비 같지 않은 이슬비가 이어진다.
난생처음 대경 상록자원봉사단에 일일자원봉사활동을 신청한 날이다.
봉사단 아카데미에 강좌를 받아 온 지 3년, 매년 수시로 다양한 곳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요청해 왔지만 사실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무엇이 그렇게도 바쁜지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농담같이 시간이 없다. 각종 취미생활에 모임과 경조사는 왜 그리 많은지 어쩌다 마음을 내어 신청할라치면 일정이 겹친다. 내 일정이 비는 날에는 활동 계획이 또한 없다. 하기야 열일을 제쳐두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도 있으련만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이 이 핑계 저 핑계로 한 번도 참석지 못한 송구한 마음뿐이었다.
4월 6일 오전 10시 대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2017 제11회 대구스페셜올림픽 코리아 영남지역대회 자원봉사활동 신청을 받기에 얼른 휴대폰 S 플래너 앱을 눌렀다. 다행히 별다른 일정이 없어 서둘러 신청서에 서명했다.
체육대회, 비가 오는데 할 수 있을까? 별다른 연락도 없으니 궁금하기만 하다. 몇 번이나 하늘을 쳐다봐도 답을 찾지 못하고 복지관에 전화했다. 비가와도 행사를 진행한다는 대답을 듣고 부랴부랴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섰다.
가까운 거리라 우산을 들고 사박사박 수성 못 가장자리로 늘어선 벚꽃 길을 따라 걸었다. 비에 젖은 벚꽃이 함박웃음을 잠시 감추고 눈물 같은 빗물을 머금고 축 처져있다.
궂은 날씨에도 복지관 앞마당은 축제 분위기다. 줄지어 펄럭이는 만국기 아래 행사 천막들이 처져있고 많은 사람이 오가며 행사 준비에 분주하다. 우선 사무실에 들러 방문 이유를 밝혔다. 맞은편 회의실에 등록하란다.
이른 시간에도 벌써 많은 사람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단원 외에도 대구 사랑 여성봉사회, 육군 제50사단 장병들이 오늘의 행사를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복지관장님의 간략한 인사와 오늘의 봉사활동 내용, 활동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지적발달장애인만 뛸 수 있는 스페셜올림픽 종목인 보체경기 진행을 돕는 일이다.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경기라 어떻게 진행하고 보조를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도 그럴 것이 정상인이 아닌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란 편견과 생소한 종목이라 더더욱 그러하다.
비 때문에 경기 진행이 다소 늦어졌지만, 다행히 날이 서서히 개이기 시작했다. 점심 후 진행자의 경기 방법 및 규칙설명과 우리들 끼리 예행연습경기 까지 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경기장은 A. B 두 곳으로 우리 단원들은 반을 갈라 각각 경기장에 투입되었다. 나는 B 경기장 1조로 4명이 한 조가 되어 첫 경기를 진행했다.
보체경기란 지적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스페셜 경기로 잔디 위에 가로 3.66m 세로 18.29m 직사각형 틀을 만들어 놓고 틀 안에 4등분의 선을 그어 놓았다. 양쪽 가장자리의 코트는 좁게 경기장의 두 칸은 넓게 하여 가위바위보로 이긴 팀이 먼저 야구공 크기의 흰 표적구를 반대편 코트와 연접한 경기장 안으로 굴려 넣는다. 이때 선수가 라인을 밟거나 공이 정해진 경기장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미스로 간주 다시 던지도록 한다.
이어 이긴 팀이 먼저 빨간색 경기 공 한 개를 표적구를 향해 구른다. 다음 파란 공 팀이 연이어 구른다. 하얀 표적구에 가까이 머문 공이 승자가 된다. 이때 표적구와 먼, 진 팀은 이길 때까지 나머지 3개의 공을 차례로 굴러야 하지만, 어느 한 개라도 상대편이 구른 공보다 표적구에 가까워지면 상대편에 기회를 부여한다. 이렇게 팀별 주어진 4개의 공을 전부 굴러 표적구를 중심으로 진 팀의 공 중 표적구와 가장 가까이 있는 공을 기준으로 원을 그려 원안에 이긴 팀의 공이 들어있는 개수를 세어 점수를 부여하는 경기다. 다시 코트를 옮겨 동점이 될 경우 한판을 더하여 승자를 결정짓는 방식이다.
즉 잔디 위에서 하는 컬링과 볼링 경기를 접목한 지적 발달 장애인들에 알맞게 고안한 특수한 경기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도울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선수들 옆에 서서 그들이 경기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다. 비가 온 탓에 공에 묻은 불순물을 잘 닦아 선수들이 공을 잘 굴릴 수 있도록 집어주고 코트를 옮길 때 그들이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인도하고 경기용 공들을 모아 다음 경기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정리하는 일들이다.
예상보다 경기도 갈수록 재미가 있다. 지적발달 장애인들이라. 제대로 굴리지 못한 오발탄이 오히려 상대방 공을 밀어내어 반전하는가 하면 표적구에 가까이 있어 이길 것으로 예상했던 팀이 자기 공을 밀어내는 자살골로 낭패를 보는 해프닝에 실망과 환희, 박장대소와 실소가 교차하는 재미있고 스릴 있는 경기이다.
오후 5시가 가까워 1일 차 오늘 경기는 모두 끝났다. 수고했다며 이른 저녁밥까지 대접을 받았다. 식당에는 대구 사랑 여성봉사회원들의 정성 어린 봉사활동에 감사를 드린다. 성찬은 아니지만, 미지의 가족, 장애인들과 어울려 먹어보는 때 이른 저녁 맛도 난생처음 느껴보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장애인들을 직접 보살피고 그들과 더불어 생활하며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많은 분들을 보며 작금의 어지러운 국내 사정과 각박한 사회실상에, 그래도 이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이란 생각을 해본다.
현직에 있을 때 관변 단체나 자생단체들의 자원봉사 활동을 기획하고 측면 지원한 경험뿐인 나로서는 소중한 첫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고희, 늙도 젊도 않은 나이에 누군가에 자그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졌다는 자부심에 오직 하늘 우러러 감사할 따름이다. 길지 않는 여생, 시간이 그리 많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대회 기념 수건까지 선물로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난생처음 경험한 오늘의 작은 보람에 자신도 모르는 어떤 희열감이 느껴진다.
아침, 빗물에 눈물짓던 벚꽃 무리도 활짝 갠 하늘 아래 함박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내 마음도 덩달아 두둥실 벚꽃 구름같이 부풀어 오른다. 내 생애 잊지 못할 소중한 첫 경험이었다.
2017. 4. 6 밤에
첫댓글 첫 경험, 그러나 그 첫경험은 이제까지 살아온 많은 경험들의 연장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장애인 체육대회 행사 진행보조 하느라 수고많았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저도 같이 동참하겠습니다.
첫 경험이라는 제목을 보고 적어도 키스 씬정도는 있는 줄 알았는데 좀 싱겁네요. 노인의 첫경험은 정열이 아니라 신선함이란 걸 알게되었습니다. 나보다 하루 먼저 첫 경험을 했군요. 축하드립니다.
하루동안 매우 뜻깊은 봉사하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보체는 장애인들에게 매우 인기있는 경기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음날 저도 같은 장소에서 봉사하였습니다. 봉사는 할수록 더많은것을 얻는것 같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4월6일 저가 갔다면 함께 할번 했습니다. 아파서 못간다고 연락하고 선생님께서 제 몴까지 하셨네요. 죄송합니다.
자원봉사활동에 첨 참여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시고 좋은 글을 올려주셔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신 아직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아카데미 회원님 . 다음기회에 한 번 만이라도 참여 해 보시리라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자원봉사 경험이 없어서 부끄럽습니다. 보체경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봄날 풍경 만큼 봉사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