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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은 약일지라도 그곳에 독을 넣으면 독약이 됩니다. 아무리 놀랍고 분명한 성경말씀일지라도 왜곡시키고, 잘못 해석하면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인도하는 강력한 바벨론의 포도주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신앙적인 것은 좋은데, 왜 이리 가짜가 많습니까? 한 조사에 의하면 자신을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이가 20여명, 자신을 하나님이라 주장하는 이가 40~50명, 자신을 특별한 사명을 받은 교주급 존재로 인식하는 이가 100여명 이상이라고 하니 정말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사는 바른 생활이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남방과 북방 동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흔히 우리나라의 사이비 교주들은 다 하나같이 동방을 해뜨는 곳,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 민국으로 적용합니다. 그래서 동방에서 한 인물이 나온다는 것이 성경에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나다! 이렇게 얼토당토 안한 소리를 합니다.
이들이 주로 인용하는 핵심 구절
사이비 단체들이 '동방(한국)'을 주장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 가지 구절입니다.
이사야 41: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로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
이사야 46:11
"내가 동방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요한계시록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올라와서..."
이들은 위 구절들을 다음과 같은 논리로 연결합니다.
1. 지리적 해석:성경의 배경인 이스라엘에서 볼 때 가장 동쪽 끝(땅끝)에 있는 나라가 어디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바로 '극동(Far East)'인 한국이다"라고 결론 내립니다.
2. 문화적 연결:한국의 옛 이름인 '조선(朝鮮)'이 '아침 햇살이 선명한 곳'이라는 뜻이니, 성경의 '해 돋는 곳'이 바로 한국이라고 주장합니다.
3. 사명자론:이사야에 나오는 '동방의 한 사람'이나 '사나운 날짐승(독수리)'이 바로 자신들의 교주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한국에서 구원자를 보내기로 약속하셨다는 식이죠.
하지만 성경 신학적으로 보면 이들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심각한 왜곡입니다.
역사적 문맥 (이사야):이사야 41장과 46장에서 말하는 '동방에서 오는 한 사람'은 역사적으로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의미합니다. 고레스는 이스라엘 동쪽에서 일어나 바벨론을 정복하고 유대인들을 해방시킨 인물로, 성경은 그를 하나님의 도구로 묘사한 것입니다.
지리적 관점:성경에서 말하는 '동방'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었던 범위 안의 동쪽, 즉 메소포타미아나 페르시아 지역을 뜻합니다.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한반도를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 해석의 기본:성경은 쓴 사람과 일차적인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2,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현대의 대한민국을 지목해서 예언했다는 것은 문맥을 완전히 무시한 해석입니다.
사실 이런 '동방=한국'설은 한국 사이비 종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1950년대 전도관(박태선)이나 통일교(문선명) 등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변주되어 내려오는 고전적인 수법입니다.
"성경의 주인공이 알고 보니 우리 교주네?"혹은 "우리나라가 우주의 중심이네?"라는 식의 민족주의적 자부심을 자극해서 신도들을 결속시키는 것이죠.
다시 한번 정리하면 성경의 방향은 언제나 이스라엘 중심이었고, 그 주변 세력으로 묘사됩니다.
다니엘11장 5절부터는 남방광과 북방왕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 남방왕이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남쪽에 위치한 나라이고, 북방왕이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알렉산더가 죽고나서 4나라로 나누어졌다가, 다시 둘로 나누어집니다. 북쪽의 자리를 차지한 이는 시리아의 셀루쿠스 왕조이고, 남쪽은 프톨레미 왕조가 차지를 합니다. 끊임없는 남북 각축전이 이어집니다.
11장 5절의 최초의 남방 왕은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가운데 하나로 이집트를 차지한 프톨레미 1세(Ptolemy I)이며, 그 “군(君)들 중의 하나”는, 한때 불리한 상황에 처하여 남방 왕 프톨레미의 수하(手下)에 있었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진 첫 번째의 북방 왕 셀루쿠스 1세(Seleucus I)로서 시리아를 비롯하여 이전의 알렉산더 대왕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표7>은 그 이후의 근동 역사를 이끌어 간 남방 왕인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와 북방 왕인 시리아의 셀루쿠스 왕조를 대배(對比)한 것인데 다니엘서 11장에 언급된 왕들만 뽑은 것이다. 성경에 이들의 존재와 역할이 예언을 통해 이처럼 상세히 언급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표7다니엘서 11장에 등장하는 그리스 남북왕조의 왕들(연대는 모두 BC임)
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오아 시리아는 처음에 서로의 공존(共存)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나아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이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이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단 11:6).
[설명] 남북왕조의 대결은 다음 세대인 2세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되었다. 처음에는 남방 왕 프톨레미 2세가 자신의 딸 베레니케를 북방 왕 안티오쿠스 2세와 혼인시켜 결혼 동맹을 맺음으로 화친(和親)을 유지하여 했다. 그러나 프톨레미 2세가 죽자, 남편을 프톨레미 2세의 딸 베리니케에게 빼앗긴 아티오쿠스 2세의 전 왕후 라오디케는 남편 안디오쿠스 2세와 베레니케와 그들이 낳은 아들을 죽임으로써 보복하였다.
남방 왕과 북방 왕의 싸움은 어떻게 더욱 치열해졌는가?
“그러나 이 공주의 본족에서 난 자 중에 하나가 그의 위를 이어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그 은과 금의 아름다운 기구를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북방 왕이 남방 왕의 나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단 11:7~9).
[설명] 남방 왕 이집트의 새로운 왕 프톨레미 3세는 라오디케에게 죽임을 당한 베레니케의 오라비로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북방 왕 시리아를 정복한 후 수집해 둔 우상 2,500점을 노획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시리아 왕 셀루쿠스 2세는 응전(應戰)했으나 패배하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귀국했다.
그 후에도 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왕 시리아는 어떻게 끝없는 보복 전쟁을 계속했는가?
[해답] 예언된 대로 남북왕조의 보복적인 대결이 계속되었는데, 이 사실을 예언한 성경절에 그대로 역사를 대입하여 예언의 정확성을 성경 본문에서 확인해보자.
“그 아들들[시리아 왕 셀루쿠스 2세의 두 아들인 셀루쿠스 3세와 안티오쿠스 3세]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남방 왕[프톨레미 4세]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안티오쿠스 3세]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가 그[프톨레미 4세]의 손에 붙인 바 되리라 그[프톨레미 4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단 11:10~12).
[설명] 위에 인용된 세 구절의 성경 예언은 북방 왕 시리아와 남방 왕 이집트가 7만명의 보병과 5천명의 기병, 코끼리까지 총동원하여 기원전 217년 라피아(Raphia)에서 벌였던 대접전(大接戰)의 사기(史記)를 읽는 것 같다.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에 의하여 미리 기록된 역사인 것이다.
이 전쟁에서 양측은 엄청난 사상자와 포로를 낸 후에 남방 왕의 승리로 끝났다.
그동안 북방 왕 시리아와의 싸움에서 우세를 유지해 온 남방왕국 이집트가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가?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강포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넘어지리라”(단 11:13,14).
[설명] 라피아 전투에서 대패한 북방 왕인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는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동방 공략에 나서 알렉산더 대왕의 이전 영토를 대부분 탈환하는 전과(戰果)를 올린 후 남방으로 기수(驥手)를 돌려 이집트와의 재대결을 감행했다(13절). 이 때 안티오쿠스 3세는 마케도니아 왕 필립 5세와 동맹을 맺어 세력을 보강한데다가 이집트 본토인들은 이족(異族)인 프톨레미 왕조의 통치에 저항하기 시작함으로써 남방왕국 이집트는 내우외환(內優外患)에 처했다(14절 상단).
기원전 198년 북방 왕 안티오쿠스 3세는 파내우스(Panaeus) 싸움에서 이집트에 승리함으로써 백년 이상 남방 왕 이집트의 지배를 받아 온 유다를 북방 왕 시리아의 속국(屬國)으로 만들었다. 이 사실이 “네 백성[유대인]의 파괴자들[the breakers of your people, 곧 남방 왕 이집트]이 옮겨지리라(shall be lifted up)”는 뜻이 된다. 또한 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왕 시리아에 이어 유다를 침입하여 속국으로 만든 로마를 적절히 가리킬 수도 있다. “네 백성 중에서도 강포한 자(the robbers of your people)”는 히브리어 문법으로 “네 백성들의 파괴자”라는 뜻도 가능하다.
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왕 시리아의 마지막 숨 가쁜 대결이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가?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土城)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취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단 11:15).
[설명] 안티오쿠스 3세에 이어 그의 아들 안티오쿠스 4세가 왕이 된 후에도 남방 왕 이집트에 대한 북방 왕 시리아의 침략은 계속되었다. 특별히 안투오쿠스 4세는 기원전 169년 이집트의 견고한 성읍 펠루시움을 함락시켜 삼각주 동부를 공략하는 길을 열었다. 겨울이 오자 그는 시리아로 퇴각했는데 그것이 북방 왕 시리아에 관한 마지막 언급이다. 놀랍게도 이 북방 왕은 “마지막 때”와 연관되어 11장 40절에 다시 나타난다. 15절 이후에는 왜 북방 왕 시리아가 다시 나타지 않는지 그 이유가 16절에서 밝혀진다.
그리스의 남북왕조와 그 사이에 낀 유다
세계 역사에서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그리스의 남북왕조의 싸움이 이렇듯 자세하게 예언된 까닭이 무엇인가?
[해답] 마지막 때에 관한 다니엘서의 마지막 계시가 주어지기 전, 다니엘이 그토록 괴로워하고 금식하며 알기를 원했던 주제는 시련으로 가득 찬 하나님 백성의 장래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말일(末日)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깨닫게 하”기 위해 가브리엘 천사가 보내져 지금 그 주제에 관한 계시가 12장까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그 계시는 다니엘 당시인 페르샤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그리스에 이르렀는데, 그리스가 북방의 시리아와 남방의 이집트로 양분(兩分)되어 생사 대결을 벌이는 그 사이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다가 끼어 있는 상황이다. 이미 페르샤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에 관하여 무서운 적의를 드러낸 사단은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서도, 적개심에 사무쳐 보복을 계속하는 북방의 셀루쿠스 왕조와 남방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의 싸움을 고조시켜 중간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을 짓밟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일을 극대화(極大化)한 것이다.
실제로 북방왕국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 때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해답] 다니엘서 11장 15절에 예언상으로는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북방 왕인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는 20명의 시리아의 왕들 가운데 8번째 왕으로 재위 11년(175년~164년 BC) 동안 유다를 헬라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조석으로 드리는 상번제(常燔祭)를 폐하고, 성전 앞에 우상의 단을 쌓고 돼지를 제물로 바쳤으며, 안식일과 할례를 폐하고 하나님 대신 제우스신을 섬기도록 강요했다. 이를 반대한 유대인들을 저항하지 않는 안식일일 택하여 무수히 죽였다. 마침내 시리아에 대항하는 무장 봉기와 함께 마카비의 독립운동이 일어나 끝내 독립을 쟁취했으나 기원전 63년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 탄생 시까지 그 상태라 계속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예언을 통해 수백 년 전에 기록된 까닭은 그것이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게 될 유다의 운명에 직접으로 관계돼 있기 때문이다. 안티오쿠스 4세의 이러한 악역(惡役) 때문에, 상당수의 학자들은 그를 다니엘서 8장의 작은 뿔로 해석하고, 11장 16~39절의 주역(主役)으로 해석하지만, 그것은 전혀 합당치 않은 해석이다. 왜냐하면 그는 북방 왕 시리아의 “마지막 때” 왕이 아니라(8:23) 20명의 왕들 중 8대 왕이며, 그는 “심히 커”진 왕국의 왕이 아니라 오히려 로마에 의해 위축당한 취약한 왕이었다. 또한 그가 예루살렘 성전을 유린한 기간도 엉뚱하게 적용한 2300일이 아니라(8:14) 실제로는 3년 10일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이와 관련된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 당시 이후인 예루살렘 멸망에 직접 적용시키심으로(단 9:27) 그러한 헛된 주장의 여지를 없애셨다.
로마제국의 동방개입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임으로 행하리니 능히 그 앞에 설 사람이 없겠고 그가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 손에 멸망이 있으리라”(단 11:16).
북방 왕 시리아는 남방 왕 이집트의 각축전 후에 16절에서 갑자기 사태가 달라진다. 무적(無敵)의 “와서 치는 자[침략자]”가 등장하여 세상을 뜻대로 다스린다는 직설적인 예언이다. 기원전 168년 아니토쿠스 4세가 아버지 아티오쿠스 3세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이집트로 진격해 가고 있을 때, 로마에서 특사가 와서 퇴각하라는 명령을 받자 그는 순응(順應)하는 길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기원전 168년 로마에 의해 알렉산더의 고국인 마케도니아가 망하고, 시리아가 이집트에서 퇴각하고, 이집트는 보호령이 됨으로써 그리스 시대는 끝나고 로마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로마는 기원전 64년 마침내 북방 왕 시리아를 정복한 후 로마의 일개 주(州)로 복속(服屬)시켰으며, 이듬해인 63년에는 폼페이(Pompey)에 의해 “영화로운 땅”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성전이 유린(蹂躪)되었으며, 12,000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하고 독립을 상실한 채 로마의 속주(屬州)가 되고 말았다.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 나라를 패망케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단 11:17).
6절에서 예언된 대로 시리아를 거쳐 유대까지 이른 로마의 정복의 발걸음은 남하(南下)를 계속했다. 삼두정치(三頭政治)를 펼쳐온 크라수스가 전사하고, 폼페이와 줄리어스 시이저(Julius Caesar)가 반목하면서 폼페이가 이집트로 도망하자 줄리어스는 그를 추격하여 거기서 죽였다. 이집트에 오게 된 줄리어스 시이저는 거기서 프톨레미 11세의 달로 남동생과 왕위 다툼을 하던 22세의 클레오파트라를 만나 황홀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여자의 딸(the daughter of women)”은 이 말은 “미녀(美女)”를 가리키는 히브리어의 표현법이다. 카이사르가 얻은 “여자들의 딸”은 세계의 전설적 미인이었던 클레오파트라 7세(B.C. 6930)에 적용하기도 한다.
흔히 역사상의 세계의 3대미녀를 클레오파트라, 양귀비, 트로이의 헬렌을 꼽는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등장은 사뭇 신비롭다. 이집트에 등장한 시이저에게 배달된 카펫, 그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듯 세계 최고의 미녀가 나오다니.... 당시 카이사르의 나이는 약 52세로, 클레오파트라는 21세, 두 사람은 약 31세의 나이 차가 났습니다. 그래도 뭐 어떻습니까?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권력을 얻기 위해서 아낄 것이 있나요? 그대가 영웅이고 나는 미녀인데...
🏛️ 1. 카펫 속에서 나타난 여왕 (vs. 카이사르)
그 당시 그녀는 왕국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남동생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 쫓겨난 상태였습니다. 그때 로마의 최고 권력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에 도착합니다.
승부수: 군대가 깔린 궁궐에 몰래 들어가기 위해, 그녀는 자신을 카펫에 말아 카이사르의 방으로 배달시킵니다.
지적인 매력: 카이사르는 그녀의 외모와 박학다식함과 당당한 언변에 완전히 매료됩니다. 결국 카이사르의 지원을 받아 그녀는 이집트의 왕좌를 되찾고, 그와의 사이에서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습니다.
♥ 두번째 연인 안토니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로마의 새로운 실권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그녀를 소환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번에도 평범하게 가지 않았습니다.
금빛 배의 여신: 보석으로 치장된 배 위에서 아프로디테 여신처럼 차려입고 나타난 그녀는 안토니우스의 혼을 쏙 빼놓습니다.
정치적 결탁: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지만, 이는 이집트의 독립을 지키려는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자금줄이 필요했던 안토니우스의 철저한 정치적 동맹이기도 했습니다.
▶ 악티움 해전과 몰락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또 다른 권력자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가 이집트 여인에게 빠져 로마를 배신했다고 공격하며 전쟁을 선포합니다.
패배: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연합군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참패합니다.
비극적 종말: 안토니우스는 그녀가 죽었다는 오보를 듣고 자결하고, 뒤이어 클레오파트라 역시 옥타비아누스의 전리품으로 끌려가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합니다.
"나는 로마의 승전 행렬에서 구경거리가 되지 않겠다."
그녀는 독사에게 물게 하여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그녀의 사랑도, 정치적 전략도 “그에게 무익하리라”라는 말씀앞에 무너져 버립니다.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요? 그렇게 아름다운 미(美)와 지략도 참 행복을 얻는 일에는 부족한가 봅니다.
참 행복은 작은 일상에서의 감사와 자족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에는 독사에 몰려 자살하게 되는 비극의 여인이 된다. “그에게 무익(無益)하리라”는 예언의 성취였다. 그것이 기원전 30년의 일로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과 함께 남방 왕 이집트도 끝나게 된다.
줄리어스 시이저의 운명에 관한 어떤 놀라운 예언이 기록돼 있는가?
“[18] 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19]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단 11:1819)
50세가 넘은 줄리어스 시이저는 이집트를 정복하는 대신 애첩이 된 클레오파트라에게 이집트의 왕위를 물려준 뒤에 심상치 않은 국제 정세를 의식하고 해안 길을 따라 귀국하는 도중에 보스포러스, 북아프리카, 스페인 등 적어도 세 곳에서 전쟁을 치르며 로마로 개선 입성하였습니다.
기원전 44년의 로마, 율리우스 시저는 이미 신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로마의 '종신 독재관'이 되었죠. 하지만 로마의 전통적인 정치인들(귀족들)은 불안했습니다.
"저러다 시저가 왕관을 쓰고 로마를 1인 독재 국가로 만드는 것 아니야?"
이 음모의 중심에는 카시우스가 있었고, 그에게는 시저의 심장을 찌르기 위해 꼭 포섭해야 할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저가 아들처럼 아꼈던 청렴한 정치인, 마르쿠스 브루투스였습니다.
카시우스는 브루투스의 정의감을 공략했습니다. "브루투스, 자네 조상은 독재자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웠는데, 자네는 시저의 노예로 살 것인가?"
브루투스는 고뇌에 빠졌습니다. 시저는 그에게 은인이자 친구였거든요. 하지만 그는 결국 '개인의 우정'보다 '국가의 대의'를 선택합니다. 그는 시저를 죽이는 것이 로마의 자유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게 됩니다.
🗡️ 운명의 날: 3월의 이데스 (3월 15일)
시저의 아내 칼푸르니아는 불길한 꿈을 꾸고 시저에게 가지 말라고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시저는 "죽음은 겁쟁이들이나 두려워하는 것"이라며 당당하게 원로원으로 향합니다.
원로원 의원들이 청원할 것이 있다며 시저를 둘러쌉니다.
신호가 떨어지자 카스카라는 의원이 시저의 뒷덜미를 찌릅니다.
60명의 공모자가 차례로 칼을 휘둘렀고, 시저는 필사적으로 저항합니다.
🩸 "브루투스, 너마저도?" (Et tu, Brute?)
피투성이가 된 채 저항하던 시저는 마지막 순간, 칼을 들고 서 있는 브루투스를 발견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따르면 시저는 짧은 탄식을 내뱉고는, 자신의 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저항을 멈춥니다.
"브루투스, 너 마저도"
그는 자신이 가장 믿었던 사람의 칼날 끝에서 비로소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였다. “브루터스(Brutus), 너까지도 … ” 그것이 절친한 친구의 손에 죽은 줄리어스 시이저의 마지막 말이었다. 예언대로 “그가. . .얼굴을 돌이켜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11:19)는 예언은 놀랍게 이루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힘은 무엇일까요? 외적인 미(美)일까요? 지략과 책략일까요? 아니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혹은 힘일까요?
그 모든 것들도 다 순간입니다. 다 지나갈 것입니다. 슬픈 것도 지나갈 것이요. 아픈 것도 다 지나갈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이들이 영원할 것이며, 그들이 참 행복을,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https://youtu.be/qoplQf680K8?list=RDqoplQf680K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