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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향 맡으며 골프 치고, 45년 친구와 웃다 보니 밀양이 내 고향이 되어 있었다.”
지난 4월 15일 수요일.
사명대사 생가가 있는 밀양 무안면 가례리에 있는 세컨하우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 5시 38분 KTX를 타고 밀양역에 도착하니 8시 12분이다.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도착했냐?"
여느 때처럼 30여 분 걸리는 거리를 차를 가지고 마중 나왔다.
영취산 영산정사, 커다란 와불이 있는 옆 골짜기 세컨하우스는 이제 고향처럼 느껴진다.
몸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를 위해 세컨하우스를 짓기로 했던 친구는 수많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자 젊었을 때 절을 다니셨던 친구의 어머니는 절에 가면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셨기에, 영산정사가 바로 옆에 있는 이곳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가례리 동네에서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이 골짜기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시덤불, 대나무, 잡목, 나무들로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친구는 이곳에 텐트를 치고 지내면서 가시덤불과 잡목을 제거하고 벌목을 해나갔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어느 정도 벌목이 되었을 때 이곳을 방문해 텐트에서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옆 밭 주변에 동물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노루가 훌쩍 뛰어넘는 것도 보았다.
어쨌든 수많은 시간이 걸려 벌목이 끝났고, 집터를 고르는 것과 길을 만드는 것도 포크레인을 불렀지만 혼자서 끝냈다.
러시아에서 부산항을 들어오는 편백 원목을 사와 폐교가 된 초등학교 공터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모두 다 다듬었다.
그리고 어떤 설계도 없이 오직 머릿속에 있는 설계도로 모든 원목을 자르고 다듬어, 오롯이 혼자서 이 기와집을 지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걸려 지어진 이곳, 영산정사 옆 세컨하우스에는 친구 어머니는 딱 한 번 오셨다.
그리고 지금은 할미꽃들이 만발한 공주의 어느 동네 마을 양지 바른 골짜기에 편안히 잠들어 계신다.
그 효심으로 지어진 이곳 세컨하우스, 친구 어머니 덕분에 친구인 내가 좋다.
친구와 나는 1981년 임진강에 훈련장이 있던 909부대에서 만나 지금까지 지내고 있으니 45년의 세월이 다 되는 것 같다.
KTX 밀양역에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사명대사 생가가 있는 이 골짜기에 친구의 세컨하우스가 있다.
나는 밀양박씨다.
어렸을 때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와 큰아버지들로부터 수없이 받았던 질문이 있었다.
"무슨 박씨 몇 대손이냐?"
그때는 그 뜻도 모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밀양박씨 규정공파 28대손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박씨라는 것은 알겠는데 '밀양'이라는 말과 '규정공파'라는 말의 의미는 알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밀양이라는 곳이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밀양을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 전도연 주연의 영화 밀양 때문이었다.
그런데 친구 덕분에 이곳 밀양을 1년에 한두 번 오게 되면서 이제는 정말 나의 제2의 고향이 된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의 뿌리가 있는 곳, 밀양이다.
우리 아버지, 큰아버지들이 그렇게 "무슨 박시 몇 대순이냐"고 만날 때마다 물으셨던 것은 근본과 뿌리를 기억하라는 가르침이었던 것 같다.
사람의 뿌리,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가족묘를 만들고, 1년에 한두 번 찾고, 기일에 가족들이 모이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 형제들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대답했던 밀양, 나의 선조들의 땅, 참으로 좋다.
산은 높고 농토는 풍부하고 넓어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농토가 많아 살기에 참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넓은 농토가 있어 어느 정도의 삶의 여유가 있었기에 경쾌한 리듬과 가사의 밀양 아리랑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섯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서리 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밀양이 그렇듯, 이곳 무안면 가례리도 사방이 높은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지만 가운데 넓은 농토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고추 하우스 등을 보면, 다른 농촌과 비교해 잘 사는 농촌 중 하나인 것 같다.
읍 단위임에도 중고등학교가 있고 병원이 있고 하나로 마트가 있고 오일장이 서며, 돼지국밥집 등 식당도 무수히 많다.
이곳 이장님에게 들었다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10여 년 전에는 이곳 고추가 유명해 돈을 많이 벌었는데 노래하는 술집과 티켓다방들이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고추 농사로 번 어르신들의 돈을...
이 넓은 들을 지나 친구의 세컨하우스에 도착하니 남쪽을 향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기와집이 마치 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곳곳에 꽃들이 만발해 있다.
도착하자마자 바구니를 들고 두릅, 엄나무순, 취나물을 뜯으러 산에 올랐다.
이것들을 데쳐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바다에서 바로 잡아 회를 떠먹는 것처럼, 바로 뜯어와 데쳐 먹는 나물들의 맛은 그저 향기롭기만 하다.
입안에 가득한 향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그 향은 다시 목으로, 가슴으로,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눈을 감고 봄 향기를 온몸으로 느껴본다.
아점을 먹고 예약한 운동 시간에 맞춰 골프장으로 갔다.
친구의 동서 부부가 기다리고 있다.
평일임에도 시간을 내 함께해주는 친구 동서 부부가 고맙다.
서울에서는 운동하러 가려면 족히 2시간은 걸리는데, 이곳 밀양과 창원에서는 40분 거리에 골프장이 많아 운동하기 참 좋은 곳이다.
게다가 그린피도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니 일석이조다.
오늘은 공군 비행장에서 운영하는 체력단련 골프장이다.
비행장 옆에 이렇게 넓은 체력단련 골프장을 만들어 놓은 것은 비상시 이곳을 물자를 쌓아두는 장소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골프장들은 고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 카트를 이용하는데 이곳은 걸을 수 있어 참 좋다.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45년 전에 이렇게 함께 운동할 줄 생각이나나 했냐?"
정말 맞는 말이다.
45년 전, 함께 탄약고 보초를 서던 친구와 나는 그때 이런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군대로 불러준 조국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군대 덕분에 지금의 이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오늘은 군 복무 이력으로 그린피 할인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날씨는 정말 화창하고, 홀과 홀 사이에 있는 커다란 나무들은 그늘이 되어주는, 정말 좋은 골프장이다.
운동을 마치고 여기 밀양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람이 많이 찾는 돼지국밥집을 찾았다.
정말 크고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친구 동서의 단골집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자 사장님의 인상이 참 좋다.
친구와 친구 동서가 이곳 사장님 칭찬을 입이 마르게 한다.
항상 웃는 얼굴이라고...
내가 사장님께 물었다.
"우리가 잠깐 토론을 했는데, 이곳 장사가 잘돼서 사장님이 항상 웃으시는 건지, 아니면 사장님이 항상 웃기 때문에 사업이 번창하는 건지 궁금하다고."
사장님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이런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아마도 이곳 사장님도 장사가 잘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업이 잘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밀양의 돼지국밥 맛도 좋지만, 사장님의 환대 덕분에 더 맛있게 느껴진다.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식당 주변 텃밭에는 수박 넝쿨들이 제법 자라 있다.
여름이 되면 여기저기 풀숲 사이로 수박들이 달려 풍경을 더해줄 것 같다.
텃밭에 서 있는 겹사쿠라 나무에는 꽃이 한창 만발해 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니, 연분홍 꽃망울과 파아란 하늘이 참 잘 어울린다.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고 다시 우리의 베이스캠프, 무안면 가례리 세컨하우스로 돌아왔다.
내일 아침은 일찍 운동 시간이 잡혀 있어 새벽 5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잠자기 전, 커다란 병에 담겨 있는 '2020.10.26. 밀양 꾸찌뽕 30도'라고 적힌 술을 한 잔씩 나눴다.
술 빛깔이 빨간 꾸찌뽕 열매를 닮아 곱게 우러나 있다.
색깔은 고운데, 30도라 그런지 상당히 세다.
나는 지금도 매일 아침 꾸찌뽕 열매에 블루베리와 요구르트를 넣어 갈아먹는다.
이 습관도 오래전, 이곳 친구 농장에서 꾸찌뽕을 가져오면서 시작된 것이다.
커다란 꾸찌뽕 열매 5개 정도에 블루베리와 요구르트 3개를 넣어 아내와 함께 마신다.
꾸찌뽕은 항산화 작용, 혈당 조절, 혈액순환 개선, 면역력 강화, 간 건강 보호 등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꾸찌뽕 술 한 잔에 깊은 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 40여 분을 달리니 골프장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좋은 골프장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게다가 그린피도 저렴하다.
오늘도 어제처럼 나와 친구, 그리고 친구의 동서 부부가 함께했다.
첫 홀 티샷이다.
첫 홀에서는 보통 한 명 정도는 실수가 나오기 마련인데, 네 명 모두 가운데로 보냈다.
그런데 친구의 드라이버 거리가 심상치 않다.
230미터는 충분히 나가는 것 같다.
우리보다 한참 앞에 떨어진다.
60대 중반의 친구 동철이가 회춘을 한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40~50대 때도 200미터가 안 나가던 드라이버가 이제는 230이 나간다.
모든 홀에서 친구의 공이 가장 앞에 있다.
이상하다.
내가 드라이버 거리가 안 나는 건가?
자꾸 의식하다 보니 힘이 들어간다.
골프는 드라이버, 아이언, 어프로치, 퍼터가 다 잘되는 날이 없다고 하는데 친구도 예외는 아니다.
어프로치와 퍼터에서 난조를 보인다.
어제는 잔디 상태 탓이라고 했지만, 오늘은 잔디도 좋은 명문 골프장인데도 결과가 좋지 않다.
친구가 말했다.
"야~ 내 드라이버가 이렇게 나가는데 이 스코어 말이 되냐?”
내가 답했다.
“야~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면, 다들 큰 가방 들고 다니지!”
결국 골프는 마음대로 되는 운동이 아니다.
그래도 참 좋은 운동인 건 틀림없다.
같이 공을 치다 보면 동반자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래서 비즈니스 골프가 많은 이유도 이해가 된다.
내가 골프를 시작하게 된 것도 친구 덕분이다.
16년 전쯤, 함께 동해에서 크루즈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야~ 나중에 퇴직하면 같이 운동하게 골프해라."
그리고 골프채를 창원에서 서울로 보내주었다.
그전에는 아내가 골프를 권해도 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곳에서는 공무원 중 골프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프를 시작하고 나서 나의 생각과 시야가 다소 넓어졌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그 친구들 8명이 지금도 매달 한 번씩 모임을 한다.
이 또한 친구에게 고마운 일이다.
아침 일찍 시작한 운동이 점심쯤 끝났다.
골프장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세컨하우스로 돌아왔다.
다른 계절에는 엄나무, 꾸찌뽕 뿌리, 옻나무, 오갈피 나무 등 약재를 넣고 오리백숙이나 닭백숙을 해먹었지만 이번에는 나물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산에 올라 두릅, 옻순, 엄나무순, 우산나물, 취나물, 머위를 땄다.
차마고도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능선에 오르니 연록빛 산이 눈에 들어온다.
작년보다 소나무숲은 더 운치가 있다.
솔잎을 밟은 사각사각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어우러진다.
이전에 심어두었던 산삼도 한 뿌리 찾아 조심스럽게 캤다.
산삼을 보는 것도, 캐보는 것도 처음이다.
이 역시 친구 덕분이다.
그런데 산삼 잎을 보니 잎사귀가 오갈피 나무와 비슷하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세컨하우스와 골짜기 풍경이 참 좋다.
사진을 찍으니 마치 작품 같다.
야생화와 나무잎까지 하나하나 담아본다.
친구는 이곳 산을 돌면서 가시나무나 잡목을 잘라주며 산을 돈다.
그러면서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작년에는 이곳에 각시붓꽃이 몇 개 피었는데, 올해는 몇 개가 피었는지 하나하나 다 알고 있으니 더 애착이 가는 것 같다.
그 마음이 이해된다.
예전에 내가 사무실 앞 작은 화단을 가꾸며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농장을 한 바퀴 돌며 두릅, 옻순, 엄나무순, 우산나물, 취나물, 머위, 가죽나무 순을 한 바구니 가득 땄다.
친구는 뜨거운 물에 데치고, 나는 시원한 물에 행군다.
한 바구니 나물을 다 먹을 듯 조금 남기도 다 데쳤다.
초장을 찍지 않고 그냥 먹는 나물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행복이 넘친다.
참 좋다!
친구가 있어 좋고,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어 더 좋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잘 나가던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군대라는 조직은 많이 배우고 돈이 많고 그런 것이 중요한 곳이 아니다.
그곳은 고참이면 최고였던 시절.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우리가 군 생활을 했던 1980년대 초반에는 분명 그랬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해도 이등병 계급장이면 어리버리했고, 학벌이 없어도 상병, 병장을 달면 그 자체로 폼이 났다.
친구가 말한다.
"그래도 너와 내가 이렇게 45년을 계속 만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상황이 달라졌다면 지금처럼 만날 수 있었겠냐."
그리고 덧붙인다.
"너도 그렇지만 나도 지금의 내가 된 것은 참 감사하고,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친구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어릴 적 형편과 처지를 생각하면 지금 이 모습이 참 과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이 든다.
모자라고 부족한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에게.
한 바구니 가득한 나물을 먹다 보니 다 먹지 못하고 조금 남겼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까 캐온 산삼 한 뿌리도 챙겨 나왔다.
친구가 산삼 뿌리를 자기는 조금만 먹고 나에게 다 먹으라고 한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다며 잎사귀부터 나눠 먹었다.
잎사귀를 씹는데 그 향이 말할 수 없이 좋다.
한밤중, 산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커피.
이 맛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세상에 이렇게 운치 있는 카페가 또 있을까.
참으로 좋은 밤이다.
잠자기 전, 오늘도 담금주 한 잔을 나눈다.
오늘은 밤에 잎이 다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야관문주다.
연노란 색이 보기에도 참 좋다.
한 잔 마시니 잠이 스스르 찾아온다.
“꾸~꿈, 꾸~꿈…”
꾸꿈새의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잠에 들었다.
아침밥을 먹기 전에 가져갈 나물을 따기로 했다.
총 6박스를 만들어 한쪽에 3개씩 묶어 양쪽에 들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골프백과 골프가방만 없다면 10박스도 들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먼저 엄나무순을 따러 올라갔다.
친구가 전지가위로 가지를 잘라주면, 나는 순을 따서 바구니에 담는다.
부드러운 순을 살짝 비틀면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그 소리가 참 경쾌하다.
한 바구니 가득 채워 꾹꾹 눌러 담으니 2박스가 된다.
아내가 엄나무순을 좋아하니 한 박스 더 따서 만들었다.
다음은 옻나무 순이다.
예전에 옻닭집에서도 옻순은 아주 귀한 것으로, 조금씩만 맛볼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부드러운 옻순도 한 박스 만들었다.
다음은 가죽나무순을 따러 올라갔다.
그런데 가죽나무순이 2층 높이쯤 되는 꼭대기에 겨우 하나 달려 있다.
따기도 어렵고 양도 많지 않다.
높은 가지에 달린 것을 딸 방법이 없어 중간을 톱으로 잘랐다.
가지가 넘어지며 떨어진 잎사귀까지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귀한 것이니까.
가죽나무순에 대한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아주 귀하고, 아주 맛있고, 조금밖에 맛볼 수 없었던 것.
30호쯤 되는 우리 시골 마을에서 가죽나무가 있던 집은 단 한 곳, 친구 집이었다.
사립문 왼쪽에 높게 자라 있던 가죽나무.
잎은 넓고 길었지만 수량은 많지 않았다.
어떻게 높은 곳에 달린 잎을 땄는지 모르지만, 친구 어머니는 그 잎에 찹쌀과 고추장을 발라 부각을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 덕분에 나도 그것을 조금 맛볼 수 있었다.
그때의 향과 맛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가죽나무순도 조심스럽게 담으니 1박스가 만들어졌다.
이제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한계까지 거의 찼다.
남은 박스는 하나.
왜냐하면 골프백에, 가방에, 양손에 3박스씩 들고 가려면 이 정도가 딱 한계이기 때문이다.
치나물도 지천이고, 머위도 골짜기를 따라 넘쳐나지만 이번에는 욕심을 내려놓는다.
바구니를 들고 바로 옆 논가 비탈로 갔다.
이곳은 약간 음지라 그런지 다른 곳보다 잎이 덜 피어 있다.
대신 영양분이 좋은지 두릅 잎사귀들이 유난히 탐스럽다.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두릅 가지를 친구가 전지가위로 잘라주면 내가 순을 따서 담는다.
“뚝, 뚝”
가지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고 기분 좋다.
몇 그루 되지 않는데도 바구니가 금세 가득 찬다.
조심스럽게 포장 박스에 담으니 두릅도 1박스가 되었다.
이제 들고 갈 수 있는 최대치, 총 6박스가 모두 채워졌다.
박스들을 테이프로 단단히 붙이고 들기 편하도록 3박스씩 전선줄로 묶었다.
전선줄로 묶으니 안정감도 있고, 들기도 편하다.
아침거리를 마련하러 다시 산에 올랐다.
두릅, 엄나무순, 가죽나무순, 옻순 그리고 어른 두 손바닥 크기의 곰취까지 땄다.
곰취는 예전에 TV에서 곰배령에서 자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느데, 직접 꺾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커다란 곰 발바닥처럼 생겼다.
아침거리를 준비해 밥을 먹으려는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기왓장에 떨어지는 빗소리,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
어릴 적 듣던 바로 그 소리다.
자연의 소리, 추억의 소리, 그리고 행복의 빗소리다.
새로 따온 나물들을 데치기도 하지만, 여러 나물을 한데 모아 고소한 참기름을 떨어뜨려 비빔밥을 만들었다.
어른 양손만 한 곰취 잎에 비빔밥을 올려 싸 먹는다.
아침이자 점심인 이 한 끼가 그 어떤 음식보다도 훌륭한 정찬이다.
KTX 밀양역, 오후 1시 18분.
골프백과 가방, 그리고 나물 6박스를 싣고 밀양역으로 향했다.
길가에는 노란 유채꽃이 한창이다.
산 아래 마을들은 한가로운 봄 풍경 속에 잠겨 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박스 안에 갇혀 있던 나물들을 하나씩 풀어 숨을 쉬게 해주었다.
집에 온 아내가 이것들을 보고 무척 좋아한다.
친구 동철이 말대로 아내에게 제대로 칭찬을 받았다.
동철아~ 너 덕분에 칭찬받는다.
고맙다~~

첫댓글 두분의 우정도 부럽고 나물도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