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3
[잡다한 이야기9] ㅡ 통증 & 통과
1. 킬러문항
너는 어디를 보고 있나
너는 무엇을 보고 있나
너는 누구를 보고 있나
2. 이 詩의 주인공은?
네가 나를 미워하는 동안
난 열심히 너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3. 플랜 / 프로그램
"플랜"은 부흥 재건의 뜻으로 읽히지만,
"프로그램"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캉드쉬의 "imf 프로그램"이 그랬었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4. 고민 중
[세계관2]를 써야 할 지 말 지를.
2. 2021
[수능시험 국어문제 : 헤겔]
올 수능시험에 헤겔의 변증법이..!!
1.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이 있습니다.
2. 관념론이라는 철학의 새 영역을 구축했던 칸트에서 시작해, 주관적 관념론이라 평가받는 피히테, 객관적 관념론이라는 셸링, 그리고 이를 절대정신 아래로 변증의 방법으로 포섭시켜 종합과 통일을 이룬 헤겔의 절대관념론이 그것이죠.
3. 우리의 수능시험과도 같은 종합시험이 프랑스에도 있습니다. 바칼로레아라고 하는 논술시험이 그것인데, 바칼로레아 시험은 하나의 축제가 됩니다. 그 해에 어떤 시험 문제가 나왔는가가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여기저기 모임들에서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생활의 일부가 됩니다.
4. 무지와 게으름과 통속에 빠지려는 정신적 나태를 매년 새롭게 일깨우는 계몽의 성격으로 전개되는 것이죠. 계몽의 뜻은, 미몽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의미니까요. 그래서 출제자와 수험자들은 물론 전국민이 동참하는 사상의 축제입니다.
5.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헤겔의 '법철학' 속에 들어 있는 그의 이 말은 그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6. 미학이란, 예술을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등장합니다.
7. 미적 예술적 대상(객관)과 직접적으로 부딪히고, 종교는 내적으로 신앙 믿음과 관계되기에 주관적입니다. 이를 학문적으로 통일시킬 수 있고 그 유일한 방법이 변증법이며, 변증법적으로 구성한 것이 철학이라는 겁니다.
8. 가령 법적 문제로 비유하면, 감각으로 확인되는 물적 증거가 있고, 심적으로 의심하는 정황, 그리고 이를 범죄화하는 구성 내용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9. 헤겔에 대한 비판을 정수기(변증법)에 비유한다면, 잉크물과 흙탕물을 정수기를 통과시켜서 정수된 물(절대정신)을 뽑아냈지만, 정수물이 다시 흙탕물과 잉크물로 되돌아갈 방법은 제시하지 못하지 않았냐 하는 거겠죠.
10. 앞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주장과 이론과 철학은 아무리 훌륭해도 늘 비판에 직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민주주의 정치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독선과 독재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11. 따라서 다양성과 포용을 전제하지 않으면, 비판을 위한 비판과 반대를 위한 반대로 끝나고 맙니다.
12. '비판철학'의 대명사인 칸트를 예로 들면, 비판은 '재구성을 위한 비판'이었던 것입니다.
13. 수능문제는 별로 까다롭지도 어렵지도 난해하지도 않았으며, 헤겔에 대한 지식을 묻는 게 아니라, 그냥 국어 독해 문제였을 뿐입니다. 지문 안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http://naver.me/5GDVjrWQ
3. 2021
정치 풍향계87..!! (언론 편)
언론들은 언제인가부터,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어떤 특정 세력을 위해 봉사할 뿐이지, 전체 국민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라는 신성한 권리를 유지시켜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고 때로는 겁박한다. 언론이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은 진정성과 진실이 아니라 오히려 기만과 은폐이다. 언론의 역할은 이제 진실의 나팔수가 아니라 특정 권력의 이익수호자가 되어버렸다. 언론들이 더는 민심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민심과 여론은 언론에 의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광오한 믿음을 갖게 됐다. 권력과 이익 모두를 욕심내는 언론이다. 그리고 마침내 언론권력이라는 뼈아픈 소리에도 오히려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이 언론권력의 부패와 타락이 결국은 정치를 타락시키고, 교육을 망가뜨리며, 재벌 같은 가진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함으로써 언론권력을 더욱 강고히 하는 한편, 국민들을 개돼지로까지 여기게 만들었다. 이제 언론의 정당성은 진실 정직 신뢰 청빈에서 찾아지는 게 아니라 힘과 권력과 돈에서 찾아진다. 국민은 가난해도 좋다. 언론들만 배부르고 자유로우면 그만이다. 책임과는 영영 이별한 상태다. 힘있는 곳에 언론이 항상 붙어 있고, 부자들 편에서 기사를 써왔고, 권력의 향배에만 온 정신이 쏠려 있다. 가난은 국민들 각자의 죄와 몫이고, 언론들에게 그 이유를 묻지 말라고 한다. 국민을 단죄하는 언론, 국민을 훈계하는 언론, 국민을 속이는 언론, 나라의 미래는 관심 밖인 언론, 그러나 언론은 국민의 종이 아니라 국민의 주인 행세를 해왔다. 습관처럼 언제나 그래왔기에 인간성과 도덕심에도 한참이나 무더져서 거의 인간말종의 행태를 보이는 게 작금의 언론과 언론인들이며, 그러하기에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마침내는 거의 발악하는 수준으로 국민과 국민들이 세운 정부를 겁박하면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론은 자신들의 생존과 이익을 위협하려는 민주 정권을 용납하지 않고 그 반대편에서 목숨걸고 정권의 붕괴를 획책하는 것이다. 이렇게 패악을 부리는 아귀같은 언론을 위해 국민들이 모은 세금을 가져다 바치는 꼴이 얼마나 웃기는 아이러니인가. 대안으로 나온 미디어 바우처 제도 역시 언론은 극구 반대하는 이유도 역시 자기들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국민이 자신들을 의심의 단계를 지나서 이젠 혐오와 불신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부끄러움은 커녕 오히려 역으로 공격하려 하고 있으니, 국민의 주적은 이제 북한이 아니라 언론인 것이다.
ㅡ> 사족 (2025.11.20) :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언론권력과 검찰권력 및 조희대의 사법부권력 모두에 해당된다고 보여짐.
따로이는, 일시적 권력을 영원한 권리로 착각하고, 책임과 의무 역시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기들만의 특별한 권리로 여기는 오만방자함으로 비춰짐.
K / 202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