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250123. 지난 주에 우리 본당의 보좌 신부님이 새로 부임하셨습니다.
서품 5년차, 착하게 생기신 젊은 신부님입니다.
그 전에 주임 신부님도 새로 부임하셨지요. 그런데 두 신부님 아직 한번도 손을 잡고 악수를 하거나 통성명을 하거나 면담을 하거나 신앙 상담을 한 적도 십년가까이 없었습니다. 그 이전의 신부님들도 그랬지요. 몇 초 만에 스쳐가는 현관 앞에서의 의례적인 인사, 그리고 짧은 강론을 듣고 성체를 나누어 주는 것이 접촉의 전부입니다.
한 때는 수십년 동안 여러 성당의 중요 직책들을 맡았고, 이런 저런 행사와 전례와 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의견과 목소리도 키우고 했었지만 어떤 연유에 의해 자의적으로 멀리하면서 이제는 조용히 시계추 신자로 살고있다 보니 유령신자, 투명신자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몇몇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존재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 어느 시점에 부류에 끼어 들어 갈 수 있는지 조차 모르겠고, 교회와 신자들과 나눔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불러 주지도 손잡아 주지도 않고, 뻘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 주치의인 신부님이나 수녀님과 이야기 한번 나누어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라는 먼, 아주 먼 곳의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일 미사 참례는 죄의식 때문에 의무적으로 나온다는 이야기가 주류였습니다.
교회는 찾아오는 신자들도 제대로 관리하지 아니합니다. 일년에 스무 명 정도 영세하는 수준의 새 신자도 절반은 몇 년 안에 냉담을 하고 마는 현상입니다. 잠재적 냉담자도 많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시점에 안 그래도 줄어드는 신자 수인데 있는 신자도 지키지 못하는 교회의 일꾼들은 내탓은 아닌지 반성을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