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신성(神性), 민족의 영혼(靈魂)
창세 17,3-9; 요한 8,51-59 / 사순 제5주간 목요일; 2023.3.30.; 이기우 신부
사순 제4주일이었던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날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삶은 크리스천 생활의 모범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소명 실천에 투철하셨을 뿐 아니라, 기도생활과 수덕생활에도 철저하셨습니다.… 일제의 무력침략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 땅의 국민들이 자구책으로 행한 모든 행위는 정당방위와 의거로 보아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맞서 싸우고 일제 침략의 괴수인 이토 히로부미의 제거를 국권 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에서 필요한 전술 전략으로 보고 이를 감행한 것 역시 타당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심과 조국애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김수환 추기경, ‘안중근의 신앙과 민족운동’ 심포지엄, 1993.8.).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거사 당시에 경성교구장 뮈텔 주교가 그를 살인자로 단죄했기 때문에, 거사 직후부터 온 민족으로부터 영웅으로 칭송받아온 그가 정작 자신이 몸담았던 천주교회 안에서는 잊혀져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의 거사가 정방방위로 인정된 것입니다.
그가 일제의 부당한 침략에 맞서 저항한 선구적 독립투사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저항정신은 예로부터 외세가 이 땅을 침략하고 지배할 때마다 들고 일어났던 의병의 저항 전통의 하나였습니다. 불의에 항거해 온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은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재미작가 이민진이 소설 ‘파친코’에서 4대에 걸쳐 일제로부터 핍박받은 재일한국인 일가의 저항을 그려내어 미국과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한국인의 정신적 DNA에 그려진 저항정신입니다.
그러나 침략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刺殺)한 안중근의 정당방위적 저항행동은 그가 살아온 생애를 특징짓는 정신 가운데 절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선 감옥 안에서의 행동만 보더라도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열다섯 가지 죄상을 재판정에서 공개적으로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어머니 조 마리아의 권고에 따라 항소를 포기하는 대신에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여 자신의 재판을 취재하러온 언론을 통해 전 세계 여론에 호소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하얼빈에서 일으킨 거사의 진정한 목적이었는데, 이토는 거짓과 기반으로 얼룩진 ‘극동평화론’을 내세워 일본의 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중근이 저술한 미완의 동양평화론은, 일본은 동양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을 멈추어야 하고, 청국 및 조선과 함께 형제 나라로서 평화를 이룩하자는 참신한 제안이었고, 그 방식은 한중일 삼국이 공동으로 뤼순에 은행을 세워 공동 화폐를 쓰고, 한중일 삼국 청년들을 뤼순에 한데 모아 서로의 언어와 역사를 배우며 공동 군대를 육성하여 서양의 침략에 대비함으로써, 한중일 삼국이 공동으로 번영하는 동양평화를 이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이런 국제평화 구상은 그 반세기 후에 유럽에서 구체화되어 현재 유럽연합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독립무장투쟁에 나서기 전에 전국에서 선교성적이 제일 좋아서 당시 교구장인 뮈텔 주교로부터 격려 방문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황해도에서 이름난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이런 선교사가 되기까지에는, 부친 안태훈의 권고로 천주교에 입문하기 전에 박해시대를 전후로 발간된 천주교 교리 책 120권을 독파하고 나서 세례를 받을 정도로 열의가 가득찬 지성적 신앙열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침략마수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뻗쳐오자, 가산을 털어서 1906년에 평양에 삼흥학교를 세워 후학에게 민족의 정기와 서양의 지식을 전수하고자 하였으나,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를 당하고 군대가 해산되어 전국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나자 안중근도 이에 가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항적인 민족혼을 바탕으로 평화적인 하느님의 영과 소통하려던 안중근의 정신은 그가 순국한지 백년이 훌쩍 넘어가는 오늘날 재조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다가 이 땅에 천주교를 통해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를 들여온 신앙 선조들의 지성적 구도정신을 계승한 구도자이며, 백년 박해를 치명으로 저항한 순교자들의 후손다운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의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정신도 사탄이 부추키는 악에 대한 저항을 기본으로 하되 하느님의 가치인 최고선을 추구하는 구도정신을 필수로 하는 것이고 보면(창세 17장 참조), 이 구도와 저항의 삶은 아브라함 이전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셨던 예수님의 길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진리에 대한 눈이 멀어서 그분의 참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지만(요한 8,52-53 참조), 안중근 토마스는 선교사요 교육자였으며 독립투사로서 진리 증거와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치열하게 예수의 신성을 증거했으니,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행선피악(行善避惡)의 계약을 안중근 토마스는 충실히 지킨 것입니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창세 17,9). 그러니 결국 그를 본받는 길이 바로 악에 저항하는 민족혼이 진리와 평화를 추구하는 예수님의 영과 소통함으로써 민족의 영혼이 부활하는 길인 동시에, 민족사와 교회사의 간극을 줄이는 거룩한 계약의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