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잡(雜) 말하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1/06/21 미주판 12면 입력 2021/06/20 15:59
잡(雜)이라는 한자를 찾아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뉩니다. 하나는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때도 좋은 것이 섞여 있다는 느낌은 아닙니다. 잡탕(雜湯)의 느낌을 생각해 보면 알 것입니다. (그런데 잡탕이 맛있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잡스러운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스러기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고, 본류가 아니라는 느낌도 듭니다. 잡의 다른 의미는 막되었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아무렇게나 막되었다는 의미로 나타납니다. 잡놈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잡은 좋은 느낌의 어휘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잡이라는 표현을 보면서 종종 함부로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잡초입니다. 이른바 잡초라든가 잡꽃을 볼 때마다 누가 함부로 이름을 붙였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잡초를 들풀이라고 부르거나 잡꽃을 들꽃이라고 부르면 느낌이 확 달라지기도 합니다. 들풀의 생명력과 들꽃의 수수함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예상하지 않았거나 바라지 않았었기에 ‘잡’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허나 세상에 잡은 없습니다. 특히 생명에 잡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함부로 잡을 말하면 안 되겠습니다.
입에 올리기도 두려운 어휘입니다만 잡놈이라는 말이나 잡종이라는 말에는 차별이 가득합니다. 잡종은 동물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잡종을 사람에게도 씁니다. 민족이나 인종의 차이인데 잡종이라는 어그러진 표현을 씁니다. 국제결혼 자녀를 하프(half)라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반반씩 섞였다는 의미이겠지만 어쩐지 반밖에 안 되는 사람 취급을 하는 듯 보여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에는 하프가 아니라 더블(double)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답니다. 그래도 구별 자체가 싫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늘 조심해야 합니다.
잡담이라는 말을 보면서도 잡의 위력을 생각해 봅니다. 잡담을 그저 쓸데없는 말 취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잡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잡담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잡담을 영어로는 스몰 톡(small talk)이라고도 합니다. 잡담이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잡담이 없다면 우리는 무척이나 외로울 것입니다. 잡담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실없는 농담이 오고 가기도 합니다. 다 필요한 말입니다. 잡담은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삐그덕거릴 상황에 미리 기름을 칠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부드러워집니다.
잡담은 그저 잡스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잡담에서 사람에 대한 관심을 봅니다. 인사는 중요한 잡담의 시작입니다. 인사가 무엇인가요? 인사(人事)는 한자로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인사를 제대로 안 해서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 사이가 뻑뻑해집니다. 듣기 싫은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반가운 인사 소리가 하루를 기쁘게 합니다.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밝은 인사가 말입니다. 내 인사를 생각해 봅니다. 나는 정말 반가웠을까요?
잡담의 핵심은 관심에 있습니다. 잡다해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관심은 주로 칭찬으로 나타납니다. 서로의 달라진 모습이 재미있고 반갑습니다.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게 칭찬의 시작입니다. 어제와 달라진 모습은 새로움입니다. 새롭다는 말은 좋은 뜻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칭찬하는 잡담이기 바랍니다. 관심의 다른 말은 걱정입니다. 전과 달리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사람은 그래야 합니다. 내 걱정의 말은 그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위로가 됩니다. 처음에는 잡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사랑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게 사람 사는 정이고, 세상을 바꾸는 말입니다.
그런데 진짜 잡말도 있습니다. 그건 일부러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윤활유가 되었어야 할 말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됩니다. 온종일 찝찝한 기분으로 남게 되고, 오랫동안 마음을 후빕니다. 이런 잡말들은 도대체 소통이 안 되는 말입니다. 답답한 말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허무한 말입니다. 그야말로 시간을 죽이는 말입니다. 그래서 잡담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말은 우리 서로를 귀하게 합니다. 서로 다른 말이 섞여서 예상치 않은 기쁨을 줍니다. 오늘도 기쁜 잡담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