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원효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이다. 그는 어린 나이 어머니를 여의고, 15살이라는 나이에 스스로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따로 따르는 스승 없이 스스로 경전을 공부하고 해석하며 살아가다 8살 어린 동생이지만 친구처럼 지내게 되는 신라 승려인 ‘의상’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당나라 유학을 결심하게 되는데, 처음엔 육지를 통해 당나라 유학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고, 10여 년 뒤 다시 한번 의상과 함께 바다를 통해 당나라 유학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러다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바로 ‘해골물 이야기’, 의상과 원효가 돌아다니다 발견한 어느 한 동굴에 머물게 되고 목이 마른 원효가 잠결에 마신 달콤한 ‘물’이 알고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아닌 전해져오는 다른 내용으로는, 원효와 의상이 머문 ’동굴‘이 알고 보니 ‘무덤’이었다는 내용인데, 원효가 자신이 머문 곳이 ‘동굴’이 아닌 ‘무덤’이었다는 것을 알고 밤새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원효는 자신이 겪은 이 상황에서 결국 자신이 모르고 마셨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 실체가 해골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더럽다고 인지하게 되었고, 자신이 머문 곳이 동굴이라 생각했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곳이 무덤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겁에 질려 악몽을 꾸게 된 것처럼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 안에 달려있다“,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원효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의상과 달리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이후 ‘일체유심조’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일체유심조를 풀어 말하면, 앞서 말했던 내용처럼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말인데, 원효는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고, 따라서 배움에는 안과 밖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여 당나라 유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당시 불교 사상에 대해 각기 중요시하는 경전을 중심으로 독특한 주장과 교리체계를 세운 종파들이 많아 서로 논쟁이 치닫는 시기였는데, 원효는 이러한 종파불교의 입장이나 교리가 횡행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불교의 근본을 바로 보지 못하는 현상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는 “부처님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며 많은 종파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뜻은 자비 하나이다. 그러므로 종파는 통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바로 ’화쟁 사상‘을 주장한다. 쉽게 말하면 ‘논쟁의 화합’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의 눈을 가리고 코끼리라는 하나의 동물의 한 가지 부위를 오직 촉감만으로 해석하게 한다면, 코끼리의 귀를 다리를 코를 뿔을 만진 사람들은 각각 느끼는 것들이 당연히 다양하고 다를 것이다. 원효가 말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만지는 것은 그래봤자 코끼리 단 하나라는 것이다. ‘불교’가 그렇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여러 종파로 나뉘어 해석하는 바가 달라 서로 논쟁을 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불교라는 하나의 사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논쟁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원효가 말하는 이야기(일체유심조)에 많은 동의를 한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결국 각자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 행복하고, 슬프고, 화나고, 힘든 것들 모두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피어나는 감정을 통제하라는 말이 아니고, 나는 우리가 각자에게 벌어진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그게 어쩌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 하기도 하며, 우울하게 하기도 하고, 화나게 할 수도 있는데,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자 나만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에 더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먹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첫댓글 원효가 "각기 중요시하는 경전을 중심으로 독특한 주장과 교리체계를 세운 종파들이 많아 서로 논쟁이 치닫는 시기였는데, 원효는 이러한 종파불교의 입장이나 교리가 횡행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불교의 근본을 바로 보지 못하는 현상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화쟁"을 주장했다고들 말합니다. 그렇다면 원효가 말한 "화쟁"은 통합일까요? "'논쟁의 화합'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코끼리의 비유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각자의 경험적 대상을 취합하기만 하면 "코끼리" 한 마리가 제대로 만들어질까요? 화합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점도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