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알록달록 연등은 왜 달까?
오늘은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석가탄신일(1975년 제정)'이었는데 2018년 '부처님오신날'로 바꾸었다. 법정공휴일이다.
'부처님오신날' 즈음해서 큰절이 있는 거리마다, 마을 들머리마다, 산길마다 빛깔 고운 꽃이 핀 것처럼 알록달록 고운 빛깔의 연등이 매달려있다. '부처님오신날', 연등은 왜 켜는 걸까?
2600년 전 그 옛날은 그 어느 나라도 전기는 없었을 것이고, 인도는 더운 기후의 나라인지라 햇볕이 뜨거운 낮이 아닌 해가 진 뒤 잔치(행사)를 하는 나라였다. 고따마 붓다(부처님)도 밤에 설법(設法)을 하곤 했고, 어느 때 어느 도시로 초청을 받아 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설법 장소와 그곳으로 가는 길에 등을 켬으로써 붓다를 반기는 한편 밤의 어둠을 밝혔다.
구걸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난타 할머니도 그 소식을 들었고, 샤카족의 성자 고따마 붓다로부터 설법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먹을 것 대신 등불 심지를 태울 기름 살 돈을 구걸하였다. 하루 종일 구걸한 몇 푼을 들고 기름을 사러 갔는데 돈이 너무 적어 주인이 물었다. 뭘 하려고 기름을 사는 것인지를. 난타 할머니는 '붓다가 이 마을에 오신다 하여 나도 등불을 밝히고 싶어서 그런다'라고 하자 딱하게 여긴 기름집 주인은 곱절로 얹어서 기름을 주었단다. 난타 할머니는 화려하지도 않고 보잘것없는 등이지만 하루를 살 수 있는 밥과 바꾼 기름으로 불을 밝힌 뒤 다른 이들의 화려한 등이 많이 켜진 곳 말고 구석진 어두운 곳에 등을 걸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등불은 하나둘 꺼져갔고, 설법이 끝난 새벽에는 등불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붓다의 제자들은 등불을 끄기 시작했다. 난타 할머니의 등을 끄는데, 진즉 꺼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등이 아직 켜져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아무리 끄려고 해도 꺼지질 않더라는..., 우리나라불교에서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고 한다.
신기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는 상징일 뿐, 등불을 켠다는 행위 안에 깃들어 있는 참뜻은, 보이지 않는 곳 어둠을 밝힌다는 데에 있다. 밝은 등불을 켬으로써 내 안의 어두움 탐진치를 걷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등을 켠다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행복을 방해하는 요인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버릇을 하나만이라도 없애려고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등불이 필요한 곳은 햇볕이 잘 드는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두운 곳이다. 구석진 어두컴컴한 곳 생명의 기운이 없는 곳이다. 사회로 보면 소외된 곳, 취약계층일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오신날' 연등을 켜는 일은 빛이 없는 어두운 곳,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불교는 (코로나 때 빼고) 해마다 서울을 비롯한 각 도시마다 연등회(燃燈會) 잔치를 한다. 연꽃 등(蓮燈)이 아니라 사루는 등(燃燈)이다. 종단마다 사찰마다 행진 때 쓸 연등을 만드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더 화려해지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20년에는 'Buddhist Lantern Festival'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무형문화재와 세계문화유산이라 화려함에 더 신경 쓰는 걸까!)
'부처님오신날' 즈음의 전국의 사암(寺庵)에서는 한참 전부터 바쁘다. 연등을 만드느라 바쁘고 내 거느라 바쁘다. 붓다를 초청하여 설법을 듣던 그때처럼 어두운 길, 어두운 곳을 밝히려는 마음이라면 더없이 좋을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자본주의 잣대로 돌아간다. 절에서도 모든 게 돈으로 값이 매겨지고 연등 또한 마찬가지다. 부처님 오신 날 즈음 등을 팔아(?) 생기는 돈은 절 살림의 큰 밑천이 되기에 크기와 위치에 따라 값이 따라 다르고 그걸 당연히 여기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 바람이 인다. 가난한 난타 할머니처럼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는 정성은 아닐지라도, '가족건강 사업번창 재물복덕 시험합격 안전운전 무사고'를 비는 개인의 소원(所願)이 아닌, 붓다의 가르침을 새기며 가정과 세상이 더 밝고 평화롭도록 이렇게 살겠다는 서원(誓願)을 스스로 정하여 실천하면 좋겠다는. 전국 수많은 절의 스님들 또한 소원을 빌게 하는 게 아닌 서원을 정하고 지니고 지키도록 이끌어주면 좋겠다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신 모습을 떠올리고, 일깨워주신 말씀을 새기며, 흉내 내고 닮아가는 것이 붓다의 뜻을 기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부처님오신날 아침이다.
by 버폐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5월15일)을 일주일여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연등이 설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이다. 여러 경전은 세존께서 일곱 걸음을 두루 걷고서 사방을 둘러본 후,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만이 존귀할 뿐이다’고 외쳤다고 적고 있다. 부처님으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하늘과 땅의 주인이 되었다. 절대자의 은총이나 사후(死後) 보장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 지금 이 생에서 내가 주인임을 부처님께서 일러주시고 보여주셨다. 그래서 부처님 탄신일은 모든 생명의 생일이다.
왕자였던 부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진정한 자유, 영원한 안식을 찾아 출가 사문의 길을 걸었다. 극단의 고통을 통해 해탈이 가능하다는 당대 주류 사상을 익히고 죽음 직전까지 가는 고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탈은 없었다. 부처님은 기존 사상 수행마저 과감하게 버렸다. 많은 비난을 받고 따르는 무리들이 떠나갔지만 개의치 않고 마침내 각자(覺者)로 뭇 생명의 공양을 받게 됐다. 기존 권위, 사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지를 통해 부처님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부처님은 선정(禪定)을 통해 지혜를 증득한 후 평생을 길 위에서 중생을 만나 교화하셨으며 길 위에서 열반에 드셨다. 당신을 비난하고 떠난 5명을 만나기 위해 수백km를 걷는 고행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전법(傳法)하지 않으면 세상에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태어난 가문, 생김새, 나라, 성별, 종교 등 사람을 둘러싼 모든 조건을 무용지물로 만드셨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며 유일한 진리를 설파했지만, 교조화를 경계하셨고 심지어 당신마저 유일신으로 받들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 불교와 비슷한 교리를 가진 교단도 있었지만 부처님 가르침만 남은 것은 말씀과 행이 같았기 때문이다. 젊고 건강할 때나, 열반 직전 극심한 고통에 처했을 때나 한결같은 모습을 보인 부처님 앞에 종교와 사상 인종과 국경을 떠나 모두 무릎 꿇고 경배했다. 사리를 서로 모시기 위해 전쟁 직전까지 갔던 이유다.
부처님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지만 고통은 없다고 하셨다.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겼다 흩어지는 현상이 있을 뿐, 영원한 실체로서 고통은 없다고 하셨다. 인연 따라 생기는 고통도 따지고 들면 나의 무지, 헛된 욕망이 빚어낸 망상임을 명확하게 일깨워주셨다. 부처님은 우리 곁에 머물며 진리를 설파하신다. 단지, 우리가 어둠에 갇혀 보지 못할 뿐이다. ‘한 등불이 천 년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만 년의 어리석음을 없앤다’고 했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며 우리가 깨우쳐 받들기를 원하는 길이다.
출처 : 불교신문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 연등회 연등법회에서 아기부처님에게 관불하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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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으로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행운이 함께하는
멋진 하루보내세요
~^^
부처님 오신날 좋은글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엣지1 님
공감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은 부처님오신날 !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이
늘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행복이 함께하는 나날들 보내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고운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기쁨과 보람된
일들로 가득한
좋은하루 보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