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번 계절학기 수업시간 동안에 산업혁명에 대해 배웠었는데, 이 산업혁명의 시작은 영국에 의해 주도 되었었다. 영국이 이처럼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해외의 식민지를 개척하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불리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바다를 장악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수업시간에는 자세히 배우지 않았지만 15세기 말부터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신대륙 발견 이후 대양 항해선이 등장하면서 동서양간의 항로 발견과, 식민지 개척 등을 두고 국가들 간 해상에서의 각축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해상무역과 식민지를 어떤 국가가 장악하느냐가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그런 시기였다.

< 바다를 장악한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의 함선 >
영국은 이러한 과정에서 16세기말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제압하고 바다를 장악함으로써 해상 무역을 주름잡고, 더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초기의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고 초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처럼 바다를 제압하는 국가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에스파냐나, 영국 등이 강한 해군력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전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며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게 해준것이 바로 ‘배’의 힘이다. 얼마나 강력한 함대를 유지하고 있느냐가 바로 경쟁력이었던 시대이기고 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15~16세기 당시 유럽이 전세계로 뻗어갈수 있게 만들어준 배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었고, 바다를 장악했던 배들은 어떤 배들이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 지리탐험 시대 >
흔히 지리탐험시대라고 부르는 이 시기는 에스파냐(스페인)와 포르투갈이 세계의 바다를 양분하고 있던 15세기말 에서 16세기초 에는 대양 항해선이 등장하여 동서양간의 항로가 처음으로 트여지고, 수많은 지리상의 발견이 이룩되는 한편 열강의 해상에서의 각축도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하던 시대이다.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에 걸친 불과 20 여년 동안에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 하고 (1492~1493), 바스코다가마는 인도항로를 개척하며(1498~1499), 마젤란은 세계일주를 완성했다.(1519~1522).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마젤란의 항해경로>
< 신대륙으로 이끌어준 '캐라벨 선' >
캐라벨 선은 포르투갈에서 개발된 마스트가 3개인 범선으로 삼각 돛만을 쓰는 배이다. 캐라벨 선은 13세기부터 어업용으로 쓰여져 오다가 차차 연안항해용으로 커지고, 15세기에 들어서는 밑의 그림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여 드디어 엔리케 왕자의 아프리카 서해안 탐험과 같은 데도 쓰여지기에 이른 것이다. 캐라벨 선은 횡범을 주로 쓰는 캐랙 선보다도 선저가 평탄하고 배의 폭이 좁으며 물에 잠기는 흘수가 작고 속력도 빨라서 연안 항해에 적합한 배이다.

< 콜럼버스가 애용했던 캐라벨선 >
콜럼버스도 캐라벨 선을 좋아해서 그가 아메리카 탐험에 나설 때도 한 척의 캐랙 선(산타마리아호)과 두 척의 캐라벨 선(니나호와 핀타호)을 썼다. 그러나 캐라벨 선은 대양항해에는 아주 부적합하여 콜롬버스가 돌아오는 길에는 니나호를 캐랙 선으로 개조해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캐라벨 선은 이와 같이 15세기까지만 쓰여지고 그후에는 캐랙 선에 눌려 대양항해선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 대항해 시대를 연 캐랙선 >
15세기에 나타났으며 3개의 마스트를 달고 대양을 종횡무진 하던 전형적인 대양항해선이 바로 캐랙 선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 탔던 산타마리아호, 영국에서 미국으로 처음 이주해 간 청교도들이 탔던 메이플라워호도 캐랙 선이다. 특히 이 시대는 유럽 각국이 해외 식민지 개발을 통해 자국의 세력을 넓혀나가던 시기여서 거의 모든 배가 대포 등으로 무장을 하였다.
마스트가 3개이며, 사각범을 단 횡범 장치는 뒷바람을 잘 받아 순풍에 좋고, 삼각범으로된 종범은 역풍을 잘 뚫고 나가는 장점이 있어 캐랙선은 마스트 수를 늘리고 두 가지 범장을 채택한 다장선이다.

<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 > < 바스코다가마의 '가브리엘'호 > < '그레이트 해리호' >
캐랙선의 외판은 여러 판재를 맞대어 붙이는 카벨 이음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선수루와 선미루가 있고, 선미에 고정타가 달려 있어 북해선과 같다. 그러나 하체 부분은 선수와 선미부가 다같이 둥글게되어 있어 지중해선 그대로이다. 이와같이 캐랙선은 범장은 북해선에 가깝고, 선체와 선형은 지중해선에 가깝다. 캐랙선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450 년경부터 이고, 그 후 300 여년간 범선 전성시대에 나타난 범선은 상선과 군선을 막론하고 모두 캐랙 범장을 개량해 나간 것으로 캐랙선은 서양 범선의 모형 이라 할 수 있다.
인기만화인 원피스에서 주인공 일행이 타고 다니는 배도 이 캐랙선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 캐랙선에서 모티브를 따온 원피스의‘고잉메리호’ >
< 바다를 제압한 갤리온선 >
갤리온선은 16세기 말엽부터 캐랙 선에 이어서 등장한 군선으로 캐랙 선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갤리온 선은 대개 캐랙 선보다 크고 주로 군용선으로 쓰여졌다. 이 무렵의 범선에 군선과 상선의 엄연한 구별이 있은 것은 아니고 필요에 따라 무슨 배든 무장했지만 지리탐험에 쓰여진 캐랙 선 등은 자위를 위한 무장을 했을 뿐 어디까지나 상선에 속하는 것이고, 갤리온 선은 처음부터 군용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배이다. 그러므로 갤리온 선은 적을 제압하기 위해 우선 커야 했다. 또한 갤리온 선과 캐랙 선은 선체 주요치수부터가 달랐다. (선체 길이 : 용골 길이 : 선체 너비의 비를 보면 캐랙 선이 3:2:1 인데 갤리온 선은 4:3:1 이다.)
이것은 갤리온 선이 캐랙 선에 비해 배의 길이가 길고 폭이 상대적으로 작은 배라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갈레온의 길이가 긴 이유는 보다 기민한 기동력을 얻고 또한 현측에 포를 되도록 많이 배열하기 위해서이다.

< '갤리온선'의 구성 도면 >

< 영국 전함 갤리온의 위용 >
< 갤리온에 무너진 무적함대와 에스파냐 >
이처럼 군용으로 만들어진 갤리온 선은 영국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데 크게 공헌을 하였다. 그당시 에스파냐 무적함대에는 대부분이 컨보이(대형 수송선)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을 호위하는 것은 20척의 대형 전함들었다.
해상 근접전을 예상했던 에스파냐의 대형 호위전함들은 모두 무거운 단거리 함포 캐논(Cannon)을 탑재한데다가, 상선을 개조한 작은 배들은 모두 정규군에게 지원되어질 엄청난 양의 화약을 적재했던 것이었다. 결국 갤리온들로 구성되어진 영국해군 함들은 다가오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회피선회하며 컨보이들을 향해 발포를 시작했고, 무거운 보급품들을 적재했던 컨보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게다가 영국해군의 갤리온 선박에는 모두 장거리포 컬버린(Culverin)과 캬로네이드(Carronade)를 탑재하여 접근전을 펼치려고 다가오는 에스파나의 함대를 따돌리고 원거리에서 포격을 가하였다.
수많은 화약 수송선들이 손한번 써보지도 못한채 갤리온선의 장거리 포 캬로네이드(Carronade)의 포격을 받아 가라 앉거나 바다위에서 화염에 휩싸인후 폭발해 버렸다.
결국 그라블리느 해전에서 결정적 타격을 받아 에스파냐 무적함대 127척 중 54척만 본국으로 돌아갔다. 무적함대의 패배는 에스파냐의 해상무역권을 영국에 넘겨주고 네덜란드가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 침몰하는 에스파냐의‘무적함대’>
<‘바다의 요새’ 갤리어스선 >
16세기 영국 에스파냐 등 대양에서는 갤리온선이 있었다면 지중해에서의 최고전함은 갤리어스선이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갤리어스선은 16세기 초에 선을 보였다. 극도로 긴 노는 4명에서 7명의 노잡이들이 노를 저었으며 총문에는 어느 방향으로도 사격이 가능한 총을 70정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총 승무원은 노잡이와 선원과 군인들을 포함해 800명까지 승선할 수 있었다. 갤리어스선의 항해능력은 갤리선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으며 겨울철의 항해도 가능하였다.
남유럽에서도 베네치아에만 존재하던 배이고, 당시 바다의 요새라 불리는 등 현재 미국의 이지스함 정도에 비교될수 있었는 배였다. 베네치아 국영조선소에서 건조 방법을 기밀로 하여 유출하지 않는 등 16세기 당시에도 6척밖에 건조 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대한 크기만큼 조타수(노잡이)가 보통 갤리선보다 2배 이상 많았고, 5층 높이나 되는 선수 꼭대기에는 강한 대포를 달아, 전투시 적군에게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벼락의 체험을 생생히 시켜주던 무서운 함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갤리선의 일종이기에 지중해 빼고는 쓸모가 없어서 16세기 말 레판토 해전을 끝으로 사라졌다.

< '갤리어스선'의 모형도 >
< '레판토해전’ 에서의 겔리어스선 >
이 갤리어스선은 세기의 해전이라고 불리는 세계 4대 해전중 하나인 ‘레판토해전’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함대에게 패배만을 거듭해 오던 에스파냐, 베네치아, 제노바 등의 기독교 세력들은 1565년 오스만의 해군을 무찌르기 위해 동맹을 맺고 1571년 키프로스가 오스만제국의 공격을 받자 8월 25일 시칠리아에서 집결한다. 연합군의 함대는 돈 후안의 지휘하에 갤리선 208척, 베네치안 갤리어스 6척, 갤리온 26척, 프리게이트와 브리간틴선 76척으로 모두 316척에까지 이르렀다. 오스만제국은 이들에 대항하고자 레판토에 270척의 갤리선을 준비했다. 10월 6일 돈 후안의 함대는 터키의 함대가 기다리고 있는 레판토 만으로 이동을 개시 했다. 역시 오스만제국의 해군 사령관 알리 파샤가 지휘하는 함대는 Patras만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지구 역사상 그 어디에도 전래가 없었던 가장 많고 거대한 함대들이 해전을 위해 이동중이었던 것이었다.
양측이 조우했을 때 피의 대학살이 일어났다. 갤리선은 다른 갤리선과 엉키었고 노는 쪼개졌으며 총은 표적도 없이 발사됐으며 전사들은 적의 배에 올라 격렬한 육박전을 벌였다.


< 레판토해전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 >
결국 결과는 연합군의 후미에 확보된 6척의 거대한 갤리어스선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지스함에 비유되며 바다의 요새라는 별명을 가진 갤리어스선은 해전 초반부터 가공할만한 포격으로 공격을 주도하며 전투를 압도해 버린데다가 사령관 알리 파샤가 전사함으로 전의를 상실해 버린 것이었다. 오스만제국은 113척의 함선이 격침되었고, 117척이 나포되어 해군의 거의 대부분을 잃었으며, 유럽의 기독교권에서 철수하여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지금까지 15세기~ 16세기 세계를 곳곳을 탐험하고, 항로를 개척하며, 식민지를 건설하고, 바다의 패권을 위해 전투를 벌이던 대표적인 유럽의 배들을 살펴 보았다. 19세기나 20세기초 유럽의 열강들이 세계 대부부분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고 지배했었으며, 지금까지도 세계질서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 발판은 이미 3~4백년 전부터 서서히 마련되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sj97in/90018406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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