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꼬우면 너도 하든가”
그 조롱을 4년 내내 들었다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서 물 흐르듯이 지나가겠지 다들 생각하는 중.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털어봐야 차명으로 다 해놨는데 어떻게
찾을 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ㅎ
이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ㅉㅉ.”
----익명의 LH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SNS 글.----
어떤 악재에도 끄떡없을 것 같던 정권이
LH 사태로 휘청거리게 된 데는 익명의 LH 직원이
쓴 글 하나가 적잖은 역할을 했다.
이 회사 직원들이 신도시 개발 정보를 미리 빼내
투기했다는 소식에 국민들이 분개하는 와중에
공개된 이 글은 ‘조롱이란 무엇인가’
책을 쓴다면 첫 장에 들어갈 만하다.
형식적인 면에서 글쓴이는 ‘^^’ ‘ㅋㅋ’ ‘ㅉㅉ’ 같은
이모티콘과 초성체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읽는 이의
분노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 글이 마치 뺨을 후려치는 듯한 불쾌감을
안기는 것은 그 형식 때문이 아니라,
한 줄 한 줄 모두 반박할 수 없는 사실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글쓴이 말대로, 정부는 피라미 몇 명을 희생양 삼아
사건을 마무리할 것이고, 이 일도 시간이 지나면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잊힐 것이며,
나머지 투기꾼들은 공기업이 제공하는 안락함을
누리며 정년까지 철밥통을 즐길 것임을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죄가 성립하는지도 확실치 않은 잡글 하나에
정부가 이토록 길길이 날뛰는 이유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 이 정권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4년 내내 국민을 조롱해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A: “털어봐야 이미 흑석동 집 팔고 배지도 달았는데
어떻게 할 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열심히 억대 연봉 받으면서
임기 채우련다ㅎ
이게 청와대 출신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180석 하든가~”
B: “털어봐야 이미 검사들 좌천시키고 우리 편
판사로 깔아놨는데 어떻게 할 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열심히 시장 노릇하면서
소원 성취하련다ㅎ
이게 대통령 친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검찰 개혁 하든가~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어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ㅉㅉ.”
C: “털어봐야 이미 졸업장 받고 인턴까지 됐는데
어떻게 할 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의사 대접 받으면서
잘 먹고 잘살련다ㅎ
이게 우리 가족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 아빠 딸 하든가~
부모 잘못 만나서 의사 못 돼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ㅉㅉ”
D: “털어봐야 이미 기부금 다 빼돌리고 할머니들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할 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국회의원 하면서
정의로운 척하련다ㅎ
이게 시민 단체 출신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하든가~”
이런 식의 특권과 반칙, 선택적 정의와 암묵적 조롱이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반복되다 보니, 보잘것없는
공기업 직원까지 조그만 특권을 자랑하며 대놓고
국민을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국민의 분노를 정말 이해한다면,
그리고 정의와 공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익명의 LH 직원이 아니라 A, B, C, D 같은
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 게 훨씬 쉽고
빠른 길이다.
암호화된 익명 앱에 숨은 LH 직원은 아무리
난리 법석을 피워봐야 찾아내기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이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잘 모르겠다면,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그 이름들을 알려줄 것이다.
최규민 디지털724팀 차장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