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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가톨릭교수회보 연중 제21주일 제242호 2011. 8 .21. (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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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말씀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사분영주인 헤로데 필립보가 로마 황제를 기리기 위해 ‘카이사리아’로 이름을 바꾼 도시입니다. 지중해 변에 있는 도시 ‘카이사리아’와 구분하기 위해서 ‘필립보의’라는 뜻을 지닌 ‘필리피’를 덧붙였습니다. 원래 이 도시는 목양신 판(Pan)에게 바쳐진 ‘파니아스’라는 수원지였습니다. 물이 많아 사람들과 가축들이 자연스레 모여들어서 풍요로운 교역 도시를 형성했습니다. 물류가 모이는 장소라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듯이 만났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숙지하셨는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 16,13) 하고 물으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예전에 어떤 대통령이 “이 사람 믿어 주세요” 하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 자신을 가리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하신 물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제자들이 전하는 사람들의 평을 종합하면 예수님은 예언자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말에 메시아보다 앞서 와서 길을 닦는 엘리야 예언자라고 말하거나, 다시 온 엘리야로 여겨진 세례자 요한의 환생이라거나(마태 14,2 참조), 민간전승에 널리 퍼진 예레미야 예언자(2마카 2,1-8; 15,12-16 참조) 등을 들먹였던 것이지요.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도 군중은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이시오”(마태 21,11) 하고 대답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보이신 행적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생각해 오던 메시아 상과 달랐습니다. 그분께서는 외적을 물리치는 권세를 떨치시기보다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 술자리를 즐기셨으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분께서는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고 답변했을 때에,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셨다며 참된 행복 선언을 할 때 사용했던 ‘행복하다(마카리오스, makavrio?’란 어휘까지 쓰며 기뻐하셨던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정작 제자들에게는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시기까지 합니다. 이해받지 못하는 길, 그러나 가야만 하는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성서와 함께)
묵상해봅시다
하늘 나라의 열쇠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전하는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전해 주신 복음적 삶을 살 때 하늘 나라가 열립니다. 그래서 이 열쇠는 곧 십자가 모양이라고 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고 하듯, 우리 삶의 의미를 주님 십자가의 열쇠로 풀어야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 없으면 하늘 나라는 열리지 않습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성경말씀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16, 15)
알아봅시다
1.네 개의 살아 있는 생물 네 개의 살아있는 생물의 상징은 요한 묵시록에 기원을 둡니다. 이 묵시록에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 있는 네 개의 살아있는 생물을 설명합니다(묵시4,1-11; 5,1-14). 교회 전통은 이 네 개의 생물에서 네 복음사가들을 생각해 냈습니다.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묵시4,6-7; 에제1,10 참조).” 묵시록에서 천사는 사자(마르코), 황소(루카), 독수리(요한), 사람(마태오) 등을 보여줍니다. “복음”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말로 에우안겔리온(euanghe´lion)이며, 그 의미는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서들은 사실 하느님 계시의 핵심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서들을 통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예수님 삶과 그분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보여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자신 안에서 이루신 주 그리스도께서는(2고린1,20; 3,16-4,6 참조) 사도들이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하면서, 먼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되고 당신께서 성취하시고 친히 전파하신 복음을 모든 진리와 윤리 규범의 원천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하도록 명하셨으며 명령은 충실히 이행되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습니다. 또한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은 성령의 감도로 구원의 소식을 기록하였습니다(계시 헌장 7항). 복음 선포, 곧 복음의 메시지를 설명하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교회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언과 해방의 말씀인 복음을 현대인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며, 지나친 세속화에 맞서 하느님의 진리와 인간의 초월적인 운명을 증언하는 것이며, 갈등과 분열을 거슬러 모든 신앙인과 연대하여 민족과 국가와 문화들 가운데에서 정의와 친교를 증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교회와 인터넷 32항). (서울교구 소공동체)
2.예수그리스도의 행적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하는 동안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스라엘 곳곳을 다니면서 수많은 행업의 발자취를 남기셨다.
▶기적 활동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구원 의지와 능력을 드러내고, 예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보여주는 '하느님의 계시자'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처럼 기적은 '표징'으로서 자리한다. 1)치유 기적 예수님은 나병 환자, 중풍 병자, 하혈하는 부인, 귀 먹고 말 더듬는 이, 벳사이다의 눈먼 이 등을 치유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인데도 시몬의 병든 장모, 손이 오그라든 사람 등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단지 아픈 몸만이 아니라 병든 마음까지 치유해주셨다. 이는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치유 기적을 행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이는 예수님께서 치유된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5,34)고 말씀하신 데서 살펴볼 수 있다. 2)구마 기적 예수님은 안식일에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치유하셨고, 게라사인들 지방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이와 더러운 영이 들린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의 딸을 치유하셨다. 우리는 구마 기적을 통해 인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업에 힘입어 죄나 악의 힘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죄나 악은 마귀나 사탄 또는 더러운 영이 아닌 온전히 인간의 인식과 자유 의지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3)소생 기적 예수님은 회당장의 어린 딸, 과부의 외아들, 베타니아 마을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형제 라자로를 살리셨다. 이는 당신 자신이 부활의 그리스도, 영원한 생명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알려주신 것이다. 4)자연 기적 예수님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독 여섯 개를 물로 채우고 이를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도 넘는 이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이 모든 자연 기적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을 엿보게 한다. 5)성경에 나타난 기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 고대인들은 기적을 신들이나 영들의 권능과 현존을 강하게 체험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성경 저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을 신들과 영들이 아닌 하느님의 권능과 현존을 더 뚜렷하게 감지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신약의 기적들은 구약의 기적들과 연관성을 갖는데, 신약에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역사(役事)하신다는 결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에서 기적은 '신앙을 가진 이들이 하느님 구원 행위의 표징으로 이해하는 괄목할만한 사건들'을 가리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이란 '결정적 구원의 약속을 알려주고 그 약속이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전 정화 예수님은 성전을 하느님 아버지 집이자 기도의 집으로 거룩히 여기셨다. 당시 성전에는 환전상과 장사꾼들이 있었다. 예수님은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그들 행태에 분개해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자 예수님은 성전을 허물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같은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당신의 몸, 곧 성전이 십자가 죽음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삶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와 굶주린 이, 세리와 창녀들, 당시 사회에서 죄인들로 취급됐던 병자들, 존중받지 못했던 어린이와 여자들, 특별히 고아와 과부들을 가까이 하셨다. 예수님은 사랑이신 하느님, 선한 사람들뿐 아니라 악한 사람들까지 품으시는 자애로우신 하느님, 의인들보다도 죄인을 부르러 오신 하느님, 잃었던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을 당신 전 생애를 통해 증거하셨다.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하는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사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다. (평화신문)
그리스도인의 유머 & 넌센스 견진성사를 준비해 온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주교가 집전하는 견진미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여러 본당 주임신부와 보좌신부들도 주교와 함께 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주교가 강론 때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가운데 나중에 커서 신부님이 되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손 한번 들어보세요.” 대여섯 명이 손을 높이 쳐들었다. 기분이 매우 좋아진 주교가 다시 물었다. “그럼 여러분 중에 주교가 되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런데 이 말이 끝나자 갑자기 성당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는 것이었다. 당황한 주교님이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머뭇거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공동 집전하는 신부님들이 모두 손을 들고 있었다.
손석준엘리야 전남대학교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http://love.chonnam.ac.kr/~sohnsj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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