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책이 이전에 서정(西征)에 나섰을 때, 진등이 몰래 다시 사신을 보내, 인수를 엄백호의 나머지 일당에게 주고, 후에 해칠 것을 모의하여, 진우가 욕을 본 것을 갚고자 하였다. 손책이 돌아와서는 다시 진등을 토벌했다." <강표전>
"손책은 군사를 보내 광기성(匡琦城)에서 진등을 공격했다. (중략) 적이 이 불을 보고는 놀라서 궤주하니 진등은 군을 이끌고 추격해 1만을 참수했다. 적(賊)은 군사들을 상한데 분노하여 그 후 다시 대군을 일으켜 진등에게로 향했다. 진등은 자신의 병사로 대적할 수 없다고 여겨 공조(功曹) 진교(陳矯)를 보내 태조에게 구원을 청했다. (중략) 적이 이 불을 보고는 놀라서 궤주하니 진등은 군을 이끌고 추격해 1만을 참수했다. " <선현행장>
"..군(郡)이 손권에게 공격받아 광기(匡奇)에서 포위되자, 진등은 진교에게 명하여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하도록 했다. (중략) 조조는 그래서 구원병을 파견했다. 오나라 군대가 이미 물러났는데도 진등은 여러 곳에 복병을 두고 병사들을 인솔하여 추격하여 오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시켰다." <위서 진교전>
"건안 5년(200), 조공이 관도에서 원소와 서로 대치했는데, 손책에 몰래 허도를 습격해 한의 황제(헌제)를 맞이하려 했다. (중략) 몰래 병사를 조련하고, 여러 장수들을 나눠 배치하였다. 출발하기 전에 옛 오군태수 허공(許貢)의 빈객들에게 살해되었다." <오서 손책전>
손책이 진등에게 격파되었다는 내용은 선현행장이라는 듣보급 기록에서만 나오는데
진교전에 따르면 손책이 아니라 손권 시절의 일(201~207)이고 그마저도 조조의 지원을 받아 격퇴한 거.
다만 강표전에서 손책이 진등을 토벌했다는 부분도
손책이 광릉으로 쳐들어갔다기보다는 엄백호 잔당 등에게 지원군을 보낸 진등군을 토벌했다는게 맞을듯.
그 이후 쳐들어갔다가 발린거 아님? 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유훈 토벌로 추정되는 서정(西征) 시기가 199년이고 손책 사망이 200년인데
불과 1년 남짓도 안되는 기간동안 엄백호 잔당을 토벌하고 광릉 원정을 2번이나 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움.
설령 광릉 침공이 있었더라도 2만(1만+1만) 피해 이런건 있을수도 없는 것이
8년뒤 손권이 적벽전투에서 동원한 병력이 2,3만임 ㅋㅋ
진등에게 2만이나 참살될 정도면 손책군은 한동안 재기가 어려울 정도인데
돌아와서 태연히 사냥을 즐기고 허도습격을 계획했다?
이건 손책이 거의 실성한 수준의 행보로 말도 안되는 얘기임.
물론 손권 시절이라도 207년 이전이라면 그정도 피해는 엄청난 타격이라 역시 말이 안됨.
결론 - 진등과 싸운건 손권일 가능성이 높고, 피해가 만萬 단위일 가능성은 낮다
첫댓글 손권이 제대로 병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음에도 그 병력을 동원했던 것인데 피해가 그 정도였으면 적벽에서 그 병력을 동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될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