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장군 나희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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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시절 장성급 만찬자리에서 나희필 장군이 인솔하는 부대의 모범적인 상황보고를 받고 기분이 한껏 고무된 박 대통령이 나 장군에게 친히 가득 부어준 술잔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대통령이 따라준 축하주를 어찌해야 좋은가? 대통령은 술잔을 들고 나희필 장군이 술을 받아 마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1분이 한 시간처럼 길었다.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나 장군은 "각하! 저는 술을 못합니다. 저에겐 사이다로 한잔 주십시오!" 박 대통령은 난감한 표정으로 나 장군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 날의 이 순간을 지켜봤던 한 장군은 이렇게 회고했다.
"마치 폭탄이 터지고 난 후 엄청난 정적 속에 잠긴 것 같았다." 대통령이 친히 술을 따라 내민 술잔을 딱 잘라 거절한 사례가 있었을까? 대통령의 굳은 표정을 본 국방 장관이 순간 벌떡 일어나 "각하, 나 장군은 원래 술을 못합니다. 그 잔은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하고 잔을 뺏다시피 하여 단숨에 마셔 버렸다. 대통령의 체면 손상! 그 위기의 순간을 국방장관의 기지로 일단 넘어갔지만 만찬장의 분위기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만찬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대통령은 의기소침해 있던 나 장군에게 다가 가더니 "너야말로 진짜 기독교인이다."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만찬장을 떠났다. 아마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공식 만찬 석상에서 축배를 거절을 당한 예는 이때 말고 전무후무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날 만찬이 끝났을 때 박종규 경호 실장이 나희필 장군에게 다가와
"선배님 해도 너무 하셨습니다. 꼭 그렇게 각하에게 망신을 주었어야 합니까? 국군의 통수권자요 일국의 대통령께서 손수 축하의 술잔을 권하면 정중히 받아서 입잔이라도 하는 척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분초를 따지며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과 얼굴 표정 하나하나까지 살펴야 하는 경호 실장으로서 이 날 일촉즉발의 그 순간의 초조함과 고뇌가 어떠했을 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이 떠나간 후 선배 장군들이 나 장군에게 찾아와 군 통수권자 앞에서 너무 경솔했다는 질책을 했다.
"이 사람아 별을 하나 더 달 수 있는 하늘이 준 8년 만에 찾아온 기회인데, 왜 그렇게 미련한 짓을 했나? 내일 일찍 책상 정리나 하게.”
사단장 관사로 돌아온 나 장군은 정작 매우 불안해야 될 자신의 마음이 오히려 평안함을 느끼면서
"내가 과연 이런 신앙에 대한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내일 당장 청와대에서 어떤 책벌이 떨어진다 해도 괘념하지 않겠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나의 앞날을 책임져 주시겠지. 내가 육사를 졸업할 때 구대장께서 장교가 되어 술을 마실 줄 모르면 출세를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러나 나를 이렇게 장군까지 진급시켜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라고 자위 하면서 나 장군은 취침 전 이날 있었던 일을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렸다. 신앙인으로서 일생을 사는 동안 술을 가까이 하는 삶보다 말씀을 가까이 하여 말씀을 의지하는 삶이 더 신실한 삶이라는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 확신하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군복을 벗을 것이라 마음을 비우고 있었던 나 장군은 아침이 되자 책상 정리를 끝내고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문책은 오지 않고 오히려 별을 하나 더 달고 소장으로 진급, 육군본부 작전 참모부장으로 영전되었고 다시 3군 사령부 창설의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이끄심이 아니겠는가!
나희필 장군의 군대생활에는 아무도 모르는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월남전이 치열할 때 우리나라 장성들과 고위급 인사들이 월남으로 갈 때는 꼭 대만의 한 호텔에서 1일 숙박을 하는 게 상례였다. 잠이 들 무렵 호텔 지배인이 나 장군 방을 노크 하더니 정중히 인사를 하고 책 한 권을 건넸다. 여자들의 나체 사진첩이었다. 한 사람 골라 주시면 보내 주겠다고 했다. 돈은 출장비에서 계산이 다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나 장군은 이를 거절하고 내일 새벽 교회를 가야 하니까 교회 위치나 알려 달라고 했다. 그 후 이 호텔 지배인은 한국의 고위 인사들이나 장성들이 이 호텔에 유숙할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호텔 건립 이래 그렇게 청렴한 사람은 과거도 지금도 오직 한국의 나 장군 한 사람 밖에는 없었습니다."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이 그것도 공짜로 수청(?)을 들겠다는 아가씨와 하룻밤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보낼 수도 있었는데도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평소의 믿음이 그날 밤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했다는 것이다.
나희필 장군이 제대 후 어느 날 밤에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보부의 차장보 자리의 인선문제로 며칠 밤을 지새 던 김재규 부장은 문득 나희필 장군이 생각나 새벽 두 시에 전화를 했다. "나 장군이야 말로 바로 이 자리에 앉을 가장 적임자요.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시오." 당시 이 차장보 자리는 중앙 정보부의 막대한 예산 집행에 관여하는 요직이기 때문에 청렴결백이 요구되는 인물을 추천해야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 수가 있었다.
김재규 부장의 보고를 받고 난 박정희 대통령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일국의 국가 원수가 친히 권하는 축하의 술잔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한 믿음의 장군 나희필이야 말로 그 어떤 압력도 부정도 유혹도 거부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잘 추천했다."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고 전해졌다. 또한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도 나희필 장군에 대한 칭찬을 자주했다. 얼마 후 대통령은 나희필 장군을 장관급인 비상 기획원 위원장 자리로 영전시켰다.
그런데 만일 이때 영전이 안 되었더라면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만찬의 자리 대통령시해 현장에 나희필 장군은 김재규와 함께 꼭 참석을 해야만 되는 확정적 인물이었지만 하나님의 가호로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장로인 나희필 장군은 박 대통령이 비명에 쓰러진 14년이 지난 1993년 9월 16일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나 장로는 임종을 앞두고 새문안 교회 김동익 목사의 눈물의 기도를 받는 자리에서 오히려 목사를 위로하면서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잘 보필하지 못하고 먼저 떠납니다.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 목사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찬송가 455장을 좀 불러 주시겠습니까?"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청초한 가을 백합화처럼 젖먹이가 어머니의 품 안에서 포근히 잠든 모습처럼 그는 허물 많은 이 세상을 미련 없이 하직하고 너무나도 편안한 모습으로 두 팔을 활짝 펴시고 이제는 그만 나에게로 오라 부르신 주님의 품 안에 안겼다. 정도의 길을 간 사람에게는 결코 후회할 일이 오지 않는 법이다.
오늘날 타락한 목회자, 수치스러운 정치꾼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며 본받아야 할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이런 역사로 대한민국이 기록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좋은 일만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참전용사 슈퍼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