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적봉 밑에 둥지를 튼 첩첩한 산주름 속의 산사
~ 북한산 노적사(露積寺)
노적봉이 더없이 깨끗하여 티끌 하나 없고
만고의 청풍이 노적봉을 불어와 맑고 밝은 기운 돌아오는구나
산영루를 던지고 험악한 산길을 이리저리 찾아 북으로 가면
세 길쯤 되는 돌에 백운동문이라 새겨져 있어
돌길을 따라 진국사 절문에 당도하니
붉은 나무와 흰 돌이 구렁을 이루며 물소리 맑게 들리어라
*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李德懋)가 지은 시로 진국사는
지금의 노적사이다. |
북한동역사관에서 북한산성계곡을 따라 30분 정도 올라가면 중성문(中城門)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 3분 정도 가면 왼쪽에 노적사로 인도하는 길이 살짝 손을 내밀고, 그 길을 오르면 노적
봉(露積峰)
밑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노적사가 모습을 비춘다.
노적사는 조계종(曹溪宗) 소속으로 1712년 성능(性能)이 창건하여 진국사(鎭國寺)라 했다.
성
능은 18세기에 활동했던 승려로 숙종(肅宗) 때 승군(僧軍)의 대장인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
에 임명되어 북한산성 보수공사에 참여했다. 그는 산성 안에 있는 중흥사(重興寺)와 태고사를
보수하고, 노적사<현재 상운사(祥雲寺)>와 서암사(西巖寺) 등 절 10곳을 지어 북한산 승병의
보금자리로 삼았다.
또한 중흥사와 태고사에 30년간 머물면서 북한산성과 북한산(삼각산)에 있는 절, 유적, 행궁
(行宮), 관청, 기타 여러 시설 등을 정리한 '북한지(北漢誌)'를 작성하기도 했다.
창건 이후 이렇다 할 내력(來歷)도 남기지 못한 채, 감쪽 같이 사라졌는데, 아마도 중흥사(重
興寺)와 국녕사(國寧寺)가 사라진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반에 화재나 자연재해로 강제로 문
을 닫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터만 아련히 남아있던 것을 1960년 승려 무위(無爲)가 여러
신도의
도움으로 절을 다시 짓고 노적봉
밑에 있다는
뜻에서 노적사라 하였다.
1977년 현 주지인 종후가 재정을 털어 절을 크게 확장시켜 삼성각과 나한전, 종각, 요사 등을
새로 세웠으며, 대웅전을 크게 손질했다.
2000년 12월에는 노적사의 오랜 내력이 인정되어 전
통사찰 201호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렸으나, 2002년 6월 불의에 화재로 종각과 요사가 전소되
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2006년 4월 종후가 히말라야산맥에 묻힌 네팔 팔탄타쉬 지하초사에서 부처의 진신사리 7과를
기증받았는데, 2009년 극락전 뒤에 3층사리탑을 세우고, 극락전을 적멸보궁으로 이름을 갈았
다.
그리고 삼보당 2층을 대웅전으로 삼았다.
경내에는 법당(法堂)인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나한전, 대웅전, 삼성각, 동인당 등 5~6동의 건
물이 있으며, 고색의 때는 진작에 녹아내려 소장문화재는 없다. 다만 조선 후기에 조성된 돌
사자상이 있으니 잘 찾아보기 바란다.
절 배후에는 인수봉을 닮은 노적봉이 든든한 모습으로 절을 지켜주고 있으며, 인근 태고사와
비슷하게 작고 조촐한 산사로 인적도 별로 없어 조용하고 아늑하다.
* 노적사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331 (대서문길 311-35 ☎ 02-353-5016)
|
▲
노적사 적멸보궁(寂滅寶宮) |
경내로
들어서면 부처의 중생구제를 향한 아련한 메세지가 담긴 범종(梵鍾)의 보금자리 범종
각(梵鍾閣)이 나오고, 그 범종각을 지나면 흙이 곱게 입힌 뜨락이 나온다. 그 뜨락 옆에는 2
층 건물인 대웅전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고, 정면에 보이는 계단 끝에는 적멸보궁이 서쪽을 굽
어본다.
이곳의 법당인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多包)계 팔작지붕 건물로 1960년에 지
어졌다. 허나 공간이 좁고 퇴락하여 1986년에 증축해 지금의 면모를 지니게 되었으며, 처음에
는 대웅전으로 삼았으나, 2007년 극락전으로 현판을 갈았고, 2009년에는 적멸보궁으로 이름을
갈았다. 그러니까 50년 동안 이름을 2번이나 바꾼 셈이다.
극락전 시절에는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주인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아우른 아미타3존상으로 불단을 구성했으나 적멸보궁으로
바뀌면서
그들을 대웅전으로 옮기고 불단 뒤쪽에 창을 내어 진신사리가 담긴 3층사리탑이 보이게끔 했
다. 물론 적멸보궁이니 불단에는 그 흔한 불상도 없다. 그 외에 1987년에 그려진 지장탱,
신
중탱, 아미타후불탱 등이 내부를 구석구석 수식한다. |
▲ 노적사 대웅전(大雄殿) |
남쪽을 바라보며 자리한 대웅전은 2층짜리
팔작지붕 집이다. 원래 삼보당(三寶堂)이라 불렸으
나,
2층을 새롭게 손질하여 대웅전으로 삼았으며, 극락전에 있던 불상을 옮겨왔다. 1층은 승
려의 생활공간인 요사(寮舍)로 쓰이고 있으며, 지하1층에는 공양간이 자리해 있다. |
▲ 노적사 동인당(東印堂)
예전 지장전(地藏殿)으로 지금은 요사와 선방(禪房)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노적사 나한전(羅漢殿) |
적멸보궁의 우측 옆구리로
들어서면 나한전이 나온다. 나한전은 부처와 그의 열성 제자인 나
한(羅漢)을 봉안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원래 그 자리에는 뒤쪽으로 물러난
삼성각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에 철거하여 나한전을 새로 지었으며, 건물
외벽을 수식하는
벽화는
2002년에
완성을 보았다. 건물 밑에는 2개의 샘터가 있는데, 노적봉이 아낌없이 베푼 샘물이 콸콸 쏟아
져 나와 중생의 목마름을 쿨하게 해결해준다.
(왼쪽 샘물은 일반인들도 마실 수 있으나, 오른쪽 샘물은 예불용으로 아무나 마실 수 없음) |
▲ 나한전 내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가지각색의 모습을 지닌 나한상이 빼곡히 자리를
채우고 있다.
▲
나한전 뜨락에 자리한 약사여래좌상과 지구를 든 석조미륵불
▲ 성림당 월산대종사(聖林堂 月山大宗師) 기념비와 3층사리탑 |
나한전 뜨락 우측에는 약사여래좌상과 석조미륵불이, 좌측에는 3층사리탑과 근래에 지어진 월
산대종사 기념비가 자리한다.
석조미륵불(彌勒佛)은 원래 3층사리탑 옆에 있었으나 월산 대종사 기념비를 세우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절을 빛낸 월산이 석조미륵불보다 우선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손에는 동그
란 무엇인가가 들려져 있는데,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지구를 위
/아래로
구분하는 경도와 위도가 나와있으며, 중간에 우리나라가 선명하게 새겨져 눈길을 끈
다. 마치 선서를 하듯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한 모습이 충주 미륵리절터에 있는 미륵리석불
(彌勒里石佛)을
연상케 한다. |
|
◀ 석가여래의 진신사리가 담긴 3층사리탑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 애태우던 노적사의 새
로운 명물로 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담겨져 있다.
노적사 주지인 종후는 2006년 네팔에 있는 팔
탄타쉬 지하초사에서 부처의 진신사리 7과를
선물
받았다. 그래서 2009년에 3층석탑을 만
들어 사리를 봉안했고, 그 곁에 진신사리 기
증 증명서를 세웠다.
탑의 모습은 불국사의 석가탑(釋迦塔)과 닮은
꼴로 근래 들어 이 땅에 부처의 사리를 담은
절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니 과연 어디까지가
진품인지 모르겠다. |
▲ 인공 바위로 이루어진 노적사 스타일의 삼성각(三聖閣) |
나한전에 이르면 '경내는 이게 전부구나, 더 이상 없겠지' 싶은 마음에 발길을
돌리기가 쉽다
.
바로 나한전이 뒤를 고스란히 가렸기 때문이다. 또한 언뜻 보아도 그 뒤에는 아무 것도 없
을 것처럼 보인다. 허나 그것은 함정이다. 나한전 옆구리를 지나면 그 뒤쪽에 전혀 불전(佛殿
)으로
보이지 않는 인공 바위로 울퉁불퉁 조성된 공간이 나온다. 얼핏 봐서는 무슨 창고가 아
닐까 싶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에 '삼성각'이란 현판이 걸려있어 건물의 정체를 두고 아리
송에 빠진 중생을 깨우치게 한다.
예전에는 천막으로 크게 둘러 정말 창고나 실내 체육공간처럼 보였는데, 돈 좀 쏟아부었는지
천막을 걷어내고 인조 돌을 더덕더덕 붙여 놀이공원의 인공폭포나 놀이시설처럼 정말 어색하
게도
만들어버렸다. 차라리 조촐하게 작은 기와집을 올려 삼성각으로 삼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은데, 전혀 불전의 품격이 보이질 않는다.
원래 삼성각은 나한전 자리에 1963년에 지어진 팔작지붕 건물로 동인당으로 바뀐 지장전과 비
슷한 규모를 지녔다. 허나 그런 삼성각을 부시고 나한전을 지었는데, 그 뒤쪽에 대충 천막으
로 자리를 닦고 삼성각으로 삼았으며, 근래에 인조 돌을 덧붙여 부조화의 공간이 되버린 것이
다. |
▲ 석굴 같은 분위기의 삼성각 내부 |
삼성각 내부는 없어 보일 것 같은 외부와 달리 넓고 아늑하다. 불단에는 칠성(七星)을
비롯해
독성(獨聖,
나반존자)과 산신(山神)이 석상으로 자리해 있으며, 그들 뒤에는 커다란 돌이 비
스듬히 자리해 있는데,
그 모습이 그들을 덮칠듯 아찔해 보인다. 허공에는 중생의 소망을 한
아름씩 담은 고운 연등들이
환상적인 색채를 내며 내부를 환하게 비춘다. |
▲ 노적사에서 섭취한 점심공양의 위엄
흰쌀밥에 갖은 나물과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는 이 땅에 흔한 절 공양밥이다.
밥과 함께 국도 제공되었는데, 맛도 괜찮고 노적사의 인심도
훈훈하여
배불리 먹고 갈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떡도 얻을 수 있음
(점심시간은 12~13시, 일반인도 공양 가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