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봄날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원장님이 부르시더니 어르신 문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돌아오는 어버이날 자식들이 찾아왔을 때 선물로 주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은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없어 아프지만, 그분들도 소싯적에는 문학소년 소녀이었을 것이다. 가는 봄날을 멍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애처로워 문집을 만들겠다고 했다. 점점 잊히는 기억의 한 자락을 글로 잡아 두는 것도 그분들에게 뜻있는 일이 될 것 같았다.
문집을 만드는 일은 시작부터 어려웠다. 글을 모르는 분들이 계셨고 모두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었다. 그분들의 생각을 꺼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특히 글을 모르시는 분들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봐 어깃장 놓기가 일쑤였다. 특히 구씨 할머니는 “그깟 것 해서 뭐해”를 후렴처럼 사용하는 분이다.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없을 때 꼭 그 말을 사용했다. 문집을 만들어야 하는 기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난감했다.
다행이라면 다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다. 애창곡 한두 곡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이 노래하면 모두 손뼉을 치며 집중했다. 그분들이 좋아하는 트로트를 가지고 이야기 문을 열면 될 것 같았다. 구씨 할머니의 ‘아씨’라는 노래로 시작했다. 방금 한 말도 잊어버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 분이 노래는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부르는 것이 신기했다. 노래 가사 중에서 ‘꽃’, ‘가마’를 소재로 뽑았다. 글쓰기가 귀찮은 분들은 이야기를 해주면 내가 적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구씨 할머니의 “그깟 것 해서 뭐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열일곱에 시집을 갔다. 몇 년 후 남편이 군대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평생 시부모님 모시고 어린 자식들 건사하느라 꽃 볼 시간 없었다. 그것이 습관이 되었는지 평생 꽃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모두 얼레에서 실을 토해내듯 사연들을 이야기했다. 모두 의식의 흐름대로 꽃이나 가마에 관해 말했다.
가마를 타고 가다가 오르막에서 가마꾼이 “올라갑니다” 말하면 새색시는 몸을 앞으로 속여 중심을 잡고 “내려갑니다.” 말하면 몸을 뒤로 젖혀 중심을 잡았다는 이야기는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노인 분들은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이야기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나는 할머니 세대의 문화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문집 만드는 일은 순풍에 돛을 달았다.
어버이날 행사는 노인들에게 종이로 만든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줄 머리핀이나 과자를 샀다. 그리고 먹을거리를 사서 가족과 함께 먹었다. 노인들의 얼굴이 봄볕이 비쳤다.
액세서리 판매를 맡아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내 앞으로 왔다. 누구를 많이 닮은 듯했다. 추 씨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남자는 추씨 할아버지의 시가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아버지가 정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남자의 눈이 금세 촉촉해지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추씨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던 날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부산에 사는 큰아들이 자꾸 오라고 하는데,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열아홉에 꽃보다 예쁜 열여섯 처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는데 철없어서 한량같이 살았다. 대화도 중 한숨을 쉬기도 했고 한동안 말을 끊었다가 이어가기도 했다. 환갑이 되어서야 불쑥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더란다.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갚으려고 아내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것이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먹먹하다 했다. 외로울수록 그리운 사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운 사람과 살던 집이라 떠날 수 없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은 날마다 부산으로 가자고 조른다고 했다. 추씨 아저씨의 구술은 ‘이유’라는 제목을 달고 그대로 시가 되어 문집에 실렸다.
“ 난 그런지도 모르고...”
아들은 긴 세월 동안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들은 큰집에 홀로 계시는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서 편하게 일을 할 수 없었다. 속사정을 모르는 이웃은 아버지를 혼자 두게 한다며 책망까지 더했다. 아버지가 살던 집을 떠날 수 없다며 화를 낼 때마다 아들은 아버지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야속한 마음에 큰 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눈물 너머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이 차츰 밝아졌다.
삶의 마지막 계절을 걷는 노인들에게는 지나간 날이 다 봄날인 듯했다. 신산했던 날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미소를 지었다. 살아보니 앉은 자리가 꽃자리였다는 말이다.
어르신의 문집을 꺼내 읽는다. 그날의 모든 것이 봄날처럼 따뜻하다. 어쩌면 어르신들도 어느 해인가 아들 손자를 노인주간보호센터로 초대했던 날을 떠 올릴 것이다. 자신이 쓴 시를 보이며 맛있는 점심을 자식들에게 대접했던 그날이 봄처럼 흐르고 있을 것이다.
첫댓글 꽃 같이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니신 이미경 부회장님!
더 이상 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제부터는 사람처럼 아름다운 꽃이라고 불러 주심이...ㅎ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과 빛바랜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 아버지를 기억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힘드셨는지 서로 눈물을 닦았지요.
그게 자식들의 형벌이나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내 아들 역시 그렇게 살겠지요
갑자기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장하다, 이미경 선생님!
훌륭하다, 이미경 선생님!
또 한편으로는 다시 주위를 살펴봅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실제 모습이 내 느낌과 무척 다를지 몰라.'
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만,
제가 군대 있을 적에 깜짝 놀랐습니다.
'우와,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래도 최전방 부대에는 나름대로 선별을 해서 배치한 사병들인데,
기본 어휘조차 모르는 이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어요.
이후 제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아무리 음란 저속 천박의 극치로 내달리는 책을 읽더라도 뭐라고 하지 말자.'
문맹자라고 해서 모두 몰지각한 건 아니지만,
책을 안 읽으면 장말 곤란한 사태가 생기겠다....
이러니까 한 해 동안 책 1권도 읽지 않는 성인들이 절반이 넘는다는 통계에
저는 심각하다 여깁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의지를 성찰하고 설명할 능력은 없으면서
뭐가 뭔지도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허둥댈 때
인간은 어떻게 하는가?
남자는 그저 완력을 믿고 처자식을 상대로 폭언이나 주먹질로 정나미 떨어지게 하기.
여자는 죄 없는 남편을 상대로 쫑알쫑알 잔소리로 신세 한탄하게 하기
혹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있음.
예전과 달리 문맹인이 점점 늘어 납니다. 저 역시 매일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 문맹인 중 한 사람입니다.
비싼 휴대폰은 아들이 사 줘서 가지고는 다니지만 수 많은 기능을 알지 못한답니다. 1학년1반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이미경부회장님 글을
읽으니 전혀 남의 일같지가
안습니다 그려. 별 사람
있습니까? 누구나 다 비슷
하게 늙어가고 다 비슷하게
생각하고 다 비슷하게 앓으며 죽어갑니다.
의미있는 일, 당사자에게는
더 소중한 일을 해내신 부회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남평 선생님
얼핏 보면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늙어 갑니다. 하지만 깊게 오래 보면 남평 선생님처럼 익어가는 삶을 사시는 분도 있고 오히려 낡아 가는 삶도 있었어요.
후배들을 위해 열심히 카페 활동을 하시는 선생님 짱이십니다.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기록되지 않을 누군가의 삶을 기록해 주는 일이라고,
해서 낮은 곳에 머물던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하려는 은퇴 교수님을 뵌 적이 있어요
이미경부회장님의 일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셨어요.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낮은 곳에서 아프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이 어두워 지는 것이 단점입니다. 점 더 밝게 들러내고 싶은 게 제 욕심입니다.
가슴 뭉클합니다.
얼굴도 이쁜 사람이 마음까지 ~. ㅎ
소진 선생님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시고 계시지요. 더불어 수필가 협회의 발전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고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 밤중에 눈이 뜨여졌습니다. 한동안 끝말잇기 방에만 기척을 내고 회원 수필 방에는 들어오지못했지요. 국화 닮은 이미경선생님 글 도 만났습니다. 얼굴만 예쁜게 아니고 마음도 예쁜 선생님~~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