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왕국 유다의 멸망과 이로 인한 고통을 바라보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와 자신을 동일시(同一視, Identification)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레미야도 남왕국 유다의 백성이었기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예레미야는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구덩이에 던져져 죽을 뻔했던 사건(렘 38:1~13)을 떠올리며, 그 사건을 빗대어 남왕국 유다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55절). 자신이 남왕국 유다의 고관(高官)들에 의해 모함을 받아 깊은 구덩이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간구했듯이 바벨론에 의해 마치 구덩이 빠진 것처럼 멸망하여 허우적거리는 유다 왕국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구원을 간구합니다(57절). 물론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던져졌던 것과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멸망하게 된 것은 서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다가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구덩이에 던져진 것이고,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행악하였기에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과 바벨론 제국만 서로 빗대면서 바벨론도 악한 족속이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주변 나라들을 자기 발아래 두려는 야심(野心)에 의해 유다 왕국을 침공하였기에 억울하고 원통하다고 호소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58절, 59절). 물론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전하면서, 바벨론은 단지 유다 왕국을 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손에 들려 사용되는 도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하나님 앞에 고발합니다. 바벨론은, 마치 예레미야가 유다 왕국의 고관(高官)들의 모함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졌듯이 유다 왕국을 치기 위해 모해(謀害, Schemes)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유다를 쳤다고 호소합니다(60절~63절). 모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마하솨바”(מַחֲשָׁבָה)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성경에서는 “꾀”, “계교”(計巧). “계책”(計策), “계획”(計畫) 등으로 번역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유다 왕국을 치면서 바벨론은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유다 왕국을 침공할 온갖 이유를 만들어 내었었습니다. 유다 왕국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기는 하지만, 바벨론도 하나님 앞에 죄악으로 가득하며 비열(卑劣)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호소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입니다. 유다 백성의 죄악으로 인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도 예고하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하실 것이라는 것도 예언하셨었습니다(렘 51:36~64). 그래서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유다 왕국에게 행한 그대로 그들에게 보응(報應)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바벨론이 승승장구(乘勝長驅)하면서 기세(氣勢)가 등등(騰騰)한데, 그들을 더욱 거만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65절). 65절에서 “거만한”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메긴나트(מְגִנַּת־)라는 단어로 뭔가를 씌우는 것, 가리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 성경의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라는 말씀은 새번역 성경에서는 “그들의 마음을 돌같이 하시고”라고, 공동번역 성경은 “그들이 고집을 부리게 하시고”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도 듣지 않고, 주변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강퍅(剛愎)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곧 거만하고 교만해져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거만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멸망에 이르게 되기에(65절, 66절), 예레미야는 기고만장한 바벨론이 거만하여 하나님의 저주로 파멸에 이르게 해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악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하게 된 것은 수치 중의 수치입니다. 그리고 너무 큰 고통이 수반(隨伴)되었습니다. 그러한 고통을 바라보며 예레미야는 유다(이스라엘)를 위해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럽게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다(이스라엘)를 위한 예레미야의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56절)라고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잘못과 죄악으로 인하여 내게 찾아온 고통과 아픔을 위해서도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구원을 기도해야 합니다. 더불어 이 시대의 민족과 교회들을 위해서도 예레미야처럼 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죄를 자백하며, 회개해야 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으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회복시켜 달라는 눈물의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이 시대는 그러한 기도가 더욱 절실합니다. 주님, 제가 그러한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