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봉능선, 왼쪽부터 5, 6, 7봉
실바람은 나를 불어 쑥대강이 날리듯 한데 輕風吹我如飛蓬
지팡이 짚고 올라서 영주봉에 이르고 보니 扶藜上到靈珠峯
천 길 깎아지른 절벽은 은하수에 닿은 듯 削壁千丈倚雲漢
아래로 땅을 볼 수 없고 사방이 아득하네 下臨無地迷空濛
한 걸음씩 기어오르니 머리털 거꾸로 서라 攀援寸步髮欲豎
이 신세 허무한 지경에 붙여진 것 같구려1) 身世付與虛無中
처음 바위 구멍을 따라 맨 꼭대기에 오르니 初從巖竅上上頭
외로운 암자가 공중에 덩실 떠 있는 듯한데 孤菴絶□掛浮空
주1) 허무는 흔히 텅 비고 아득한 선경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
(長恨歌)〉 시에 “문득 들으니 해상에는 선산이 있는데, 그 산은 허무하고 아득한 사이에 있
다 하네.(忽聞海上有仙山 山在虛無縹渺間〕”라고 하였다).
―― 허백당 성현(虛白堂 成俔), 「관악산에 올라가 영주암에 이르러 짓다(登冠岳山到靈珠
菴)」에서
▶ 산행일시 : 2018년 8월 19일(일), 맑음, 더운 날씨
▶ 산행거리 : 도상 11.6km
▶ 산행시간 : 6시간 39분
▶ 교 통 편 : 전철과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27 - 서울대학교 입구, 산행시작
06 : 38 - ┣자 갈림길, 돌지 않는 물레방아
07 : 05 - 돌산(△232.7m)
07 : 46 - 칼바위
07 : 53 - 깃대봉(446m)
08 : 00 - 장군봉(409.8m)
08 : 21 - ╋자 갈림길 안부
08 : 40 - 깃대봉(445.6m)
08 : 56 - 거북바위, 임도
09 : 10 - 삼성산(三聖山, 480.9m)
09 : 34 - 무너미고개
10 : 00 - 팔봉능선 제1봉(350m)
11 : 09 ~ 11 : 30 - 관악산 주릉, 팔봉능선 제8봉(549m), 점심
11 : 47 - 육봉능선 제6봉(527.9m)
12 : 28 - 261m봉, 산불감시초소
12 : 40 - 백운사
13 : 06 - 정부과천청사역, 산행종료
1. 관악산
▶ 돌산(△232.7m), 삼성산(三聖山, 480.9m)
우리 같은 육체노동자들에게 주5일 근무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일당 임금이 가급 되
는, 그래서 사용자가 특별히 시혜를 베푼다고 여기는 휴일근무명령을 마다하기 힘들다.
주52시간 근무가 한편에서는 밑바닥 노동자들에게는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이 없
는 삶’을 강제한다. 그까짓 최저임금 시급 7,530원을 가지고는.
늘상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일상이라 1주일에 하루라도 산에 가지 않으면 그 1주일을 버티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대는 것은 너무 따분하다. 산에 가는 것이
곧 쉬는 것이다. 진행할 산행코스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면 설레기까지 한다. 오늘 하루 산행
은 1주일을 버티어내기 위해서이고, 1주일은 오늘 하루 산행을 위해서 버티어낸다.
아마 밤낮 없는 무더위 때문이리라. 여느 때는 등산객들로 북새통이던 서울대 입구 돌아 관
악공원 대문 앞이 한산하다. 이대로 따라 쭉 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사뭇 궁금하지만 능
선을 얼른 오르기 위해서 돌지 않는 물레방아가 있는 ┣자 갈림길에서 오른쪽 골짜기의 박석
깔린 길로 든다. 숲이 좋은 ‘도란도란 걷는 길’이라고 명명하였다.
마른 골짜기 옆의 완만한 오름길은 도열한 장승 지나고 솟대군을 지난다. 군데군데 길 옆 배
드민턴장은 잡초 무성한 공터로 변했다. 가파른 왼쪽 사면을 데크계단으로 잠깐 오르고 소나
무 숲이 좋은 능선 길이 시작된다. 너른 둘레길과 함께 간다. 가파른 돌길이던 오르막은 긴
데크계단으로 덮었다. 둘레길은 산허리 왼쪽으로 돌아가고, 나는 물길이기도 한 깊게 패인
소로 따라 직진한다.
일로직등 한답시고 사석이 부슬거리는 미끄러운 둔덕을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고개 드니 대
슬랩이 나타난다. 굵은 밧줄이 달려 있다. 매만지는 암벽이 따스하다. 두 피치로 오른다. 누
군가 암벽에 페인트로 ‘옥문봉’이라고 써놓았다. ‘돌산’이다. 전망이 좋은 아주 멋진 돌산이
다. 서울 시내가 운해에 가렸더라면-그걸 기대하고 새벽 걸음하여 왔다-하늘금인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천마산, 백봉이 더욱 가경이겠다.
북한산을 ‘화산(華山)’이라 하고 관악산은 ‘화산(火山)’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관악산
의 전체적인 모습이 불꽃이려니와 1,600여개에 달한다는 봉우리 기암마다 활활 타오르는 불
꽃의 모습이다. 이 돌산만 해도 그러하다. 바윗길 살금살금 내려 야트막한 안부에서 둘레길
과 만나고 소나무 숲이 좋은 ‘도란도란 걷는 길’을 함께 간다.
298.9m봉 넘고 ╋자 갈림길이다. 왼쪽은 폭포정, 오른쪽은 호암사 가는 길이다. 직진 주릉은
가파르고 긴 돌길 오르막인데 전에 없던 데크계단으로 덮어버렸다. 대역사다. 가파름이 누그
러질 즈음에 암릉이 나오고 곰바위다. 곰바위는 대체 어느 바위를 말하는지 알아보기 어렵
다. 이 다음 칼바위는 직등하려다 도중에 그만 꼬리 내린다. 나이 들어 느느니 겁이다.
2. 돌산에서 바라본 관악산
3. 멀리 왼쪽은 북한산 보현봉 문수봉, 그 사이는 백운대, 오른쪽 멀리는 수락산
4. 가운데 멀리는 북한산 백운대
5. 돌산(△232.7m)
6. 칼바위
7. 멀리 가운데는 천마산
8. 멀리 왼쪽은 안양 수리산, 가운데는 수암봉
9. 관악산
10. 앞 왼쪽이 (작은)삼성산(478.6m), 멀리 가운데는 수리산
암릉길도 데크계단으로 덮어 암봉인 408m봉을 멋쩍게 오른다. 408m봉은 빼어난 경점을 자
랑하는 암봉이다. 그 바로 위쪽의 장군봉은 울창한 숲속에 묻혀 있어 한낱 둔덕처럼 지나친
다. 장군봉 넘고 넙데데한 내리막에 등로가 여러 갈래라 마루금 잡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
쑤셔도 보고 인적이 많고 적음을 비교 계량하여 내린다.
연속하여 만나는 안부는 ╋자 갈림길이 났다. 왼쪽의 모든 길은 서울대로 통한다. 돌계단 오
르고 우회로를 오른쪽 산허리로 보내고 깊게 패인 소로를 따라 직등한다. 거의 수직인 절벽
과 맞닥뜨린다. 굵은 밧줄이 달려 있다. 밧줄에 매달려 오르려니 팔심이 부친다. 밧줄 난간
넘어 암릉에 이르고 손맛 한껏 느끼며 기어올라 태극기가 꽂혀 있는 깃대봉(445.6m) 정상
이다. 이 깃대봉 또한 불꽃의 모습이다.
깃대봉 암릉을 길게 내리고 소나무 숲속 잠깐 지나면 통신대 가는 차도와 만난다. 삼막사 갈
림길 지나고 차도 따라 10m쯤 오르면 삼성산은 오른쪽 소로가 간다. 펑퍼짐한 산허리 두어
구비 돌다가 바윗길을 한 피치 바짝 오르면 능선이다. 왼쪽으로 방향 틀어 암릉 오르면 오석
의 아담한 정상 표지석이 반기는 삼성산 정상이다.
조선말의 문신이었던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삼막사와
삼성산의 유래가 보인다.
“관악산은 시흥과 과천의 경계에 있다. 그곳에 삼막사(三幕寺)라는 절이 있는데, 삼한 시대
에 지어진 고찰이다. 신라 승려 원효(元曉)는 성이 설(薛)이고, 의상(義湘)은 성이 아(牙)이
고, 윤필(尹弼)은 성이 윤(尹)이니,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다. 관악산에서
나누어 살았는데 원효의 일막(一幕)은 지금 폐허가 되었고, 의상의 삼막(三幕)은 아직도 남
아 있으며, 윤필의 이막(二幕)은 염불암(念佛庵)이다. 이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삼성산(三
聖山)이라고 한다.”
(冠岳在始興果川之界。有三幕寺。三韓古刹也。新羅僧元曉姓薛。義湘姓牙。尹弼姓尹。一
母異父兄弟也。分居冠岳。元曉一幕今只墟。義湘三幕尙存。尹弼二幕念佛庵是也。世謂之三
聖山。)
원효와 의상, 윤필이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형제라고 한다. 윤필의 행적은 아직까
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삼성의 일인으로 추앙받는 점에 비추어 그의 학덕도 매우 높았을 것
으로 추측한다. 양(洋)의 동서를 물론하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지금은 삼성인 그들을
길러낸 어머니가 어떤 분일까 궁금하고 더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11. 앞은 (작은)삼성산(478.6m)
12. 앞 오른쪽은 (작은)삼성산(478.6m), 가운데 멀리는 수리산
13. 팔봉능선
14. 무너미고개 가는 도중의 기암
15. 관악산 북서릉
16. 팔봉능선
17. 팔봉능선
18. 팔봉능선
19. 관악산 남릉
▶ 팔봉능선, 육봉능선
삼성산에서 무너미고개 가는 길은 초입이 헷갈리기 쉽다. 통신대 왼쪽 사면의 철조망을 따라
길게 돈다. 더 돌 수 없을 때까지 돌면 전망이 확 트이고 통신대 정문이 나온다. 차도로 내리
다가 차도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차도를 미련 없이 버리고 오른쪽의 풀숲에 가린 소로를
잡아야 한다. 외길이다. 구불구불 바윗길을 내리는데 코너마다 전망 좋은 암반이다. 관악산
주릉은 장성 장릉이고, 삼성산의 남서릉, 수리산, 수암봉에 이르는 능선은 장쾌무비하다.
팔봉능선이 여기서는 하찮게 보여도 다가가서 보면 대단한 암릉 암봉이다. 눈부신 조망이 마
침내 멈추는 숲길이 나오면 무너미고개다. 오른쪽 사면을 한 피치 내리면 골짜기 계류다. 이
계류라고 금년 폭염을 견디었을 리가 만무하다. 사장이거나 너덜로 변했다. 내 발걸음에 먼
지가 풀썩 인다. 마른 계류 건너고 팔봉능선 가는 길은 미로다. 그저 직진해야 한다.
완만한 사면을 한참 지나면 슬랩이 나타나고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땀이 눈 못 뜨게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힐 무렵이면 1봉에 닿게 된다. 한때 우리나라 축구의 고질이던 문전처리 미숙과
같다. 상대 골문 앞까지 공을 잘 몰고 간 것까지 좋았는데 정작 슈팅은 지친 나머지 헛발질하
는 식이다. 1봉 바위 턱을 마저 오르자니 가쁜 숨에 씩씩대다 옆길로 빠지고 만다.
팔봉 중 전경은 5, 6, 7봉이 가장 수려하고, 등정 맛은 7봉이 좋다. 좁은 테라스 지나 나이프
릿지를 올라야 하는 손맛은 일미다. 암릉 암봉은 아무렴 한 여름에 올라야 제 맛이 난다. 온
신경을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더위를 느낄 겨를이 없다. 7봉을 내리는 슬랩은 밧줄
이 달려 있어 아무 맛이 없다. 8봉은 다만 바윗길이다. 8봉 정상은 관악산 주릉의 남릉 549m
봉이다.
관악산에 대한 옛 기록은 대단히 많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의 『무오기행(戊午記行)』의 한 대목을 골라 든다.
“금상 4년(1678, 숙종4) 4월 17일 금양(衿陽)에서 이 문충공(李文忠公)의 묘소에 참배하고
이어 관악산(冠岳山)을 유람하였다. 서자하동(西紫霞洞)의 수마제(須摩題)에서 출발하여
불성암(佛性庵)을 지나 영주대(靈珠臺)에 올랐다. 영주대는 세조(世祖)께서 예불하던 곳으
로 관악산의 꼭대기에 있다. 그곳에서 멀리 바다를 바라다보면 중국 연제(燕齊)의 앞바다까
지 보인다. 동자하동(東紫霞洞) 아래 금수굴(金水窟)로 내려오니 골짜기가 붉은빛이었다.
이감정(李監正)을 방문하였다.”
(四年四月十七日。衿陽拜李文忠公墓。仍遊冠岳。自西紫霞須摩題過佛性。登靈珠臺。靈珠
臺者。我光聖禮佛處也。爲冠岳絶頂。望海潮。極燕齊之海。其下東紫霞下金水窟洞赤。訪李
監正。)
금양은 지금의 시흥이며, 문충은 이원익(李元翼)의 시호이다. 미수 허목은 이원익의 손서(孫
壻)이기도 하다. 관악산은 당시 동서남북 네 곳에 자하동이 있었는데, 남자하(南紫霞)는 안
양 쪽이고, 서자하는 삼성산의 삼막사 일대이며, 북자하는 지금의 서울대학교 쪽이고, 동자
하는 과천 쪽이라고 한다. 수마제(須摩題)는 극락세계의 별명으로 ‘안락(安樂)’ 또는 ‘안양
(安養)’이라고 의역되기도 한다. 혹시 미수가 관악산을 올랐다는 수마제가 지금의 안양이 아
닐까.
20. 팔봉능선
21. 팔봉능선 8봉에서 바라본 관악산 주릉
22. 육봉능선
23. 육봉능선
24. 팔봉능선, 오른쪽은 7봉(525m)
8봉 정상의 소나무 그늘 진 암반에서 이른 점심밥을 먹는다. 오늘도 무척 더워 물이 엄청 많
이 먹힌다. 배낭은 탁주, 맥주 등을 포함하여 거의 물로 채웠다. 탁주는 설 녹아 씹어 먹는다.
이제 육봉이다. 8봉에서 암릉길 400m쯤 내리면 Y자 능선 분기봉인 암봉이고, 왼쪽으로 약간
내렸다 오르면 육봉능선의 6봉인 527.9m봉이다. 이 역시 사방 트인 경점인 암봉이다.
육봉능선은 매단 밧줄이 없다는 게 강점이다. 암릉길이 위험하니 돌아가시라는 팻말을 안부
마다 세웠다. 4봉은 넘어오는 암벽꾼의 날렵한 몸동작을 재미나게 감상하고 손맛만 다시다
오른쪽 우회로로 돌아내린다. 5봉의 30m짜리 슬랩 내리막길도 내려다보기만 하고 뒤돌아서
오른쪽 사면으로 내린다. 여기서 길을 헷갈렸다. 우회길이 이랬던가 고개 갸웃하며 인적 끊
긴 골짜기로 빠지고 우왕좌왕하다 인적 쫓아 오른쪽 능선을 잡는다.
육봉능선은 왼쪽 골 건너편이다. 문원폭포도 말랐을 것. 들러볼까 했는데 그냥 내린다. 내가
잡은 능선이 육봉능선보다 더 길뿐더러 내리막이 멈칫한 데는 경점인 암반이고 육봉능선의
봉봉 모습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다. 쭈욱 내리다 잠깐 오른 261m봉은 산불감시망루가 있다.
전망이 끊긴 소나무 숲속에 떨어지고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염불하는 백운사 절집이 나온다.
등로는 대로로 이어지고 육봉능선 갈림길과 만난다. 이골 저골 다 말랐다. 낯이라도 씻고 땀
에 전 옷을 갈아입으려면 정부과천청사역 화장실 신세를 좀 져야겠다.
25. 관악산 남릉
26. 육봉능선에서 바라본 관악산
27. 육봉능선 4봉(495m)
28. 육봉능선 4, 5, 6봉
29. 육봉능선(부분)
첫댓글 관악산 언능 가봐야겠습니다~~
의미가 구절구절입니다...
관악산에서 중국 연제 앞바다까지 보였다는 옛기사가 구라같기만한 오늘날이네요. 요즘 서울산을 산진이형을 통해 가봅니다.
팔봉능선과 육봉능선의 릿지길이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