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바닷가 하숙집 / 이구철
동해안 바닷가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는데
머리카락 휘날리 듯 세찬 바닷바람 부는 날이면
밀려오는 파도가 하숙집을 덮치면 어쩔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흰 거품을 일으키는 고래등만 한 파도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신기함으로 마음이 풀빵처럼 부풀어 올랐는데
어느샌가 서로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바다와 친해졌다
하루는 바다가 하숙집 현관문을 밀고 들어와
내 방 이불 속에 슬며시 몸을 집어넣은 일이 있었다
나는 놀랐지만 이내 웃으며 재미있게 놀다가
서로 끌어안고 자기도 했다
그 후 바다는 수시로 하숙집을 찾아왔는데
차려주는 밥도 잘 먹고 배부르면 배를 둥둥 치며 즐거워했다
심지어는 술 먹고 혀가 꼬부라져 횡설수설한 적도 있었다
나는 바닷가에서 가난하지 않았다
바다가 알려준 대로 나는
갈매기 등을 타고 동해 하늘을 날아다녀 보기도 하고
파도를 배 삼아 바다를 마음껏 질주하고
바닷속 깊이 들어가 고래 뒷덜미를 잡고 고기 몰이를 하기도 했다
가자미, 오징어, 우럭, 숭어 같은 친구들과 사귀게 되어
밥상이 동해 바다로 가득차기도 했다
한번은 낚시를 하다가 방파제를 넘어오는 파도에 맞아 바다에 떨어졌다
밀려오는 파도가 다시 방파제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즈음 수수꽃다리 같은 향기를 가진 여자를 만났는데
난 그녀와 바닷가에서 수평선 뒷편 너머 세계를 이야기하고
바다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 어깨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동해안 바닷가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는데
바닷가 생활의 반 이상은 바다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납작하게 사는 법
바다처럼 천천히 느리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녀가 선물한, 동해 바다를 닮은 스웨터 속에서
갈매기 끼룩거리며 떼지어 날아오르고 있다
첫댓글 <월간 시인> 신인 문학상 수상작 중 한 작품입니다. 교직 처음 발령받은 곳이 강원도 삼척여고. 6년 여 근무를 했는데 청춘을 보낸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삼척 바닷가, 하숙집, 수수꽃다리 향기가 나는 여고생들과의 추억을 섞어 쓴 시입니다.
밝은 느낌 동화같은 산문 시 좋습니다. ^^
동화적 상상력이 생동감 있는 그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바다와 즐기는 그림이 아름답습니다.
함께 바다와 친구가 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