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속의 고사성어 -87
이첨신일(已瞻新日)
[요약] (已: 이미 이. 瞻: 볼 첨. 新: 새 신. 日: 날 일)
이미 새로운 해(권력자)를 보았다는 말로, 뜻을 굽혀 상대에게 귀순하겠다는 뜻. 어떤 일을 이미 결정하여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는 뜻.
[문헌]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내용] 고려의 무신 강조(康兆. ?~1010)가 제7대왕 목종(穆宗. 980~1009)을 살해하고 현종(顯宗)을 세우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현종(顯宗) 원년(1010) 5월, 거란(契丹) 임금이 강조(康兆)가 임금을 시해한 것을 빌미로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묻고자 하였다. 왕이 이를 듣고 강조를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로, 이현운(李鉉雲)과 병부시랑(兵部侍郞) 장연우(張延祐)를 그 부사(副使)로 삼아 적을 막게 하였다.
이에 강조(康兆)가군사 30만을 거느리고 통주(通州)로 가서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였다.11월, 거란 임금이 친히 보병과 기병 40만을 의군천병(義軍天兵)이라 이름하여 거느리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였다. 강조(康兆)는 군사를 이끌고 통주성(通州城) 남쪽으로 나와 전군을 셋으로 나누어 강을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한 부대는 통주의 서쪽에 군영을 두고 삼수(三水)의 합류점에 웅거하였으며 강조는 그 가운데에 머물렀다. 한 부대는 통주 근교의 산에 군영을 세우고 다른 한 부대는 통주성 부근에 군영을 두었다.
강조가 검차(劒車=일종의 장갑차)를 일렬로 배치하여 두고 거란군이 쳐들어오면 곧 검차로 함께 공격하니, 모조리 물리치지 않음이 없었다.
거란군이 여러 차례 물러나니, 강조는 마침내 적을 얕보는 마음이 생겨 사람들과 바둑을 두었다(兆以劒車排陣, 契丹兵入, 則劒車合攻之, 無不摧靡. 契丹兵屢却, 兆遂有輕敵之心, 與人彈棊.).
거란의 선봉 야율분노(耶律盆奴)가 상온(詳穩) 야율적로(耶律敵魯)를 거느리고 삼수의 보루를 격파하였다. 진주(鎭主)가 거란군이 쳐들어오고 있음을 알렸으나 강조는 믿지 않고 말하기를,
“입안의 음식처럼 (적군이) 적으면 좋지 않으니 많이 들어오게 하라(如口中之食, 少則不可宜, 使多入.).”라고 하였다.
다시 보고하기를,
“거란군이 이미 대거 침입하였다.”라고 하니,
강조가 놀라 일어나며 말하기를, “정말인가?”라고 하며 당황하여
마침 목종(穆宗= 강조의 구데타로 죽은 왕)이 그 뒤에 서서 질책하며
“네 놈은 끝났다. 천벌이 강조를 멀리하겠는가?(汝奴休矣. 天伐詎可逃耶?)”라고 하는 것을 본 것 같았다.
강조는 투구를 벗고 꿇어 엎드린 채 거듭 말하기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死罪, 死罪.).”라고 하였다.
말이 아직 끝나기도 않았는데, 거란군이 이미 들어와 강조를 결박한 후 담요로 싸서 운반해 갔고 이현운(李鉉雲)도 사로잡혔다.
거란 임금이 강조의 결박을 풀어 주며 묻기를,
“너는 내 신하가 되겠느냐?(汝爲我臣乎?)”라고 하니
강조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고려 사람인데 어찌 너의 신하가 되겠느냐? (我是高麗人, 何更爲汝臣乎?)”라고 하였다. 재차 물었으나 대답이 처음과 같았으며 또한 칼로 살을 발라내며 물어도 대답은 또한 처음과 같았다.
이현운에게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두 눈은 이미 새로운 해와 달을 보았습니다. 일심으로 섬길 뿐 어찌 옛 산천을 기억하겠습니까?(兩眼已瞻新日月. 一心何憶舊山川?)”라고 하였다.
강조가 노하여 이현운을 발로 차며 말하기를,
“너는 고려 사람으로 어찌 이와 같이 말하는가?(汝是高麗人, 何有此言?)”라고 하였다.
거란은 마침내 강조를 처형하였다.
*강조는 고려사 역적열전에 기록되어있다.
목종(穆宗) 때 중추사우상시(中樞使右常侍)로서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가 되었다. 1009년(목종 12) 김치양(金致陽)이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千秋太后)와 사통해 낳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난을 일으켰을 때, 목종의 명을 받고 궁궐수비를 위해 개경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개경에 도착하기 전 동주(洞州: 현재 황해도 서흥)의 용천역(龍泉驛)에 이르렀을 때 내사주서(內史注書) 위종정(魏從正)과 최창회(崔昌會)가 거짓으로 전한 개경의 소식을 듣고, 자신이 천추태후의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해 다시 본영(本營)으로 되돌아갔다.
한편 천추태후는 군사들이 오는 것을 꺼려 내신을 보내어 절령(岊嶺: 현재 황해도 황주군의 자비령)을 막고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였다. 이러한 사태를 걱정한 강조의 아버지는 종을 승려로 변장시켜 죽장(竹杖) 속에 서신을 넣어 보내 아들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개경에 들어 와 국난을 평정하도록 하였다.
편지를 받자 강조는 목종이 죽은 것으로 인식하고 부사(副使)인 이부낭중(吏部郎中)이현운(李鉉雲) 등과 함께 갑졸(甲卒) 5천인을 거느리고 황해도 평주(平州: 현재 황해도 평산)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왕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 즉시 군사이동을 멈추었다. 이때 여러 장수들이 이제 와서 주저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자 다시 군사를 일으켜 개경으로 들어갔다. 목종을 폐하고 새로운 왕을 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궁궐을 점령한 뒤 황보유의(皇甫兪義)와 김응인(金應仁)을 시켜 김치양 일파에 의해 신혈사(神穴寺)로 쫓겨나 있던 대량원군 순(大良院君詢 : 훗날의 현종)을 데려오게 하였다. 그리고 군사를 보내 도망간 김치양 부자와 유행간(庾行簡) 등 7인을 죽이고, 천추태후의 친속 30여 인을 귀양 보냈다. 또한 목종을 폐위시켜 태후와 함께 충주로 보냈는데 그 도중에 상약직장(尙藥直長)김광보(金光甫)를 시켜 살해함으로써 대권을 장악하였다.
그 뒤 새로운 국가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관제개혁을 실시하였다. 은대(銀臺: 승정원)와 중추(中樞) 남북원(南北院)을 일시에 혁파하고 대신 중대성(中臺省)을 설치해 세 관청의 기무를 모두 이곳에 소속시켰다. 은대와 중추원은 국왕의 측근보좌기구임과 동시에 그 동안의 정치가 모두 이 기관을 통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의 혁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계속된 관직개편에서 자신은 중대사(中臺使)에 오르고 중대부사(中臺副使)에 이현운, 직중대(直中臺)에 채충순(蔡忠順), 상서우승 겸 직중대(尙書右丞兼直中臺)에 윤여(尹餘)를 임명하였다. 이러한 인사조처는 국왕 측근직의 단일화를 꾀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군사권을 배경으로 한 자신의 권력집중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더욱이 1009년(현종 즉위년) 3월에는 이부상서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에까지 오름으로써 당시 제일의 실력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거란의 침입으로 그의 대권은 제대로 행사되지도 못하고 좌절되었다. 1010년 11월, 거란의 성종(聖宗)은 목종을 죽인 죄를 묻겠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워 쳐들어왔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 993년(성종 12)의 제1차 침입 때 강동육주(江東六州)의 영유권을 고려에 넘겨주었다는 것과 고려가 송나라와 화친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이에 그는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가 되어 거란군과 맞서 싸웠다. 거란군이 양규(楊規)와 이수화(李守和)의 분전으로 난항을 겪게 되자 흥화진(興化鎭: 현재 평안북도 의주)을 단념하고 통주(通州: 현재 평안북도 선천)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강조가 이들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다. 강조는 통주성 남쪽까지 내려와 물을 사이에 두고 세 곳에 진을 치게 하였는데 거란군이 중앙을 찌르면 양쪽에서 호응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번번이 승리하였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무기인 검차(劒車: 차체와 바퀴살에 단검을 빈틈없이 꽂아 적의 접근을 막는 2륜전차)를 만들어 거란군을 대파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승리에 자만하여 거란군이 공격해 온다는 보고를 듣고도 경계를 하지 않다가 결국 대항할 겨를도 없이 패하고 말았다. 이때의 패전으로 많은 병사가 죽고, 부장(副將) 이현운, 도관원외랑(都官員外郎)노전(盧戩), 감찰어사(監察御史)노의(盧顗), 양경(楊景), 이성좌(李成佐) 등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
이때 거란의 성종이 자신의 신하가 되어달라고 권유하자, “나는 고려사람인데 어찌 너의 신하가 되겠는가?” 하며 단호히 거절해 고려인의 늠름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반면에 이현운이 성종의 신하가 되겠다고 뜻을 굽히자 발길로 걷어차면서 고려인의 긍지를 잃지 말라고 나무라면서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조 [康兆]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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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첨신일(已瞻新日), 이미 새로운 해(권력자)를 보았다는 말로,
뜻을 굽혀 상대에게 귀순하겠다는 뜻.
어떤 일을 이미 결정하여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는 뜻.
두 눈은 이미 새로운 해와 달을 보았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