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때 : 2007. 08. 04 ~ 08. 10
2. 곳 : 중국 서주, 개봉, 서안, 낙양, 등봉
출국 수속
인천국제항만2터미널에서 본 풍경
인천국제항만2터미널에서
인천국제항만2터미널에서
갑문식 도크에 도착
갑문식 도크에서 바라본 인천국제항만2터미널
갑문식 도크에서 바라본 인천국제항만2터미널
갑문식 도크에서 바라본 인천국제항만2터미널
갑문식 도크에서 바라본 인천국제항만2터미널
갑문을 열어 수위를 맞추고 배가 통과 후 갑문을 닫으며 이런 갑문이 3개 있다
갑문식 도크 옆에 동남아 수출용 자동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
갑문식 도크 옆에 동남아 수출용 자동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
갑문식 도크 주위 스케치
갑문식 도크 주위 스케치
갑문식 도크 주위 스케치
갑문식 도크 주위 스케치
갑문이 열린다
황해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나라의 관문인 인천항
연안부두, 국제항만1터미널등
우리나라의 관문인 인천항
송도에서 영종도를 잇는 교량공사가 한창이고..
역동적인 대한민국이 여기서 보인다
송도에서 영종도를 잇는 교량공사가 한창이고..
송도에서 영종도를 잇는 교량공사가 한창이고..
연운항[롄윈강]이구나!!
자옥란호의 갑판
연운항[롄윈강]의 컨테이너 부두와 크레인
연운항[롄윈강]의 컨테이너 부두와 크레인
우리를 태운 버스가 입국장으로 향하고..
연운항[롄윈강]의 입국장
연운항[롄윈강]
연곽고속도로 : 중국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4000 Km의 도로이며 산업의 동맥
항두 휴게소 : 고속도로 휴게소로 마켙과 식당이 있음
연곽고속도로 : 중국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4000 Km의 도로이며 산업의 동맥
북위 35도이며 부산과 비슷한 위도이다
서주에 들어서며 ; 여기서 저녁 식사를 함
서주는 옛 지명이 팽성이며 항우가 도읍을 한 곳임,
유비가 여포에게 속아 곤욕을 치르기도
서주의 정경
서주의 거리
전국7웅 중의 하나인 위나라의 도읍 대량, 송나라의 수도 개봉[카이펑]이구나~~~
개봉의 아침
관우가 모셔져 있네
강싱유원 호텔의 아침 조회
송나라의 개봉부
송나라의 개봉부
판관 포청천을 아시는가요?
포공호
송나라의 개봉부
송나라의 개봉부의 의문을 지나며..
송나라의 개봉부
우리나라의 한성부나 서울특별시청이라고 이해하시면 됨
개봉부 부사가 앉은 자리
개작두, 용작두 또하나는?
포증 포청천이 이름을 떨치기도
조왕을 벌한 곳도 이곳이라며...
송나라의 개봉부 우청
송나라의 개봉부 좌청
송나라의 개봉부
송나라의 명판관인 사마광
송의 감옥으로 향합니다
남자 죄수와
죄수를 싣고 다니던 수레도
목과 팔만 내놓을 수 있도록 설계됨
깜빵이라요
송나라의 개봉부
송나라는 서기 900년 경이니 천년도 훨씬 전이지요?
송나라의 개봉부
무역문역 해석해 보세요
송나라의 개봉부 거리
송나라의 개봉부
비가 왔었는데...
송나라의 개봉부 삼제전
송나라의 개봉부
산신령 같구나ㅎㅎㅎ
포증 포청천을 만나러
7층으로 모셔져 있네
이 분이 포청천 나리여
포증은 포청천의 이름이고
역대 개봉부사들...
송나라의 개봉부의 여러 모습들,,,
복식
복식
복식
복식
송나라의 개봉부의 여러 모습들,,,
멀리 개봉시내도 보이네
송나라의 개봉부의 여러 모습들,,,
송나라의 개봉부의 여러 모습들,,,
송나라의 개봉부의 여러 모습들,,,
송나라의 개봉부의 여러 모습들,,,
뒤편은 개봉시가지
개봉시가지
개봉시가지
개봉시가지
석류
송나라 개봉부의 잠룡궁
송나라 개봉부의 명경호에서
송나라 개봉부의 명경호에서
송나라 개봉부
송나라 개봉부의 명경호에서
마음이 맑아지셨나요?
송나라 개봉부의 명경호에서
밑에 뭐라 쓰였 있기는 한데...
당시의 재현
황제도 보이고
당시의 재현
포증도 보이고
비가 와서리 번득번득
포공호가 한눈에
개봉부 주변
개봉부 주변
포공호
낙양입니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했죠
고풍스러우이...
관중으로 들어갑니다
동관을 통과하며
관의 중앙이라하여 관중지방이랍니다
중국 5악중의 서악인 화산[동:태산 서:화산 남:형산 북:항산 중:숭산]
서안입니다
장안이라고도 하지요
명나라 주원장시대의 명성
팔달령 장성의 전[흙을 구워 만든 기와]과 같은 재질입니다
명성의 해자
섬서 가무쇼장으로
섬서 가무쇼장
섬서 가무쇼장
섬서 가무쇼장
섬서 가무쇼
당나라 시대의 안무입니다
화려~~~
섬서 가무쇼
당나라 시대의 안무입니다
섬서 가무쇼
당나라 시대의 안무입니다
섬서 가무쇼
당나라 시대의 안무입니다
섬서 가무쇼
당나라 시대의 안무입니다
너는 양귀비더냐?
섬서 가무쇼
당나라 시대의 안무입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병사랑가?
섬서 가무쇼
당나라 시대의 안무입니다
섬서 가무쇼
당나라 시대의 안무입니다
병마용갱 1호관
병마용갱 동마차관
병마용갱 3호관
병마용갱 1호관
느껴지남유 2200년전의 숨결을!!
믿어지나유 눈 앞의 병마용을^^
들리나유 도공들의 한숨소리를~~
이 용들이 병과 말을 구운 220여년전의 작품이래유
표정이 모두 다르고
서 있는 자세도 모두 다르고
목이 없는 것도 있고
잡아 당겨 찍어보니 모두 다른 표정이네
안 보이는 곳에 자신의 싸인 혹은 이름도 적어 넣었다는데
겨드랑이 갑옷 사이에
벽돌들...
초패왕 항우가 불을 질어 그을린 병마용
아직도 발굴 중
와 많구나
원래는 컬러였는데 발굴하고 변하여 흑백으로
고구려 고분벽화도 변했지요? 안악고분말예요.
마용
용이란 모형 또는 인형
허벌나게 많구요
병마용갱 2호관으로
병마용갱 2호관
병마용갱 2호관
목이 없어진 것은 훼손된 것
2호관에는 장교용 장군용입니다
모자가 틀리지요?
병마용갱 3호관
병마용갱 3호관
활 쏘는 병사용
설명은 아래에 있슈
병마용갱 3호관에 있는 미 발굴 용
발굴해도 색이 변하지 않을 기술이 생기면 발굴한대요
허허 또 오라는 얘기여? 뭐여?
병마용갱 3호관에 있는 미 발굴 용
고급 군사용
이웃집 아저씨 같아요
활 쏘는 용
병마용갱 3호관에 있는 미 발굴 용
병마용갱 동마차관
진시황릉으로
진나라 병사 같네
아까 본 그 용과 흡사지 않아요?
진시황릉
발굴되지 않았지요
진시황릉 주변
진시황릉
진시황릉에 부장품을 묻어 둔 곳
무었이 있을까?
금괴가 많을겨ㅎㅎㅎ
동마차가 묻힌 곳
능이 산 같지요?
당시의 모습을 재현
남의 봉분에 길을 냈네요
그래도 되나?
화폐의 통일
전국7웅 망한6국의 백성들은 고달펐을겨~~~
도량형의 통일
장량도 박랑사에서 진시황을 시해하려고 했었지...
봉분 꼭대기 가는 길
봉분 꼭대기 가는 길
봉분 꼭대기 가는 길
봉분에 올라보니
봉분에 올라보니
석류밭만 보이더라
석류가 보이나요
오래된 나무더이다
그래서 서안의 시목이 석류래요
석류가 허벌나게 많어유
???
B.C 221년까지 이런 전투를 통해 천하 통일 했겠지???
B.C 221년까지 이런 전투를 통해 천하 통일 했겠지???
진시황릉 밑에서
진시황릉 밑에서
진시황릉 밑에서
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아한테 반해서
서안의 비단공장입니다
실크로드의 시점인 서안
비단의 창시자
화청지를 아시나요?
양귀비를 아시나요?
양옥환을 아시나요?
당현종 이융기와 양귀비의 로맨스 현장 화청지
서안시 임동현에 있지요
그들만의 이궁
양귀비를 찾아서
아들의 여자를 가로챘으니 그 것은 불륜인가?
수왕은 얼마나 괴로웠을고?
이쁜 마누라 가진 게 죄여~~~
그래도 당 현종은 명군으로 추앙받고
화려하기도 하지
복원 공사중
좋고
찾았노라 양귀비
가운데 보이남?
밀회 장소인가?
양귀비 목욕탕 독탕이요~~
양귀비 목욕탕 독탕이요~~
현종과 양귀비의 탕
남녀혼탕ㅎㅎㅎㅎ
현종과 양귀비의 탕
남녀혼탕ㅎㅎㅎㅎ
태종 이세민의 탕이래요
화청지 주변 경관
2호 수원
1호 수원
화청지 주변 경관
양귀비 가족들도 이곳에서 목욕을
대중탕으로 보이기도
왜? 크니까 넓으니까!!
탕 주변에 액자들도
화청지 주변 경관
화청지 주변 경관
45도 물입니다
잘 나오지요? 두개랍니다
화청지 주변 경관
화청지 주변 경관
화청지 주변 경관
화청지 주변 경관
임동현 팻말
잘 정비된 임동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왜 서안에 있다냐?
낙양의 화양광장 호텔
5000년 고도 낙양[뤄양]입니다
용문석굴 가는 길
용문석굴 가는 길
용문석굴 가는 길
용문석굴 정문
용문석굴 정문
용문석굴 정문
용문석굴 정문
하나라 시조 우왕지
하나라 시조 우왕지
순임금이 선양하여 황위에 오른자
이후 세습왕조로 정착
황하의 치수에 공이 크다고 전해짐
2000여개의 동굴~~~~~
10만여개의 불상~~~~
새집 같은 저 곳에 빼곡히 불상이 있슈
누가 목을 잘라 갔네유
내가 안그랬슈~~
불상들
불쌍해서 불상인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새집처럼 다닥다닥
현무암질이고
몇년에 완성됐을까?
100년은 걸렸을테지
북위시대와 당나라때 조성됬대요
인생은 윤회?
연
측천무후 불상입니다
측천무후 불상입니다
측천무후 불상입니다
측천무후 불상입니다
이하는 흙탕물
여기가 용문 설굴 끝.
이하 옆으로 동굴과 불상이 즐비
당삼채란?
당삼채 가게들이 즐비....
간판이 뭐라 적혀 있나요?
세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그린 그림과 조각이 당삼채랍니다
당삼채
비싸서 사지는 못하고 사진만 찍었슈
당 삼채
소림사 무술도장
여기는 중악 숭산아래 소림사 무술학교랍니다
온통 소림사 무술학교 뿐
숭산은 태실산과 소실산으로 나누는데
소실산 아래에 있는 절이 소림사이고
소림사 영화 주인공이???
등봉의 거리 : 소림사와 가장 가까운 도시, 정주시 등봉현
화청지가 일루 이사왔네
인천항
인천항
예인선
기행문
2007. 08. 04 비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저녁에 꾸린 짐을 챙겨서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였다
수학여행을 앞둔 학생들처럼 어제 저녁은 설레임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숙면을 하지 못해서 몸은 피곤하다
7:25분발 인천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으니 잠이 쏟아진다. 11시 30분에 인천에 도착해 보니 비가 엄청나게 온다. 호우주의보여서 바람까지 심하게 분다. 2009년 도시엑스포가 열리는 인천광역시는 활기에 찬 도시 분위기이다. 36번 버스를 타고 국제항만터미널에 가니 국제 2터미널에서 집결한단다. 다시 택시를 타고 국제 2터미널에 가니 일행들 모두 모여 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연운항행 자목란 페리호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국제 2터미널은 갑문식 도크를 통과해야 한다. 도크에 와서 문이 잠기고 또 열리고 배서 빠져 나오는데 약 1시간이 소요되였다. 갑판에서 보니 그 광경을 장관이다. 주위의 건물이며 수출용 자동차가 즐비하게 모여있다. 새삼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느껴진다. 황해를 나왔다. 송도에서 영종도로 이어지는 교각이 웅장하게 공사가 진행중이다. 교각만 서있고 아직 상판을 올라가지 않아서 다리라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바다에 떠 있는 교각은 분명 용솟음 치는 한국의 경제의 상징이 아닐까?
자그마한 섬들의 사이사이로 헤치고 나오니 이제 망망대해 사방이 수평선뿐이다. 저녁식사 후 상념에 잠겨 본다. 이번 여행은 중국 화하족(한족)의 본류를 찾아가는 길이다. 기대에 부푼다. 어떤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와 닿을지 기대가 된다.
2007.08.05 흐림
24시간 꼬박 배를 탄다. 중국시간(시차1시간)오후3시에 도착하니 인천에서 4일 오후 3시에 출발했으니 꼬박 25시간을 배에서 보낸 세이다. 갑판에 나가니 햇볕이 무섭다. 자외선이 느껴진다. 무척이다 덥다. 배만 타고 하는 일이 없으니 자목란호의 식사가 맛이 없다. 식욕이 줄어든 탓이다.
산는 곳이 서주인 한국을 관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니 한국 서울의 경복궁등 유원지 시설이 맘에 들었다고 하니 즐겁다. 남경에서 온 교사들 2명과도 대화하였다. 물리 선생님과 수확과목의 교사들이다. 오후3시에 어김없이 연운항에 도착하였다. 중국 7대 항구인 강소성 연운항은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닌 듯 싶다. 부산과 위도가 같은 북위 35도 인 이곳에서 중국 동서를 이동해야 한다. 연운항의 시계가 매우 불량한데 희뿌연 도시 공기는 바다안개(해무)와 왕사의 영향인 것으로 추측된다. 탁한 바닷물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서 연변 조선족 출신 총각 가이드인 허명걸씨와 조우하였다. 먼 거리 버스이동을 하다보니 가사가 2명이다 등소평 시대에 개방된 연운항은 아직 개발이 덜 되어 도시가 정돈된 느낌이 덜하다. 이제 3시간을 이동하여 옛 지명이 팽성인 서주에서 저녁식사를 해야한다. 그리고 4시간 30분을 더 이동하여 전국시대 7웅 중의 하나인 위나라의 수도 대량 송나라의 수도인 개봉으로 이동하여 취침해야 하니 자동차만 7시간 3분의 긴 여정을 버스에서 보내야 한다. 2시간에서 5시간의 거리는 중국에서 보면 가까운 거리이다. 현재 이곳 기온은 37도~38도로써 무더운 여름 날씨이다. 중국인들이 한국의 김치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김치를 들고 식당에 가는 것은 매우 선호하지 않는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는 중국인들에게 차 문화가 발달되어 식당에서 녹차는 인심이 후하다 식사 전 차 한 잔과 식후 차 한 잔은 기름기 제거에 도움을 준다. 주의사항으로 여권을 잘 챙기고 물은 생수를 사 마셔야 하고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단다. 연운항 시내를 벗어나니 서유기에 나오는 화과산(운대산)이 보인다. 초패왕 항우가 도읍으로 삼았던 팽성 서주가 가까이 온다. 4000km에 달하는 연곽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이정표에 눈에 익은 도시이름과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북경. 무한 등등등
연곽고속도로는 중국 대륙을 회단하는 중국 도로의 대동맥이다. 연곽고속도로는 직선으로 양호하게 정비되어 있고 중앙분리대에 조경이 잘 돼 있으며 길 양 옆으로 약 20m 쯤 이어지는 미루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환경을 생각한 중국인들의 마음이 배어있는 것 같다.중국 근대사 200년의 역사 고찰지로는 심천을 들 수 있고 500년 역사는 상해를, 1000년의 역사는 북경, 3000년 역사는 서안, 5000년 역사는 13개 왕조에서 도읍으로 삼았던 낙양이라 할 수 있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가 하남 성에서 시작되었고 약어로는 미리예자인 豫를 쓴다. 이곳에 예전에는 예주이었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은 9대 주로 나누었는데 하북성의 기주 사천성의 익주, 섬서성과 영화회족자치구의 양주,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양주, 하남성의 예주, 산동성의 청주 산서 하북성의 연주, 호북성 호남성이 형주, 호남성의 교주 등을 들 수 있다. 중국의 7대 고도 중에 3도시가 이곳 하남성에 위치하는데 상나라의 안양 낙양 위나라와 송나라의 개봉이다. 그 외에 서안 항주 남경 북경 합쳐 7대 고도로 불리운다. 차창으로 보이는 논에는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과 옥수수 땅콩 등 우리나라의 농촌의 풍경과 흡사하다. 분무기를 지고 농약을 뿌리는 여인의 모습이 예전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과 많이 닮앗다. 중원이라 함은 중국에서 천하를 의미하는데 장강의 북쪽과 황하의 남쪽인 하남성과 섬서성을 의미하며 중앙에 있는 평원이라는 뜻이다. 재중 한국인들을 중국 동부인 대련 청도 상해등에 많이 분포한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이 곳에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북경의 현대 자동차와 상해의 삼성전자 남경의 LG등이 중국 동부에 모여 있어서이다. 자동차 번호판에 晋은 산서성을 의미하고 甘은 감숙성을 이른다. 중국인들 중에서 여성은 삼성 애니콜 남성은 핀란드산 노키아를 선호한다. 노키아의 밧데리 충전시간과 사용시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연곽 고속도로를 지나는데 수나라 양제 양광이 세운 경항(북경~항주)대운하가 보인다. 배들이 엄청나게 오간다. 중국 경제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가도가도 산은 안보이고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진다. 서주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맥주 회사 이름이 팽성맥주이다. 옛 지명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엇구나 생각된다. 중국 10대 명승지를 알려준다.
1.서안의 진시황의 병마용 갱
2.북경 외곽에 있는 청나라 시대의 승덕 피서산장
3.북경 자금성
4.만리장성(연.조.진)
5.6300km 장강에 잇는 삼협
6.안휘성의 황산
7.항주시의 서호 중국인을 “소주에서 태어나 항주에서 살아라”란 만이 있을 정도로 항주는 아름다운 도시
8.소주의 졸정원
9.광서장족 자치구인 계림
10.타이완의 일월담
지루한 버스여행의 오늘 종정인 개봉에 들어섰다. 판관 포청천의 대쪽같은 판결로 잘 알려진 개봉부가 바로 이곳 개봉이다. 대량로 대량문 모두 위나라 도읍 대량을 따서 지은 이름들이 자주 눈에 뜨인다. 피곤이 엄습한다. 강싱유원 호텔에서 내일의 여정을 위해 취침하자. 꿈나라고....
2007.08.06 비와 흐림
아침에 일어나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개봉시내의 거리는 둘러보니 자전거 도로가 넓게 차도와 구분되어 이색적이다. “한미관”이라는 한글 간판도 눈에 뜨인다. 활기가 있어 보인다.
첫 일정으로 개봉부를 방문하였다. 판관 포청천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다. 포청천의 이름은 포증인데, 이곳에는 포증이외에도 사마광이라는 유명한 판관이 있다. TV에서 포청천의 모습은 검은 얼굴에 키가 웅장하게 크고 이마에 반달모양인데 실제의 모습은 키가 작고 얼굴이 희며 이마의 반달모양은 없었다. 관모의 길이가 길어서 쉽게 구분이 가는 모습이다. 송나라 6대 황제인 인종 때 사람으로, 명판결로 해서 조왕을 몰아낸 일은 역사에 남고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개봉부 관람중에 비가 억수로 내리기 시작했다. 개봉부의 모습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그 시대의 감옥과 정사를 보던 정전 그리고 유물 등이 있었고 사마광도 모셔져 있었다. 7층 전망대에서 개봉시대를 한 눈에 굽어보고 포공호와 명경 호에서 사진 촬영도 하였다 .이곳 개봉은 황하의 높이보다 13m나 낮아서 발전이 더디게 되어 6층 이상의 건물은 들어설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 된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고도보다 발전이 늦어졌고 이웃한 정주시가 하남성의 중심으로 성장한다. 10m의 밑에는 명나라의 유적이 20m 밑에 는 송나라의 유적이 분포한다. 개봉의 음식으로는 포자라 하여 만두피속에 만두속을 액체로 담은 것인데 제일 유명한 음식이다. 자동차도로 옆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를 보니 페달을 밟지 않고 전기 힘으로 달린다. 충전자전거인데 한번 충전으로 30km를 간다고 한다. 처음보는 신기한 자전거이다. 이제 낙양에서 점심을 먹고 서안 까지는 8시간여의 긴 거리이다. 버스는 낙양으로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간다. 낙양에 도착하였다. 낙양 북쪽에 망산이 잇는데 이곳에는 죽은 자들이 많이 묻혀있다. 그래서 북망산이라 불리는 이곳에 백제 의자왕도 이곳에 묻혓다가 최근에야 부여로 이장되었다고 전해진다. 역대 낙양을 도읍한 왕조의 황제들은 모두 이 북망산에 묻혔을 것이다. 보통 무덤은 일반 백성의 것이고 묘는 귀족의 무덤이며 능은 황제의 무덤이고 림은 성인의 무덤이다. 림에는 공림과 관림이 있는데 산동성 곡부에 잇는 공림은 공자의 묘이고 이곳 낙양에 잇는 관림은 관우의 묘이다. 두 분은 文과 武의 대표적인 사람이라서 이렇게 높이 숭상하는 것이다. 낙양은 동주시대 이래 유구한 역사를 가진 5000년 고도이다. 동주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뉘는데 이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 스쳐지나간다. 손무 오자서 상앙 등등등...
진나라는 소수민족과 끊임없는 투쟁으로 소수민족의 습관 등을 흡수하여 말 타기나 활 쏘기 등 다른 제후국에 비해 전투력이 뛰어나 결국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는 것이다. 낙양의 모습에서 고도의 맛과 현대적인 건축물의 조화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 서안으로 간다. 장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곳. 이 지방을 우리는 관중이라 부른다. 관의 중앙에 잇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양평관 임류관 함곡관 동관 등 이곳에 오려면 반드시 관을 지나야만 올수 있다. 우리 버스도 동관을 지나 관중지방으로 들어섰다. 오는 도중 붉은 황토로 된 지형에 굴은 뚫고 사는 토굴집이 보인다. 강수량이 적고 여름은 더우며 겨울 추위가 심한 이곳에 부드러운 황토층을 파서 만든 토굴집(야오퉁)은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며 흙먼지를 피해 살수 있는 집이다. 차창 밖으로 시계가 매우 불량한데 멀리 큰 산이 보인다. 중국 오악중의 하나인 화산이다. 높이가 2621m로 웅장하고 안개에 묻혀 신비롭게 다가온다. 서안에 8시가 되어 도착하였다. 저녁을 먹고 섬서 가무단의 공연을 관람하였다. 당나라 시대를 재연하는 쇼와 복장 등 기억에 오래 남을 공연이었다. 호텔로 오는 길에 명나라 태조 주원장 시대에 축성된 명성을 보았는데 만리장성을 쌓은 기와와 흡사하다. 중국 유적 중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된 문화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둘레 길이만 14km 인데 동서남북으로 대문이 있다. 우리는 남문을 통과 했는데 그 당시에는 남문에 황제만이 통과 하고, 북문에 일반 사신이, 동문에 시민이, 서문은 장사하는 사람이 드나들었다. 바로 실크로드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서안 호텔에서 발마사지를 피로를 풀고 내일을 위해 꿈나라를 간다.
2007.08.07 맑음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서안에서의 일정이다. 나는 서안에서오늘 일정을 보고 이번 여행 상품을 택했다 해도 과인이 아니다. 세계 8대 불가사이의 하나인 진시황제 지하대군단인 병마용갱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지금부터 2200여년 전에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조형물을 만들었는지 신기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병마용은 병사와 말의 모형을 흙으로 빚어 가마에 구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문화유산이다.1974년 봄 섬서성 임동현에서 양서안이라는 농부가 관개용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는 병마용 갱. 이후 이 병마용이 불러온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하얼빈 출신의 김영철 가이드와 윤길매 진시황릉 가이드와 같이 깊이 있는 설명을 들으며 어마어마한 병마용 갱으로 들어갔다. 진나라 당시 인구가 3000만명인데 72만명이 능 조성공사에 참여했다고 하니 실제로 노동가능 인구의 1할 정도가 동원되었다고 보면 된다. 영정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진시황은 13세에 황제가 되어 22세에 직접 정무를 보고 전국 칠웅의 여섯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 전역을 통일하여 도량형의 통일 등 많은 업적도 남겻지만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하여 원성을 사고 반란을 일으켜 진 제국이 멸망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통일후 향락에 빠져 700여개의 궁전을 건축하고 그 중 아방궁은 호화찬란하기로 인구에 회자된다. 아방전에 3000명의 궁녀가 진시황 사후 순장되기로 하였다 병마용갱에는 하루 평균 입장 수입만도 한화로 3억원에 이를 만큼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1호갱과 2호갱, 3호갱으로 구성되었고 동마차 전시관으로 구성되었는데 규모가 엄청나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느라 정신이 없고 관객의 수에 이리저리 밀려다닌다.
병마용 갱 관람을 마치고 진시황릉으로 갔다. 진시황릉은 내부 공개가 안되어 능주위를 한바퀴 돌고 능의 정상에 올라가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같이 간 일행 중 일부는 더워서 능정상에는 올라가지 않고 밑에서 공연만을 보는 사람도 많다. 나는 공연 일부를 보고 능 정상에 올라갔는데 석류나무를 빼곡히 심어 놓아 석류 농장에 온 기분이다. 점심 식사 후 화청지를 관람하였다. 이 곳은 중국 4대미인중 하나인 양귀비(본명 양옥환)의 목욕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양귀비에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암내를 제거하기 위해 하루 20번씩 목욕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양귀비를 총애했던 황제 당현종 이융기는 비염을 앓고 있었기에 양귀비의 냄새를 맡지 못해 양귀비와의 로맨스가 완성되지 않았나 싶다. 임동현은 살기 좋은 동네인데 온천수와 유적 등 매력이 있는 부분이 참으로 많다. 고구려 침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 당 태종 이세민도 이 화청지에서 자주 목욕을 하였고 일반 백성들도 가끔은 목욕 문화를 즐겼으리라. 장안이란 말은 장기적으로 편안한 곳으로, 이곳 서안의 옛이름이다. 명태조 주원장시기에 서안으로 개명되었는데 중국의 9대 도시이다. 섬서성은 21만㎢로 남북한 면적과 비슷하다. 내몽고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영향으로 공기는 탁하고 시계는 매우 불량하다. 강우량은 600㎜로 비를 맞으면 복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다.
서안은 중국의 중심에 위치하며 인구는 680만 명이다 주나라에서 당나라까지 약 1000년간 도읍이었고 현장법사의 대안탑에서 보듯 중국 불교의 중심에 서안이 있다. 삼장법사로 불리는 현장스님이 불교의 경전을 구해 오는 거리가 약 5만km의 여행으로 불교 경전을 구해온다. 점심에 서안 명품식사 만두 요리를 맛보았다. 27가지의 만두 요리를 맛보는 기쁨 그 중의 백미는 진주만두였는데 크기가 손톱만하다. 연곽고속도로로 낙양까지 가야한다. 고속도로가 막하니 밤 12시가 넘어 도착하였다 화양광장 국제 대반점 1403호에 여장을 풀고 내일을 설계한다.
2007.08.08맑음
오늘은 세계문화 유산의 용문 석굴에 간다. 이곳에 동굴이 2000여개 불생이 10만여 개가 있으며 북위시대와 당나라시기에 이 위대한 조각상이 완공되었다. 북위시대에 조성한 것은 왜소한데 비해 당나라 시대의 작품은 풍만한 것이 특징이다. 꼭 새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하 옆으로 쭉 늘어선 동굴들 그리고 불상들 하나같이 소중한 자산이건만 어떤 것은 목이 잘려 나가고 어떤 불상은 팔이 잘려나가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 중 측천무후가 자신의 모습과 닮은 불상을 제작했는데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중국 3대 석굴중 하나인 이 용문 석굴은 엄청나게 많은 불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윈깡석굴이나 돈황석굴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우지라는 연못도 있었는데 하나라시조 우임금의 연못으로 추정된다. 요순시대까지 선양이 이루어졌는데 순임금이 치수에 밝은 우를 임금으로 선양해서 하왕조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 우 임금이다. 이 곳 낙양은 중국어로 뤄양이라고 부르는데 여러 왕조의 도읍인 만큼 유적도 많다. 동한시대의 최초 불교사원인 백마사도 있고 삼국지에서 유비의 의형제이며 충의를 지킨 관우의 묘인 관림이 낙양에 있다.13왕조의 수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곳의 유적은 무궁무진하니라. 오늘은 너무나 더워서 자연 사우나를 한 느낌이다. 밖에만 나오면 푹푹 삶은 날씨이다.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점심은 등봉에서 먹었다. 이곳에서 중국 오악중의 중악인 숭산의 자태를 보앗다. 숭산은 태실산과 소실산으로 나뉘는데 소실산 아래에는 중국 무의 상징인 소림사가 잇다 그런 연유로 등봉에는 온통 무예학교인 소림사 무술학교 일색이다. 소림사 무술학교의 무술도장과 무술학교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서주로 이동하였다. 중국은 참으로 넓구나 하는 느낌이 고속도를 통행하면서 든다. 오후 8시가 넘어 서주에 도착하여 가리국제호텔에 도착하였다.
2007.08.09~10 흐림
어제 날자로 공식적인 관람 행사를 모두 마치었다 이제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동서로 관통하는 동맥도로 연작고속도로를 달려 연운항까지 가는 일만 남았다. 이제 내일 인천에 도착하면 그리운 집으로 간다.
이번 여행은 중국 본류 한족의 역사 발자취와 중원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중국의 문화와 역사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2007. 08. 04 비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저녁에 꾸린 짐을 챙겨서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였다
수학여행을 앞둔 학생들처럼 어제 저녁은 설레임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숙면을 하지 못해서 몸은 피곤하다
7:25분발 인천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으니 잠이 쏟아진다. 11시 30분에 인천에 도착해 보니 비가 엄청나게 온다. 호우주의보여서 바람까지 심하게 분다. 2009년 도시엑스포가 열리는 인천광역시는 활기에 찬 도시 분위기이다. 36번 버스를 타고 국제항만터미널에 가니 국제 2터미널에서 집결한단다. 다시 택시를 타고 국제 2터미널에 가니 일행들 모두 모여 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연운항행 자목란 페리호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국제 2터미널은 갑문식 도크를 통과해야 한다. 도크에 와서 문이 잠기고 또 열리고 배서 빠져 나오는데 약 1시간이 소요되였다. 갑판에서 보니 그 광경을 장관이다. 주위의 건물이며 수출용 자동차가 즐비하게 모여있다. 새삼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느껴진다. 황해를 나왔다. 송도에서 영종도로 이어지는 교각이 웅장하게 공사가 진행중이다. 교각만 서있고 아직 상판을 올라가지 않아서 다리라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바다에 떠 있는 교각은 분명 용솟음 치는 한국의 경제의 상징이 아닐까?
자그마한 섬들의 사이사이로 헤치고 나오니 이제 망망대해 사방이 수평선뿐이다. 저녁식사 후 상념에 잠겨 본다. 이번 여행은 중국 화하족(한족)의 본류를 찾아가는 길이다. 기대에 부푼다. 어떤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와 닿을지 기대가 된다.
2007.08.05 흐림
24시간 꼬박 배를 탄다. 중국시간(시차1시간)오후3시에 도착하니 인천에서 4일 오후 3시에 출발했으니 꼬박 25시간을 배에서 보낸 세이다. 갑판에 나가니 햇볕이 무섭다. 자외선이 느껴진다. 무척이다 덥다. 배만 타고 하는 일이 없으니 자목란호의 식사가 맛이 없다. 식욕이 줄어든 탓이다.
산는 곳이 서주인 한국을 관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니 한국 서울의 경복궁등 유원지 시설이 맘에 들었다고 하니 즐겁다. 남경에서 온 교사들 2명과도 대화하였다. 물리 선생님과 수확과목의 교사들이다. 오후3시에 어김없이 연운항에 도착하였다. 중국 7대 항구인 강소성 연운항은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닌 듯 싶다. 부산과 위도가 같은 북위 35도 인 이곳에서 중국 동서를 이동해야 한다. 연운항의 시계가 매우 불량한데 희뿌연 도시 공기는 바다안개(해무)와 왕사의 영향인 것으로 추측된다. 탁한 바닷물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서 연변 조선족 출신 총각 가이드인 허명걸씨와 조우하였다. 먼 거리 버스이동을 하다보니 가사가 2명이다 등소평 시대에 개방된 연운항은 아직 개발이 덜 되어 도시가 정돈된 느낌이 덜하다. 이제 3시간을 이동하여 옛 지명이 팽성인 서주에서 저녁식사를 해야한다. 그리고 4시간 30분을 더 이동하여 전국시대 7웅 중의 하나인 위나라의 수도 대량 송나라의 수도인 개봉으로 이동하여 취침해야 하니 자동차만 7시간 3분의 긴 여정을 버스에서 보내야 한다. 2시간에서 5시간의 거리는 중국에서 보면 가까운 거리이다. 현재 이곳 기온은 37도~38도로써 무더운 여름 날씨이다. 중국인들이 한국의 김치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김치를 들고 식당에 가는 것은 매우 선호하지 않는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는 중국인들에게 차 문화가 발달되어 식당에서 녹차는 인심이 후하다 식사 전 차 한 잔과 식후 차 한 잔은 기름기 제거에 도움을 준다. 주의사항으로 여권을 잘 챙기고 물은 생수를 사 마셔야 하고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단다. 연운항 시내를 벗어나니 서유기에 나오는 화과산(운대산)이 보인다. 초패왕 항우가 도읍으로 삼았던 팽성 서주가 가까이 온다. 4000km에 달하는 연곽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이정표에 눈에 익은 도시이름과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북경. 무한 등등등
연곽고속도로는 중국 대륙을 회단하는 중국 도로의 대동맥이다. 연곽고속도로는 직선으로 양호하게 정비되어 있고 중앙분리대에 조경이 잘 돼 있으며 길 양 옆으로 약 20m 쯤 이어지는 미루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환경을 생각한 중국인들의 마음이 배어있는 것 같다.중국 근대사 200년의 역사 고찰지로는 심천을 들 수 있고 500년 역사는 상해를, 1000년의 역사는 북경, 3000년 역사는 서안, 5000년 역사는 13개 왕조에서 도읍으로 삼았던 낙양이라 할 수 있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가 하남 성에서 시작되었고 약어로는 미리예자인 豫를 쓴다. 이곳에 예전에는 예주이었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은 9대 주로 나누었는데 하북성의 기주 사천성의 익주, 섬서성과 영화회족자치구의 양주,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양주, 하남성의 예주, 산동성의 청주 산서 하북성의 연주, 호북성 호남성이 형주, 호남성의 교주 등을 들 수 있다. 중국의 7대 고도 중에 3도시가 이곳 하남성에 위치하는데 상나라의 안양 낙양 위나라와 송나라의 개봉이다. 그 외에 서안 항주 남경 북경 합쳐 7대 고도로 불리운다. 차창으로 보이는 논에는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과 옥수수 땅콩 등 우리나라의 농촌의 풍경과 흡사하다. 분무기를 지고 농약을 뿌리는 여인의 모습이 예전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과 많이 닮앗다. 중원이라 함은 중국에서 천하를 의미하는데 장강의 북쪽과 황하의 남쪽인 하남성과 섬서성을 의미하며 중앙에 있는 평원이라는 뜻이다. 재중 한국인들을 중국 동부인 대련 청도 상해등에 많이 분포한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이 곳에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북경의 현대 자동차와 상해의 삼성전자 남경의 LG등이 중국 동부에 모여 있어서이다. 자동차 번호판에 晋은 산서성을 의미하고 甘은 감숙성을 이른다. 중국인들 중에서 여성은 삼성 애니콜 남성은 핀란드산 노키아를 선호한다. 노키아의 밧데리 충전시간과 사용시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연곽 고속도로를 지나는데 수나라 양제 양광이 세운 경항(북경~항주)대운하가 보인다. 배들이 엄청나게 오간다. 중국 경제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가도가도 산은 안보이고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진다. 서주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맥주 회사 이름이 팽성맥주이다. 옛 지명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엇구나 생각된다. 중국 10대 명승지를 알려준다.
1.서안의 진시황의 병마용 갱
2.북경 외곽에 있는 청나라 시대의 승덕 피서산장
3.북경 자금성
4.만리장성(연.조.진)
5.6300km 장강에 잇는 삼협
6.안휘성의 황산
7.항주시의 서호 중국인을 “소주에서 태어나 항주에서 살아라”란 만이 있을 정도로 항주는 아름다운 도시
8.소주의 졸정원
9.광서장족 자치구인 계림
10.타이완의 일월담
지루한 버스여행의 오늘 종정인 개봉에 들어섰다. 판관 포청천의 대쪽같은 판결로 잘 알려진 개봉부가 바로 이곳 개봉이다. 대량로 대량문 모두 위나라 도읍 대량을 따서 지은 이름들이 자주 눈에 뜨인다. 피곤이 엄습한다. 강싱유원 호텔에서 내일의 여정을 위해 취침하자. 꿈나라고....
2007.08.06 비와 흐림
아침에 일어나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개봉시내의 거리는 둘러보니 자전거 도로가 넓게 차도와 구분되어 이색적이다. “한미관”이라는 한글 간판도 눈에 뜨인다. 활기가 있어 보인다.
첫 일정으로 개봉부를 방문하였다. 판관 포청천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다. 포청천의 이름은 포증인데, 이곳에는 포증이외에도 사마광이라는 유명한 판관이 있다. TV에서 포청천의 모습은 검은 얼굴에 키가 웅장하게 크고 이마에 반달모양인데 실제의 모습은 키가 작고 얼굴이 희며 이마의 반달모양은 없었다. 관모의 길이가 길어서 쉽게 구분이 가는 모습이다. 송나라 6대 황제인 인종 때 사람으로, 명판결로 해서 조왕을 몰아낸 일은 역사에 남고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개봉부 관람중에 비가 억수로 내리기 시작했다. 개봉부의 모습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그 시대의 감옥과 정사를 보던 정전 그리고 유물 등이 있었고 사마광도 모셔져 있었다. 7층 전망대에서 개봉시대를 한 눈에 굽어보고 포공호와 명경 호에서 사진 촬영도 하였다 .이곳 개봉은 황하의 높이보다 13m나 낮아서 발전이 더디게 되어 6층 이상의 건물은 들어설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 된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고도보다 발전이 늦어졌고 이웃한 정주시가 하남성의 중심으로 성장한다. 10m의 밑에는 명나라의 유적이 20m 밑에 는 송나라의 유적이 분포한다. 개봉의 음식으로는 포자라 하여 만두피속에 만두속을 액체로 담은 것인데 제일 유명한 음식이다. 자동차도로 옆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를 보니 페달을 밟지 않고 전기 힘으로 달린다. 충전자전거인데 한번 충전으로 30km를 간다고 한다. 처음보는 신기한 자전거이다. 이제 낙양에서 점심을 먹고 서안 까지는 8시간여의 긴 거리이다. 버스는 낙양으로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간다. 낙양에 도착하였다. 낙양 북쪽에 망산이 잇는데 이곳에는 죽은 자들이 많이 묻혀있다. 그래서 북망산이라 불리는 이곳에 백제 의자왕도 이곳에 묻혓다가 최근에야 부여로 이장되었다고 전해진다. 역대 낙양을 도읍한 왕조의 황제들은 모두 이 북망산에 묻혔을 것이다. 보통 무덤은 일반 백성의 것이고 묘는 귀족의 무덤이며 능은 황제의 무덤이고 림은 성인의 무덤이다. 림에는 공림과 관림이 있는데 산동성 곡부에 잇는 공림은 공자의 묘이고 이곳 낙양에 잇는 관림은 관우의 묘이다. 두 분은 文과 武의 대표적인 사람이라서 이렇게 높이 숭상하는 것이다. 낙양은 동주시대 이래 유구한 역사를 가진 5000년 고도이다. 동주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뉘는데 이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 스쳐지나간다. 손무 오자서 상앙 등등등...
진나라는 소수민족과 끊임없는 투쟁으로 소수민족의 습관 등을 흡수하여 말 타기나 활 쏘기 등 다른 제후국에 비해 전투력이 뛰어나 결국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는 것이다. 낙양의 모습에서 고도의 맛과 현대적인 건축물의 조화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 서안으로 간다. 장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곳. 이 지방을 우리는 관중이라 부른다. 관의 중앙에 잇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양평관 임류관 함곡관 동관 등 이곳에 오려면 반드시 관을 지나야만 올수 있다. 우리 버스도 동관을 지나 관중지방으로 들어섰다. 오는 도중 붉은 황토로 된 지형에 굴은 뚫고 사는 토굴집이 보인다. 강수량이 적고 여름은 더우며 겨울 추위가 심한 이곳에 부드러운 황토층을 파서 만든 토굴집(야오퉁)은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며 흙먼지를 피해 살수 있는 집이다. 차창 밖으로 시계가 매우 불량한데 멀리 큰 산이 보인다. 중국 오악중의 하나인 화산이다. 높이가 2621m로 웅장하고 안개에 묻혀 신비롭게 다가온다. 서안에 8시가 되어 도착하였다. 저녁을 먹고 섬서 가무단의 공연을 관람하였다. 당나라 시대를 재연하는 쇼와 복장 등 기억에 오래 남을 공연이었다. 호텔로 오는 길에 명나라 태조 주원장 시대에 축성된 명성을 보았는데 만리장성을 쌓은 기와와 흡사하다. 중국 유적 중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된 문화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둘레 길이만 14km 인데 동서남북으로 대문이 있다. 우리는 남문을 통과 했는데 그 당시에는 남문에 황제만이 통과 하고, 북문에 일반 사신이, 동문에 시민이, 서문은 장사하는 사람이 드나들었다. 바로 실크로드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서안 호텔에서 발마사지를 피로를 풀고 내일을 위해 꿈나라를 간다.
2007.08.07 맑음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서안에서의 일정이다. 나는 서안에서오늘 일정을 보고 이번 여행 상품을 택했다 해도 과인이 아니다. 세계 8대 불가사이의 하나인 진시황제 지하대군단인 병마용갱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지금부터 2200여년 전에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조형물을 만들었는지 신기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병마용은 병사와 말의 모형을 흙으로 빚어 가마에 구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문화유산이다.1974년 봄 섬서성 임동현에서 양서안이라는 농부가 관개용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는 병마용 갱. 이후 이 병마용이 불러온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하얼빈 출신의 김영철 가이드와 윤길매 진시황릉 가이드와 같이 깊이 있는 설명을 들으며 어마어마한 병마용 갱으로 들어갔다. 진나라 당시 인구가 3000만명인데 72만명이 능 조성공사에 참여했다고 하니 실제로 노동가능 인구의 1할 정도가 동원되었다고 보면 된다. 영정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진시황은 13세에 황제가 되어 22세에 직접 정무를 보고 전국 칠웅의 여섯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 전역을 통일하여 도량형의 통일 등 많은 업적도 남겻지만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하여 원성을 사고 반란을 일으켜 진 제국이 멸망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통일후 향락에 빠져 700여개의 궁전을 건축하고 그 중 아방궁은 호화찬란하기로 인구에 회자된다. 아방전에 3000명의 궁녀가 진시황 사후 순장되기로 하였다 병마용갱에는 하루 평균 입장 수입만도 한화로 3억원에 이를 만큼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1호갱과 2호갱, 3호갱으로 구성되었고 동마차 전시관으로 구성되었는데 규모가 엄청나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느라 정신이 없고 관객의 수에 이리저리 밀려다닌다.
병마용 갱 관람을 마치고 진시황릉으로 갔다. 진시황릉은 내부 공개가 안되어 능주위를 한바퀴 돌고 능의 정상에 올라가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같이 간 일행 중 일부는 더워서 능정상에는 올라가지 않고 밑에서 공연만을 보는 사람도 많다. 나는 공연 일부를 보고 능 정상에 올라갔는데 석류나무를 빼곡히 심어 놓아 석류 농장에 온 기분이다. 점심 식사 후 화청지를 관람하였다. 이 곳은 중국 4대미인중 하나인 양귀비(본명 양옥환)의 목욕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양귀비에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암내를 제거하기 위해 하루 20번씩 목욕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양귀비를 총애했던 황제 당현종 이융기는 비염을 앓고 있었기에 양귀비의 냄새를 맡지 못해 양귀비와의 로맨스가 완성되지 않았나 싶다. 임동현은 살기 좋은 동네인데 온천수와 유적 등 매력이 있는 부분이 참으로 많다. 고구려 침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 당 태종 이세민도 이 화청지에서 자주 목욕을 하였고 일반 백성들도 가끔은 목욕 문화를 즐겼으리라. 장안이란 말은 장기적으로 편안한 곳으로, 이곳 서안의 옛이름이다. 명태조 주원장시기에 서안으로 개명되었는데 중국의 9대 도시이다. 섬서성은 21만㎢로 남북한 면적과 비슷하다. 내몽고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영향으로 공기는 탁하고 시계는 매우 불량하다. 강우량은 600㎜로 비를 맞으면 복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다.
서안은 중국의 중심에 위치하며 인구는 680만 명이다 주나라에서 당나라까지 약 1000년간 도읍이었고 현장법사의 대안탑에서 보듯 중국 불교의 중심에 서안이 있다. 삼장법사로 불리는 현장스님이 불교의 경전을 구해 오는 거리가 약 5만km의 여행으로 불교 경전을 구해온다. 점심에 서안 명품식사 만두 요리를 맛보았다. 27가지의 만두 요리를 맛보는 기쁨 그 중의 백미는 진주만두였는데 크기가 손톱만하다. 연곽고속도로로 낙양까지 가야한다. 고속도로가 막하니 밤 12시가 넘어 도착하였다 화양광장 국제 대반점 1403호에 여장을 풀고 내일을 설계한다.
2007.08.08맑음
오늘은 세계문화 유산의 용문 석굴에 간다. 이곳에 동굴이 2000여개 불생이 10만여 개가 있으며 북위시대와 당나라시기에 이 위대한 조각상이 완공되었다. 북위시대에 조성한 것은 왜소한데 비해 당나라 시대의 작품은 풍만한 것이 특징이다. 꼭 새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하 옆으로 쭉 늘어선 동굴들 그리고 불상들 하나같이 소중한 자산이건만 어떤 것은 목이 잘려 나가고 어떤 불상은 팔이 잘려나가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 중 측천무후가 자신의 모습과 닮은 불상을 제작했는데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중국 3대 석굴중 하나인 이 용문 석굴은 엄청나게 많은 불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윈깡석굴이나 돈황석굴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우지라는 연못도 있었는데 하나라시조 우임금의 연못으로 추정된다. 요순시대까지 선양이 이루어졌는데 순임금이 치수에 밝은 우를 임금으로 선양해서 하왕조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 우 임금이다. 이 곳 낙양은 중국어로 뤄양이라고 부르는데 여러 왕조의 도읍인 만큼 유적도 많다. 동한시대의 최초 불교사원인 백마사도 있고 삼국지에서 유비의 의형제이며 충의를 지킨 관우의 묘인 관림이 낙양에 있다.13왕조의 수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곳의 유적은 무궁무진하니라. 오늘은 너무나 더워서 자연 사우나를 한 느낌이다. 밖에만 나오면 푹푹 삶은 날씨이다.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점심은 등봉에서 먹었다. 이곳에서 중국 오악중의 중악인 숭산의 자태를 보앗다. 숭산은 태실산과 소실산으로 나뉘는데 소실산 아래에는 중국 무의 상징인 소림사가 잇다 그런 연유로 등봉에는 온통 무예학교인 소림사 무술학교 일색이다. 소림사 무술학교의 무술도장과 무술학교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서주로 이동하였다. 중국은 참으로 넓구나 하는 느낌이 고속도를 통행하면서 든다. 오후 8시가 넘어 서주에 도착하여 가리국제호텔에 도착하였다.
2007.08.09~10 흐림
어제 날자로 공식적인 관람 행사를 모두 마치었다 이제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동서로 관통하는 동맥도로 연작고속도로를 달려 연운항까지 가는 일만 남았다. 이제 내일 인천에 도착하면 그리운 집으로 간다.
이번 여행은 중국 본류 한족의 역사 발자취와 중원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중국의 문화와 역사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