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고민 가운데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이 사도들의 고백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역사적으로 수정 보완된 로만 카톨릭의 신앙 고백서요,
카톨릭 교리의 압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개념도
The Virgin Mary는 평생의 동정녀를 의미합니다.
바로 The Virgin Mary는
동정녀 마리아의 신격화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복음서에 예수님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야고보와 유다 등 마리아의 소생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6:3)
또한 거룩한 공회는 기독교에서 선지자와 사도의 터 위에 세워진 동서고금을 막론한
세계적인 보편적 교회를 의미하지만
천주교에서 Catholic church는 전세계를 총망라한 하나의 유일한 교회로 인정합니다.
로마의 교황청을 중심으로 제도화된 Catholic church를 믿지만
개신교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일치하는 동서교회를 막론한 하나의 무형 교회를 인정합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성도의 교통과 성인의 통공에 관한 것입니다.
성도의 교통과 성인의 통공은 같은 원어이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성도의 교통으로 해석하였지만
원어의 의미는 천주교에서 믿는 성인의 통공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의 교통은 대상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의 몸인 교회가 지체로서 서로 교제하는 덕목입니다.
사실 기독교에서 성도의 교통은 신앙고백, 그 신앙의 대상이 아니지만
천주교에서 강조하는 성인의 통공은 교조화된 절대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천주교에서 성인의 통공은 성인의 공덕을 나누어 구원을 이루는 신인합일의 구원관이요
성인의 공로를 공유하는 중요한 믿음의 교리입니다.
성도에서 성인의 경지를 넘어 신화하는 천주교의 교리는
성인의 통공이라는 신인합일의 절대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개신교에서 사도신경의 성도의 교통은
카톨릭에서 성인의 통공에 대한 다른 표현의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인의 통공은 영성의 뿌리요,
그 영적 서밋은 인본주의 무속신앙의 이상입니다.
그나마 성도의 교통은 산 자의 교제이지만
성인의 통공은 죽은 자의 공로를 공유하는 영성의 덕입니다.
Catholic church와 성인의 통공은 천주교의 유기체적인 교리의 융합이지만
성도의 교통은 성도 상호간의 교제를 이루는 사랑의 삶입니다.
성도의 교통는 보편적 교회를 이루는 성도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믿음의 교제요, 소망의 인내를 이루는 고난의 연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통은 성인의 통공과 같은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기체적인 사랑과 믿음과 소망의 속성입니다.
사도신경의 구성은 문맥으로 볼 때
죄의 용서와 몸의 부활과 영생의 교리는 Catholic church가 주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죄권을 가진 천주교의 신부와 카톨릭 교회의 권위는
성서의 권위와 동일한 절대적입니다.
원래 평신도라는 개념은 천주교의 개념이며
교회 안의 교회, 즉 성인과 사제와 구별되는 일반 신도를 의미합니다.
평신도를 깨운다는 개념은 다분히 천주교적이며
만인 제사장을 주장하는 기독교적 이해가 아닙니다.
성도의 교통과 교제는 무엇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기체적인 생명력, 그 자체입니다.
무엇을 나누고 섬기고 공유하고 소통하는 의미의 교통과 교제는
인본주의 신앙의 자아 실현의 종교적 성취요, 그 이상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툥과 교제는 성령의 교통, 그 믿음의 역사이며
주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기체적인 신본적 신앙의 전형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말씀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인 교회 안에 가득한 성도의 교통과 교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완전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13:13)
산 자의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교통과 교제는 무엇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을
그대로 믿음과 사랑으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본질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 원문에 성인의 통공을 성도의 교통으로 이해하는 개신교는
믿음의 대상에게 고백하는 절대 신앙을 성도의 교통을 믿는다고 고백함으로 희화하고 말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신경은 확실히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10세기 동안 수정되고 보완된 천주교 신앙의 강령과 같은 압축된 교리입니다.
개신교에서 예배 시간 떄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은 믿음의 스크래치요,
신인합일의 구원관인 카톨릭의 신앙고백을 답습하는 믿음의 일탈이요, 애물단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