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Ⅱ
간밤에 비바람으로 가로수 잎이 떨어져 거리가 너절하다. 지하철을 타고 밤고개 넘어 두류역에 내려서 시골 초등학교 친구 모임에 갔다. 거리가 낙엽으로 무질서하게 엉겨 뒤숭숭한 기분이었다.
오늘은 연말 모임인데 날씨 탓인지, 나이 탓인지, 게으른 탓인지, 아픈 탓인지 몇 사람만 모였다. 예전에는 많은 친구가 모여 환담과 술로 친교를 이루는 삶의 질서가 있었는데 근래에 와서 질서가 무너져 거리의 낙엽처럼 뒤범벅이 되어 어수선하며 들쑥날쑥하다.
공동체에 질서가 바로 서지 않으면 기강이 무너져 혼돈이 온다. 세상은 무질서한 방향으로 자발적으로 흐르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계약을 맺어 제재하며, 법규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의 흐름을 질서로 돌려놓는 것이다. 세상의 창조는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의 삶의 형태가 새롭게 바뀌는 것이다.
비가 온 관계로 이틀 동안 늘 하던 운동을 못했다. 거기에 안주하면 쉽사리 생활의 패턴과 리듬이 변하여 안일한 무질서로 되어 퇴보의 길로 간다. 질서의 리듬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백자산에 올랐다. 땀이 솟으며 숨소리를 들으니 몸의 각 기관이 질서 있게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의 혼돈이 평정을 찾았다.
언젠가 남미의 ‘이구아수’ 폭포를 찾았다. 80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로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거기에 멍하니 있으니 악마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무질서한 혼돈의 상태가 아래쪽에는 서로 모여서 질서를 세우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에서 태초에는 하늘과 땅이 구별되지 않고 모든 게 꼴을 갖추지 못한 무질서한 상태였다. 이 혼돈의 상태에서 하늘과 땅을 구별하여 갈라놓았다. 따라서 창조는 혼돈의 상태를 질서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다. 요한의 묵시록에 새 하늘 새 땅은 세상이 멸망하여 완전히 새롭게 태동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과 형태가 새롭게 쇄신의 변화를 말한다.
길 위를 걸으면서 무질서(어둠)에서 깨어나 질서(빛)를 찾아가는 것이 창조적인 삶이다. 대림 시기에 본당마다 대림초를 밝히고 있다. 초는 짙은 보라의 어둠에서 밝은 흰색의 초로 옮겨가고 있다. 4개의 초가 밝혀질 때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맞이하는 성탄절이다. 초 1개가 천년을 상징하며, 이스라엘은 4,000년을 기다려 예수의 탄생을 맞이했다. 우리는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를 기억하고 마중하면서 성탄의 기쁨과 부활의 삶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