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75]임실 폭설暴雪에 생각나는 시 두어 편
이렇게 내 고향산천에 사흘째 눈이 퍼붓는 날에, 뒷산 비포장 신작로(옛 남원-전주간 지방국도) 2km쯤을 걷는다. 이른바 ‘말치재’(두치斗峙) 길이다. 물론 아무도 걷지 않은, 처음 길, 진짜 발목이 푹푹 빠진다. 이런 눈길을 몇 번이나 걸어본 적이 있으신가? 달려오시라. 지금 내 고향으로! 흐흐. 호주에 사는 아들이 선물한 양털 어그UGG부츠가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양말을 신지 않아도 ‘1’도 춥거나 발이 시렵지 않다. 백범 선생이 즐겨 쓰셨다는 한시도 읊어본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쌓인 벌판을 걸을 때에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지금 내가 걸어가는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아무도 없기에 돼지 멱따는 소리로 나훈아의 <테스형>도, 범능스님의 <푸른 학으로> <꽃등 들고 님 오시면>도 불러본다. 50cm가 넘게 내렸다한다. 몇 년만일까? 전인미답前人未踏, 나는 유독 겨욺반 되면 이 길을 이렇게 걷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좋다. 너무 좋다. 무한한 행복감에 하염없이 젖는다.
이 도로는 회문산에 둥지를 틀던 남부군이 성수산으로 들어가며 걸었다고 이태의 <남부군>에 기록돼 있는, 역사적인 길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 길을 걸을 때마다 가마에 실려가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형형한 눈빛이 생각나기도 한다. 더구나 올해는 엊그제(20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참배를 하고 기념관에서 사진과 영상을 보고 왔기에 느낌이 더했다. 한라산 중산간지역에서 7년 7개월간 고립된 양민 2만 5천-3만여명이 학살되었다는, 이른바 ‘4․3사건’의 현장을 본 것같았다. 끔찍하고 잔인해도 이보다 더할 수가 있을까? 미국을, 대한민국 경찰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엄청난 사건이 그동안 근 60년 동안 “쉬쉬쉬” 묻혀 있었다. 나쁜 쉐이끼들, 욕이 절로 나왔다. 그들은 왜 그렇게 죄없이 죽어가야 했을까? 이제 와서 국가가 사과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생명은 모든 ‘숨탄 것’들에게 똑같이 고귀한 것이거늘. 죽어서도 백 번이고 죄 받을진저! 부관참시, 쇄골표풍인들 못할 이유가 있는가? 우리가 얻을 것을 오직 ‘역사적 교훈敎訓’이다.
아무튼, 국사 교과서에선가 보았던 전봉준의 압송사진을 보고 시인 안도현이 절창을 읊어댄 게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었다던가. 전문을 찬찬히 읊조리며 한 맺히고 피 맺힌 우리의 불행한 ‘역사歷史’을 음미해 보면 좋겠다.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동진강 어귀의 물결조차 ‘척홰척화 척왜척화’라고 소리질렀다한다. 신동엽은 금강 어귀에서 신하늬의 슬픈 분노와 사랑을 읊었다. 이런 시를 우리에게 안기는 시인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이런 시를 읊어보는 것은 행운이고 감사 그 자체이다. 황동규시인도 빠질 수 없다. 내친 김에 <삼남에 내리는 눈>도 감상하자.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고월 이장희 시인의 ‘눈 시’를 검색하다가, 잊어버린 나의 졸문(2006년 2월 17일)을 발견했다. 덧붙인다. 흐흐.http://yejeol.or.kr/nanumbang/view.php?code=cm_freeboard&page=11&number=140&keyfield=&k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