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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록5장15절] 四월 어느 날 김 보경의 집에서 공사를 행하시는데 백지 넉 장을 펼치시고 종이 귀마다 “천곡(泉谷)”이라 쓰시기에 그 뜻을 치복이 여쭈어 물으니 상제께서 “옛날에 절사한 원의 이름이라”고 가르쳐 주시고 치복과 송환으로 하여금 글을 쓴 종이를 마주 잡게 하고 “그 모양이 상여의 호방산(護防傘)과 같도다”고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갑칠은 상제의 말씀이 계셔서 바깥에 나갔다 들어와서 서편 하늘에 한 점의 구름이 있는 것을 아뢰니 다시 명하시기에 또 나가서 하늘을 보고 들어와서 한 점의 구름이 온 하늘을 덮은 것을 여쭈었더니 상제께서 백지 한 장의 복판에 사명당(四明堂)이라 쓰시고 치복에게 가라사대 “궁을가에 있는 사명당 갱생이란 말은 중 사명당이 아니라 밝을 명 자를 쓴 사명당이니 조화는 불법(佛法)에 있으므로 호승예불혈(胡僧禮佛穴)이오. 무병장수(無病長壽)는 선술(仙術)에 있으니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오. 국태민안(國泰民安)은 군신봉조혈(群臣奉詔穴)이오. 선녀직금혈(仙女織錦穴)로 창생에게 비단옷을 입히리니 六월 十五일 신농씨(神農氏)의 제사를 지내고 공사를 행하리라. 금년이 천지의 한문(捍門)이라. 지금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니라” 하셨도다.
[행록5장21절] 二十일에 모든 종도들이 속속 동곡에 모이니 김 형렬ㆍ김 갑칠ㆍ김 자현ㆍ김 덕유ㆍ류 찬명ㆍ박 공우ㆍ신 원일ㆍ이 치화ㆍ이 공삼ㆍ최 덕겸 등이오. 채 사윤(蔡士允)은 처음으로 동곡에서 시좌하니라. 상제께서 류 찬명에게 천문지리 풍운조화 팔문둔갑 육정육갑 지혜용력(天文地理風雲造化八門遁甲六丁六甲智慧勇力)과 회문산 오선위기혈 무안 승달산 호승예불혈 장성 손룡 선녀직금혈 태인 배례전 군신봉조혈(回文山五仙圍碁穴 務安僧達山胡僧禮佛穴 長城巽龍仙女織錦穴 泰仁拜禮田群臣奉詔穴)을 쓰게 하고 불사르셨도다.
[공사3장6절] 상제께서 각 처에서 정기를 뽑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강산 정기를 뽑아 합치시려고 부모산(父母山)의 정기부터 공사를 보셨도다. “부모산은 전주 모악산(母岳山)과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이니라. 회문산에 二十四혈이 있고 그 중에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이 있고 기변(碁變)은 당요(唐堯)가 창작하여 단주를 가르친 것이므로 단주의 해원은 오선위기로부터 대운이 열려 돌아날지니라. 다음에 네 명당(明堂)의 정기를 종합하여야 하니라. 네 명당은 순창 회문산(淳昌回文山)의 오선위기형과 무안(務安) 승달산(僧達山)의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과 장성(長城) 손룡(巽龍)의 선녀직금형(仙女織錦形)과 태인(泰仁) 배례밭(拜禮田)의 군신봉조형(群臣奉詔形)이니라. 그리고 부안 변산에 二十四혈이 있으니 이것은 회문산의 혈수의 상대가 되며 해변에 있어 해왕(海王)의 도수에 응하느니라. 회문산은 산군(山君), 변산은 해왕(海王)이니라” 하시고 상제께서 그 정기를 뽑으셨도다.
[공사3장20절] 또 하루는 상제께서 공우에게 “태인 살포정 뒤에 호승예불(胡僧禮佛)을 써 주리니 역군(役軍)을 먹일 만한 술을 많이 빚어 놓으라” 이르시니라. 공우가 이르신 대로 하니라. 그 후에 상제께서 “장사를 지내 주리라”고 말씀하시고 종도들과 함께 술을 잡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상제께서 “지금은 천지에 수기가 돌지 아니하여 묘를 써도 발음이 되지 않으리라. 이후에 수기가 돌 때에 땅 기운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예시1장67절] 상제께서 또 어느 날 약방 대청에 앉고 류 찬명을 마루 아래에 앉히고 “순창 오선위기(淳昌五仙圍碁), 무안 호승예불(務安胡僧禮佛), 태인 군신봉조(泰仁群臣奉詔), 청주 만동묘(淸州 萬東廟)”라 쓰고 불사르셨도다. 이때에 찬명이 좀 방심하였더니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신명(神明)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네가 어찌 방심하느냐”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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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는 4개의 明堂 이 나온다....
4개의 明堂 은 <胡僧禮佛穴, 五仙圍碁穴, 群臣奉詔穴, 仙女織錦穴> 이다..
그런데, [예시1장67절] 에는 이 중 <仙女織錦穴> 이 빠지고, <淸州 萬東廟> 가 들어가 있다...특이하다 아니할 수 없다...그리고 이 구절에는 “신명(神明)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네가 어찌 방심하느냐” 라는 구절이 덧붙여져 있다...
<淸州 萬東廟> 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淸州 萬東廟>
[공사2장6절] 상제께서 “청주(淸州) 만동묘(萬東廟)에 가서 청국 공사를 행하려 하나 길이 멀고 왕래하기 어렵고 불편하므로 청도원(淸道院)에서 공사를 행하리라” 하시고 청도원 류 찬명의 집에 이르러 천지 대신문을 열고 공사를 행하셨도다. 그때에 김 송환이 그 시종을 들었느니라.
[교운2장49절] 박 한경(朴漢慶)이 도주의 부르심을 받고 청주 근방에 있는 청천면 화양동의 만동묘(萬東廟)를 찾으니 건물은 왜정 때에 없어지고 빈터만이 남아있는 사정을 도주께 아뢰었도다. 또 그는 도주의 분부를 좇아 류 한규(柳漢珪)를 데리고 화양동에 가서 도주께서 거처하실 곳을 마련하고 기다렸으되 다음 기회로 미루신 소식을 듣고 되돌아왔도다. 신묘년 三월에 있었던 일이니라.
[교운2장50절] 갑오년 三월에 도주께서 안 상익(安商翊) 외 네 명을 대동하고 청천에 가셔서 황극신(皇極神)이 봉안되어 있는 만동묘 유지(遺址)를 두루 살펴보고 돌아오셨는데 돌아서실 때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중에 폭풍과 뇌성벽력이 크게 일어 산악이 무너지는 듯하니라. 다음날에 숭정 황제 어필(崇禎皇帝御筆)의 비례부동(非禮不動)이 새겨 있는 첨성대 아래쪽 암벽의 좌편에 닫혀 있던 석문(石門)이 두 쪽으로 갈라져 내리고 그 안의 옥조빙호(玉藻氷壺)의 네 자와 만력어필(萬曆御筆)의 네 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전하였느니라.
[예시1장67절] 상제께서 또 어느 날 약방 대청에 앉고 류 찬명을 마루 아래에 앉히고 “순창 오선위기(淳昌五仙圍碁), 무안 호승예불(務安胡僧禮佛), 태인 군신봉조(泰仁群臣奉詔), 청주 만동묘(淸州 萬東廟)”라 쓰고 불사르셨도다. 이때에 찬명이 좀 방심하였더니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신명(神明)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네가 어찌 방심하느냐”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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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께서는 <신묘년 三월> 과 <갑오년 三월> 에 萬東廟 에 가려고 하셨다.......그 사이에는 <임진년, 계사년> 이 끼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주께서 만동묘에 다녀오신 <갑오년 三월> 의 이야기가 너무 간단해서 태극진경의 내용을 가져와야 할 것 같다.....
(2) 태극진경의 <갑오년 三월>
21일 아침에 상제님께서 평일처럼 산정 공부실에서 도수를 보시고 잠시 쉬실 때 형사들이 급습하여 방자하게 추궁하였으나 상제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며칠간 수십 명의 중부도인이 진술한 바로는 아무런 혐의사실이 없으니라. 다만, 이미 입건 구속된 한경 철규 등의 혐의를 소명하자면 상제님께서 친히 충북도경 근처 사관까지라도 거둥하셔야 함을 말씀드리니 윤허하시고 청봉 등 세 자제분과 도인 정운교(鄭雲敎) 등의 시위를 받으시며 25일 청주 북문로(北門路) 북일여관(北一旅館)에 임어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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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에서 한경 등이 고문에 못이겨 분별없이 시인한 내용은 개인적인 사기 · 횡령 등 혐의와 함께 유언비어 유포, 용공단체 조직 등 국가보안법 위반의 혐의이며 또 이 모두가 상제님의 명으로 범행한 사실처럼 인정되어 있었으나 조사 결과 그 실제가 아님을 판명되니라. 그러나 한경 등의 개별적인 혐의가 완결되지 않아 상제님께서는 환어하지 않으시고 1개월간을 북일여관에 설석하시고 공부하시며 간간이 수사에 응하시니라. 이때 도경 사찰분실장(査察分室長) 김두길(金斗吉)의 집요한 추궁에도 사건은 더 확대되지 않았으나 한경 등 3인은 법원에 구속 · 기소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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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양력 4월 29일에 상제님께서 도장으로 환어하시는 길에 청주 화양동(華陽洞)으로 행행하셔서 도수를 보기로 하시니라. 화양동은 본시 백두대간에 속한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중간 산골인 괴산군 청천면(靑川面) 화양리의 계곡으로서 사적과 명소가 많고, 중국 무이구곡(武夷九曲)과 흡사한 절경지지(絶景之地)라 하여 예로부터 화양구곡(華陽九曲)으로 유명하니라. 그 제3곡에 송우암(宋尤庵)이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 신종(神宗) · 의종(毅宗)에 대한 보은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만동묘(萬東廟)를 짓게 제향을 드리게 하였는데, 흥선대원군이 철폐한 것을 유생들이 중창하였더니, 왜가 다시 철거하여 훼손한 묘지(廟趾)와 묘비(廟碑)만 남아 있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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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곡에는 우암이 은거하며 학구(學究)와 교도(敎導)에 힘쓰던 암서재(岩棲齋)가 있고, 제5곡에는 우암이 문인(門人)들을 시켜 명나라 의종의 친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큰 문자를 "숭정황제어필(崇禎皇帝御筆)"이라는 작은 문자와 함께 첨성대(瞻星臺) 아래 석벽에 새기니라. 그 좌측에 "배신 민정중(陪臣閔鼎重) 봉지(奉至) 여송시열등(與宋時烈等) 근배수계수(謹拜手稽首) 모륵(摸勒) 시사십칠년(時四十七年) 갑인 사월 일야(甲寅 四月 日也)"라는 작은 문자를 새겼으며, 우측에는 암벽에 세로로 석함(石函)을 파서 석개(石蓋)를 하고 이를 "석문(石門)"이라 이름하니라. 석문 아래에는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이라는 큰 문자와 "차팔자(此八字) 배신 송시열(陪臣宋時烈) 상서(嘗書) 여인자야(與人者也) 정의어차산중(正宜於此山中) 근모이륵(謹摸以勒)"이라는 작은 문자를 새겨 놓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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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하오에 상제님께서 청봉과 정운교 · 안상익 · 윤금현 등 시종을 거느리시고 승용차로 화양동에 거둥하셔서 만동묘(萬東廟)의 묘지와 묘비를 친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곳 청주 화양동은 명·청 양국(明淸 兩國)이 공존하는 곳이라,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황극신도수(皇極神度數)'와 '대신문도수(大神門度數)'를 보려 함이니라." 하시니라. 다시 암서재(岩棲齋)를 친감하시는 동안 해가 저물므로 "화양구곡을 다 볼 것은 없지마는 온 김에 제5곡까지 보고 가려 하였으나 해가 저물었으니 신도(神道)로써 공사하리라." 하시고 환어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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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행 중로인 청천(靑川) · 미원(米院) · 주성(朱城) 등지는 해가 지면 공비(共匪)의 출몰이 잦은 곳으로서 야간 통행금지와 군경의 경비가 삼엄하고 검문 · 검색도 심할뿐더러 도로 사정 또한 불편하기 그지없으니라. 시종들이 야간행행을 만류하였으나 계속 차를 타시고 보은 남일여관(南一旅館)에 임어하시니 자정(子正)이 가까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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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이 고향인 금현은 상제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싶었으나 감히 상고하지 못하고 시종만 하면서 행로의 검문 대응에 많은 시간을 지체하였을 뿐 아니라, 여관을 잡고 때늦은 수라 준비 등에 애를 쓰니라. 자정이 되어서야 수라상을 올리고 시좌하였는데 상제님께서 수저를 상머리에 한번 정저(整箸)하시자 그 순간 갑자기 뇌우전벽(雷雨電霹)이 천지를 진동하므로 시종들과 여관 사람들이 모두 무섭고 두려워서 몸 둘 바를 모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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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태연히 수라를 진어하시므로 금현과 운교는 물러날 수도 없어 묵묵히 시측(侍側)하고 있으니라. 뇌전은 한동안 계속되다가 마침내 벼락 치는 소리가 그 부근 일대를 때려 부수듯 한번 진동하더니 이내 그치고 소나기만 내리는데 상제님께서 상을 물리시며 혼자 말씀으로 "이제야 신문공사(神門公事)를 마쳤으니 다시 오지 않아도 되겠구나. 과시 보은지지(報恩之地)로다." 하셨으나 시종들은 어의를 깨닫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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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에서 유어하시고 시종들에게 "내가 이번 길에 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를 보고 가려 하였으나 다음으로 미루고 그대로 돌아가니 금현은 다음 치성에 올라오되, 그전에 이곳 일을 살펴서 포감을 통하여 나에게 자세히 고하라." 하시며 청봉과 운교를 승용차에 동승시키시고 부산도장으로 환궁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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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청주 일대에 "화양동 제5곡의 석문이 열렸다."라는 소문이 자자하니라. 금현도 소문을 듣고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인근 도인 윤석현(尹錫鉉) · 오병하(吳炳夏) · 박동한(朴東漢) · 김진협(金鎭協) 등과 화양동으로 가니 마침 상제님께서 파견하신 박종순을 만나 함께 그곳에 사는 빈재로(賓在老)를 만나니라. 재로는 본래 만동묘 창건 시에 청국에서 파송된 묘지기의 9대손으로서 대대로 봉직하다가 묘가 철거된 후에는 묘지 옆에서 농사와 주점으로 생계하는 사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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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로가 일행에게 말하기를 "우암이 석문을 만들며 그 속에 무엇을 어찌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르나, 그 후 비전(秘傳)되는 전설로는 '석문이 열리면 천지가 개벽되고 진인(眞人)이 세상을 구제하리라.' 하더이다. 만동묘를 철거한 왜경이 그러한 전설을 말살하려고 석수를 시켜 석문을 정으로 쪼아 열려고 하였으나 그때마다 갑자기 청천벽력이 일어나므로 혼비백산하여 중지하고 그 흔적을 양회로 때우는 것을 내가 직접 목격하였나이다. 또 지난 3월 27일 밤 자정에는 번개와 함께 뇌성이 울리며 비가 쏟아지더니 석문 쪽에서 벽력이 크게 일어 첨성대가 무너지듯 진동하므로 전율경악(戰慄驚愕)하고 이튿날 아침에 가 보니 석개가 열려 암벽 아래에 깨진 채 떨어져 있고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석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나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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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현 일행이 신기하게 여기며 그곳에 가 보니 과연 그 말과 같이 세로 3척 1촌, 가로 1척 9촌, 두께 5촌쯤의 석개가 두 동강으로 갈라져서 떨어져 있으므로 맞추어 보니 "옥조빙호(玉藻氷壺)"라는 큰 문자와 "만력어필(萬曆御筆)"이라는 작은 문자의 음각(陰刻)이 완연하니라. 금현 등은 그제야 이 일이 증산 상제님께서 청도원에서 대신문(大神門)을 여시는 도수를 짜신 공사와 부합되며, 또 상제님께서 "신도로써 공사하리라." 하시고 석문이 열릴 그 시각에는 "이제 신문공사를 마쳤으니 다시 오지 않아도 되리로다." 하신 비의(秘意)를 깨달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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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에 임규오가 도장에 올라가 상제님께 배알하고 금현으로부터 들은 "화양동 석문 열린 일"을 상고하니 용안에 미소를 띄우시고 침묵하시니라. 규오가 다시 "이는 필시 증산 상제님께서 청도원(淸道院)에서 짜 놓으신 황극신도수와 대신문도수가 풀림이 아니오니까?" 하고 아뢰니 "오직 결자(結者)와 해자(解者)는 동체니라." 하시고 더 말씀이 없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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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5일 조회시에 상제님께서 하교하시기를 "그대들도 이런 일은 알아 두라. 불교의 교리가 좋다 하여도 현실에는 모순이 많으니, 남의 자식을 데려다가 제 자식을 만들고 농사도 짓지 않다가 남이 지은 양곡을 얻어먹으며 사는 걸사도(乞士道)에 불과하니라. 또 공자가 유교를 펴서 그 경서가 오늘까지 전하여 왔으나 그 많은 글들이 현실 생활에 그다지 유용하지 못하니, 이런 교들이 후천에 무용함은 증산 상제님께서 이미 도수로 짜 놓으신 바니라. 공자가 일세의 사부(師傅)로서 인의의 도리를 세상에 펴고도 죽어서는 천상의 제이문방신장(第二門方神將)밖에 되지 못하였으나, 자공(子貢)은 그 제자로되 오히려 제일문방신장(第一門方神將)이 되었느니라. 과거 성인에 대한 이런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기가 어려우나 다만, 그러한 교들로서는 세상을 구제할 수 없음을 이미 수천 년 역사와 오늘의 현실이 증명하고 있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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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교하시기를 "도덕이란 도의 꽃을 말함이니 예수교인들이 2천 년 동안 하느님 아버지만 믿어 왔으나 하느님도 그 근원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느니라. 예수는 인자(人子)로서 인덕(人德)을 펴라는 인(人)의 꽃이요, 불타는 각자(覺者)로서 불덕(佛德)을 펴라는 불의 꽃이니라. 그러나 오도는 도의 열매를 맺는 진인 (眞人) · 진신(眞神) · 진실(眞實) · 진법(眞法)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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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도에는 덕이 따라야 하느니 예수나 수운이 어떠하였던가를 보면 아느니라. 두 사람 모두 성인은 성인이나 대성인은 아니니, 대성인은 비명횡사(非命橫死)하지 않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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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3일에 상제님께서 재차 청주에 행행하시니 이는 검찰이 박한경 · 유철규 · 김영하 등을 기소하면서, 그 도의적인 책임이 상제님께도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기소하였으므로 26일에 개정되는 공판에 임어하시기 위함이며, 사건의 변호는 최병길(崔秉吉) 변호사에게 맡기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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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판의 재판장은 청주지방법원장인 문기선(文夔善)이 직접 담당하니, 그는 젊은 시절에 주역을 천독하여 신구학(新舊學)을 겸해서 수학하였다고 호언장담하며 자긍심과 아집이 강할뿐더러, 기독교 독신자로서 민족종교(民族宗敎)라면 사교(邪敎)로 보아 말살하려는 고집이 완강한 위인이니라. 그는 10여 년 전 백백교사건(白白敎事件)을 재판한 경력이 있어 이번에는 태극도를 말살할 강인한 의지로 임하니, 이날 공판에서도 개정벽두(開廷劈頭)부터 우선 상제님의 기백을 꺾으려고 "태극도는 혹세무민하는 사교가 아니오?" 하며 신문(訊問)하기 시작하니라. 상제님께서 "태극도는 천지의 대도요. 그대가 묻는 사교라는 용어가 도시 어느 법 어느 조문에 있는가를 알고 싶소." 하고 반문하시니 그는 흥분하며 "귀도(貴道)의 교리가 좋다 하여도 이를 빙자하여 '신도들의 금품을 수탈하고 재산을 탕진하게 하였다'하니 사교가 아니겠소?" 하고 힐문(詰問)하므로 "그것은 사실무근한 일로서 수사기록에도 명기되어 있으니 내가 굳이 답할 필요가 없노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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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이 다시 격앙된 어조로 "피고인은 도통하였다고 하는데 도통한 도사가 어찌 피고인이 되어 법정에 출석까지 하였소?" 하며, 자신이 가져온 주역을 펴서 그중 몇 구절의 해석을 요구하니라. 상제님께서 의연히 해석하여 주신 다음, "공자는 진채지액(陳蔡之厄)을 당하고 예수는 십자가의 혹형을 당하였다 하는데 성인군자일수록 천기를 거역하지 않는 법이니 범인이 감히 언설로 논할 수 있으리오? 더구나 그대가 주역까지 꺼내어 나의 도통 여부를 물었으나, 이는 인간의 문자로 운위(云謂)할 일이 아니며 이 법정의 일과는 관계가 없지 않소. 그대가 주역을 안다고 하나 팔괘생십이(八卦生十二)와 선기옥형(璿璣玉衡)의 이치를 아느뇨?" 하시니 그는 좌불안석하다가 차기 공판기일도 정하지 않은 채 폐정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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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1차 공판이 이와 같이 폐정되어 2차 기일이 미정일뿐더러, 한경 등의 공판 기간도 무한정 연장될 전망이므로 여관에 설석하시고 공부하시며, 최변호사로 하여금 보석을 신청하게 하셔서 5월 19일에 석방되게 하시니라. 그들이 출감 즉시 상제님께 배알하고 저희들의 잘못으로 욕급지존(辱及至尊)함이 황공무지하여 부복(俯伏)하고 사죄하니 상제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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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금현이 가물치회를 진상하니 상제님께서 진어하시며 "증산 상제님께서 이 회를 진어하시매 하늘에 가물치 형상이 나타났다 하는데 너희도 보아라." 하시고 문을 여시므로 우러러보니 과연 하늘에 가물치 형상의 구름이 떠 있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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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가는 곳에 붉은 색으로 표시했다....
2개의 도수를 이야기하시는데, 그 이유는 明淸 兩國 이 공존하기 때문이라고 밝히시고 있다....그리고 언급하신 2개의 도수는 '황극신도수(皇極神度數)'와 '대신문도수(大神門度數)' 이다..
이 2개의 도수와 관련된 구절은 아래에 있다....
(아래)
[공사2장20절] 상제께서 “선천에서 삼상(三相)의 탓으로 음양이 고르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거주성명 서신사명 좌상 우상 팔판 십이백 현감 현령 황극 후비소(居住姓名西神司命 左相右相八判十二伯 縣監縣令皇極後妃所)”라 써서 광찬에게 “약방의 문지방에 맞추어 보라”고 이르시니라. 그가 “맞지 않는다”고 아뢰니 “일이 헛일이라”고 말씀하시기에 경학이 “여백을 오려 버리고 글자 쓴 곳만 대어보는 것이 옳겠나이다”고 말하기에 그대로 행하니 꼭 맞으니라.
[행록5장31절] 상제께서 二十三일 오전에 여러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제 때가 바쁘니라. 너희들 가운데 임술생(壬戌生)으로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세우라.” 형렬이 “수부로서 저의 딸을 세우겠나이다”고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세수시키고 빤 옷으로 갈아입혀서 데려오라” 하시니라. 형렬이 명하신 대로 하여 딸을 상제 앞에 데려오니라. 상제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약장을 방 한가운데 옮겨 놓게 하시고 그의 딸에게 약장을 세 번 돌고 그 옆에 서게 하고 경석에게 “대시 태조 출세 제왕 장상 방백 수령 창생점고 후비소(大時太祖出世帝王將相 方伯守令蒼生點考后妃所)”를 쓰라 이르시니라. 경석이 받아 쓸 제 비(妃)를 비(妣)로 잘못 쓴지라. 상제께서 그 쓴 종이를 불사르고 다시 쓰게 하여 그것을 약장에 붙이게 하고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니라”고 말씀을 끝내고 그의 딸을 돌려보내시니라. 상제께서 경석에게 그 글을 거둬 불사르게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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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2장20절] 의 <皇極後妃> 중 <皇極(後妃)> 는 皇極神度數 에 해당되고, 이것은 明淸 兩國 중 <淸> 에 해당한다...그리고 <(皇極)後妃> 는 大神門度數 에 해당되고, 이것은 明淸 兩國 중 <明> 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익숙한 그림을 보면 더 알기 쉬울지 모른다....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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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3번째 圓 이 皇極神度數 에 해당되고 그 아래 2종류의 神 이 大神門度數 에 해당된다....
(참고)
[행록5장31절] 상제께서 二十三일 오전에 여러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제 때가 바쁘니라. 너희들 가운데 임술생(壬戌生)으로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세우라.” 형렬이 “수부로서 저의 딸을 세우겠나이다”고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세수시키고 빤 옷으로 갈아입혀서 데려오라” 하시니라. 형렬이 명하신 대로 하여 딸을 상제 앞에 데려오니라. 상제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약장을 방 한가운데 옮겨 놓게 하시고 그의 딸에게 약장을 세 번 돌고 그 옆에 서게 하고 경석에게 “대시 태조 출세 제왕 장상 방백 수령 창생점고 후비소(大時太祖出世帝王將相 方伯守令蒼生點考后妃所)”를 쓰라 이르시니라. 경석이 받아 쓸 제 비(妃)를 비(妣)로 잘못 쓴지라. 상제께서 그 쓴 종이를 불사르고 다시 쓰게 하여 그것을 약장에 붙이게 하고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니라”고 말씀을 끝내고 그의 딸을 돌려보내시니라. 상제께서 경석에게 그 글을 거둬 불사르게 하셨도다.
[권지1장20절] 상제께서 어느 날 공우를 데리시고 태인 새울에서 백암리로 가시는 도중에 문득 관운장(關雲長)의 형모로 변하여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내 얼굴이 관운장과 같으냐” 하시니 공우가 놀라며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거늘 상제께서 세 번을 거듭 물으시니 공우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관운장과 흡사하나이다”고 아뢰니 곧 본 얼굴로 회복하시고 김 경학의 집에 이르러 공사를 행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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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록5장31절] 과 [권지1장20절] 의 공통점은 '세 번' 에 있다...
[예시1장67절] 에는 이 중 <仙女織錦穴> 이 빠지고, <淸州 萬東廟> 가 들어가 있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3) [예시1장67절] 에는 이 중 <仙女織錦穴> 이 빠지고, <淸州 萬東廟> 가 들어가 있는 이유
[공사3장22절] 상제께서 어느 날 고부 와룡리에 이르사 종도들에게 “이제 혼란한 세상을 바루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도다.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淸國光緖帝)에게 응기하여 있다” 하시며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 될 인연은 송 우암(宋尤庵)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시작되었느니라” 하시고 밤마다 시천주(侍天呪)를 종도들에게 염송케 하사 친히 음조를 부르시며 “이 소리가 운상(運喪)하는 소리와 같도다” 하시고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군왕의 길이로다. 이제 황극신이 옮겨져 왔느니라”고 하셨도다. 이때에 광서제가 붕어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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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皇極神 을 이 땅으로 옮겨 오게 될 인연인 宋尤庵 과 관련되어 있다.....
(참고)
[공사2장13절] 상제께서 농암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허 미수(許眉叟)가 중수한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의 일만이천 고물은 녹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金剛山) 일만이천 봉은 겁기가 붙어 있으니 이제 그 겁기를 제거하리라” 하시고 “네가 김 광찬ㆍ신 원일과 함께 백지 일 방촌씩 오려서 시(侍) 자를 써서 네 벽에 붙이되 한 사람이 하루 四百자씩 열흘에 쓰라. 그리고 그 동안 조석으로 청수 한 동이씩 길어 스물네 그릇으로 나누어 놓고 밤에 칠성경(七星經) 三七편을 염송하라” 명하시니라. 형렬은 그 명을 좇았으되 신 원일이 즐거이 행하지 아니하므로 상제께 아뢰니 상제께서는 “정읍 이 도삼을 불러서 행하라” 분부하시니라. 형렬은 그를 데려다가 열흘 동안 분부대로 행한 후에 김 갑칠을 보내어 일을 마쳤음을 상제께 아뢰게 하였더니 상제께서 갑칠에게 양(羊) 한 마리를 사주며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라”고 이르셨도다.
[제생1장9절] 상제께서 동곡에 머무실 때 그 동리의 주막집 주인 김 사명(金士明)은 그의 아들 성옥(成玉)이 급병으로 죽은 것을 한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도저히 살 가망이 보이지 않자 아이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업고 동곡 약방으로 찾아왔도다. 상제께서 미리 아시고 “약방의 운이 비색하여 죽은 자를 업고 오는도다”고 말씀하시니라. 성옥의 모는 시체를 상제 앞에 눕히고 눈물을 흘리면서 살려주시기를 애원하므로 상제께서 웃으시며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눕히고 배를 밀어 내리시며 허공을 향하여 “미수(眉叟)를 시켜 우암(尤菴)을 불러라”고 외치고 침을 흘려 죽은 아이의 입에 넣어 주시니 그 아이는 곧 항문으로부터 시추물을 쏟고 소리를 치며 깨어나니라. 그리고 그 아이는 미음을 받아 마시고 나서 걸어서 제 집으로 돌아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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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眉叟 는 "금강산(金剛山) 일만이천 봉에 붙어 있는 겁기의 제거" 와 관련되어 있고, 尤菴 을 부를 수 있는 인물이 眉叟 이기 때문이다...
<仙女織錦穴> 은 창생과 관련되어 있기에 [예시1장67절] 에서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즉 [예시1장67절] 은 12000 도통군자까지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참고)
[행록5장15절] 四월 어느 날 김 보경의 집에서 공사를 행하시는데 백지 넉 장을 펼치시고 종이 귀마다 “천곡(泉谷)”이라 쓰시기에 그 뜻을 치복이 여쭈어 물으니 상제께서 “옛날에 절사한 원의 이름이라”고 가르쳐 주시고 치복과 송환으로 하여금 글을 쓴 종이를 마주 잡게 하고 “그 모양이 상여의 호방산(護防傘)과 같도다”고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갑칠은 상제의 말씀이 계셔서 바깥에 나갔다 들어와서 서편 하늘에 한 점의 구름이 있는 것을 아뢰니 다시 명하시기에 또 나가서 하늘을 보고 들어와서 한 점의 구름이 온 하늘을 덮은 것을 여쭈었더니 상제께서 백지 한 장의 복판에 사명당(四明堂)이라 쓰시고 치복에게 가라사대 “궁을가에 있는 사명당 갱생이란 말은 중 사명당이 아니라 밝을 명 자를 쓴 사명당이니 조화는 불법(佛法)에 있으므로 호승예불혈(胡僧禮佛穴)이오. 무병장수(無病長壽)는 선술(仙術)에 있으니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오. 국태민안(國泰民安)은 군신봉조혈(群臣奉詔穴)이오. 선녀직금혈(仙女織錦穴)로 창생에게 비단옷을 입히리니 六월 十五일 신농씨(神農氏)의 제사를 지내고 공사를 행하리라. 금년이 천지의 한문(捍門)이라. 지금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니라”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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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R3OKXNoVz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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