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림에서 지평선이 어디에 있는가?’ 사무실 벽에는 사진과 그림들이 붙어 있습니다. 노장 감독은 한참 젊은 영화감독 지망생에게 질문합니다. 본 대로 대답합니다. 하나는 그림 아랫부분에, 또 하나는 그림 윗부분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말해줍니다. ‘맞아. 지평선이 아래 있으면 재미있고 위에 있으면 흥미 있지. 그런데 중간에 있으면 망하는 거야. 이제 여기서 꺼져!‘ 젊은이는 멍 뜬 표정으로 잠깐 쳐다보더니 사무실을 나옵니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를 지르고 뛰어오릅니다. 그가 세월이 지나 세계적인 거장 영화감독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요?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바로 그대로 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시작은 ‘놀람’입니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캄캄한 밀실로 들어가기 싫다고 발버둥치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서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갑니다. 당시 영화는 아직 신기한 오락입니다. 단순한 무성 활동사진에서 이제는 좀 더 긴 영화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말과 음악이 나오며 이야기를 담습니다. ‘샘’은 화면 속에서 달려오는 기차가 철로에 서있는 자동차와 다른 기차와 충돌하는 장면을 봅니다. 숨이 멈춘 듯해집니다. 그 놀라움이 쉽게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잠자리에 들어가지만 아까 영화관에서 본 그 장면이 자꾸 떠오릅니다. 어떻게 될까, 정말 저렇게 될까? 샘은 일어나서 선물로 받은 기차를 설치하고 직접 실험합니다.
직접 촬영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직 십대 초 어린아이가 촬영기를 가지고 직접 나섭니다. 손쉬운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은 가족의 일상을 담는 것이지요. 카메라도 발전합니다. 아빠의 선물로 시작하였지만 조금 크니 스스로 용돈을 벌고 모아서 보다 나은 것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카메라도 실력도 발전해갑니다. 가족의 칭찬과 사람들의 부러움을 삽니다. 자기네를 촬영해서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사실 자기의 삶의 모습이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지만 화면에 담아두면 언제라도 다시 되돌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촬영하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촬영한 필름을 새롭게 편집해야 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샘의 가족은 부모와 세 여동생으로 매우 화목한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 속에서 어린 시절은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괜찮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아빠 ‘버트’는 공학도로 기계와 컴퓨터 계통의 일을 합니다. 그리고 머릿속은 늘 그 구조와 합리적인 이유와 목적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반면 아내 ‘미치’는 피아니스트로 예술적 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버트는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그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이해하고 받아주지만 부족함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가족을 사랑하고 화목한 시간을 누립니다. 그런데 버트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찾으려 애씁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찾아가려 합니다.
경제권을 가지고 있는 가장이 직장 때문에 먼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아내는 참고 그러려니 하지만 아이들은 환경의 변화에 더욱 민감합니다. 왜냐하면 학교를 옮겨야 하고 친구들을 떠나야 합니다. 다시 적응하고 친구를 사귀는 일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새 집을 마련하느라 몇 개월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셋집에 거주해야 합니다. 이래저래 짜증나지요. 모두가 떠나온 집을 그리워합니다. 조금 적게 먹어도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화목한 가족을 지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남자의 욕심은 그렇지 ㅇ낳습니다. 보다 나은 대접을 받고 일하며 보다 풍요롭게 살고 가족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나아지려는 것이 갈등의 소지가 됩니다.
어느 날 가족소풍을 가서 샘은 그 하루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아빠의 조수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필름에 담습니다. 남몰래 상처를 간직합니다. 나중에 엄마가 아들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눈치 채고 다그치니 그 영상을 엄마가 보도록 자리를 마련합니다. 엄마가 미안함을 표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마음은 기울어 있습니다. 필름이 있는 한 그 장면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시는 촬영 작업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잘 하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요. 엄마의 애인에게서 고급 촬영기를 선물로 받습니다. 억지로 받게 됩니다. 한편 샘은 전학을 간 고둥학교에서 인종차별(유대인)과 따돌림을 당하며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러면서도 영화촬영 기술 하나는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 가운데 좋아하는 여학생도 생깁니다. 물론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각자 가는 길이 다르니까요.
거장 영화감독의 자라온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어려서 영상으로 본 충격이 그의 장래를 만드는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성장의 과정을 지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족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남녀의 사랑으로 부부가 되지만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자식이 생기면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우리도 이제 참고 버티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자식의 인생이 있듯이 부모 각자의 삶도 중요합니다. 버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래도 가장 바람직한 것은 끝까지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영화 ‘파벨만스’(Fabelmans)를 보았습니다. 참고로 ‘Fabelmans’는 가족의 성이면서 독일어로 동화란 의미의 Fabel과 사람(Man)의 합성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