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2년에 남연군이 돌아가고 난 뒤 어느 날 한 지관이 찾아와 명당자리를 알려 주었다(한편으로는 흥선군이 당대의 명지관 정만인에게 명당자리를 알려 달라고 했다고도 한다). 지관은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오는 자리(二代天子之地)가 있고 광천 오서산에는 만대에 영화를 누리는 자리(萬代榮華之地)가 있다고 했다. 흥선군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야산을 택했다.
그러나 정작 가야산에 지관이 가리키는 자리는 이미 가야사라는 절이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명당이라는 바로 그 자리에는 금탑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자리에 아버지 묘를 쓰기 위해 흥선군은 차례차례 일을 벌여 나갔다.
그는 우선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임시로 탑 뒤 산기슭으로 옮겼다.
두번째 일은 가야사를 폐하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흥선군이 재산을 처분한 2만 냥의 반을 주지에게 주어 중들을 쫓아내고 불을 지르게 했다고도 하고, 충청감사에게 중국 명품 단계벼루를 선사하여 가야사 중들을 쫓아내고 마곡사의 중들을 불러다가 강압하여 불을 지르게 했다고도 한다. 절집을 폐허로 만든 뒤에는 탑을 헐어 내는 일이 남았다. 탑을 헐기 전날 밤 잠을 자던 흥선군의 네 형제는 똑같은 꿈을 꾸었다. 꿈에 수염이 흰 노인이 나와 "나는 탑신이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나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느냐? 만약 일을 벌인다면 네 형제가 폭사하리라"고 하는 것이다. 깜짝 놀라 깬 형들이 꿈 이야기를 하니 모두 같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은 흥선군은 "그렇다면 이곳은 진실로 명당자리"라며 운명을 어찌 탑신이 관장하겠느냐고 하여 형들을 설득했다. 마침내 탑을 부수자 바닥에 바위가 드러났는데 도끼가 튀었다. 그때 흥선군이 "나라고 왜 왕의 아비가 되지 말란 말이냐" 하고 하늘에 소리친 뒤 도끼를 내리치자 바위가 깨졌다고 한다.
그 다음해인 1845년에야 뒷산에 임시로 모셨던 곳에서 묘를 옮겼다. 뒷날 도굴의 일을 염려하여 철 수만 근을 붓고 강회로 비비고 봉분을 했다. 임시묘가 있던 곳은 '구광지'(舊壙地)라고 하여 지금도 움푹 패어 있다.
남연군 묘의 지세는 한마디로 풍수지리가 일컫는 명당의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뒤로 가야산 서편 봉우리에 두 바위가 문기둥처럼 서 있다는 석문봉(石門峰)이 주산이 되고, 바라보아 오른쪽으로는 옥양봉, 만경봉이 덕산을 거치면서 30리에 걸쳐 용머리에서 멎는 청룡세를 이루고, 왼쪽으로 백호의 세는 가사봉, 가엽봉에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맥이 금청산 월봉에 뭉쳐 감싼 자리이다.
동남향을 바라보면 평야를 지나 멀리 60리 떨어진 곳에 있는 봉수산(鳳首山)이 안산이 된다.
남연군 묘 앞에 있는 장명등 창으로 남쪽을 바라보면 그 동그란 창 새로 보이는 곳이다. 또 청룡맥의 옥녀폭포의 물과, 백호맥의 가사봉 계곡의 물이 와룡담에 모였다가 절 앞에서 서로 굽이치며 흐르니 임수(臨水)의 지세도 얻었다.
가야사는 그 두 물줄기가 합치는 곳에 있었다.
금탑이 있던 자리라는 남연군 묘는 그 뒤 우뚝 솟은 언덕빼기이니, 흔히 절 마당이나 법당 앞에 탑을 놓는 방식과는 달리 절 뒤쪽의 언덕에 탑이 있었던 것만도 예사 자리는 아니다. 옛 탑 자리, 곧 남연군 묘에 올라가려면 요즈음에 해놓은 층계를 꽤 걸어올라가야 하며, 위에 올라 내려다보는 시야는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남연군 묘에서 보아 왼쪽 산기슭에 돌부처가 한 분 있다. 풍채도 자그마하고 생김도 그만저만한 민불인데, 재미있는 것은 골짜기 앞쪽이 아니라 골짜기를 향해 있다는 점이다. 그 내력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남연군 묘의 풍수에서 보면 그쪽이 좀 비어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골짜기로 빠져나가는 기를 막느라 부처를 세웠다는 말이 있다. 또 하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돌부처는 원래 거기에 있었는데 흥선군에 의해 가야사가 불타 버리자 그 모습이 보기 싫다고 돌아섰다고도 한다.
흥선군은 이 자리에 남연군 묘를 쓴 지 7년 만인 1852년에 둘째 아들 재황(載晃, 아명은 命福)을 얻었고 그로부터 11년 뒤인 1863년에 이 아이가 고종이 되었으며 그 아들이 순종이 되었으니 2대 천자를 본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두 임금을 끝으로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맥이 끊기고, 남연군 묘는 오페르트라는 독일 상인이 파헤친 바 되었으니 과연 그런 수난을 당하고 2대 천자의 결말이 그렇게 난 자리가 되었다.
첫댓글 잘보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