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學淺識]
6.25 이야기
6.25는 6.25사변, 한국전쟁.
Korean War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으나
우리 정부(국방부)의 공식 명칭은 6.25전쟁이다.
KBS만 한국전쟁이라고 쓴다.
🚩피해는 참혹한데 얻은 건 없고 선전포고 없었고 종전도 아닌 휴전,
시작도 끝도 애매했던 전쟁,
거기다 2차대전과 월남전에 비해 6.25관련(헐리우드)영화가 거의 없어
'잊혀진 전쟁'이라고도 한다.
🚩피아 불문 사망자가 불명확하며 군인과 민간인 250만~ 300만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
북한군 사망 29만 실종 12만
중국군 사망 18만 실종 2만
한국군 사망 15만 실종 13만
유엔군 사망 3.8만 실종 6천 명이 통계되어 있다.
🚩2차 대전(44년)때 5성 장군이 된 6.25 총사령관 맥아더.
트루먼 대통령과의 갈등과 중공군 서울 점령(1.4후퇴)책임으로
51년 4월 만71세로 해임되었다.
역대 미 5성 장군 9명 중 전쟁 중에 해임은 맥아더가 유일하다.
연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는 미군 군가의 한 구절이다.
84세에 세상을 떴다
🚩중공군과의 백병전에서 가장 잘 싸운 군대는 태국군으로
'작은 호랑이'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백병전에서는 태국 무에타이가 태권도보다 센가 보다.
미군을 제외하고 가장 늦은 72년에 철수했고 포천 산정호수 가는 길에
'타일랜드 참전기념비'가 있다
🚩프랑스군의 대대장은 2차대전 끝나고 중장 예편한 장군이었다.
6.25참전을 자원해서 대대장 계급인 중령으로 현역 복귀한 별종 군인이다.
그래도 모두가 대대장님 대신 장군님으로 호칭했다.
🚩필리핀과 에디오피아는 당나라 군대 같아서,
한국 도착후 미군이 전면적으로 재무장시키고 훈련도 상당기간 다시 시켰다.
독자적인 전투는 없었고 미군 배속으로 싸웠다.
🚩영국을 모국으로 하는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등
6개 나라는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연방 사단을 편성해 전투에 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국은 명실상부 막강 대영제국이었다.
🚩미군은 흑백 인종 갈등이 심해,
전투 중 백인 보호 차원에서 흑인들만 따로 연대급으로 편성 전투했다.
흑인의 백인부대 배속은 전쟁끝난 54년부터이다.
🚩일본 유학중이던 한국 학생들 거의가 학도병으로 참전했고
일본인들도 70명이 참전했는데 미군 배속으로 싸웠다.
🚩인류 최초 달 착륙, 암스트롱은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고,
피델 라모스 필리핀 12대 대통령은 보병장교로 참전했다.
🚩60년 64년 올림픽 마라톤에서 연속 금메달을 딴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도 에디오피아 보병으로 참전했다.
🚩'귀신잡는해병' 이라는 한국 해병의 별칭은
6.25전쟁 미 종군 여기자의 기사 송고 제목에서 유래했다.
🚩휴전협정 소식을 각 부대에 전보(모스부호)로 처음 알린
사람은 전국노래자랑의 송해다. 당시 전보병으로 근무했다.
🚩소련도 공군 위주로 2만 6천 명 참전했는데 3차 대전으로의
확전을 우려해서 미국이 모른척 했다.
소련이 발표한 6.25전쟁 소련군 사망자는 299명이다.
🚩6.25에 직간접으로 참전한 국가는 실제 전투 참가 20개 국,
의료 지원 5개 국, 물자 지원 20개 국 등 40여 개 국이 싸운
메머드급 세계 대전이었다.
🚩터키에서는 '한국은 형제국'
인식이 매우 강해 군대 파견이 늦어지자 고교생들이 데모를 했다.
(북한은 소련 위성국으로 생각 남한을 지원했다)
미 영 카나다 다음으로 많은 병력이 참전했는데
한국에 이슬람교를 처음 전파하기도 했다.
🚩쿠바한테도 물자 도움 받고 당시 정신이 없던
장개석 대만 정부한테도 쌀 4만 톤을 받았다.
🚩미군 주둔으로 음식이 하나 생겨났다, 부대찌개다.
북방식(의정부)과 남방식(송탄)이 있는데 국물이 약간 차이가 난다.
불편한 역사가 만든 음식이라도 입에는 맞을 수 있다
🚩워커힐 호텔은 미8군 사령관 월튼 워커 중장의 이름을 따 지은 것이다.
워커는 의정부~문산 도로에서 한국 군용 트럭과 부딪혀 숨졌다.
그 곳이 미군 탱크 훈련중에 숨진 미선 효선의 사고지점과
거의 같다니 소름끼친다.
🚩워커 아들도 대위로 한국전 참전했고 육군 대장까지 승진했다.
주한미군 철수 적극 반대하다가 카터 대통령에게 짤렸다.
부자간에 한국을 위해 헌신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책임과 의무를 실천했던 사람들이 수 없이
많았던 전쟁, 잊혀진 전쟁, 6.25는 그랬다.
그땐 그랬다
또 다른 각도에서의 6.25는 '잊을 수 없는 생생 6.25 전쟁사'
(정명복)를 보면 도움이 된다.
전투는 군인이 했지만 전쟁은 국민이 했음을 알게 된다
6.25, 71주년, 오늘은 주먹밥 대신 부대찌개를 먹어보자.
남방식이던 북방식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