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제가 쓰는 글은 그냥 제 기억을 기초로 쓰는 글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당연히 정확한 연도 등 기록들을 알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기록물을 뒤져서 쓰는 글이 좋을 때도 있고 그보다는 조금 틀리더라도 글쓴이의 당시 기억과 그 글쓴이가 생각하는 주관적 글이 더 좋을 때가 있는데 지금 쓰는 글을 저는 후자 형으로 꼽습니다.
요즘 크블 삼성 썬더스 김상식 감독이 아주 핫합니다.
크블 출범 이후 전에 없던 개막전 1라운드 전승 기록이 말해주듯 아주 잘 나갑니다.
삼성은 전년도까지 꼴찌팀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팀이었으니까 이후의 기록들과는 별개로 현재 상황 만으로도 쇼킹을 불러오고도 남을 거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그를 향한 명장이란 수식어도 눈에 띄는데 꼭 김 감독이 아니더라도 지도자들을 두고서 이런 수식어가 많이 나올 수 있다면 아주 고무적이겠죠.
명장에 대한 기준은 제각각 다를 겁니다.
제게도 국내 스포츠에서 명장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야구를 생각하면 김성근 감독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가 야신으로 불리던 그 잘나가던 시절을 두고서 제가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제가 기억하는 명장의 김성근은 SK 왕조 시절이 아니라 쌍방울 팀을 이끌 때입니다.
그때가 IMF 전후쯤이니까 97~98년쯤으로 기억합니다.
김 감독이 쌍방울 레이더스를 이끌던 시절인데 다수의 예상을 깨고 그해 정규 시즌 3위를 한 걸로 기억합니다.
팀 재정이 좋은 팀도 아니고 걸출한 선수가 많을 때도 아니었습니다.
김현욱 투수가 중간과 마무리 등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 등판을 하여 그해 최다승에 오릅니다.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최다승을 기록한 유일무이한 입지적인 투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쌍방울은 제가 응원하는 팀도 아니었습니다.
벌떼 야구, 인해전술, 배고픈 야구를 보는 느낌이었는데 선수들 각자가 눈에 띄기보단 그들이 모여서 이룬 팀의 결실과 상징성이 더 커 보였던 시즌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 감독을 명장으로 꼽았던 기억은 그 시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이후 SK 시절 업적은 훨씬 더 뛰어났지만 제겐 별 감흥이 없습니다.
그냥 이길 선수들을 데리고 우승을 했다. 딱 이런 정도인데 이것도 결코 쉬운 건 아니지만 임팩트가 크진 않았습니다.
훗날 한화 시절엔 선수 혹사와 말도 안 되는 궤변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투수의 어깨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대충 저런 류의 멘트를 남긴 걸로 아는데 지금도 저 멘트에 난 공감하지 않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자기만의 노하우이자 개인 인식을 마치 정석인양 고집스럽게 일반화시키려고 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쌍방울 시절의 용병술은 이해가 갔는데 한화 시절의 용병술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두 집안은 선수들 형편이 너무나 많이 달랐으니까요.
명장하면 해태 왕조 시절 김응룡 감독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역시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등의 김 트리오에다 선동열 이강철과 같은 빵빵한 선수들을 이끌고 우승하던 때를 꼽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모두 떠난 96~97년 시즌인데 이종범이 방위 복무를 하면서 홈경기만 뛸 수 있었던 96년과 전역 후인 97년 연속 우승했던 그 때가 제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 해태의 연속 우승을 보면서 김 감독을 명장으로 인정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 김응룡 감독 역시 훗날 한화를 이끌면서 시원찮은 결과물을 남겼습니다.
두 김 감독님께서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얘기가 있듯 좀 더 일찍 정상의 자리에서 아쉬움이 남아있을 때 모두 떠났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축구 얘기로 들어오면 모두가 잘 아는 히딩크 감독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언급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모두가 그를 명장으로 꼽는 이유는 넘치고 넘칠 겁니다.
제가 꼽는 건 월드컵 입상 순위는 접어두고 그가 바라보고 진단하는 처방이 그 당시 국내 다수 축구 전문가들의 인식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겁니다.
비근한 예로 "한국 축구는 기술적 부분이 문제가 아니라 체력 쪽이다."
당시 히딩크의 이 진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한 분들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절대다수가 그 반대로 인식하고 있었을 겁니다.
더 꼽자면 그가 특히 더 중용했던 선수들을 보면 그의 축구 철학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영표, 박지성, 설기현, 송종국...
위 선수들은 하나같이 에너지 레벨이 아주 뛰어났던 선수들입니다.
그래서 멀티 축구도 구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위 선수들은 모두가 팀 케미 쪽으로도 좋은 선수들이었던 걸로 압니다.
그 당시 썩어도 준치인 양 네임밸류로만 먹고살던 선수들...
그러니까 실력은 뛰어난데 이름값으로 설렁설렁 뛰며 위 두 부분 쪽에서 의문점이 있던 선수들에겐 히딩크 감독이 주전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끝까지 자신과 싸우도록 했습니다.
그런 선수들에겐 자존심까지 살짝 터치하는 등 심리 이용 쪽으로도 뛰어난 감독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이름값과 출신지 만으로 국대를 마치 자신의 전유물처럼 당연시 하던 그 관행들을 깨 부순걸 저는 아주 의미 있게 봅니다.
그리고 이정효 감독을 꼽고 싶습니다.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아닌 전년도 광주 FC 시절을 얘기하는 겁니다.
현재 광주 FC는 크블 삼성 썬더스와는 거의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정효가 떠난 광주는 내년 1부에서 2부 리그로 강등권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성근의 쌍방울이 그랬듯 광주 FC는 선수 구성 등 열악한 환경에서도 국내 리그 성적은 물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팀입니다.
그가 떠난 뒤 단 1년 만에 광주 FC는 그의 공백을 아주 크고 절실하게 느낄 거 같습니다.
배구 쪽으로는 진준택 감독을 꼽고 싶습니다.
이 역시 프로 배구 출범 초기 고려증권을 이끌고 우승하던 그때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96년도 삼성 배구단이 출범하기 전 유능한 다수의 선수들은 현대 팀으로 많이 갔습니다.
여섯 명의 엔트리로는 고려증권도 좋은 구성은 맞았지만 뎁스 쪽에선 비교불가로 보았는데 끈적끈적한 조직 농구로 현대 팀에 전혀 뒤지지 않은 우승 업적을 이루어 냅니다.
고려증권 우승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실제 양 팀의 우승 마진은 그 임팩트만큼 큰 차이는 아니었다는 생각인데 어쨌거나 그 열세의 환경에서 대등한 싸움 어쩌면 그 이상의 선전을 이끌어 낸 진준택 감독을 명장으로 꼽지 않을 수 없네요.
삼성 왕조를 이끌어 낸 신치용 감독을 혹자들은 명장으로 꼽는데 저는 그냥 SK 왕조 시절 김성근 감독이 그러했듯 우승할 선수들로 우승을 했다. 딱 그 정도입니다.
김세진과 신진식이 하향세로 접어들 시점엔 외국인에게 지나친 몰빵 공격과 국내 선수들은 수비 역할에만 치중했던 기억이 더 강한데 그렇더라도 불러 모은 구슬을 잘 꿰어서 이룬 업적은 인정해야겠죠.
다만 불러 모은 싹쓸이 구슬이 좋았던 만큼 명장 반열의 문턱도 그만큼 더 높아져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다시 농구로 돌아와서,
김상식 감독이 요즘 선수들 그 이상으로 언론에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이동미사일이 의미하듯 아주 정교한 슛을 지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크블에 신경을 끊은지라 잘 모르나 정관장 시절 우승 시즌에는 덕장인가? 싶었는데 현재의 삼성 행보를 보면 지장의 면모가 더 강한가? 싶기까지 합니다.
꼴찌의 대명사 팀을 그 반대의 최상위 위치로 끌어올린 건 덕장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오래도록 명장으로 기억될지는 시즌을 마쳐봐야 알겠지만 현재 이 상황만으로도 아주 유의미한 업적을 이미 이룬 거 같습니다.
현재의 이 업적이 또 다른 큰 업적으로 이어져 제게 또 한 명의 명장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끝으로 제가 명장으로 꼽는 건 단순 우승이라는 결과물 만이 아닙니다.
무색무취가 아닌 그 감독님만의 확실한 색깔과 철학이 느껴질 때를 의미합니다.
위에 나열한 감독들은 그 당시를 기억할 때 제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명장으로 꼽아 보았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고려대 농구부 서포터즈 안암골호랑이들
첫댓글 스포츠는 감독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 느끼게 됩니다. 멤버도 그대로. 감독만 바뀌었는데. 극과 극의 성적이라니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