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한 젊은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전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알았는데, 이제 보니 학생들을 위해 죽을 수 있고, 죽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철들었다고 했습니다. 철든다는 것은 이전의 다른 말이 아닌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5년 전 광주의 시민들이 그저 알고 있지 않고 행동하고 함께 한 것이 민주화를 찾아왔듯이.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은 교회가 철든 날입니다.
제가 신부로서 하는 일 중에 하나가 학생들에게 심리학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 그중에 하나가 그 사람의 신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행동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집에서 가정폭력 가해자들 있잖습니까? 집에서 때리는 사람들. “왜 때렸어요.” 하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홧김에?) 보통 가정에서 아이들을 때리는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대답 하냐 하면,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그렇게 대답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은 그런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신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신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신념이라는 것, 여러분들 아시겠지만 제주 강정에서 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 정부는 뭐라고 했습니까? 평화로운 동북아를 만들기 위해서 기지를 건설하고 무기를 갖다놓고 싸우는 연습을 합니다. 그 사람들의 신념은 그런 것입니다. 국가가 이 팽목항에 와서 무슨 말을 했습니까?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그렇게 이야기 하고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안전한 나라는 그들이 안전한 나라. 그렇다고 보면 신념이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념, 얼마나 위험한가? 여러분들도 경험했지만 모든 전쟁이나 학살, 사람을 가볍게 보는 것을 아주 떳떳하게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신념이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살게 만들어주는 신념 말입니다. 이 혼란의 시대에 어찌 보면은 신념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옳다.’, ‘목숨 걸고 살겠다.’라는 것이 사라집니다. 그냥 우리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만 남아 있고 신념이 사라지다 보니, 우리가 어디에 서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끔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우리들의 인생에서 ‘내가 그것 때문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하는 것 한 가지가 있는가?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신념에 가득차서 뛰어 나갑니다. 그전까지는 두려워서 어찌할지 모르고, 그 어떤 것이 우리를 밝혀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뭘까? 바로 ‘그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여기 이 자리에 모여온 이유도 그런 확신과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것이 우리를 살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신념 때문에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살아가기를 자기 입으로 고백하는 그 순간, 교회가 이때부터 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도 목격하고 기적도 체험하고 모든 것을 다 했는데도 숨어 들어갔습니다. 근데 이 확신이 든 순간, 철들기 한 순간, 모든 것을 하기 시작합니다. 내 입으로 말하고, 내가 다가가고, 내가 아파하고, 내가 가서 분노하고, 내가 의롭게 기도하고 뛰쳐나가고 바로 그런 것을 갖는 것, 우린 그것을 집중하고자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35년 전 광주 시민들이 왜 나갔을까요? 계엄군들이 오고 죽어 나갔는데 왜 나갔을까요? 두려워하고 나가지 않고 집안에 있어도 되는 순간에,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왜 뛰쳐나갔을까요? 그것이 결국 우리들을, 누군가를 살게 한다는 그 신념 때문입니다. 혼자만의 신념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더불어 똑같은 신념을 가졌었습니다. 교회가 출발하는 것도 제자들 몇 명 때문이 아니라 똑같은 신념을 가진 무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주에서도, 팽목항에서도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하고 있을 때, 결국 이것이 한국 사회를 살릴 것이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져야 될 신념, 조금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신념을 가진 것들이 부딪히고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의 신념이 왜 다를까요? 기득권과 자기만을 지키려고 하는 그들의 신념과 우리들의 신념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안에서 가지고 있는 신념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지는 신념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바꾸고 살게 만드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안다는 것이 그들을 바꿔내지 못했습니다. 바로 뛰쳐나가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그렇지 않습니까? ‘알음’을 그 ‘답게’ 살 때 그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금 이 현장에서 묻습니다. 우리를 살릴 신념이 무엇인지? 내가 아직 그들과 똑같이 내 욕심과 나의 평안이 아니라, 결국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막아 낼 수 없고, 그리고 또한 우리를 죽음 안에 머물 수 없게 만드는 그 분이 계시다는 희망을 갖고 우리들의 그 길을 함께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신부님들이 함께 모이셨고, 자신도 비우시지만 더 큰 희망으로 채우기 위해, 그 분을 향할 힘을 키우기 위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그 길에 함께 하시고 또한 더불어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신념 안에서 걸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사에 함께 한 벌교성당 청년들.
은화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신부님들.
팽목항 일대를 청소하러 오신 광주 금호2동 성당 교우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