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합니다.
(사무엘하 18 : 1-8)
내인생은 역전승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전시키십니다.
야구시합은 9회에 역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3대 2로 지고 있다가도 3대 4로 역전합니다.
경기는 끝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부대가 많은 압살롬부대와 부대수가 적은 다윗부대가 역전승합니다.
다윗부대가 역전승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 함께 하는 사람을 세우라.(1절)
함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압살롬의 반란군과 다윗의 군대 사이에 최종적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직후에 곧바로 다윗을 기습하자던 아히도벨의 계략이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다윗에게 시간을 벌어주려 했던 후새의 계략이 성공하여 다윗은 충분히 재정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난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정면으로 충돌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부대를 전투를 위해 편성하였습니다. 오늘날 군대가 소대, 중대, 대대, 연대를 나누듯, 부대를 백명단위와 천명단위로 나누고 백부장, 천부장을 지휘관으로 나누었습니다. 효율적인 부대 운용을 위한 편성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전 부대를 셋으로 나눠 3분의 1은 요압에게, 3분의 1은 요압의 동생 아비새에게, 삼분의 일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나설 때 따라 나와준 용병대장 가드사람 잇대에게 배치하였습니다. 전쟁에 잔뼈가 굵은 다윗은 효율적으로 부대를 정비하였습니다.
모든 편성이 끝난 후에 다윗은 자신도 이번 전투에 직접 나설 것을 백성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사기를 높이고, 이 전쟁에 자기의 책임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다윗의 참전을 반대하였습니다. 이번 전투는 반란군과의 전투였기 때문에, 적군이 다윗만을 노릴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혹시 죽거나 큰 부상을 당하면 전쟁 자체가 바로 끝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왕은 우리 만명보다 중하시니 왕은 성읍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의 간청에 다윗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성읍에 남아있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전투 현장에 없을 경우, 휘하의 장군들과 병사들이 압살롬에 대한 적개심으로 압살롬을 살해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이미 암논을 잃었던 다윗은 압살롬마저 죽게 되는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일 압살롬이 죽게 되면, 지금까지 그를 잘 품어주지 못했던 아버지로서의 미안한 마음과 비통한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다윗은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압살롬을 살려줄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20절에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많은 숫자보다 함께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함께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선한 목적을 가진 창조적이고 전략적인 고독은 필요하지만 의미 없는 고독은 피하십시오. 즉 전략적으로 사람을 멀리할 때 외에는 왕따가 되지 않도록 나의 기분만 생각하거나 나의 뜻과 원칙만 고집하지 말고 섬김과 봉사에 힘쓰면서 자기 성찰과 회개에 탁월한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혼자 살 수 있는 생명은 없습니다. 사람은 더욱 그렇기에 하나님은 만남을 허락하셨습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든지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라고 붙여주신 것입니다. 왜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는가? 혼자 지내며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의 뿌리가 얽히지 않으면 성공해도 조만간 쓰러집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야 나도 행복해집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붙여 주신 사람과 함께하려고 해야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기도도 능력 있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도 넘치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면 역전됩니다.(7절)
압살롬의 부대와 다윗의 부대가 에브라임 수풀에서 정면으로 충돌하였습니다. 다윗에 의해 잘 정비되었고, 이미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지휘관들이 이끌었던 다윗의 부대를 압살롬의 부대가 감당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비록 압살롬의 부대는 온 이스라엘에서 온 많은 숫자였지만, 다윗의 군대 앞에 추풍낙엽처럼 무너졌습니다. 하루 전투에 이스라엘 군 전사자가 이만명이나 나왔습니다. 더더군다나 그들은 수풀에서 싸웠는데, 수풀에 갖혀서 죽은 자가 실제 전투에서 칼에 맞아 죽은 자가 더 많았습니다. 명백한 전술의 실패였습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처음 일으켰을 때엔 모두가 압살롬의 반란이 쉽게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압살롬은 오랫동안 준비했기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압살롬은 매우 영리한 참모인 아히도벨의 도움을 받고 있었었습니다. 군대의 숫자도 압살롬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모든 것이 압살롬에게 유리하였습니다. 실제로 반란이 일어나자마자 다윗은 허겁지겁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상황을 보면, 압살롬과 다윗의 상황이 조금씩 역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뒤 계속해서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도와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용병대장 잇대는 그를 따라 나서 주어주었고, 그의 친구 후새는 목숨을 걸고 압살롬 진영에 잠입하였습니다. 두 제사장은 예루살렘에 남아 소식을 전해주었고, 그 두 아들들은 죽을 위기를 넘겨가며 다윗에게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다윗의 동맹들은 도망치던 다윗에게 보급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다윗은 상황을 서서히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상황은 이와 정반대였습니다. 압살롬의 조언자였던 아히도벨은 철저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오직 권력을 바탕으로한 정책을 선택했습니다. 아히도벨을 따랐던 압살롭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이후에 압살롬의 모든 선택은 망하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후새의 계략에 속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영리했던 아히도벨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모든 소식을 전하던 다윗의 전령들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압살롬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흘러갔고, 결국 결정적인 전투에서 압살롬은 완전히 패배하였습니다.
그때 다윗 군대가 숫자와 전력이 월등했던 압살롬 반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쟁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앞세워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사명감과 용기와 사기도 중요하지만 조직력과 전략도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는 용기와 함께 전략도 달라고 기도하라. 무작정 기도만 하지 말라. 계획과 전략도 없이 무조건 “믿습니다.”라고 소리치고 나갔다가 패배의 나락에 빠져 믿음을 의심하는 모습이 없게 합니다. 아무런 전략이 없이 나가서 거룩한 꿈이 허무한 꿈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역전시킵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상하의 전체 주제를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주제가 오늘 다윗과 압살롬에게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다윗은 비록 망하였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존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삶은 회복되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하나님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삶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삶의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아야 할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권력과 지혜가 우리의 삶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세웁니다. 주님은 온세상의 창조주시요, 통치자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는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 앞에서 겸손히 주님의 뜻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역경과 고난으로 삶이 절망의 벽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서 순식간에 죄악이 최선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하게될 때 우리는 그것을 삶이 역전되었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요셉이 체험한 삶이 바로 그런 삶이었습니다.
17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종으로 애굽에 팔려가 바로 왕의 경호실장 집에서 10년을 종살이 한후에 그 직위가 가장 총무까지 올랐으나 경호원 보디발의 아내의 스토킹을 당해 억울하게 시위대들 감옥에 갇혀 기약없이 3년을 지난후에 어느날 순식간에 애굽왕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그 나라 국무총리로 발탁이 된 것입니다. 정말로 하늘과 땅과 같은 삶의 역전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그러므로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역전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을 부요로 바뀌어 주십니다.
욥을 기억하십시오. 하루아침에, 그의 인생에 까닭도 없이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경제적인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건강의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건강했던 그가 기왓장으로 자기 몸을 긁고 있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까닭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는 영적인 흉년을 만나, 괴로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떠나신 것 같았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했습니다. 인간관계의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친구들이 와서 손가락질합니다. “네가 정말 정직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런 시련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욥을 찾아오셨습니다.
욥은 욥기 42장 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은 한두 번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인생이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듭 기회를 주십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은 미완성입니다. 진행 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흉년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지친 몸을 이끌고, 하나님의 품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다른 것을 다 포기한다 할지라도, 예수님만 붙잡으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생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삶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의 인생 목표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어떻게 하면 죄 사람을 받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어떻게 미움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어떻게 절망에서 소망이 생길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병든 사람에게 전해줄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죽어가는 사람에게 전해줄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나쁜 사람이 좋게 되는 최대의 비결은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행복한 가정이 되는 비결은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영적 부흥의 기폭 점은 어디서 나옵니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흉년을 만났다 할지라도, 반드시 역전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전시킵니다.
어떤 역경을 만난다 할지라도, 우리 인생에 역전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역전승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