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상례문화의 귀중한 기록물인 『상례비요(喪禮備要)』의 소중한 원본이 사단법인 장례지도사협회 이상재 회장의 수중에 들어왔다.
이 회장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기록된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님들의 효(孝)와 예(禮)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당분간 『상례비요』를 연구하고 공부하며 장례의 근본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지식을 쌓고자 한다”고 전하며, 전통 장례문화의 뿌리를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계획임을 밝혔다.
『상례비요』는 조선시대 유교적 예법에 따라 장례 절차를 세밀히 기록한 대표적 예서(禮書)로, 당시의 상장례 의식과 효 문화, 의복 및 제기(祭器) 사용법 등 장례 전반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현대 장례문화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조선시대의 전통 상례 기록은 장례의 본질과 인간 존엄에 대한 원형을 되짚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이상재 회장은 “우리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장례 예법의 깊은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후대 장례지도사들에게 그 가치를 전승하는 것이 협회의 중요한 사명”이라며 “『상례비요』를 중심으로 한 연구 세미나와 자료 해설 작업을 통해 한국 장례문화의 뿌리를 복원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상례비요』는 저자와 관련하여 논란이 되는 저술이다. 17세기의 경우, 신의경(申義慶:1557~?)의 초본(草本)을김장생(金長生)이 첨삭, 개정,윤색주1,산정(刪定)주2한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초 김장생을문묘(文廟)에배향(配享)주3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이러한 사실이 논란이 되면서, 19세기에 이르면 김장생이 저술한 것이라는 인식으로 바뀌게 된다. 반대로 현대의 연구자들은 김장생에 의해 보완되었다고 하더라도 초고가 신의경에 의해서 저술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신의경을 저자로 보는 입장을 대체로 지지한다.
다만 『상례비요』와 신의경의 초본(『상례통재(喪禮通載)』)을 비교 및 분석한 연구에서는 『상례비요』가 신의경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되 성찰적으로 발전시킨 저술로서 단순히 첨삭, 개정, 윤색, 산정한 정도에서 그치는 저술이 아니며, 민간 의례서의 대부분이『가례』또는 전범이 되는 선행 연구를 기본으로 하여 저자들의 입장에 따라 일부 개정하고 보완하는 방식으로 저술된다는 점에서 김장생의 저술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초간본 3종이 발견되었고 이를 초본, 개정본과 비교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면 저자 관련 논란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돈암서원본 계열과 제주향교본은 불분권(不分卷) 1책이지만, 함경감영본과 평안감영본, 그리고 경상감영본의 경우는 2권의 1책본 또는 2권의 2책본이다. 평안감영본은 ‘문상(聞喪)’으로부터 하권이 시작되고, 나머지는 ‘치장(治葬)’으로부터 시작된다. 경상감영본의 경우두주(頭註)주5의손익(損益)주6을 제외하고 체제가 일정하므로 이를 기준으로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책
• 상례비요서(喪禮備要序): 김장생(金長生, 1620년), 소서(小序): 김집(金集, 1648년)
• 상례비요범례(喪禮備要凡例)
• 상례비요도(喪禮備要圖): 사당전도(祠堂全圖) 등 117개
• 상례비요상(喪禮備要上): 초종(初終), 습(襲), 소렴(小斂), 대렴(大斂), 성복(成服), 문상(聞喪)
제2책
• 상례비요하(喪禮備要下): 치장(治葬), 계빈(啓殯), 급묘(及墓), 성분(成墳), 반곡(反哭), 우제(虞祭), 졸곡(卒哭), 부(祔), 소상(小祥), 대상(大祥), 담(禫), 길제(吉祭), 개장(改葬), 사당지의(祠堂之儀), 시제(時祭), 기일(忌日), 묘제(墓祭)
• 상례비요발(喪禮備要跋): 신흠(申欽,1621년)
범례(凡例)주7는 본서의 편찬 원칙을 밝힌 것으로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째, 『상례비요』는 『가례』를 근본으로 하되 예경(禮經)과 조선의시속(時俗)주8그리고 주자의 정론에 근거하여 보완하고 개정하며 재배치하였다. 둘째, 『가례』에 수록된도설주9에 오류가 있는 경우 이를 개정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도설을 첨가하였다.
그 결과 『가례』에는 28개에 불과했던 도설이 117개로 증가하였다. 셋째,상례(喪禮)의 절차마다 필요한 기물의 종류와 수량을 기록하되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 기물은 조선에서 사용하는 이름으로 바꾸어 수록하였다. 넷째, 『가례』의 본문은 한 줄의 큰 글자로 기록하고 저자가 보충한 것은 두 줄의 작은 글자로 기록하거나 아래위에 ‘⁐’와 같은 표시를 하였다. 아울러 인용한 여러 설들은 서명(書名)을 기록하여 전거를 밝히고, 저자의 견해일 경우에는 ‘우(愚)’자 또는 ‘안(按)’자를 써서 구별하였다.
상권에는 상례의 절차 가운데초종부터문상까지, 하권에는 치장으로부터담제까지의 절차와 『가례』에는 없는길제와개장주10의 절차, 그리고제례(祭禮)에 해당하는 사당지의,시제,기일주11,묘제의 절차를 수록하였다. 개장은 명대(明代) 구준(丘濬)의 『가례의절(家禮儀節)』을 준용한 것이다. 길제는 예경과 주자의 정론에 근거하여 『상례비요』에서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중국의 민간 의례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상례를 마치고 나면 곧바로 제사를 지내게 되기 때문에 제례에 해당하는 절차를 이어서 수록하였다.
상례의 절차인 초종에서 담제까지의 내용에서 특징적인 것은 첫째, 빠뜨려서는 안 되는 절차임에도 『가례』에 빠진 것을 예경을 근거로 보완하였다는 것이다. 예컨대 초종에설치(楔齒)주12와 철족(綴足)을 하고심의(深衣)를 착용하도록 하며, 습에 모(冒)를 사용하고 얼음을 쓰도록 하며,소렴을 마친 후에 질대(絰帶)를 착용하도록 한 것이 그것이다. 둘째, 예경과 어긋나는 규정을 개정하였다는 것이다. 상중에 상주가 출타할 때 착용하는묵최(墨衰)주13를방립(方笠)주14과생포(生布)주15로 바꾼 것이 그것이다.
셋째, 번잡하게 나열된 표제어를 의식의 진행을 고려하여 간략하게 정리하였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례』에 ‘목욕, 습, 전, 위위, 반함’으로 되어 있는 표제어를 ‘습’으로 줄이고, ‘천구, 조조, 전, 부, 진기, 조전’, ‘견전’, ‘발인’으로 되어 있는 것을 ‘계빈’으로 통합하며 ‘영좌, 혼백, 명정’과 ‘조석곡전, 상식’ 등으로 되어 있는 것을 모두 생략하고 본문의 내용만 기록한 것이 그것이다.
16세기 중반 이후 본격화되는 민간 의례 부분인 『가례』에 대한 연구는 상례와 제례를 중심으로행례(行禮)주16의 표준 지침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17세기 초반 『상례비요』라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내고 18세기 중반 이후 그 절정에 도달한다. 상례와 제례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상례비요』는 조선의 시속을 반영하여 『가례』를 현지화하는 동시에 고례(古禮)를 중심으로 『가례』를 보완하는 작업을 수행하여『국조오례의』에 수록된 민간 의례 관련 지침을 한 단계 진전시킨 저술이다. 이후 간행되는 행례서들은 학파의 분기를 넘어서서 『상례비요』를 본보기로 그 범위를관례(冠禮)와혼례(婚禮)로까지 확대하고 내용적으로 정비하는 작업을 예외 없이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