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장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본장에 기록된 율법을 실천할 사람들은 광야에서 최후를 맞이할 구세대가 아니라 당시 20세 이하의 신세대였다. 그러므로 본장이 먼저 기록된 이유는 하나님의 엄한 심판으로 그 믿음이 크게 침체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함이다.
본장은 각종 율례들이 원칙 없이 열거된 것 같으나 사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마친 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생활하도록 한 것이다.
둘째, 가데스의 불순종의 결과 20세 이상 된 자들이 가나안 입국이 금지되고 광야에서 죽어가야 하지만 그 후손들은 반드시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셋째, 불신앙과 불평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일은 오직 피흘림의 제사로만 가능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1. 소제와 전제에 대한 규정 (15:1-16절)
광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에서 이스라엘은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 모든 희망을 상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를 제시함으로 죽음 저 너머에 있는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게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가나안 땅 축복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 주셨으며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신앙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이 말씀은 바로 전장에 하신 말씀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과 정반대로 비교가 된다. 이제는 광야에서 죽어야 할 구세대가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신세대에게 하나님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본장은 독립적인 제사가 아니라 다른 제사에 곁들여 드려진 소제와 전제에 관한 규례를 다루고 있는데 소제는 동물의 희생 제사를 드릴 때 항상 곁들이는 곡식 제사를 가리키며 충성과 감사를 상징한다.
전제는 번제물이나 화목 제물 위에 포도주나 독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 방법을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전제는 상번제, 안식일 제사, 초막절에 드려졌다.
‘누구든지 본토 소생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제사’는 제물을 드리는 자가 헌상하기 이전에 그 제물을 바치는 자의 삶과 마음가짐을 점검하고 그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임을 명심하여 참 성결과 경건에 힘써야 한다.
여호와 종교의 각종 제사는 순수 혈통의 이스라엘인이나 그들 중에 거하는 이방인 모두가 동일하게 지켜야 할 규례임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온 인류의 대속자요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회중’이라는 말은 단순한 집합체로서 회중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으로 모인 총회를 뜻한다. 가나안에 건설될 신국 이스라엘의 성격을 말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은 히브리인들의 혈통적 집합체가 아니라 여호와 신앙으로 모인 신앙 공동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절대적인 것으로 상황에 따라 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나라인 가나안 땅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영내에 거주하며 이스라엘이 누리는 신적 특권을 이스라엘에 동화된 자들도 동일하게 누리는 것이다.
2. 처음 익은 곡식 드리는 법 (15:17-21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양식을 먹게 될 때에 처음 익은 곡식을 거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법이다. 거제는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려 받는 제사로 바쳤던 제물을 제사장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을 상징한다.
처음 익은 곡식은 그 땅의 양식의 대표격인데 이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첫 수확한 곡식 가루로 만든 떡을 거제로 드리는데 한 해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첫 곡식의 열매는 인류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타작마당으로부터 곡식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 오면 제사장은 유월절 기간 중에 들어 있는 ‘첫 이삭을 바치는 날’ 즉 유월절이 지난 첫 안식일 다음 날에 이것을 거제로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 거제를 ‘타작마당의 거제’라고 한다.
이 거제는 대대로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이다.
3. 부지중에 범한 죄를 속하는 제사 (15:22-31절)
부지 중 곧 비고의적으로 범한 죄를 속하기 위한 속죄제에 대한 규례이다. 이 제사는 고의적으로 죄를 범한 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속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범죄를 범한 자들은 반드시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알지 못하고 지은 죄라도 기필코 단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은 죄를 몰랐다고 핑계하거나 과오를 정당화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한 또 하나의 범죄가 된다.
그런데 이 규정을 살펴보면 특이하게도 회중이 지은 죄와 개인이 지은 죄에 따라 드려지는 제물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개인의 범죄보다 단체의 공동 범죄를 더욱 심각하게 취급하신다는 것이다.
오늘 날 현실은 단체가 범한 공동의 죄는 크게 문제시 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의 범죄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단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체가 지은 죄를 일시적으로 연기하실지라도 반드시 간과하지 않으신다.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원뜻은 ‘옆길로 빗나가다.’ ‘취하여 비틀거리다.’ ‘알지 못하고 죄를 짓다’ 라는 의미로 인간의 연약한 본성 때문에 실수로 저지른 고의성이 없는 범죄를 말한다. 이는 레위기에 나타난 규례와는 다른 규례이다.
레위기 규례는 분명하고 뚜렷한 죄에 대한 속죄 규례이지만 여기서는 소극적인 태만죄, 방관죄. 무지죄에 대한 속죄 규례이다. 그러나 반드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회중이 부지중에 범하였거든’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나 혹은 그들을 대표하는 제사장의 범죄는 개인의 범죄보다 크게 다루어졌다. 회중을 위하여 수송아지와 수염소가 드려졌는데 번제와 속죄제용이었다.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고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면 사함을 받게 된다.
‘한 사람이 부지중에 범죄하면’
제물로 일 년 된 암염소를 드렸는데 속죄 방법은 회중과 동일하다. 그러나 누구든지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여호와를 비방하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 백성 중에서 끊어지고 그 죄가 자기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4. 안식일을 범한 자의 처벌 규례 (15:32-36절)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계명을 주실 때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십계명을 주심과 동시에 고의로 안식일을 범한 자는 죽이라고 하였다. 안식일에 불도 피우지 말라는 엄격한 규정도 주어졌었다.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 하는 것을’
안식일 법을 알고도 나무를 한 것은 고의적으로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는 행위였다. 이 범죄자에게는 어떤 변명도 필요 없으며 죄의 대가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사람도 안식일을 범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처형할지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진 밖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셨다. 진 밖에서 사형을 집행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성이 미치는 영역인 진영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며, 여러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는 것은 공동체의 연대 의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5. 옷단의 술 (15:37-41절)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든지 겉옷 단 귀에 ‘술’을 달게 하신 것은 그들이 그 ‘술’을 볼 때마다 자신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거룩한 신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술’은 이스라엘 백성의 성결과 경건을 위한 인식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들은 옷 술을 크게 하고 경문을 넓게 하여 자신들의 경건과 언약 백성으로서 우월성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셨다.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옷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걸치고 다녔던 외투를 말하는데 별 치장 없이 몸가림만을 위한 겉옷을 말하는 것이다. 이 옷은 통으로 되어 있고 자연히 네 개의 모서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네 끝단에 술을 달았는데 장식과 같은 끈을 말하는 것이다. 옷 끝에 청자색 실로 단을 달았는데 율법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있어서 생명의 꽃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외식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경건을 공개적으로 자랑하기 위하여 이 술을 크게 하였다.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하늘의 표시로 청색 실을 단 것이다.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방종’이라는 말의 원래의 뜻은 ‘간음하다’이다. 이는 여호와를 떠나 이방의 세속적인 문화에 도취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옷단의 술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