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알래스카에서 파나마까지/옐로우스톤
지구의 거친 숨소리 들리는 간헐천 왕국 글·사진 김산환 스포츠월드 레저생활부 기자 sanbull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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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증기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미드웨이 바신의 보드워크를 거니는 사람들. |
미국의 서부개척사를 다룬 영화 중에 ‘늑대와 춤을’이란 작품이 있다.
백인은 선민, 인디언은 야만인으로 그리는 할리우드의 영화 풍토로 볼 때 이 영화는 대단한 문제작이었다.
영화 줄거리를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남북전쟁에 참가해 전쟁의 야만성과 폭력을 목격한 덴버 중위는 홀로 서부 대평원의 요새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대자연을 무대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동화된다.
‘늑대와 춤을’이란 이름은 원주민들이 덴버 중위에게 지어준 것이다.
영화는 서부개척시대 백인들이 자행한 끔찍한 살육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원주민들에 대한 연민을 담고 있다.
‘늑대와 춤을’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가 버펄로 사냥이다.
원주민들은 겨울 날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 버펄로를 죽인다.
그러나 가죽에만 관심이 있는 모피사냥꾼들은 끔찍하게 버펄로를 살육한다.
끝없는 평원 전체가 가죽이 벗겨진 버펄로의 시체로 가득한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버펄로의 운명은 다름 아닌 원주민들이 맞게 될 비참한 운명을 상징한다.
세계국립공원 1호 옐로우스톤
서부개척시대 버펄로 무리를 쫓던 모피 사냥꾼 가운데 짐 브리저나 오스번드 러셀 같은 이도 있었다.
이들은 수십만 마리씩 무리 지어 서부의 평원을 누비던 버펄로를 사냥해 큰돈을 벌었다.
그들이 버펄로를 쫓아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옐로우스톤(Yellowstone)이었다.
버펄로를 쫓아 옐로우스톤으로 들어간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경악했다.
온 세상이 눈 천지인 한겨울에, 그것도 해발 2000m가 넘는 고원의 여기저기서 뜨거운 물이 솟아났다.
어느 곳은 간헐천이 하늘 높이 치솟았고, 전나무 숲 사이를 흐르는 계곡에도 따듯한 물이 흘렀다.
모피 사냥꾼들이 목격한 이 경악할 만한 장면은 탐험가와 사진가를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 정부가 주목하기에 이르렀다.
1872년 3월 1일 미국은 ‘옐로우스톤은 미래를 위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땅’이라 평가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미국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대자연이 속속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인간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누렸다.
미국은 물론 세계국립공원의 효시가 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시작부터 그렇게 화려하게 등장했다.
미국의 국립공원은 누구나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권리를 기본으로 한다.
어느 국립공원을 가더라도 방문자의 눈높이와 체력에 맞춰 다양한 코스를 마련해 두고 있다.
사흘 밤낮을 걸어도 끄떡없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는 이동이 불가능한 장애인이나 노인들은 노인대로 저마다 품어볼 수 있는 코스가 있다.
그런 면에서 옐로우스톤은 미국의 일반적인 국립공원 원칙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뼈마디가 눅신하게 걸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트레킹 코스가 없다.
그 이유는 해발 2000m의 고지대 평원에 자리한 공원 전체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기 때문이다.
200만 년 전부터 몇 차례의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옐로우스톤은 지구상에서 간헐천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그랜드캐니언 보다 3배나 큰 공원 곳곳에 간헐천이 널려 있다.
간헐천은 지구가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물이 지하로 스며들면서 만들어진다.
지하로 스민 물은 용암에 의해 뜨겁게 달구어진다.
지하수가 부글부글 끓다 더는 견딜 수 없으면 지표면의 틈새를 뚫고 솟구치는 것이다.
간헐천은 옐로우스톤 어디서나 솟아오른다.
침엽수림 깊은 곳에서도, 강에서도, 호수에서도, 심지어는 아스팔트 포장을 깔끔하게 마친 길에서도 솟아난다.
머드 볼캐이노(Mud Volcano)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주차장과 도로 가운데서 모락모락 수증기가 피어올라 공원관리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어쩌면 옐로우스톤 호수의 깊은 물속에서는 지금도 뭉청뭉청 용암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옐로우스톤의 간헐천은 분출하는 장소가 계속 바뀐다.
작은 지진이나 지층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솟는 곳이 옮겨진다.
그런 연유로 지질학자들은 옐로우스톤을 “지구를 보는 거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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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리스 바신의 황량한 간헐천 지대. 간헐천 사이를 걸을 수 있게 보드워크가 나 있다. |
‘지구를 보는 거울’ 간헐천
옐로우스톤의 간헐천은 확인된 것만 1만개가 넘는다.
하지만 간헐천의 형태는 제 각각이다.
샘물처럼 졸졸 흘러나오는 곳이 있는가 하면 매머드 핫 스프링스(Mammoth Hot Springs)처럼 온천수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곳도 있다.
올드 훼이스풀(Old Faithful)이나 노리스(Noris)는 온천수가 분수처럼 창공을 찌르기도 한다.
맑은 온천수만 토해내는 게 아니다.
아티스트 페인트 팟츠(Artist Paint Pots)나 머드 볼캐이노에서는 고운 진흙 같은 석고가 뽀글뽀글 솟아난다.
그렇게 인간이 기억할 수 없는 세월 이전부터 솟구쳤던 간헐천의 생명이 다해 숨쉬기가 잦아들면 온천수에 녹아 있던 석고와 미네랄이 굳어져 화석으로 남는다.
옐로우스톤이란 이름을 갖게 해준, 매머드 핫 스프링스에 남아 있는 거대한 계단식 석고가 대표적인 증거다.
생이 다하는 것은 간헐천만이 아니다.
이 간헐천 지대를 감싸고 있는 숲도 변한다.
침엽수가 빼곡하게 자란 숲에서도 느닷없이 펄펄 끓는 온천수가 솟아나 나무들을 죽인다.
간헐천이 솟는 방향이 바뀌면 나무들은 불벼락을 맞는다.
한 아름도 넘는 나무들이 마치 벌채를 한 것처럼 제멋대로 쓰러져 나뒹구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나무는 더 튼튼하게 서 있기 위해 땅 속으로 뿌리를 박을수록 자신에게 불벼락을 내릴 간헐천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옐로우스톤에서 간헐천은 얼마나 높이 솟구칠까? 노리스에 있는 스팀보트(Steamboat Geyser)는 높이나 온도로나 세계에서 첫손에 꼽는다.
이 간헐천은 무려 60m 이상을 솟구치게 한다.
온천수의 온도는 200℃에 육박한다.
말 그대로 펄펄 끓는다.
안타까운 것은 간헐천이 솟는 시기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간헐천은 작게는 4일, 길게는 50년에 한번 솟구쳐 그 모습을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그런 면에서 올드 훼이스풀은 간헐천이 치솟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옐로우스톤의 얼굴이라 할 수 있겠다.
이곳은 하루 17~20회, 40m 높이로 온천수를 뿜어낸다.
온천수가 솟는 시간은 방문자 안내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천수가 솟을 때면 간헐천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형극장처럼 만들어진 좌석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온천수가 솟는 시간은 길어야 20초가 넘지 않는다.
옐로우스톤 호숫가에 자리한 웨스트 썸(West Thumb)은 에메랄드빛 간헐천과 호수 속에서 솟는 간헐천이 장관이다.
올드 훼이스풀처럼 하늘 높이 솟구치거나 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호수의 물속에서 솟아난 간헐천에 함유된 석고가 굳으면서 방금 폭발한 화산의 분화구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떤 녀석은 지구의 푸른 눈처럼 한없이 깊은 속내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간헐천만 있다면 지금처럼 유명세를 타지도, 세계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는 특혜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모자란 2%의 아쉬움을 작은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옐로우스톤 강과 유리알처럼 잔잔하고 맑은 옐로우스톤 호수가 채워준다.
간헐천과 대협곡, 호수가 함께 어우러져 세계 최고의 국립공원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다.
공원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은 옐로우스톤 호수는 해발 2400m에 위치한 화산호수다.
면적은 136평방 마일로 미국 본토에 있는 호수 가운데 가장 크다.
깊이는 100m, 둘레가 160km에 이른다.
비단을 풀어놓은 것처럼 잔잔한 호수 위로 아침마다 노을이 물들고 물안개가 자욱하게 퍼지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맑은 물속에서는 송어가 노닐고, 고니와 기러기 떼가 이곳에서 지친 날개를 쉬어간다.
버펄로나 늑대, 엘크 무리는 이 물로 갈증을 달랜다.
이 그림 같은 호수로 빨려들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은 브리즈 베이(Bridge Bay)에서 카약이나 요트를 타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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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옐로우스톤의 이름을 낳게 한 매머드의 간헐천 지대. 간헐천은 수시로 솟는 위치를 달리하며 솟아난다. |
완벽한 시설을 자랑하는 국립공원
호수에서 빠져나온 물줄기는 옐로우스톤 강을 따라 북쪽으로 흐른다.
평원을 유유히 감아 돌며 평화롭게 흐르다가 어퍼 폭포(Upper Falls)를 지나면서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그랜드 캐니언처럼 깎아지른 대협곡이 28km나 뻗어 있다.
대협곡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한 두 개의 폭포가 이 협곡의 백미다.
규모나 빼어난 자태로 보나 어퍼 폭포보다 로워 폭포(Lower Falls)가 한 수 위다.
로워 폭포는 높이가 94m로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두 배나 높다.
이 폭포의 장관을 바라보는 전망대는 여러 곳에 있다.
멋모르고 포인트마다 찾아가며 협곡을 오르내리면 장딴지만 팍팍해질 것이다.
어퍼 폭포와 대협곡의 장엄한 모습을 보려면 아티스트 포인트(Artist Point)와 그랜드 뷰 포인트(Grand View Point)만 기억하면 된다.
혹여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오르내리는 재미를 맛보려면 엉클 톰스 트레일(Uncle Tom’s Trail)의 400여 계단을 밟아 내려간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보라까지 맞아볼 수 있지만 되돌아 올라오는 일이 만만치 않다.
옐로우스톤은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자들에게는 참 편리하다.
공원으로 드는 다섯 개의 관문에서 시작되는 도로는 공원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간헐천을 거미줄처럼 이어준다.
각각의 이름난 간헐천마다 주차장이 있고, 이곳에서 간헐천까지는 보드워크(Board Walk)를 깔끔하게 깔아놓았다.
이 보드워크를 따라가면 늪처럼 변한 간헐천 지대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코앞에서 10여m씩 온천수가 솟는 간헐천과 마주하기도 한다.
“국립공원은 이렇게 관리되어야 한다”고 본보기를 보여주기나 하듯 완벽한 시설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처럼 완벽한 탐방시설이 옐로우스톤을 파괴시키는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간헐천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던 보드워크로 인해 간헐천 지대가 함몰되고 있다.
또한 매년 수백만 대의 차량이 급류처럼 밀려들어오는 것도 옐로우스톤의 피로를 더해주고 있다.
급기야 환경론자들은 옐로우스톤의 파괴를 막기 위해 공원 폐쇄라는 극단적인 카드까지 꺼냈다.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날에 ‘지구의 거울’로 불리는 옐로우스톤의 신비를 더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INFORMATION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길잡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미국의 서북부 와이오밍과 아이다호, 몬태나 주의 경계에 있다.
공원 안으로 드는 길은 모두 다섯 갈래. 이 가운데 서쪽에서 드는 길은 사계절 내내 개방한다.
하지만 북부와 동부, 남부 쪽은 겨울에는 통제하며 다른 계절에도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공원 홈페이지(www.nps.gov)에서 도로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현명하다.
옐로우스톤을 대충 돌아보는데도 최소 1박에서 2박은 해야 한다.
올드 훼이스풀과 매머드 핫 스프링스, 그랜트 빌리지, 레이크 빌리지에 호텔이 있다.
6월부터 9월까지는 성수기로 숙박 예약이 쉽지 않다.
캠핑장을 이용하는 게 비용도 절감하면서 예약의 번거로움을 더는 길이다.
공원 안에 11개의 캠핑장이 있다.
캠핑장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얼음을 살 수도 있고, 샤워를 할 수도 있다.
공원 내에 식당도 변변치 않다.
캠핑을 하려면 먹을거리를 충분하게 준비해 가는 게 현명하다.
꼭 캠핑이 아니라 호텔에서 머물 경우에도 점심 등은 재료를 준비해서 해먹는 게 편리하다.
옐로우스톤으로 가려면 솔트레이크 시티를 경유하는 게 가장 좋다.
솔트레이크 시티까지는 샌프란시스코나 LA, 시애틀에서 항공편이 자주 있다.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옐로우스톤 남쪽 관문까지는 자동차로 7시간쯤 걸린다.
라스베이거스나 LA를 기점으로 옐로우스톤과 그랜드 티톤을 찾아가는 여행상품도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