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는 것은 '해방'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노래는 해방된 그리운 우리 산하에서 평화롭게 일하고 자유롭게 노래하며 살아
가는 모습을 염원한다. 그리고 단결하여 힘을 모아 해방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
자는 것이 노래의 의미일 것이다.
이 노래는 당연히 왜정 하에서 금지곡으로 묶인다. 그러다가 해방되면서 다시
크게 불려진다. 우리 어려서 듣던 것이 바로 그 때의 노래일 것이다.
작사자는 石松 金炯元이다. 충남 강경 출신으로 기자요 시인이다. 1921년 동아
일보의 창간 멤버의 한 사람이다. 문재가 뛰어났다고 한다. 6.25 때 납북된다.
작곡을 한 안기영은 충남 청양 출신으로 성악을 전공한 당대 유명 테너 가수요
작곡가였고 이화전문학교 교수였다고 한다. 6.25 때 월북한다.
이 노래는 작사, 작곡자들의 월북으로 다시 묶이는데,
그런데 단순히 월북인사나 또는 친일파라고 해서 그들의 작품을 배척하는 일은 잘못된
일로 보인다. 앞뒤가 꽁꽁막힌 자들의 무책임한 행패에 다름 아니다.
쉬운 예로, 그래서 춘원의 '흙'이나 벽초의 '임꺽정' 같은 작품을 다 불태워 없앤
다면 얼마나 한스런 일이 될 것이란 말인가!
'작품'은 작자를 떠나면 대중의 것이 된다. 작품의 평가는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
이 할 일이다.
많은 작품들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을 타고 소위 '해금'되는 것이지만 씁쓸
한 뒷맛이 남는다.
어쨌든 이 노래는 매스컴을 통해 다시 불려진다.
"傷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
식민지 고된 생활에 부러진 발목을 끌고라도 자유 독립을 위해서라면 일어나 달려나가리라는
신념을 보이고 있다.
이 노래는 남북에서 다 부르고 있다. 지금 나오는 것은 북에서 만든 화면이다.
보면 문예봉이 나오고 있다.
文藝峰(1917-1999)은 함남 함흥 출생으로 10대에 나운규와 함께 출연한 흑백 무성영화
'임자없는 나룻배'를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전설의 여배우로, 삼천만의 연인으로
명성을 날린 인물이다.
부군은 '홍도야 우지마라'의 극본을 쓴 임선규이며 해방 후 같이 북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