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타는 것이 좋다
잊히는 목문에도
안부가 묻었는지
사람들 손 높이에 얼룩이 모여 있다
고택의 무거움일까
과거를 붙잡는 걸까
바람을 잡느라
햇살에 닳고 닳은 문
손때는 앞을 몰라 끝과 시작을 삭일 때
흔적은 끌 손잡이와
망치 자루 추궁한다
나도 모르게 붙잡는
오래된 나무 기둥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겹씩 옷을 벗는다
맨 처음 손을 탄 목문이
경첩을 슬쩍 당긴다
여기부터 시작입니다
쌓인 게 너무 많아 찾아간 어느 암자
깨끗한 아침을 노스님은 또 쓸고 있다
큰 원을 그려가면서
따라가는 발자국
그것이 길이었을 때 울음마저 사라져
깡마른 뒷모습 빗자루처럼 꼿꼿한데
나는 더 무거워졌다
바람도 멈춰 있다
고요마저 쓸린 자리 쉬시지요 물었더니
지금이 끝이 아니라 여기부터 시작입니다
누군가 버리고 간 말
아직도 남아 있다고
어때요 이런 고요
외딴집에 홀로 앉아
아궁이에 불을 넣는다
낯익은 발자국보다 먼 소리가 먼저 들려
일몰은 남아 있는데
고요만 타들어 간다
어제 떠난 발자국
퉁퉁 불어 커질 때
저녁을 훔쳐보는 유일한 산 고야이
눈빛은 노을을 따라
조금씩 움직인다
쓸쓸한 곳 들춰보면
불씨들 살아날까
녹이는 곱은 손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눈사람처럼
어때요 이런 고요
나에게는 손잡이가 너무 많다
쓰지도 않으면서 못 버린 손잡이들
잡으려는 것보다 잡은 것 놓지 않아
모두 다 나인 것처럼 철모르게 너를 당긴다
너를 여는 방법은 오로지 나뿐인데
비를 맞은 쇳소리 또 집착에 빠질까 봐
진하게 녹물 들도록 오랫동안 기다린다
깍아내고
뽑아내고
끊어내고
풀어내도
아직도 씻지 못한 쇳물은 깊이 들어
잠깐씩 흘려보내던 녹슨 애정 잡는다
카페 게시글
회원신간
조경선시조집《어때요 이런 고요》여우난골2024.8.8.
김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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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3
24.08.1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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