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임, 슬픔, 흐름 / 최정례
반짝이는 것과
흘러가는 것이
한 몸이 되어 흐르는 줄은 몰랐다
강물이 영원의 몸이라면
반짝임은 그 영원의 입자들
당신은 죽었는데 흐르고 있고
살아있는 이들이
그 반짝임을 바라보며 서 있다
컵에 든 얼음 / 최정례
열이 없는 놈은 열이 있는 놈의 열을 뺏으려고 안간힘
을 쓴다 아니 열이 있는 놈이 열이 없는 놈의 열을 뺏으
려고 몰려와 몸을 비비댄다 땀방울이 맺힌다 열이 없는
놈이 결국은 제 몸을 다 녹였다 제 몸을 녹이기는 힘들다
물이 주루룩 흘렀다
다 어디론가 흘러갔다 그와 나 사이에 물 한컵이 있다
아무것도 없다 안간힘을 쓰다보면 결국 사라진다 안간힘
을 쓰지 않아도 사라진다 거기서 거기다 그가 나이고 내
가 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와 나 사이엔 끄떡 없는 벽이 있
다 이젠 미지근해진 물이 컵 속에 있다 벽을 오해하는 인
내와 벽을 기다리는 울화통과 벽을 두드리는 미련함, 지
옥이다
애완용 인간 / 최정례
1725년 왕이 그를 숲에서 주워왔다. 그는 벌거벗은 채였고 두 다리로 걷는 게 아니라 네발로 뛰어 다녔다. 그의 원래 이름이 피터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는 말을 못했으니까. 그에게 말을 가르치려 했지만 끝내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조지1세가 그를 런던 켄싱턴 궁으로 데려갔는데 그는 거기서 애완용 인간이 되었다. 이 야생 아이는 궁정을 뛰어다니며 사람들 주머니 털기를 좋아했고 기습 키스하는 것도 좋아했다. 숲에서 벌거벗겨진 채로 발견된 그는 아마도 늑대가 길렀을 것이다 어쩌면 곰이 키웠을 것이다 공상과 추측이 난무했다, 왜냐면 그는 손가락을 빨고 옷 입기를 싫어하고 도저히 말을 배우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공주의 소중한 회중시계를 낚아챘고 어느 날은 왕 앞에서 공작의 모자를 벗겨갔다. 사람들은 그 무례함에 싫증내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어느 농장으로 보내졌다. 농장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는 침대 대신 바닥의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있기를 좋아했다. 그를 잃어버릴 경우에 대비해 사람들은 그의 주소와 이름을 새겨 그의 목에 묶어두었다. 그는 죽었어도 그 목줄은 아직까지 박물관에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 연구자들은 애완용 인간 피터를 예로 든다. 인간은 네발로 걷지 않는다. 인간은 말을 만든다 인간은 기습 키스를 한다. 인간은 애완용 인간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싫어한다 인간은 인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