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 전의 일로 기억되는데, 한국 바둑의 일인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조훈현 9단과 일본의 실력자 다께미야 9단이
TV 속기 바둑에서 마주친 일이 있었다. 그동안의 전적도
조 9단이 한발 밀리는 형세였던 터라 조 9단으로서는
설욕의 기회 겸 한국의 바둑 팬들에게 멋진 기보를
선물할 기회였던 셈이다.
그러나 결과는 조 9단의 한 집 반 패배였다.
그것도 거의 다 이겨가던 바둑을 막판에 역전 당하여 지고
말았으니 본인의 아픔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그 대국을 지켜보던 수많은 바둑 팬들의 심정도
씁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씁쓸했던 것은, 내가 그 TV 바둑을 보면서
조 9단에게 훈수를 하더란 점이다.
'왜 저러나, 거기보다는 저 쪽이 확실한 선수인데.'
물론 그 바둑의 해설자도 그런 그림을 늘어놓으면서
'이 정도면 최소한 한 집 반은 이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둑은 내 훈수대로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해설자의 수순대로도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조 9단은
그야말로 '다 이긴 바둑'을 지고 말았다.
그러면 나나 그 해설자가 조 9단보다 바둑을 잘 두는가.
그 해설자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그것도 그냥
아닌 정도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해도 다 표현이
안될 정도다. 그런 내가 조 9단의 바둑을 훈수하고 있다니,
그리고 신통하게도 그렇게만 되었다면 이길 수도 있었다니,
이상한 일이다. 내 바둑 실력은 그저 문외한을 겨우
벗어난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바둑에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아놀드 파머의 퍼팅을 보면서, 물론 대부분의 경우엔
감탄을 발하지만, 때로는 어쩜 저렇게 못하는가고
혀를 차기도 하며, 매켄로의 테니스를 보면서 그의 코치가
무색할 정도로 작전을 지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매켄로의 상대편 코트에 세워 놓으면 그의 공을 단 한 개도
맞받아 칠 수 없으면서도 말이다.
모든 일이 그렇다.
구경꾼의 입장과 당사자의 입장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믿음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예수를 구경하고, 그의 능력이나 지혜에 감탄을 발하기는
쉬운 일이다. 또한 예수를 따라다니던 그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세상적인 욕심에 대하여 비판하며 두들겨 패기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의 지혜에 감탄한다고 해서 그 지혜가
우리의 것 되지도 않으며, 제자의 어리석음을 한심해 한다고 해서
우리가 제자들의 그런 어리석음을 벗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예수나 제자의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구경꾼의 자리를 벗어나
당사자의 한사람이 되는 것밖에는 없다.
그래서 병이나 고치고, 복이나 받겠다고 몰려드는 거대한
군중들 속에서 온 몸으로 외로워야 하고, 생활은 율법에
푹 잠겨 있으면서도 머리로는 진리와 자유를 찾아 움직이는
허상들 속에서 통곡해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를 구경하고 예수를 환호하며
그에 대하여 감탄과 경배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나 자신이 한사람의 예수가 되어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는 일이다.
예수는 오늘도 동물원의 원숭이나, 서커스단의 재주넘는
곰처럼 되어버린 자신에 대해 애통하고 있다.
누가 우리의 예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예수를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글: 이호식
첫댓글 어제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항존직 모임이 있었습니다...시무장로님의 입장과 은퇴장로님의 입장과 권사님들의 입장들이 서로 오고가면서 많은 시간을 지냈습니다...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집사님이 일어나 이런 발언을 하더이다... `이건 회의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고 전달도 아닙니다 이런 소비성 회의는 하지 맙시다..`
지금 우리교회만의 현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인지 정말 주님께 묻고 싶습니다....예수는 간곳없고 말들만 무성한 이시대 이지요..그러나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할것 입니다...이제부터 충실하게 내안을 들여다 보려 합니다...주님! 내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게 하소서!.....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은 철저히 '나'의 모습을 깨달아 알라고 주신 것이지 제삼자를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라고 주신 것은 결코 아니지요. 내 눈을 바깥 세상을 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보이는 바깥 세상이 나의 눈을 통해서 보여짐으로써 '나'라는 실존의 '어떠함'을 알라고 주신
것인데도 믿음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성경 말씀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는 재료로만 사용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 내가 변하면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남이 변하기만 기다리는 어리석음이 오늘의 '기독교'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바깥 세상을 향해 있는 시선을 내 안으로 되돌리는 것이라 감히
주장해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안에 당신의 처소(지성소-하나님 나라)를 마련하시고 안식하실 때까지 말씀 앞에 앉아 부지런히 그 맑디 맑은 영혼의 양식을 먹고 마실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만이 영이요 생명이니 말입니다. 샬롬!
옳은편에 선다고 정의는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볼 줄 아는 것이 영적인 눈일 거예요.
어제 저의 교회에 목사님 은퇴식이 있었죠 우리교회는 5년 마다 한번씩 목사님을 바꾸기로 유명한 교회랍니다 지금계신 목사님 께서 이리로 오실때 마지막 제단이라 라고 하셨읍니다 유별스런 교인에 시달려 7년을 보내시던증 두달전 목사님은 실어증에 걸리셨죠 모두들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 라 하시더군요 그런데 진단
결과는 뇌에 종양이 생겻다는 것이었죠 목사님 반대 파는 죄책감을 벗어버린듯 했답니다 어제 은퇴식에서 노회 목사님들이 참석해서 쎄라모니를 진행 했는데 그들이 힘찬 찬양을 하는 모습은 우리 목사님 모습을 통해자신들이 지어야할 십자가를 생각 하는듯 보였답니다 전 그 찬양을 함께 부르며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답니다 하지만 요즘 교역자들은 정말 사람에 게 흔들리지말고 오직 하나님 말씀위에바로서서 온전한 말씀을 선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포함 한다던가 말씀을 통해 누굴 정죄 한다던가 하면 문제가 아니겠읍니까? 교인들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읍니다 다 들 자기 자신을 어떤 모습인지
볼수도 없고 보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역시 그중에 하나이구요 결국은 이런생각이 듭니다 내가 변하는것이 복음 이라는 것 우리 교회 30년 동안 은퇴식 은 처음 인데 (그것도 억지로) 어제 정말 마음이 아팠읍니다 아주많이 ,,,
애나님. 영혼을 풍성케 하는 아픔도 있다고 합니다. 애나님을 더욱 키워가는 아품처럼 느껴짐니다.
정말 내안에 믿음이 있는지 다시한번 나자신에게 묻고 싶습니다...확신하는것은 베드로의 믿음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주님께서 붙드신 것처럼 우리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주님께서 붙드신다는 그것이 저는 믿어집니다.......
내 발을 앃기시는 주님. . .
아담(나)이 먹었던 '성악' 세상을 버리고 '생명의 나라'로 눈을 돌리는 것! 이것이 참 믿음으로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요. 모든 분들, 협력하여 하늘의 선을 이루가는 아름다운 발걸음이여...! 복 되도다 그대들이여. 하나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저도 저의 믿음이 있는지 많이 의심이 갑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만일 하나님이 지금 내 앞에서 계신것이 육안으로 보인다면 난 지금 이러고 잇겠는가? 아마 하나님 하라는대로 했을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말씀 속에서 하니님 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뵙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